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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화 〉 112 ­ 옆에 있는 사람 (112/243)

〈 112화 〉 112 ­ 옆에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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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에는 태양을 대신해 달이 떠올랐다.

도시의 밤도 빛을 흐릴 즈음이다. 사실 빛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원룸 오피스텔은 애초부터 작은 공간이다. 한쪽 벽을 넓게 차지하는 창문을 검은색 차광막으로 막아두고, 그렇지 않은 쪽에는 차광 커튼까지 설치한 방이었다.

낮이든 밤이든 불을 꺼놓고 있으면 한 치 앞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둠이 짙게 깔렸다. 전자기기 따위에서 시간을 확인할 수 없다면, 지금이 몇 시인지 도통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외부 세상과 단절된 곳이었다.

주연이 그렇게 인테리어했다. 독립할 때부터 그토록 고립된 공간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누군가는 폐쇄적이고 답답하다 말할 이 공간이 그녀에게는 안락함을 안겨주는 안식처였다. 자신이 허락한 극소수의 인간을 제외하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자신만의 공간.

그녀는 이곳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마쳤다.

캄캄한 방 안은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이 유일한 광원이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간에 시작되는 그녀의 일과는,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규칙적이고 꾸준했다. 어찌보면 단출하게까지 느껴졌다. 주연이 하루에 하는 일을 대략적으로 분류해, 시간표 따위를 제작하면 정말 단순한 형태가 나오겠지.

그녀에게는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계획에 없던 갑작스러운 퇴사 이후 그녀의 일상은 한번 크게 뒤틀렸던 것이다. 목적이 있는 지금과 달리, 그때 그녀의 일상은 단순함에 더해 무기력하기까지 했다. 평온한 방의 구석에 쳐박히는 삶. 소통의 창구가 인터넷뿐인 고립된 삶. 과거도 미래도 없이 현재에 매몰된 삶.

그걸 안정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복되는 일상이 가져오는 지독한 권태감은 주연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온함이 사람을 짓누를 수도 있다는 걸 그녀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변화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 조차.

어떤 강렬한 욕망이나 목적 따위가 없다면, 인간은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모든 변화에는 원동력이 존재하는 법이다.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올리게 만드는, 간절한 바람. 그녀의 일상이 조금 변화하게 된 계기도 그랬다. 누군가를 반드시 만나고 싶다는 소망... 혹은 욕망.

주연의 바탕 화면은 잠들어있는 혜진의 사진이었다.

잠깐 앉은 상태로 기지개를 켜자, 전신에서 우드득하고 뼈마디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앉아있는 상태가 너무 길었던 모양이다. 아마 방금 방송을 종료한 혜진도 비슷한 체험을 하고 있으리라.

최근 노르드의 방송 시간은 그만큼 길었다. 방송 시간이 길다는 사실에 커다란 기쁨을 느껴야 할 텐데. 한편에서는 기쁨을 느끼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왠지 모를 걱정이 차오르는 것이다. 저러다 갑작스레 기나긴 휴재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

편집을 구실로 매일같이 연락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혜진은 예측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어느날 갑자기'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사람. 정상적인 범주로는 판단하기 힘든 사람.

그게 너무나 매력적이면서도,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살며시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언젠가 커다란 사고를 치지는 않을지. 마음 같아서는 그녀와 한 집에 같이 살면서 세심하게 혜진의 일거수일투족을 돕고 싶었다. 편집자를 넘어서 매니저, 매니저를 넘어서...

최근 주연의 머리를 가득 채우는 상념이었다.

찌뿌둥한 몸을 한번 풀어낸 주연은 곧장 녹화해둔 노르드의 방송 영상을 다시 틀었다. 방금 종료된 오늘자의 방송이었다.

한 명의 시청자로서 노르드의 방송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그녀였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할 수 있는 법이다. 주연의 편집은 늘 이렇게 시작됐다. 이미 시청한 지난 방송을 다시 훑으면서 자신이 적어둔 편집점을 재차 확인하고 수정하는 일이다.

한쪽 모니터에 펼쳐둔 메모장에는 주연이 적어둔 검은 글씨가 빼곡했다. 저스트 채팅도 없이 곧장 게임으로 넘어간 오늘의 방송은, 노르드를 제외하고도 세 명의 스트리머가 참여한 합방이었다. 무려 세 명씩이나.

주연이 '고난의 주간'이라 일컫는 플랫폼 대전 연습 때에 비하면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 당시의 방송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연습 경기를 끝마치고, 게임 피드백을 위해 팀원 전원이 음성 채널에 들어올 때면 사운드가 끊기질 않고 이어졌다. 그게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의 미덕이라는 것처럼.

주연의 결심이 흔들리던 시점이기도 했다. 노르드의 방송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떤 부분에서도 간섭하지 않겠다던, 계약할 당시에 했던 자신만의 결심.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방송에 이상한 손때가 타면 안된다는 심정이 담긴 확고한 생각이었다.

그게 합방으로 침범될 줄 알았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주연은 고민에 빠졌었다. 노르드와 다른 스트리머 사이에 접점이 늘어나는 게 불편해서, 자신이 그어둔 선을 넘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듣기 싫은 하이톤으로 쏘아붙이는 돌주나, 그걸 듣고는 같이 언성을 높이던 스벅의 쇳소리 섞인 목소리를 생각하면 지금도 그랬다. 다른 것보다 그게 노르드의 방송을 타고 송출되는 소리였다는 게 문제였다. 혜진의 듣기 좋은 미성만이 울려퍼져야 할 방송에서, 저런 쓰잘데기 없는 소리가 흘러나온다는 게.

그래서 주연은 노르드의 합방을 싫어했다.

그때에 비하면 오늘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협동 플레이를 위해 모인 면면들이 썩 나쁘지 않았다. 스벅이나 돌주와는 달리, 쪼망이나 돌쇠는 듣기 싫은 목소리로 떽떽거리며 잡음을 생성하는 유형의 스트리머는 아니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오늘도 칼고라는 놈팽이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겠지.

최근 저컴 게시판을 관리하다 보면 칼고와 노르드가 함께 포함된 닉네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제 앞가림도 못하고 틈만 나면 스트리머를 엮으려 하는, 더러운 우결충들.

그치들은 하는 짓도 불쾌하기 짝이 없어서, 틈만 나면 타이틀에 특보를 달고는 칼고의 방송에서 물어온 소식을 게시판에 전파하고는 했다. 마음 같아서는 영구적인 밴 처리를 하고 싶었으나 그럴만한 구실이 없는 게 문제였다.

그걸 '타 스트리머 언급 금지'라는 명목으로 밴을 할 수 없다는 게 주연에게는 더 커다란 문제로 다가왔다. 게시판에서 칼고가 자연스럽게 언급된다는 사실 자체가 그랬다. 이미 노르드가 칼고라는 스트리머와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녀는 그 사실 자체가 불쾌했다.

자신만 알고 있던 혜진의 얼굴을 실제로 봤다는 사실까지도.

때마침 듣기 싫은 칼고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주연은 습관처럼 영상을 앞으로 돌렸다.

데드 얼라이브는 꽤나 보는 맛이 출중한 게임이었다. 단지 총을 쏴서 좀비를 죽이면 되는, 단순한 게임. 효율적인 디펜스를 위해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그건 시청자들의 몫이 아니었다.

마우스가 돌아갈 때마다 좀비들의 머리통이 터져나가는 모습을 보면 굳이 쓸데없는 기반 지식이 없이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굳이 화려한 편집 효과 따위를 넣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 주연에게는 썩 만족할만한 일이었다.

지뢰찾기 편집은 큰일이었으니까.

노르드의 방송은 모든 순간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주연이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이었다. 편집자로서의 그녀는 확연히 다른 시선으로 영상을 바라봐야만 했다.

엘튜브를 즐겨보는 시청자들의 선호도. 그건 저스틴에서 생방송을 시청하는 것과는 명백히 다른 성격을 지녔다. 컷 편집된 영상이라는 게 그랬다. 방송의 앞뒤 맥락과 상관없이, 영상 하나만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조회수가 늘어난다. 주연이 하는 일은 몇 시간에 달하는 노르드의 생방송을 십 분여의 짧은 영상으로 압축하는 일이었다.

단순히 채널의 성장을 생각한다면 노르드가 나이트폴을 플레이하는 영상만 대강 편집해서 올리면 그만이다. 노르드의 팬인 주연의 시선이 아니라, 객관적인 편집자의 시선으로도 그랬다.

일전에 결전 대회에 참가할 당시의 개인 화면 영상이 어떤 파장을 불러왔던가. 지금도 노르드 채널 최고 조회수 영상 중 하나로 꼽히는 그 영상은 특별한 편집 없이 순전히 노르드의 플레이 역량으로 떠올랐다. 나이트폴 플레이어로서의 노르드는 이미 보장된 소재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노르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주연은 노르드의 채널에 처음으로 나이트폴이 아닌 다른 게임의 영상이 올라갔던 때를 기억한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다. 엘튜브의 알고리즘 따위를 운운하며, 채널 성장에 탄력을 받기 위해선 당분간 나이트폴 영상을 찍어내야 한다고 주연이 조언한 뒤였다.

노르드는 개의치 않고 피셔맨 플레이 영상을 건내줬다.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그랬다. 주기적으로 영상을 업로드해야 하는데, 영상 소스는 피셔맨 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연은 혜진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피셔맨 플레이 영상을 편집해서 올렸다. 노르드 월척 매드무비라는, 혜진의 뜻이 가득 담긴 제목이었다.

그 날 채널 커뮤니티의 댓글은 폭발적이었다.

그 다음 영상도 그랬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게임의 등장에 나이트폴만 보고 구독한 엘튜브 시청자의 여론엔 난리가 났다. 혜진이 엘튜브 채널의 관리 권한의 대부분을 주연에게 넘긴 터라, 그녀는 혜진이 그 반응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제발 나이트폴이나 좀 하라는 댓글이 얼마나 많이 달렸던지.

그 뒤에 노르드가 건내준 영상 소스가 임진왜란이었던 걸 감안하면... 아마 전혀 확인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제 채널에 달리는 댓글을 확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겠냐마는, 그녀가 생각하는 혜진은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이었다.

아무튼 느닷없는 괴상한 게임들이 연타로 쏟아진 것이다. 당연히 평균 조회수는 뭉텅이로 깎여나갔다. 그런데도 혜진은 전혀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나이트폴로 유입된 시청자들 전부가 그 영상들을 보지는 않을지언정, 그 중 절반만 남아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 속내를 알 수는 없었다.

영상 하나하나에 달리는 댓글을 모두 확인하는 건 오히려 주연이었다. 영상 편집과 관련된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기본적인 일과였다.

매번 댓글을 확인하는 그녀에게 종합 게임 영상에 달리는 댓글들의 변화 양상은 일종의 적응 과정이었다. 마치 노르드의 생방송에 적응해가던 저스틴 시청자들처럼, 엘튜브 구독자들도 서서히 노르드에게 적응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이트폴을 언제 하는지 물어오던 사람이 피셔맨은 언제 하냐고 뒤바뀌는 모습은 볼만한 광경인 것이다.

주연은 아직도 올리는 영상마다 '임진왜란 엔딩은 언제 올리나요'라며 댓글을 남기는 엘튜브 구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채널 성장이 탄력을 받을 타이밍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의외로 성공적인 전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피셔맨이나 지뢰찾기 따위를 올려도 조회수가 늘어난다면 앞으로 무슨 게임을 하더라도 괜찮다는 뜻 아닌가. 거품처럼 꺼질 구독자를 보유하느니, 초반부터 땅을 다지며 콘크리트를 두껍게 하는 편이 훨씬 미래를 도모하는 일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혜진은 사실 타고난 감각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수많은 시청자와 구독자를 거느릴만한...

띠링­

Nord:집자님

Nord:오늘 영상 다시보기 07:34 지점 어떤가요

Nord:오늘의 하이라이트예요.

Nord Love님이 메세지를 입력하는 중입니다...

Nord Love:지뢰 매설하는 장면이네요

Nord Love:혹시 시간 착각하셨나요?

Nord:그거 맞는데

Nord:오와열 기가막히게 맞춰서 깔았잖아요.

Nord:편집각 잘나올듯

Nord Love:하하

Nord Love:

Nord:왜 우시지

주연은 방송 하이라이트와 관련된 혜진의 의견은 전적으로 무시하는 편이었다.

메모장에 정리한 편집점을 다시 확인하고, 영상에 사용할 부분을 잘라 정리했을 때에는 이미 해가 떠오를 시점이었다. 완전히 빛이 차단된 주연의 방에서는 느끼지 못할 아침이었다. 그럼에도 주연이 이 시간을 의식하는 까닭은, 그때가 정확히 엘튜브 채널에 영상을 업로드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자 영상은 이미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편집 프로그램을 틀지 않은 반대쪽 모니터에서, 주연은 업로드 대기가 걸린 영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영상이 올라갈 시간이면 매번 반복하는 마지막 절차였다. 영상이 제대로 업로드 됐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길이와 제목을 체크하는 일.

'Nord11 방종 하이라이트'

영상에 문제는 없는 듯했다.

업로드된 영상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그녀는 본격적인 편집을 시작했다.

이제 곧 그녀의 하루가 끝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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