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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화 〉 111 ­ 알고 나면 (111/243)

〈 111화 〉 111 ­ 알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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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팅을 하면 안 됐네. 저거 돌진 패턴 구조물로 유도할 생각하면 그대로 전멸이예요. 적어도 나무로는 못 막아."

"일자 돌진이라 피할 수는 있는데, 속도가 너무 빠른게 문제야. 어지간한 거리에서는 발 구르는 거 보는 순간 죽는다고 보면 되겠어. 선행 모션에서 피해야겠는데."

"에, 선행 모션이 있었나요?"

"있어요. 양팔 좌우로 벌리고 앞으로 흔드는 거."

"...돌쇠님, 혹시 보셨나요?"

"저는 잡몹 정리하기도 바빴습니다."

"그거 못 보는게 정상이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저도 관전자 시점으로 간신히 봤으니까. 시체 던지는 패턴이랑 이상하게 겹쳐서 아주 잠깐 보였어요. 아마 버그인 거 같은데... 본 게 이상한 거지."

봤다기 보다는 읽은 건데.

칼고의 말에 즉시 반박을 하고 싶었으나, 곧장 공략법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칼고가 툭툭 건드리고 싶게 생겼다고는 하나 사소한 것까지 꼬투리를 잡고 늘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 리트라이 시간도 점점 늘어질 테니까.

잘하는 유저와의 심리전과 비교하면, PvE(Player Versus Environment) 게임에서 적 몬스터의 패턴을 읽는 정도야 훨씬 쉬운 일이었다. 얼핏 보기엔 랜덤성이 짙어 보이는 적도 유심히 관찰하면 일정한 규칙대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를 테면, 방금 조우한 거대 좀비의 경우 돌진 패턴으로 파생되는 몇 가지 선행 패턴이 존재했다. 쪼망과 칼고가 언급한 상황은 시체 던지기 이후에 연결되는 돌진이었다. 멀리 떨어진 플레이어에게 시체를 던져서 지원 사격을 막아두고, 중거리의 타겟에게 달려드는 연계 패턴. 처음 칼고를 반죽음으로 만들어두고 저택 정문으로 뛰어든 바로 그 패턴이었다.

그래도 다들 게임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인데 이런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아는 것과 대처하는게 다르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았다. 머리로는 패턴을 파악하더라도 그 급박한 순간에 대처법까지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한번 당해서 전멸했으니 이젠 대처할 수 있겠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4인 코옵은 내 예상보다 재밌게 흘러갔다. 보통 이런 디펜스 게임은 스테이지의 난이도 구성이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단계를 클리어할 때마다 주어지는 보상을 만들되, 그 보상과 대등한 수준으로 난이도를 끌어올려야만 했다.

이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조절하는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건 나도 잘 알았다. 그게 쉬웠다면 이 장르에서 무수히 많은 수작들이 쏟아져 나왔겠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엔 그 밸런스를 잘 잡은 게임이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것이다. 그건 어딜가나 마찬가지였다.

올라가는 난이도보다 보상의 효용성이 더 크다면, 급격히 쉬워지는 게임에 빠르게 흥미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반대로 보상의 가치에 비해 난이도가 훨씬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도 문제였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시간을 갈아가며 높은 벽을 허물기 보다는 그냥 게임을 그만두는 쪽을 선택하겠지.

이 복잡하고 미묘한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가 게임의 완성도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데드 얼라이브는 꽤나 훌륭한 게임이었다. 최고 난이도로 시작해, 탄약이 부족한 초반 구간을 힘겹게 벗어나 꽤나 순탄하게 스테이지를 클리어해가는 순간이었다. 이럴 때가 플레이어의 숨통을 조르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다. 게임에 대한 긴장감이 풀리고, 너무 쉬운 거 아니냐는 지루함이 밀려들 때쯤.

그 그로테스크한 괴물이 튀어나오기에는 꽤나 적절한 시기였던 셈이다.

미지의 적이 등장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은 잘 만든 게임의 증명과도 같았다. 소위 말하는 헤딩팟은 그런 스릴을 느끼기 위해 존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생소한 적과 마주하고, 처음 보는 패턴을 유추하고 분석해가며 점차 승리에 가까워지는 과정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몇 번인가 게임 오버를 마주한 끝에 간신히 클리어에 성공하면, 거기서 얻은 성취감을 바탕으로 다음 단계에 도전하는 선순환이 시작된다. 게이머가 게임에 빠져드는 가장 이상적인 구도였다.

최근엔 손대는 게임마다 고난 하나 없는 순탄대로를 걸었기 때문인지 간만에 마주한 벽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굳이 어려운 게임만 찾아다니며 플레이하는 변태적 성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이런 것이 즐겁게 느껴지고는 했다.

조금만 더 전멸하면 좋겠는데.

"­제가 실수를 좀 많이 해서요, 으음. 이번엔 제가 설치물 같은 거 담당해서 구입할게요. 무기에 돈 쓰는 거 보다는 그게 훨씬 도움될 것 같아요."

[쪼망이 자존감떡락ㅋㅋㅋㅋㅋ]

[ㅈㄴ못하는데 힐킷이랑 수류탄만 사서 보충하라해]

[처치 수가 너무 적긴함]

[이 스쿼드에 끼면 다 저 수준될건데 억까심하네]

[마법있었으면 쪼망이가 보스도 잡았음]

[걍 센세 전담 메딕시키면 센세가 다 알아서 할듯ㅇㅇ]

어쩌다 이야기가 저기로 흘러갔는지.

스테이지 보스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논의는, 어느새 쪼망의 자책으로 치닫고 있었다. 살짝 가라앉은 쪼망의 목소리만 듣고서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예상할 수 있었다. 감정이 노골적으로 얼굴에 묻어나오는 사람이다. 아마 지금쯤 커다란 눈동자에 물기를 가득 머금고는 카메라 렌즈에서 시선을 돌리고 있지 않을까.

공략법을 검토한다는게 전멸의 원인을 찾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 같았다. 아마 채팅창의 여론이 그랬겠지. 플랫폼 대전에서도 매순간 범인을 찾아내더니, 상대가 컴퓨터인 게임에서도 누가 가장 못했는지를 따지고 드는 모양이다.

뭔가 구구절절하게 이어지는 쪼망의 말을 들어보면, 대체로 자신의 형편없는 게임 실력에 대한 한탄이었는데... 나로서는 무슨 헛다리인가 싶었다. 범인은 따로 있었는데.

"그냥 우리 지정 사수가 돌연사해서 전멸한 건데."

"..."

"엣, 에... 그, 그런가요?"

"쪼망님은 총을 들어야 돼요. 에임이 좋은 편이니까. 아니면 쪼망님이 저격 쓰실래요? 시체 맞고 죽지만 않으면 일인분은 하실 수 있어요."

"...야, 내가 못한 거 맞으니까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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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익숙한 길에서 더 빨라지듯이, 다시 게임을 시작한 노르드와 팀원들은 무서운 속도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며 나아갔다.

첫 트라이와 비교하면 눈부시게 발전한 속도였다. 공략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 스테이지 내에서 등장하는 좀비 무리의 종류와 위치가 랜덤으로 설정되었음에도, 스쿼드가 막히는 구간은 없었다.

단 한판에 불과했으나 일행은 분명 숙달되고 있었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이 눈에 보였다. 이미 저택을 효율적으로 지켜내는 방법을 습득한 것 같았다.

당연히 효율적인 클리어는 더 많은 잉여자원을 남겼다. 결국 전멸했던 스테이지에 복귀할 무렵, 스쿼드는 저번보다 훌륭한 장비를 갖춘 만전의 상태로 준비를 마쳤다.

불과 한시간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번엔 보스뜨면 격발한다고 했어요. 그 이전 특수 개체들은 최대한 사격만으로 끊어내야 될 거예요. 당연하지만 소리지르는 놈들이 첫 번째 우선 순위고... 어지간하면 그놈들은 제가 끊을 테니까 1층은 강화형 위주로 잡아주세요. 바리케이드 내구도 지켜야 하니까."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고, 다시 홀로 2층에 자리 잡게 된 칼고가 짧은 브리핑을 종료했다. 이전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동안 몇 번이나 반복했던 설명이다.

화력의 대부분을 이차 웨이브에 집중시켜서, 거대 좀비의 탄환 역할을 수행하는 좀비 무리를 일소하자는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당장에 커다란 화력이 필요했으나, 그건 이미 충분했다. 최적화된 루트로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덕에 남아도는 자원이 그 전략을 실현 가능한 무언가로 뒤바꾸고 있었다.

반복해서 강조되는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노르드는 그 와중에 칼고의 설명이 지루했는지 부무장인 권총의 소음기를 달았다 푸는 과정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지겨워질 때면 간혹 널부러진 좀비의 시체에 총알 몇 발을 박아넣었다. 성실히 브리핑을 경청하는 돌쇠나 쪼망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신중을 기하는 일행이 몇 번이나 설치물의 위치를 재확인한 탓에 준비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다. 화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며, 남은 자원을 털어 크레모아를 더 설치하는 게 어떠냐는 쪼망의 주장을 노르드가 강하게 반박하고 나서야... 일행은 준비가 모두 완료되었음을 인정했다.

곧 익숙한 괴음과 함께, 일행을 전멸로 이끈 스테이지가 다시 시작되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택 주위로 태양을 대신해 조명탄이 떠올랐다.

주변을 정적으로 만들었던 커다란 폭발을 제외하면, 첫 번째 웨이브의 상황은 이전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칼고는 눈에 불을 켜고 비명 소리가 울려퍼지는 장소를 찾아서 방아쇠를 당겼다. 같은 좀비에게 일종의 자극제 역할을 하는, 노르드의 명명에 따르면 샤먼이라는 놈들을 잘라내는 과정이었다. 조명탄의 붉은 빛이 사방을 비출 때마다 2층 테라스에서 총성이 울려퍼졌다. 뒤따르는 끔찍한 단말마가 밤의 정적을 몰아냈다.

샤먼이 잡히고 움직임이 느려진 좀비들은 1층에서 정문을 지키는 인원들에 의해 깨끗하게 소탕당했다. 탄약을 넉넉하게 준비한 덕분에 한참을 쏘고도 여유분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노르드가 무심히 전장을 훑을 때마다 머리통 사라진 좀비 무리의 몸뚱이가 바닥을 굴렀다.

쪼망과 돌쇠가 탄창을 비워내고 갈아끼우는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했을 때였다. 좀비 무리를 일일이 잡아내는 데에 시간이 끌린 탓일까. 이전처럼 첫 번째 웨이브가 지나간 이후의 묘한 공백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화면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듯 히더니, 이내 요란하게 지축을 울려대며 끔찍한 거인이 존재감을 내비쳤다.

전에 등장했던 장소와 비슷한 위치였다. 정원 한복판에서 조금 비껴서서, 저택 정문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조명탄이 꺼져서 어둑한 시야 너머로 무수한 인기척과 함께 어둠이 일렁거렸다. 거대한 덩치를 구심점 삼아 저택 이곳저곳에서 좀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일행은 빛이 없이도 그걸 훤히 느낄 수 있었다.

망설일 타이밍이 아니었다.

쾅­!

정원 가운데에서, 격발을 기다리던 폭탄더미가 한순간에 폭발했다.

폭풍이 일었다.

"뭉치지 말고 벽면에서 떨어져요! 엄폐물 끼고 있다고 방심했다가 같이 박살납니다!"

칼고의 경고가 떨어진 직후였다.

꾸아아아악­!

짐승 수십 마리가 울부짖는 소리를 한데 뭉쳐둔 것 같은 끔찍한 소리였다. 거대 좀비가 몸을 비틀면서 요란한 패턴을 준비한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움직이는 투척물을 찾지 못한 괴물은 이내 바닥에 널부러진 시체를 들어올렸다. 시체 폭탄의 타겟이 된 쪼망과 칼고가 황급히 다리를 움직였다.

전신에서 고름과도 같은 누런 핏물을 흘려대면서도, 괴물의 움직임은 조금도 지체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무언가를 던져대던 거인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짧은 순간, 넓게 펼친 팔을 앞으로 흔든 거인이 바로 발을 굴렀다.

이내 팔과 같은 무언가를 사정없이 휘두르며 거인이 돌격했다.

이번에도 노르드를 향한 돌진이었다.

"쪼망님, 왼쪽이요."

"넷!"

거대한 육신이 발을 내딛을 때마다 쿵쿵거리는 굉음과 함께 화면이 흔들렸다. 폭발의 여파로 난잡하게 널부러진 시체와 돌덩이 따위는 거인의 몸뚱이에 치여 박살나듯 흩어졌다. 마치 전차가 밀고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도, 정작 돌진의 대상이 된 노르드는 제자리에 선 채로 총구를 겨누고 있을 뿐이었다.

거대 좀비가 지척까지 접근한 순간이다.

노르드가 견착하고 있던 총이 연달아 불을 뿜었다. 거리낌 없는 연사였다. 그와 동시에 멀찍이 떨어진 장소에서도 쪼망으로부터 총성이 울려퍼졌다.

반동을 억누르듯 조절하며 발사된 총알 대부분이 모두 거인의 좌측 무릎 언저리에 깔끔하게 틀어박혔다. 단말마같은 괴성을 내뱉은 거인이 크게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크게 휘두른 팔도 노르드에게 닿지 못했다.

노르드는 그 옆을 태연히 스쳐 지나갔다. 손에는 어느새 소총이 아니라 수류탄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 곧 노르드의 손을 벗어난 수류탄이 쓰러진 거인의 육신 밑으로 굴러들어갔다.

쾅­!

"진짜 그렇게 위태롭게 해야겠어요? 스트리머라고 방송각은 진짜­"

"이게 정석 공략법이에요, 아마. 안전하게 쪼망님한테도 지원 받았잖아요. 거의 죽었을 것 같은데 화력 집중해서 마무리나 하죠."

"...절대 아닐걸? 이게 정석이면 그냥 쓰레기 게임이지. 철제 바리케이드로 유인해서 스턴 먹이는게 정석 같은데."

"잡기만 하면 됐지."

[잡으면됐지..]

[아니 이거맞아? ㅅㅂ 보는 내가 다 쫄리네]

[응 방장은 상남자라 이딴거에 안쫄아~]

[원래 공략법뭐임? 이건 절대 아닌거같은데요]

[칼고 말대로 저택 기둥이나 튼튼한 오브젝트 활용해서 잡는거지... 실수하면 한방인데 누가 이렇게 잡냐고ㅋㅋㅋ]

[노르드! 킹르드! 황르드!]

노르드가 넘어진 거대 좀비를 우회해서 빠져나간 직후였다. 이미 몇 차례나 비슷한 과정을 반복한 팀원들은 쓰러진 거인을 향해 망설이지 않고 화력을 집중했다. 수류탄이 터지면서 발생하는 폭발음과 총성이 사방을 가득 채웠다.

이윽고 끔찍한 비명 소리가 총성에 묻혀 사그라들 즈음.

열 번째 밤이 지나갔음을 알리는 태양이 어둠을 밀어내며 떠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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