〈 105화 〉 105 다음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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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언니 오늘 플랫폼대전 스트리머들 뒤풀이한다는데 참가하는거야?
서울 어디서 모이는데. 전부 다 참가하는 거 맞지? 여자 스트리머들 없고 혼자면 그냥 바로 돌아와. 집에 들어오면 연락하구
아직 안들어왔어?
부재중 전화... 혜민
<혜민/>
언니
언니
언니
언니
언니
.
.
.
<혜민/>
걱정했잖아. 집에 잘 들어온거지? 나 내일 언니네집 들려도될까? 또 숙취로 고생할거같아서그래.
응, 알았어. 언니도 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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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대전의 뒤풀이는, 그 내용이 무엇이든 많은 시청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커다란 팬덤을 보유한 스트리머들이 대거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랬다.
순수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스트리머들이 현실에서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뛰어난 방송인들이 모여 회식을 하는 자리다. 특별한 사건이 없다고 한들 재밌는 에피소드 한두 개 정도는 나올만했다. 게임보다 방송인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기다리는 시청자도 존재하는 만큼, 뒤풀이 이후의 방송을 기대하는 시청자는 많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한껏 웅크리고 흑심을 키워나가는 시청자도 있었다.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을 찾아다니며 파헤치는 사람들처럼. 자신이 추종하는 사람과의 거리감을 착각하고 몸을 과하게 밀어붙이는 부류의 인간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스트리머의 사생활에 집착하는 음습한 시청자들이었다.
그런 부류의 시청자는 즐겨보는 방송인의 방송이 꺼진 지극히 사적인 시간에도 집요하게 달라붙어왔다. 어찌됐는 이성 스트리머가 여럿 자리한 이상, 분명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강렬한 의혹을 품은 채였다. 이런 이들은 뒤풀이를 이야기하는 방송에서 뭔가 단서가 될만한 발언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다.
각자 다른 마음을 품고 기다리던 와중에, 뒤풀이에 참가한 스트리머 중 가장 먼저 방송을 킨 건 돌주였다.
<다리열개달린개 님이="" 1,000원="" 후원!=""/>
아니 정규방송킨거가지고 생색을 내는 스트리머가 있네 우리가 니 술 많이마셔서 숙취인 것까지 감안해줘야되냐 닥치고 걍 뒤풀이 썰이나 풀어 똘추야ㅡㅡ
"응, 아직 밴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너는 일단 밴이야."
[열사니뮤]
[팩트 밴입니다 다 선동과 날조만 해주세요]
[ㄹㅇ 니가 과음해서 고생하는건데 왜 우리가 사정을 봐줘야됨? ㅋㅋ]
[그래도 얘가 뒤풀이 참가한 스트리머 중 제일 방송 일찍 켰어요 여러분]
[됐고 썰이나 풀어. 쪼망님 실물도 이쁨?]
"어떻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시청자가 한명도 없어?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말 안 할 거야. 재밌는 썰 진짜 개많은데. 님들만 손해보는 거야, 이거."
돌주의 말에 반응해 나락으로 도배되는 채팅창은 이미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시청자와 치고받는 것을 메인 컨텐츠로 삼는 돌주의 방송에는, 평소보다 많은 시청자가 들어온 상태였다.
자신의 저컴 게시판에서 뒤풀이를 다녀온다며 공지까지 올리며 휴방을 한 스트리머다. 뒤풀이가 있었던 당일인 어제는 SNS계정에 몇 번이나 음식이 담긴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원래 있던 애청자들은 물론이고, 이때다 싶어 방송을 방문한 유입들도 돌주의 입에서 흘러나올 다른 스트리머들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후원 최소 금액인 천원으로 온갖 메세지가 쏟아졌다.
"아이씨, 알았어. 지금 영도는 쏘지마. 이거 이제 질릴 때 안 됐어? 며칠 째 똑같은 걸로 놀리는 거야."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젓자 샛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이 좌우로 흔들렸다.
이렇게 계속 뜸을 들이며 시간을 끌 수도 있었지만, 그러다가 성난 민심이 어떻게 폭발할지는 알 수 없었다. 몇 번인가 방송에서 실수를 저지르며 시청자를 이탈시켰던 경험은 지금이 딱 상황을 수습할 적절한 타이밍임을 경고하는 것 같았다.
불필요한 브라우저를 종료하고 캠 화면을 확대한 그녀는 곧장 입을 열었다.
"어제 엄청 더웠잖아? 그래서 애초에 예약해둔 식당에서 모이려고 했어. 근데 또 길 못 찾아서 늦게 오는 사람들이 있잖아. 뭐? 아니, 내가 아니라 쪼망이 같은 친구들을 배려한 "
댈런과 만나 식당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시작한 그녀의 뒤풀이 썰은 꽤나 세밀하게 이어졌다.
지각을 일삼고 방송 사고를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도, 돌주가 많은 시청자를 보유한 건 이유가 있었다. 멘트를 쉬지 않고 뱉어대면서도 시청자와 주고 받는 소통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풀어내는 이야기에서 뻔뻔하게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도 듣는 사람을 자극하는 일종의 조미료처럼 느껴졌다.
뒤풀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기다리던 시청자들은 속에 품은 목적과는 상관없이 다들 돌주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녀가 간략하게 언급한 식당의 특성이나 위치를 보고 그게 어딘지를 추측하는 채팅들이 번잡하게 올라갔다.
"스테이크도 좋았어. 특이하게 겉부분을 아예 튀긴 것처럼 바삭하게 구웠더라구. 그리고 가니쉬도 엄청 잘 어울렸고. 기름기가 조금 과했는데"
<주주먹겠지 님이="" 1,000원="" 후원!=""/>
누가 새돼끼지 아니랄까봐 먹을거 묘사 존내게 상세하게 하고있네 씨잇팔 그런건 넘기고 스트리머들 썰 위주로 풀어달라고
[ㅇㅈ]
[왜 입에 침고이고 좋았는데]
[먹방이나 보러 가 ㅂㅅ들아]
[쥐흔ㄴ]
[돌주가 알아서 하겠지;]
[이새기가 알아서 한 적이 있기나 할까요?]
[이러다 쳐먹은얘기만 한시간조지다 끝남]
[쪼망님 실물도 이쁨? 쪼망님 실물도 이쁨? 쪼망님 실물도 이쁨? 쪼망님 실물도 이쁨?]
"아, 진짜 존내게 참을성이 없네. 알았어. 니들 원하는 얘기 위주로 해줄게.
쪼망이? 쪼망이 엄청 귀여웠어. 내가 바로 옆에 앉았거든. 피부 엄청 부드러워. 볼이 말랑말랑한 게 진짜 너무 이뻤는데.
프릴 달린 하얀 블라우스에 플레어 스커트 입고 왔거든? 그거 방송에서 입은 적 없지? 밥 다 먹고 2차 가는데 그냥 엄청 청순했다니까. 사진도 있는데 안 보여줄거지롱."
[얼마면 보여줌]
[ㅈㄴ 띠껍게 설명하네 이,년]
[나도 볼만질래]
[육수새기들 부들부들하는거 개웃김ㅋㅋㅋㅋㅋ]
[아 야방키지 ㅅㅂ 존나궁금하게]
"하는 게 외모랑 딱 맞아 떨어진다니까. 뭔가 작은 강아지같아서 옆에서 지켜보고 깊은 느낌? 계속 보고 있어도 안 질리지. 호프집에선 노르드님 옆에 앉았는데 둘이 같이 모여있는 것도 엄청 잘 어울렸어. 이미지가 완~전 반대거든. 먹을 때도 보면 작게 잘라서"
[노르드???]
[노르드님도 오셨나요?]
[???]
[젤중요한걸왜이제말해 똘주야]
[아니 그 텐련이 뒤풀이같은델나간다고?]
아무렇지 않게 썰을 이어나가던 돌주는, 이내 채팅창이 비슷한 내용의 의문으로 가득 차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감정표현이 풍부한 얼굴에서 묻어나오는 건 당혹스러움이 아니었다. 자신을 비추는 렌즈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짓는 것이, 놀랄만한 소식을 듣고 당황한 시청자들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걸 보고 채팅창이 더욱더 난잡해질 무렵이다. 한참 뜸을 들이듯 침묵하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내가 말을 안 했나? 노르드님도 왔거든, 어제."
볼 방송이 없어 기웃거리던 노르드의 팬들에게는, 폭탄과도 같은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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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도 보도 못한 소식에 격분한 노르드의 시청자들이 격정을 토해낼 곳을 찾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을 때, 혜진은 느긋하게 동생 혜민과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에어컨을 틀어둔 원룸은 이름난 피서지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혜진은 전날의 술기운에 짓눌린 채 흐느적거리며 라면을 끓였다. 고추를 썰어넣은 라면은 술에 젖은 위장을 칼칼하게 쓸어내렸다. 그녀는 라면을 먹으며 전날의 기억을 복기했다. 곧 특별히 사고를 치지는 않은 것 같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무렵 노르드의 저컴 게시판은 늘어나는 게시글에 페이지가 몇 번이나 새롭게 갱신됐다. 졸지에 폭탄이 떨어진 게시판을 관리하는 주연은 하던 편집을 멈추고 과잉진압에 나섰다. 삽시간에 몇십 개의 계정이 차단당했다.
라면을 다 먹고 설거지를 시작할 때쯤 혜민이 원룸에 도착했다. 뭔가 커다란 가방같은 걸 들고 온 혜민은 오자마자 제 언니의 몸부터 확인했다. 지난 밤의 음주가 그저 숙취 정도로만 남았다는 걸 확인한 그녀는, 라면 따위는 해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며 해장국을 끓여주겠다고 선언했다. 동생의 요리 실력을 의심 걱정한 혜진은 배가 부르다며 혜민을 만류했다.
스벅과 쪼망의 방송이 켜진 건 그 즈음이었다. 눈치 빠르게 방송을 조기 종료한 돌주를 대신해,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시청자들이 새롭게 방송을 켠 두 스트리머의 방송에 침투해 발광하기 시작했다. 미칠듯이 올라가는 채팅의 주된 내용은 뒤풀이에 참가한 노르드에 대한 물음이었다. 당황한 쪼망은 황급히 뒤풀이 때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진정제를 투여받은 짐승들처럼 그제야 채팅이 완화되는 듯 보였다.
혜민이 끓인 콩나물국은 미묘한 단맛이 맴돌았다는 걸 제외하면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라면으로 가득찬 위장에 억지로 국물을 집어넣은 혜진은 한동안 침대에 퍼질러졌다.
그걸 포만감으로 받아들인 혜민은 만족한 얼굴로 제 언니의 곁에 누워 잠들었다. 에어컨의 시원한 냉기와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이 몸에 감겨들고, 다가오는 수마를 견디지 못한 혜진도 덩달아 낮잠에 빠져들었다. 혜민이 선물한 토끼 잠옷을 입은 채였다.
얌전한 척 뒤풀이를 듣던 시청자들은, 내성적인 쪼망이 신중히 말을 고르는 걸 보며 참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스벅과 댈런 등 다른 스트리머의 방송까지 찾아가 뒤풀이 썰을 기다리는 집요한 시청자도 있을 정도였다.
여전히 노르드의 게시판은 핫한 게시판 랭크의 첫 번째 자리에서 빛난 중이었다. 주연의 손에 의해 분탕들 대부분의 목이 날아간 상태였음에도 그랬다. 말없이 뒤풀이에 참가한 건 아무래도 좋으니, 제발 방송이라도 키라는 여론이 주를 이뤘다. 당연히 방송은 켜지지 않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혜진과 혜민이 눈을 떴다. 주말의 단잠은 보약이었는지 두 사람 다 상쾌함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세안을 마치고, 정신을 차린 혜민이 언니를 위해 준비했다며 가져온 가방을 풀어헤쳤다. 그 속에서 무수한 옷더미가 튀어나왔다. 잠깐 혜진의 무표정한 얼굴에 그늘이 어렸다. 혜민은 활짝 웃으며 언니의 잠옷을 벗겼다.
정규 방송 시간과 동시에 칼고의 방송이 켜졌다. 이미 돌아가는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는지, 방송 카테고리부터 저스트 채팅이 아니었다. 방송을 키자마자 피셔맨을 실행한 칼고는 조용히 낚시를 시작했다. 의문을 표하던 그의 시청자들과 몰려든 어그로가 혼합되어 잠깐 혼돈이 머물렀으나, 이내 잔잔한 물소리에 진압되어버렸다. 그는 별다른 멘트도 없이 낚시에 전념했다. 뒤풀이 이야기를 원하는 시청자들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여름 철. 늦게 기우는 태양이 드디어 하늘에서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
떠나는 동생을 배웅하고, 무수한 옷더미를 모두 정리한 혜진이 드디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곧 노르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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