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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화 〉 107 ­ 여전히 너를 보고 있어 (107/243)

〈 107화 〉 107 ­ 여전히 너를 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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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났다.

비밀을 알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훤히 드러나 있으면 별것도 아닌 것이, 비밀이라는 포장지로 뒤덮여있으면 괜히 더 궁금해지는 모양이다. 아니면 누군가가 그 내용물을 들쳐봤다는게 자극이 되었거나.언제나 비밀은 단어에서부터 사람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알 권리라는 되도 않는 소리을 지껄이며 시위하듯 몸을 들이밀게 만드는 무언가.

그게 내 비밀이라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날 방송 이후로 내가 방송을 켤 때면 뒤풀이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언급됐다.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후원 TTS나, 방송 시작부터 꾸준하게 밀어붙이는 채팅이나... 이젠 잠잠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도 쉽게 멈추지 않는 것이다.

훑어보면 주로 얼굴을 공개하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나 얼굴에 집착하는 시청자가 많은 걸 보면, 그동안 노르드라는 이름에 붙은 프리미엄이 나름 대단했던 모양이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광기어린 장문의 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오곤 했다. 연기나 농담이 아닌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내게 과몰입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에 기뻐해야 할까.

졸지에 피해를 입은 칼고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손수건 하나가 그런 파장을 가져올 줄은 몰랐지. 내 방송이 깔끔하게 종료됨과 동시에, 당시 몰려들었던 시청자들은 대부분 칼고의 방송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칼고의 말을 빌리면 거의 호스팅이나 다를 바 없었다나.

메세지를 나눴을 뿐이지만, 뭔가 이를 악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도 그렇고. 최근 대화를 나눌 때면 뭔가 벼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손 안에 소원권을 쥐고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뭔가 대비를 해야 할지도.

얼굴 공개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집착과는 별개로, 달라진 계절은 내 방송에도 특기할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정확히 말하면, 변화해야만 하는 이유 내지는 원인을 가지고 왔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까. 그간 코칭을 한다고 게임을 하는 시간에 리플레이를 돌려 보거나 빌드 툴을 돌리곤 했었기에, 이 변화를 다소 느리게 포착한 경향이 있기는 했다. 아무튼 나이트폴을 즐기는 유저라면 누구나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이 찾아왔다.

프리 시즌이다.

나이트폴 프리 시즌은 랭크 게임 시즌이 다음으로 넘어가는 동안의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한 시즌이 유지되는 기간은 대략적일 뿐 일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시즌 구분의 기준점이 다음 확장팩이 출시되는 시기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즌을 구분할 때는 항상 확장팩의 소제목이 함께 따라붙고는 했다. 이번 시즌은 약 8개월 가량 지속되었는데, 그걸 생각하면 내가 나이트폴을 시작할 당시는 이미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막바지였던 셈이다. 내 예상보다 훨씬 컸던 화제성은 이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던 나이트폴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오랜 세월 새로운 확장팩을 추가하면서 시즌 오픈을 거듭 반복한 이곳의 나이트폴과는 달리, 내가 즐기던 그 망할 게임은 급격히 줄어드는 유저 수 때문에 확장팩 추가는 커녕 새로운 시즌이라는 개념도 희미했다. 시즌을 새로 시작해봤자 유입되는 유저도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당시 커뮤니티에선 신규 시즌 오픈이 고인물들의 랭크를 초기화하는 의미 없는 공정에 불과하다며, '세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주로 내가 그랬다. 그때까지 커뮤에 남은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아무튼, 갓겜이 되어버린 이곳에서도 프리 시즌이 일종의 휴식 시간이라는 건 다들 인정하는 모양이다. 대규모 확장팩 출시 이전의 구버전이나 마찬가지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일반 게임은 물론이고 랭크전도 돌릴 수는 있었지만, 다음 시즌이 시작함과 동시에 초기화될 전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진지한 게임보다는 즐기기위한 목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그런 걸 선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재미를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예능 빌드도, 최대한 다듬고 다듬어서 실전에서 사용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랭크 점수가 별 건 아니라고 해도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몰입하는 것이 중요했다. 모두가 진심으로 승리를 목적으로 임할 때 게임이 가장 재밌어진다는 나름의 신조였다.

따라서 프리 시즌의 나이트폴은 내게 별로 매력적인 전장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새 시즌이 시작할 때까지 방송을 쉬고 있을 수도 없었으니, 나는 다른 게임들을 물색했다. 프리 시즌 내내 낚시만 해서는 엘튜브 영상에 사용할 소스도 뽑아내지 못할 테니까. 어쩌면 종합 게임 방송이라는 이미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중요한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주연이 열심히 편집해올리고 있기는 했으나, 여전히 영상마다 조회수 차이가 분명히 차이나고 있는게 사실이었다. 당연히 나이트폴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고. 깔끔하게 편집된 영상을 올린다고 아무 게임이나 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의 가시성, 유명세, 완성도...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꾸중함이 중요한 건 사실이었다.

몇 번인가 방송을 위한 게임을 고르면서 느꼈던 건, 결국 내가 선호하고 재밌게 할 수 있는 게임이 방송에도 가장 적합하다는 점이었다. 방송하는 인간의 감정이나 태도는 아무리 숨기려 한들 자연스럽게 화면에 드러나는 모양이다.

피셔맨을 보라. 게임 자체의 인지도는 형편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재밌게 한다는 사실 때문에 수많은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게임으로 뒤바뀌지 않았나.

그러니까, 게임 선정의 첫 번째 기준은 내 취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 초기에 고민했던 것처럼 게임이 반드시 방송에 적합해야 한다는 제약은 일종의 허상과도 같았다. 어릴 적 수많은 게임 패키지를 눈앞에 두고, 무슨 게임을 할까 고민하던 그 시절처럼 자유롭게 선택 하는 편이 좋았다.

그 오랜만에 느끼는 가벼운 설렘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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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요즘 잠이 부족해져서 그런지, 몸이 조금 피곤해요. 등부터 목까지 찌뿌둥한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저 진짜 운동 부족인가봐요. 다음 시즌 시작하기 전에 헬스나 끊어둘까봐. 또 안 갈 거 뻔하다구요? 에잇. 어차피 방종할거니까 10분 동안 벙어리하세요.

앗. 으앙칠규님, 후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쪽!"

[차단 포상부럽다ㅋㅋ]

[몸관리 잘하세요. 만성피로 시달리다보면 다른 병 생기기도 쉬워서...]

[요즘 더워서 헬스장 나가기 귀찮긴해]

[낼봐용~ ㅎㅎ]

[담시즌 오픈날이 다다음주였나?]

"오늘 방송도 봐주셔서 고마워요! 다들 더운데 몸조리 잘하시구요. 내일도 같은 시간에 방송 키겠습니다. 빠빠~"

[ㅂㅂ]

[우바]

[나밍쓰 잘자요]

탁­

"으아아아아아아..."

방송 종료를 확인하고, 캠과 마이크가 꺼진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는 기다란 탄식을 내뱉었다. 힘을 뺀 목에서는 방송용이라고는 할 수 없는 탈력감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덩달아 의자 아래로 온몸이 미끄러지듯 흐느적거렸다. 지독한 무기력함에 자세를 바로 잡기도 귀찮았다.

오늘 방송 시간은 일곱 시간을 약간 넘겼나.

고작, 고작 일곱 시간. 반면 전신을 누르는 피곤함은 그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최근 방송을 할 때면 이렇게 이상할 정도의 탈력감이 몸을 덮치고는 했다.

괴이한 일이었다. 단골 피시방에 자리를 잡아 친구들에게 피시방 요정이라 불렸을 당시에는 열 시간이 넘는 시간을 같은 자리에 앉아 게임만 하고는 했던 것이다. 물론 시청자에게 노출되는 방송과 그것을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체력이 현저히 떨어진 건 사실처럼 보였다. 어쩌면 인터넷에서 그렇게 말하는 노화의 징조가 이런 것일지.

최근 그녀의 머리를 맴도는 지독한 고민거리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지긋지긋한 피로감. 지속된 투정에 동거하는 친구가 병원에 가보라고 조언을 했을 정도였다. 조언, 베개와 화장품 몇 개가 함께 날아오긴 했지만 그건 분명 조언이었다. 아무튼 방송에서 내뱉었던 헬스장은 그저 빈말뿐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말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온 거겠지.

하지만 어쩌나. 그녀는 지금 자신의 일상 루틴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매우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24시간이라는 한정된 굴레는 지금도 포화 상태에 이르렀건만, 여기서 무얼 덜어내고 운동 시간을 집어 넣을까. 매번 운동 계획이 무산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방송을 종료한 지금도,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의자에서 흘러내리듯 땅으로 꺼진 몸을 힘겹게 일으켜세웠다. 그녀는 곧장 방음 부스가 설치된 방을 빠져나와, 냉장고가 있는 거실 주방 쪽으로 항했다. 물이 반쯤 차있는 커피포트를 켜놓고 핫초코 통을 꺼내 크게 세 스푼을 컵에 덜어 넣는다. 방금 씻고 나왔는지 머리를 수건으로 틀어올린 친구에게 인사를 건내는 건 그저 덤이었다.

금방 끓어오른 물을 따르고, 티 스푼으로 회오리가 일어나게끔 열심히 휘젓는다. 능숙한 손놀림은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물 한방울 쏟아내지 않았다. 가루가 다 녹았는지를 확인하고, 싱크대에 티 스푼을 정확히 투척한 그녀는 다시 방음 부스 내부로 향했다. 잔에서 올라온 달콤한 향기에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주 잠깐의 휴식을 부여받은 컴퓨터를 다시금 일으켰다. 계정을 확인하는 절차는 정확히 두 번 반복한다. 방송용 저스틴 계정이 로그아웃 되었는지, 혹시나 다른 브라우저 창이 남아있지는 않은지.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그녀는 곧장 새로 로그인을 시도했다.

시청용 계정. 최근 사용된 용도로 다시 분류하면... '노르드'용 계정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노르드만 팔로우 되어있는 계정이다.

팔로우한 계정이 나열되는 왼쪽 카테고리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한 명의 스트리머는 오늘도 생방송을 진행중인 상태였다. 예상은 했지만 그렇다고 기쁜 마음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저 인간이 이렇게 며칠 씩이나 생방송을, 그것도 제법 규칙적인 시간에 시작하다니. 다시보기를 처음부터 정주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생방송의 묘미를 따라올 수는 없는 것이다.

왼손으로 핫초코를 홀짝거린 그녀는 곧장 노르드의 방송을 클릭했다. 에어컨 냉방으로 서늘한 방 안의 공기와, 뜨겁게 느껴질 정도의 핫초코. 거기다 노르드의 방송까지. 최근 그녀의 24시간 중 최고로 꼽히는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 하는 게임은... FPS인가. 게임 인생의 팔할 쯤을 나이트폴로 채워넣은 그녀는 알지 못하는 게임이었으나, 저스틴에 따로 카테고리가 있는 걸 보면 제법 인지도가 있는 게임인 것 같았다. 적어도 어제나 엊그제처럼 시청자들 대부분이 이름도 모르는 고전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근래 제법 규칙적인 방송을 이어나간 노르드는, 괴악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게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분명 나이트폴 프리 시즌 동안은 다양한 게임을 즐기겠다는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 자체는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나이트폴을 본업으로 삼는 스트리머들도 프리 시즌이 되면 다른 종합 게임이나 색다른 컨텐츠를 시도하고는 했으니까. 그러나, 노르드는 그런 경우와는 궤를 달리했다.

'다양한' 게임. 정말... 다양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지켜본 미나의 기가 질릴 정도로.

아는 사람들은 아는 국산 온라인 게임부터,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게임까지 가리지 않았다. 게임의 장르도 하도 다양한 탓에 굳이 선호 장르를 꼽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가져온 게임이 많은 만큼 플레이 타임도 제각각이었는데, 어떤 게임은 열 시간씩 투자하며 엔딩을 보는가하면 어떤 게임은 시작과 동시에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의 멘트를 떠올리면... '노래가 별로여서'였나. 이렇듯 게임을 계속하고 그만두는 기준점이 애매한 탓에 그걸 지켜보는 시청자들이 노르드가 언제 게임을 갈아치울지 두근거리며 지켜볼 정도였다.

잦은 게임 교체가 방송에 대한 몰입을 방해할 법 한데도, 노르드의 자칭 '종합 게임' 방송은 긍정적인 반응을 받으며 순항하는 중이었다.

왜 그런 걸까. 어떤 게임이든 꽂혔다하면 스트리머 본인이 집중하면서 플레이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무슨 게임이든 막힘 없이 풀어내는 그 뛰어난 실력과 재능 때문인가. 그도 아니라면 그냥 노르드라는 사람이 매력적이어서...

미나는 그 이유를 세세하게 분석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튼 자신이 따라 할 만한 방송은 아니었으니까.

이번 게임은 노르드의 일차 합격선을 통과한 것 같았다. 얼핏 보기에도 게임이 상당히 진행된 부분으로 보였다.

일인칭 화면에서 커다란 저격총을 손에 쥔 주인공 캐릭터는 어떤 건물의 옥상을 소리 죽여 걸어가는 중이었다. 걸을 때마다 천이 스치는 소리와 신발 밑창이 바닥과 맞닿는 소리가 선명히 들리는 걸 보면, 사운드에 상당히 신경을 써서 제작한 게임인 것 같았다.

엄폐물 사이를 숨어 전진하던 노르드는 마침내 옥상 한 쪽에 자리잡았다. 저격총을 거치하는 모습이, 역시 타겟을 저격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중인 모양이다.

스코프에 눈을 붙이자 확대된 화면과 함께 심장 뛰는 소리가 긴박하게 들려왔다. 게임에 몰입해 이어폰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심장 박동 소리를 대신해 노르드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속을 살살 긁어오는 것이다.

《"음... 자리 괜찮네요. 줌 당기면 뭔가 침착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 그렇지 않나요?"》

그 오싹오싹한 감각을 즐기는 한편, 키보드에 손을 올린 미나는 빠르게 타자를 입력했다.

'멘트좀... 더쳐주세요... 속삭이는 것처럼...'

오늘도, 그녀는 노르드의 방송이 종료되는 걸 보고 나서야 침대로 향했다.

제 딴에는 보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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