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109 그 사물함 속 편지
* * *
Nord:님아
칼고:님아?
Nord:칼고님아
칼고:하
칼고:왜요
Nord:내일 게임 같이하실래요. dead alive
Nord:재밌어요.
칼고님이 메세지를 입력하는 중입니다...
Nord:해주면 손수건드릴게요.
칼고:아니 원래 내거잖아
Nord:지금은 나한테 있잖아요.
칼고:?
칼고:어이가 없네
.
.
.
칼고:방송키고 같이하자는 거죠? 쪼망님이랑 하는거 봤는데
Nord:
칼고:7시 ㄱ
Nord:
칼고:8시?
Nord:
칼고:말을 해
Nord:10시
칼고:밤새자고?
Nord:
Nord:아 그리고 사람 한명만 더 불러주실 수 있나요.
Nord:4인코옵하려는데 한명이 부족해요.
칼고:...
칼고:듀오아니었어?
N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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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조금 있다가 노르드님이랑 데드 얼라이브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그 사람 지금 방송 켰나요?"
[굿]
[방금켰어요]
[노칼조아]
[그겜재밌나 요즘 하는 스트리머가 많네]
[방송최적화겜인듯 쫄깃해서ㅋㅋ]
[노르드와 잦은 합방... 소원권... 손수건... 흠...]
[2인코옵?]
1부 방송으로 나이트폴 빌드 실험 컨텐츠를 진행한 뒤였다. 엘튜브용 영상으로 다소 억지로 텐션을 올려가며 진행한 방송은, 다행히 꽤나 성공적으로 끝났다.
프리 시즌으로 랭크가 초기화된 주제에 쓸데없이 MMR만 높아서는, 잡히는 면면들이 전부 심상치 않았다. 방송인의 입장에선 흡족한 일이었다. 프로 리그에서 간판격으로 활약하는 선수들이 얼굴을 내비치는 영상은 그것만으로도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다.
편집자의 재량대로 조금 어그로를 끌어주면 구독자를 뛰어넘는 조회수가 나오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매칭이 그렇게 잡힌 순간 굳이 영상 각을 뽑아내기 위해 의식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닉네임을 켜놓고 대치를 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연출과 같았으니까.
그는 그저 최대한 집중한 상태로 상대와 검을 맞대면 됐다. 길어진 전투 속에서 운 좋게 승기를 잡아내는 것까지, 칼고에게는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영상 소스를 만들어둔다는 귀찮은 숙제 하나를 해결한 것이다. 마음이 편해질 법도 한데, 그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음 방송을 준비할 수 없었다. 어젯밤 갑작스레 성사된 합방에 대한 생각이 지금까지도 발치에서 걸리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르드와의 합방이었다.
생각해보면, 뒤풀이 이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합방이다. 나이트폴이 아닌 다른 게임이라는 것도 생소한 일이었다. 최초의 만남을 생각하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게임을 함께 하게 되는 관계에 이르렀다는게 믿기질 않는 것이다. 스스로가 다른 스트리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던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뒤풀이 다음 날 있었던 방송이 그에게 미친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노르드가 방출한 그 통제 불가능한 들개 무리들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의 느닷없는 방종에 휩쓸린 것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가. 방송 채팅창이 자연발화하듯 타오르는 것 정도야 이제는 특별히 신경쓸만한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청자들도, 칼고의 방송으로 흘러드는 걸 일종의 문화처럼 생각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크게 신경쓰지 않고 방송을 진행하면 본래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처럼 자연스레 방송에 녹아들었다.
그럼 정말 순수한 의도의 호스팅처럼 시청자가 늘어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일정 수준을 넘어선 이후로 시청자 숫자에 흔들리지 않는 칼고였으나, 그 급격한 증가 폭에는 과연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문제는 노르드의 방종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그날 방송이 끝나고 칼고의 계정으로 날아온 메일만 수십 통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메일을 체크하는 칼고였다. 오랜기간 읽지 않고 묵혀둔 것도 아닌데, 하루 아침에 수북하게 쌓여버린 메일함을 바라보는 건 그 자체로 고된 일이었다. 대개 메일이 쏟아지는 경우는 부정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훨씬 크지 않은가. 굳이 들어가서 확인하지 않아도, 메일의 내용이 짐작이 간다는게 더 문제였다.
노르드와의 관계를 추궁하는 날 선 문장들.
자신이 노르드와 직접 얼굴을 마주했다는 사실이 일부 시청자들에겐 엄청난 대사건이었던 모양이다.
전부를 하나의 부류로 묶어야 할 것 같은 메일들은,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그 종류가 다양하기 그지 없었다.
표면상으로는 정중한 척 예의를 차리는 놈들. 격식을 차리는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노르드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아예 대놓고 욕설을 뱉어대는 메일도 드물지 않았다.
마치 노르드를 아는 관계자인 것처럼, 여자 스트리머의 방송에 대해 운운하며 자신을 문책하는 꼴이 같잖게 느껴졌다. 개중에는 방송의 흥행을 위해 어줍잖게 연애 분위기를 유도하는 짓거리를 당장 그만두라는 거창한 일침도 존재했다. 노르드가 이걸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그에겐 그저 기가 찰 뿐이었다.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소문을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이 즐겨보는 방송인에게 과도하게 몰입하는 인간들이 있다고. 인기가 많은 스트리머가 스토커로 고생했다는 소식은 뉴스에도 종종 올라오는 이야기었다.
같은 직종에 일하는 입장에서 이런 일이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규모가 클 거라고는 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이 그 메일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더욱더.
아무리 그래도 노르드는 얼굴도 공개하지 않은 게임 스트리머일 터인데. 메일을 보내온 것들의 본새를 생각하면 금방이라도 스토커로 변질될 놈들이 태반이었다. 만약 신상이라도 공개되었다간 어떤 사단이 일어날지 안 보고도 뻔했다. 잠깐의 사이, 머릿속에서 혜진의 얼굴을 떠올린 성현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제대로 읽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쳐박은 메일 더미가 칼고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자신에게 메일이 오는 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메일들과 구분해서 삭제하는 일이 귀찮았을 뿐이지 그게 정신적 충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자신은 타인의 말을 그다지 귀 기울여가며 수용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리 악성 메일이 많이 온다고 한들, 그걸로 멘탈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건 아마 노르드도 비슷할 것이다. 그녀의 속내를 짐작하기는 힘들었으나, 칼고는 노르드가 메일 따위를 읽으며 마음의 상처를 받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것에 흔들거릴 인간이라면 저 따위로 방송을 계속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칼고는 편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방송은 멘탈을 갉아먹는 일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한 척 방송을 이어나간다고 한들, 앞으로도 계속 그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자신에게 메일을 보낼 정도로 노르드라는 스트리머에게 빠져든 시청자가, 당사자인 노르드를 가만히 놔둘 리가 있을까. 일방적으로 쌓아올린 내적 친밀감에서 튀어나올 돌발 행동은 칼고가 예상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그게 메일이 되었든 방송 채팅창이 되었든, 엇나간 관심이 계속되면 그게 누구라도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칼고는 그게 노르드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걸 의식한다면 자제해야 될 합방이었다. 자신에게 메일을 보내온 무리들은 그걸 또 민감하게 받아들여 꿈틀댈 것이 뻔했다. 그러나 칼고는 게임을 같이 하자는 노르드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 쓰레기들을 의식해 노르드를 밀어내면 그거야 말로 저들이 원하는 뜻대로 흘러가는 꼴이 아닌가.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함이 자리 잡은 와중에도, 결국 칼고는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노르드라는 인간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결전에서 꺾을 정도로 뛰어난 나이트폴 실력도, 시청자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고 진행하는 방송 스타일도, 자신의 나이를 알았음에도 변하지 않는 태도에도. 태연히 거리를 좁혀오는 뻔뻔함도, 그러면서도 달라붙지 않는 담백함도, 무심한 듯 내재된 승부욕도 모두.
현실에서 만난 인연도 아닌데, 방송에서 시작된 관계가 꽤나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좀처럼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칼고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노르드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흑화한 시청자가 다시 기나긴 메일을 써보내더라도, 혹은 그 메일이 이번엔 자신이 아닌 노르드에게 향하더라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결심을 내렸음에도 맴도는 찝찝함은, 그게 조금은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기 때문일까.
칼고는 고개를 저었다.
모이기로 한 베타코드 채널에는 이미 쪼망과 노르드가 접속해있는 상태였다. 같이 게임을 플레이할 네 명째의 사람을 플랫폼 대전 팀원 중에서 찾은 터라, 오늘 사용할 채널은 기존에 사용하던 곳과 같았다. 채널 목록의 상태창을 보면 쪼망과 노르드는 이미 데드 얼라이브를 플레이하는 중이었다.
그는 곧장 음성 채널에 들어갔다.
"에? 노르드님! 이쪽 이상해요, 분명 이런 구조물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 그거 제가 설치한 거예요."
"이거 제 퇴로를 막고 있는데요!"
"그것도 제가 의도한 거예요."
...게임은 확실히 재밌어 보였다.
"아, 아. 크흠."
"으아! 또 죽었어... 어? 아, 칼고님 오셨다!"
"일찍 왔네요."
"누가 들으면 자주 지각하는 줄 알겠어요?"
[꽃밭인데?]
[칼고가 밉다... 여자 둘 끼고 협동겜을 하는 칼고가 미치도록 밉다...]
[뭐여 쪼망이도 하는거였음? 이럼 한명더와야되잖아 3명이 안돌아감]
[제발 이멤버에 똘주 끼얹지는 말아주세요]
[또 노르드랑 합방하네]
[스벅 ㅇㄴ?]
[그사람 오늘 휴방임]
진행 중이던 게임은 멤버를 기다리기 위한 간단한 한 판이었던 모양이다. 칼고가 들어옴과 동시에 쪼망과 노르드가 진행하던 게임은 끝을 맺은 듯했다.
게임을 처음 실행한 칼고가 이런저런 설정을 건드리고 있을 때, 노르드와 대화를 주고 받던 쪼망이 말헸다.
"와, 그런데 멤버 장난 아니네요. 돌쇠님도 게임 잘하기로 유명하시잖아요. 전부 겜잘스만 포함된 거 같아. 헤. 이거 저만 잘하면 되겠죠?"
"저는 좀비가 되어서 쪼망님을 깨무는게 목표예요."
"...네?"
"이 사람 하는 말 중에 칠 할 정도가 개소리니까 흘려들으셔도 돼요."
"말이 심하시네. 쪼망님은 그럴 분이 아니예요."
말의 내용과 별개로 평온한 어조는 그대로였다. 익숙한 대화의 흐름에 살짝 웃음이 새어나왔다.
지난 대회를 거치며 열심히 조정했던 팀원 개개인의 음량은 지금도 여전히 제 몫을 하는 것 같았다. 메인 화면에서 음산히 흘러나오는 배경음을 듣던 칼고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금방 소리의 균형을 맞췄다.
재미를 위해 간략하게만 알아보고 왔지만, 눈이 마주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가까이 접근한 좀비 때문에 게임의 메인 화면은 제법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것도 첫인상의 강렬함을 위한 연출일까.
싱글 연습 모드에서 총을 바꿔가며 쏴보기를 몇 번인가 반복했을 때, 정각이 되기 직전 돌쇠가 채널에 들어왔다. 데드 얼라이브를 같이 하자는 말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석에서 수락해온 스트리머였다. 이미 플레이한 경헌이 있는 건지, 익숙한 게임이라는 듯 방을 파는 모습이 꽤나 믿음직스러웠다.
4인 협동 플레이. 맵은 넓은 정원을 가진 복층 구조의 커다란 주택이었다. 방 설정에 앞서 난이도 설정을 물어오는 돌쇠의 말에, 입이라도 맞춘 듯 다같이 최고 난이도를 부르는게 꽤나 마음에 들었다. 쪼망의 목소리가 조금은 떨리는 것 같았지만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마우스를 쥔 오른손을 살살 돌리면서, 칼고는 피어오르던 찝찝함을 마저 털어냈다.
지금은 그저 게임을 즐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