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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화 〉 110 ­ 모르면 어쩔 수 없지 (110/243)

〈 110화 〉 110 ­ 모르면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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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에에엑­!

목을 졸린 오리가 있는 힘을 다해 내지르는 듯한 비명 소리였다. 몰입을 위해 한껏 키워둔 이어폰에서부터 소름이 타고 흘렀다. 인간을 불쾌하게 만들기 위해 작정하고 제작한듯한 괴음이었다. 쪼망은 저런 끔찍한 소리에 익숙해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괴성과 동시에, 전방에서 달려드는 좀비 무리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과하게 뒤틀면서 전진하는 그 괴이한 움직임을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몸통을 중심으로 뻗친 사지를 전부 이리저리 흔들면서 뛰어다니는 꼴이 기괴하기 그지 없었다.

이것도 적응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전에 얼른 처리하고 싶건만, 총을 쏴도 된다는 허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초조함 때문인지 마우스를 잡은 손이 조금씩 떨려왔다.

"아, 샤먼. 7시 방향이네요. 잡아주세요."

"...샤먼? 저거 공식 명칭이 샤먼이야? 무슨 알피지도 아니고."

"제가 지었어요. 하는 짓이 똑같잖아."

"시폭도 그렇고... 사용하는 단어들이 죄다 낡았네."

"잔말 말고 쏘세요. 더 붙으면 수리비 빠져요."

...긴장하고 있는 건, 자신뿐일지도 모른다. 눈 앞까지 접근한 좀비 떼를 보면서도 동료들은 여전한 자연체였다. 저택 정문 쪽에 엉성하게 설치된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이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듣기 싫은 끔직한 괴성이 게임의 배경 음악이 된 것처럼 연이어 울려퍼졌다. 지척까지 좀비들이 몰려든 상태였다.

탕­

격발음이 울려퍼졌다. 2층 테라스 쪽이었다. 끔찍한 짐승들이 내뱉는 신음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와중에도, 외마디 총성은 더 없이 선명했다.

간절히 기다리던 쪼망에게는 그 소리가 경쾌하게 들릴 지경이었다. 저 끔찍한 비명 소리를 계속 들을 바에야 기관총을 쏴 갈기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게 훨씬 나았다. 하물며 짧은 총성 쯤이야.

참을성 있게 기다린 한방은 정확히 제 목표물을 찾아간 모양이다. 총성이 울려퍼진 바로 다음 순간 끔찍한 비명 소리가 한층 볼륨을 높였다. 쇳소리 가득한 소음이 갈라지다 못해 찢어지며 울렸다. 누가 들어도 최후의 단말마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처절함이었다.

동시에,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화면 전체가 흔들렸다.

콰광­!

생각보다 커다란 폭발이었다. 먹먹함을 표현한듯 잠깐 희미해진 주변의 효과음과, 요란스럽게 흔들리는 화면 때문에 격렬한 폭발의 여파를 그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저택 내부에서도 이 정도였다. 짧은 순간 폭풍이 일어난 듯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난 저택 입구 쪽의 참상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총을 쏘기 위해 바짝 긴장한 상태로 마우스를 붙잡고 있던 오른손이 무안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쪼망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으음. 비싼 값은 하네요. 한번에 처리되니까 뭔가 아까운 것 같기도 하고."

"어차피 저거 일일이 쏴서 죽이려면 총알 값도 장난아니게 깨졌을 걸. 다음 웨이브 준비나 해요. 물량 정리했으니까 패턴 생각하면 큰 놈들 나올 차례야."

"지정사수인 칼고님의 차례네요."

"...스나 잡았다고 아까부터 꼽주는 거야?"

굉음이 사라지고 남은 정적은 이전보다 무거웠다. 괴물이 부르짖는 끔찍한 괴성도, 죽어가는 존재들이 흘리는 생기 없는 신음소리도, 좀비들에게 쏴대던 총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좀비 무리가 몰려드는 웨이브를 전부 정리하고 나면 생기는 잠깐의 공백기였다.

칼고와 노르드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장비를 점검하는 가운데, 돌쇠는 이미 정문 밖으로 나가 설치물을 다시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해야할 일을 찾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는 건 자신뿐인 것 같아서, 쪼망은 괜스레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아다녔다. 자리라도 찾고 있다는 시늉이었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이 우울하게도 내려앉았다. 물기 가득한 눈은 흡사 울고 있는 모양새였다.

이전 웨이브에서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하고 몸만 웅크리고 있던 제 자신이 떠올랐다. 그 이전, 그 전에 전... 딱 놓고 말해 첫 스테이지부터가 비슷한 양상이었다. 몰려드는 좀비 무리에 황급히 총을 들어올리고 사격을 시작하면, 흘러가는 국면을 파악하기도 전에 상황이 정리되기 일수였다.

좀비가 과도하게 접근한 탓에 느꼈던 위기감 따위는 전부 그녀만의 착각에 불과했던 것 같았다. 뭔가 위험하다 싶으면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좀비의 머리를 꿰뚫었다. 쪼망에 제 앞에서 달려드는 좀비들에게 쩔쩔매는 사이, 노르드는 이미 자신의 몫을 정리하고 지원 사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속도를 따라 가기가 힘들었다.

쪼망에게는 나름 생소한 경험이었다. 그녀가 스스로가 게임을 잘한다는, 소위 말하는 겜부심에 가득찬 유형의 인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애시당초 고등학교 친구의 권유를 받아 게임을 시작한 쪼망이었다. 친구가 추천한 FPS게임으로 시작해,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몇 년간 비슷한 장르의 게임만 주구장창 붙잡고 있었다.

친구의 권유에 유명하다는 클랜까지 들어가며 게임을 즐겼던 것이다. 자부심 따위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재미삼아 클랜전을 진행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이 게임을 못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클랜원들에게 칭찬을 받았던 에임은 물론이고 게임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흡수하는게 빠르다는 평가를 들었으니까

그건 나이트폴을 시작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생소한 근접전을 포기하고 메이지로 전향하긴 했으나, 메이지로 넘어간 이후로는 빠르게 적응을 완료했다. 그 덕에 게임 실력으로 쪼망을 욕하는 시청자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칭찬을 듣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온갖 진수성찬을 가득 집어먹은 탓에 입맛만 높아져버린 저스틴 시청자들에게 칭찬을 듣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거기에 대해선 그녀 나름대로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수준 높은 파티는 도저히 그녀가 따라갈 수준이 아니었다. 어지러운 와중에 제 할일만 찾아서 해내는 묵묵한 돌쇠를 보며 부러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돌쇠는 적어도 자신처럼 템포에 따라가지 못하고 빌빌대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황새를 쫓아가는 뱁새의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참함이었다.

게임이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내뱉은 말마따나, 팀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만족하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방법도 있었다. 누군가 그런 선택을 비웃는 것도 아니었다. 협동전을 플레이하는 팀원들의 면면이 워낙 쟁쟁한 탓인지, 계속 형편없이 게임을 하고 있음에도 시청자들의 비난은 눈에 띄게 적은 편이었다.

확실히 그랬다. 이 게임이 나이트폴처럼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 게임도 아니지 않은가. 인공지능을 상대로 하는 일에 열을 올릴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감정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자신도 모르는 한편 게임에 대한 자부심이라도 키워가고 있었는지, 쪼망은 그렇게 쉽게 포기해버린 채 노르드의 등에 업혀가고 싶지가 않았다. 곧 죽어도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와 노르드와의 합을 맞추고 싶었다.

적어도 나이트폴처럼, 넘을 수 없는 간격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쪼망님? 소이탄 받아가세요. 곧 몰려옵니다."

"네? 아. 네!"

"왜 그러세요. 혹시 아까 물리셨나요? 보니까 눈 주변이 울긋불긋한 것 같기도 하고... 한발 쏴도 되나요?"

"에?"

"...농담할 거면 말투를 좀 어떻게 해봐요. 평소랑 똑같이 말하니까 진짜로 쏠 거 같잖아."

이제부터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겠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을 때, 쪼망의 시야에 불쑥 나타난 노르드가 코앞까지 총구를 들이밀었다.

양쪽 광대와 코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가 인상적인 얼굴이었다. 일부러 커스터마이징을 그렇게 했는지, 깊게 파인 눈동자에선 전혀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양손으로 붙잡은 돌격 소총이나, 촐싹대듯 음직이는 모션이 아니라면 좀비라고 말해도 속아넘어갈 법한 외형이었다. 캐릭터가 거의 겹칠 정도로 얼굴을 밀어붙인 탓에 그 기이한 외모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무심코 뒤로 물러난 쪼망이 황급히 마우스를 움직였다.

[으악 와꾸 ㅅㅂ 뭔 커마를 저따구로했냐]

[좀비가 눈앞에 있는데 안 쏘고 뭐해;]

[무친련,,,]

[동료 뒤통수에 총알박을 것같이 생겼네요]

[군필 여고생 노르드쟝 음해 ㄴ]

붙어오는 노르드를 피해 쪼망이 슬쩍 마우스를 돌리고 있을 때였다. 쿵, 쿵 하고 땅을 두드리는 진동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처음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만큼 작았던 소리가 몇 번 지나지 않아 급격하게 커지더니 이내 저택을 흔들 정도로 무섭게 울려퍼졌다. 심각히 굳은 캐릭터의 표정이 장난이나 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끼에에엑­!

습격을 알리는 것처럼 섞여드는 비명 소리가, 여전히 거북스럽기 짝이 없었다.

"얼씨구. 이젠 아주 종합으로 덤비네."

"아. 그걸 여기다 터뜨렸어야 됐는데."

"패턴 바뀔 때가 되긴 했어. 정면 조심해요. 사이 사이에 꼬마들 섞여 있다. 무작정 난사하면 라인 뚫고 들어올 거... 저건 또 뭐야."

몰려드는 무리를 먼저 확인할 수 있는 2층에서 들려온 말이었다. 습격과 동시에 긴박하게 깔리기 시작한 배경 음악은 심장이 뛰는 소리를 묘사해서 만들어낸 것 같았다. 내리치는 드럼 소리가 쿵쿵거리며 들려왔다. 간혹 땅을 두드리는 소리와 드럼 소리가 정확히 일치할 때면 그 소리가 배가 되어 다가왔다.

역시, 음악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쪼망이 듣기에는 그렇게 좋은 음악이 아니었다. 이런건 달려드는 좀비들이나 좋아할게 뻔하지 않은가.

저택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광경은, 좀비 영화 따위에 친숙한 사람이라도 거부감을 느낄만한 장면이었다.

여러 차례 습격의 여파가 그대로 남아있는 저택의 정원이었다. 본래 넓은 부지를 자랑하는 그곳은 지금 다른 때보다도 유난히 좁게 느껴졌다. 정원 울타리 너머로 계속해서 넘어 들어오는 좀비 무리들도 그랬지만, 결정적인 원흉은 그게 아니었다. 정원 한복판에서 기형적인 살덩이가 흉흉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제 옆에 붙어있는 좀비의 몇 배는 될 법한 덩치를 가진 괴물이었다. 누군가 시체를 억지로 기워서 뭉쳐낸듯, 엉성하게 불어난 살집은 걸을 때마다 역겨운 액체를 뿜으며 엉겨붙었다 떨어졌다. 한쪽 발이 비정상적으로 커다란 탓에 그 불균형적인 몸덩이를 지탱할 때마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배경음과 섞여든 진동 소리은 저 괴물로부터 비롯된 것 같았다.

10스테이지에 도달한 일행이 처음으로 마주한 괴물이었다. 저 압도적인 비주얼이나 연출을 보면 아마도 보스 몬스터일까. 쪼망은 좀비 디펜스 게임에 저런 흉악한 괴수가 등장한다는 사실이 썩 창의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저런 건 끔직하기만 한 것이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괴물은 갑작스레 팔을 들어올리더니, 우측에서 느릿하게 접근하던 좀비 하나를 우악스럽게 잡아챘다. 뭉그러진 살더미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은 좀비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마치 돌멩이를 던지는 것처럼 팔을 휘둘렀다. 괴물의 손에서 우그러진 좀비가 마치 포탄처럼 허공을 갈랐다.

저택의 2층 테라스를 향한 투척이었다.

퍽­

"씨발."

"아, 욕했다. 죽었어요?"

"...반쯤."

"망했네."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 노르드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를 바 없다는게 뭔가 우습게 느껴져서.

쪼망은 저 괴물이 등장하고 나서 처음으로 웃음을 흘렸다.

...썩 깔끔한 전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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