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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화 〉 116 ­ 앞길을 막지 말아줘 (116/243)

〈 116화 〉 116 ­ 앞길을 막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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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분명 전형적인 뉴비의 모습이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것부터가 그랬다. 맨몸으로 떨어져, 당장 파밍을 시작해야 하는 처지에 스킬부터 시전해 보는 장면은 답지 않게 천진난만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때묻지 않은 뉴비의 순진함이다. 방송을 보는 대부분의 시청자는 새비지라는 게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반면, 지금 막 첫 게임을 시작한 노르드는 그렇지 않았다. 그 정보의 격차가 방송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플레이가 당연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플레이도 알아야 기본이 되는 법이다. 스폰된 순간 기본으로 가져야 할 절차 따위를 모두 무시하고, 그녀는 느긋하게 파밍을 시작했다. 색다른 모습이었다. 고이다 못해 썩어가는 유저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다가, 이제 막 첫 게임에 들어선 뉴비를 바라보는 건 신선한 일이었다.

기관단총을 획득하고는 허공에다 몇 발 시험 사격을 실시했다. 아직은 고요한 폐허 한복판에서 기관단총 특유의 틱틱거리는 총소리가 정적을 깨웠다. 그러고는 또 총을 집어넣고 정처 없이 아이템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다.

푸른빛이 감도는 도끼를 주워 들고는 건물 외벽에 내리치며 흉터를 남겼다. 최우선적으로 파밍해야 하는 장비나 소모품에 대해서 알 턱이 없었다. 주변에 떨어진 아이템이 있으면 일단 줍는 게 먼저였다. 가방도 획득하지 못해 좁아터진 인벤토리 창을 잡다한 아이템으로 꽉 채워놓고, 그제야 아이템을 하나하나 클릭하며 설명을 읽어보는 것이다. 생존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느긋함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새비지에선 지도와 나침반을 획득하기 전에는 지도상에 자신의 위치도 표시되지 않았다. 게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시작 지점 근처를 훑는 것만으로도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으나, 그건 방금 이 게임을 처음 시작한 노르드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운 좋게 획득한 지도를 몇 번인가 접었다 펼쳤다. 무너진 콘크리트 숲에서 지도만 보고 위치를 확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생각을 포기한듯 노르드는 지도를 접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나침반이 필요하다는 채팅창의 훈수는 확인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즈음 채팅창은 노르드의 어리숙한 플레이를 보고 웃음이 터진 부류가 절반이요, 뉴비의 답답한 플레이를 보며 온갖 훈수를 쏟아내는 부류가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상태였다. 노르드의 방송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훈수보다 빨리 게임을 진행하는 게 노르드라는 스트리머의 특징이었으니까.

노르드는 그저 발이 가는대로 움직였다. 그녀가 가는 곳이 곧 길이었다. 대로로 보이는 길을 따라 걸으며, 우연히 획득한 노말 등급의 방탄복을 주워다 입었다. 손에는 기관단총이 아니라 도끼를 거머쥐고 있는 채였다. 중얼거린 말에 따르면 총알을 아끼고 싶어서 그렇다나. 답지 않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스태미나를 살피며 뛰었다 걸었다를 반복했다. 생소한 풍경이 신기한지 일인칭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다른 생존자들은 모두 파밍에 바쁜 건지, 폐허가 된 도시는 몹시 조용했다.

사방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이질적인 구역에 도달했을 무렵, 노르드는 처음으로 변이체를 조우했다.

핏발이 잔뜩 선 양쪽 눈이 인상적인 변이체였다. 사람의 허리쯤 오는 크기에, 네 발로 서있는 모습이 거대한 개를 연상시켰다.

네 발 짐승은 노르드를 마주하고는 우락부락한 근육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심상치않은 기세가 느껴졌다. 채팅창에선 얼른 무기를 바꾸고 공격하라는 긴박한 훈수가 올라갔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노르드의 양손은 여전히 묵직한 도끼를 들어올린 상태였다.

화면이 두근거리며 맥동한 순간이다.

위협적으로 달려든 변이체는 도끼의 일격에 머리를 가격당하고는 사망했다. 일격이었다.

누군가의 걱정과 누군가의 기대가 담긴 채팅창의 훈수들을 한순간에 지워버린 움직임었다. 송출되는 방송 화면이 노르드가 보는 것과 같은 일인칭이었기에,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방금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힘들었다.

바닥부터 쓸고 올라가듯 움직인 화면이 한순간에 뒤집힌 탓이다. 시청자의 눈으로 살펴보면, 변이체가 노르드를 향해 뛰어든 시점에 화면이 돌아가며 시야가 반전된 상황이었다. 그러고 다시 화면을 돌렸을 때 변이체는 이미 머리가 갈라져 시체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느린 배속으로 돌려보지 않는다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정작 일을 저지른 노르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레벨업으로 상승한 캐릭터의 스펙 따위를 확인하며 변이체의 시체를 뒤적거리는 중이었다. 안타깝게도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작게 불평을 내뱉은 노르드가 다시 발을 움직였다. 변이체의 등장에 위협을 느끼지도 않았는지 발걸음은 연기가 올라오는 위험 구역으로 향했다.

그 시점부터 채팅창에 의문 섞인 채팅들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변이체를 처음 접하고 빈사 상태로 몰리는 어리숙한 플레이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총도 사용하지 않고 단숨에 사냥을 끝내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이게 정말 귀여운 뉴비가 맞냐는 의심 섞인 눈초리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위험 구역으로 당당히 들어선 노르드가, 중형 변이체하나와 저격을 시도한 생존자 한 명을 무참히 사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뒤로 이어진 게임에서, 독주하는 블러드서커를 막을 수 있는 생존자가 없었던 탓에.

오늘 새비지에 첫 발을 내딛은 뉴비는... 첫술에 우승을 거머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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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1등했네요."

[노르드! 황르드! 갓르드! 노르드! 황르드! 갓르드!]

[이거 부캐맞지?]

[첫판 트럭 우승ㅋㅋ 어처구니가없음..]

[혈가진짜 존나 잘쓰네 씹ㅋㅋㅋㅋ 블써 똥캐맞냐?]

[쪼렙부터 중형변이체 잡으면서 돌아다니면 사기지... 마지막에 스탯버프 붙는거 봤음? 개토나옴]

[그게 쉬우면 개나소나 모기새끼하지]

[이게 재능충인가]

[눈나 나 바지젖었어...]

내색하진 않았지만, 꽤나 짜릿한 승리였다.

새비지는 딱 보기에도 깊이가 느껴지는 게임이었다. 넓은 맵, 구역마다 갈리는 특성, 변이체라는 중립 몬스터의 존재, 아이템의 등급, 꽤나 자유도가 높은 위버의 스킬 활용까지.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하나같이 높은 숙련도를 요구했다.

당장 스나이퍼 라이플의 존재만 생각해도 그랬다. 맵에 존재하는 저격 포인트가 얼마나 많을지. 그걸 제대로 숙지하고 플레이하는 유저와 그렇지 않은 유저의 실력 차이가 대번에 벌어질 게임이었다. 희귀도가 높은 아이템이 등장하는 구역이 정해져 있다고 가정하면, 그런 것도 게임 운영의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할 게 뻔했다. 아는 만큼 할 수 있는 플레이가 많아지는 게임.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첫 게임에서 승리를 가져간 것은, 운이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지.

게임의 중반부였나. 저격을 시도하던 생존자가 떠올랐다. 아마 이번 게임 내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미세하세 느껴지는 진동으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먼거리에서 저격을 시도할 줄은 몰랐다. 그 전에 저격총의 존재를 배제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저격의 기회가 그토록 많았을 텐데 쏘지 않는 걸 보고 내린 결론이었으나, 아무래도 섣부른 판단이었던 것 같다.

변이체를 건드렸던 선택이 꽤나 주요했다. 지켜보던 적을 끌어들임과 동시에, 혈류 가속의 이점을 살릴 수 있었으니까. 잃은 체력에 비례해 증가하는 이동 속도는 툴팁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다. 블러드서커라는 위버의 밥줄이라고 말해도 무방했다. 목숨을 건 위태로운 줄타기를 강요하는 것이 나이트폴을 떠올리게 해서 좋았다. 로우 라이프 관리야 내가 늘상 해오던 일이었으니.

도끼를 내리치는 손맛은, 확실히 훌륭하더라.

그 뒤로는 간단했다. 저격을 시도한 생존자의 시체에서 다양한 보조 아이템을 루팅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선물 보따리를 들고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맵에 자신의 위치를 찍어주는 나침반이나, 부상을 치료하는 회복 아이템이 많았다.

아무래도 산타는 새비지를 플레이한 경험이 제법 풍부한 유저인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렇게 쉽게 킬을 당해준 걸 보면, 스트리머 돕기를 취미로 하는 선한 저격러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 덕분에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서바이벌 게임에서 최후의 생존자로 살아남는 그 짜릿함은 쉽사리 잊혀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 쾌감을 위해서 몇 판을 허무하게 내리 지더라도 다음 매칭을 이어나가는 법이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지만, 일찍 거머쥔 승리도 달콤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방송의 흥행 여부와 상관 없이 마우스는 곧장 다음 매칭을 위해 움직였다. 인기 있는 게임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오늘의 방송은, 조금 길어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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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몇 시지?

새벽 2시 14분. 벌써 자정이 지났다. 평소의 생활 패턴을 생각하면 아직 졸음이 쏟아질 시간도 아니었건만, 미나는 점차 무거워지는 머리를 실감하는 중이었다. 이건 필시 졸음이 아니라 정신적 피로감일 게 분명했다. 기대한 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에서 비롯한, 박탈감 내지는 탈력감.

미나는 지금 열 번도 넘게 노르드 저격을 실패한 상태였다.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 첫 판, 역시 첫 판일까?

예상의 수십 배를 상회하는 노르드의 뛰어난 플레이에 눈이 돌아가, 몇 판 정도 유심히 방송만 지켜봤던 것이 패인이었다. 그러나 노르드의 플레이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뛰어난 적응력과 타고난 센스, 빠른 상황 판단과 말도 안 되는 반응속도. 노르드는 타고난 게이머였다.

게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헤메는 와중에도 노르드의 플레이는 빛이 났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빛났을 것이다. 저렙부터 목숨을 걸고 대형 변이체를 사냥하는 장면이나, 지뢰밭을 뚫고 들어가 유니크 아이템을 획득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새비지 유저들의 로망과도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게임 시스템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단기간으로 압축한 성장 드라마를 무편집으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생존자와 마주하면 돌격부터 하고 보는 공격적인 플레이는 자극적인 조미료와 같았다. 어느새 저격을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몇 판인가 노르드의 새비지 플레이를 넋놓고 지켜볼 정도였다.

그래선 안 됐는데.

매칭 분위기가 반전된 건, 노르드가 무심코 던진 멘트 때문이었지.

'우승하면 방종하겠습니다'였나.

해가 완전히 내려앉을 무렵에 내뱉은 말이었다. 당연히 채팅창에선 난리가 났다. 그간 노르드의 성적에서 비정상적일 정도로 우승의 빈도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전체 플레이 게임에서 5할을 넘어가는 우승 횟수. 적은 판수와 뉴비들 위주로 매칭이 잡힌다는 점을 감안해도, 달성하기 힘든 기록임은 분명했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두 판에 한 판 꼴은 우승을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노르드가 성장하는 모습에 한껏 재미를 붙인 시청자들이 불만을 쏟아낼 만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노르드의 그 발언 이후로, 게임의 수준이 비상식으로 높아졌다.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전체 생존자가 감소하는 속도가 현저히 증가했으니, 물증도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

매판마다 폐허가 된 도시 곳곳에서 소위 '트럭'이라 불리는 괴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절대 뉴비라고는 말할 수 없는 그들은, 노르드의 방종을 막기 위해 나타난 저격러들이었다. 개인마다 차이가 나긴 했지만 다들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미나도 열심히 저격을 준비했다. 흥미진진한 양상을 보고 방송에 몰입하긴 했지만, 애초에 노르드와 함께 게임을 하고 싶어 지금껏 대기한 것이 아닌가. 저격에 성공한 뒤 노르드를 노려 하고 싶은 플레이가 셀 수 없이 많았다.

방송의 미세한 딜레이를 생각해, 노르드가 매칭을 시작하기 몇 초 전에 미리 매칭을 시작하며 같은 게임이 잡히기를 기도했다. 새비지가 유저가 많은 게임이라지만, 매치마다 60명이라는 많은 인원이 함께하는 게임인 것이다. 미나는 노르드를 저격하는 게 그렇게 힘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산이었다.

1초. 방종 발언 이후로 노르드가 매칭을 잡는데 소요되는 시간이었다. 이걸 매칭이라고 할 수나 있을까. 이 정도면 매칭 시작을 누르자마자 게임이 생성된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쯤되면 방송을 보는 시청자도, 노르드 본인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아­. 지금 말도 안 되는 수의 저격러들이 매칭을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그들이 나타난 이후부터 노르드는 우승을 하지 못했다.

노르드의 방송이 길어진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면서도, 저격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 상황이 미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런 훌륭한 게임을 놓치면 언제 노르드를 저격할 수 있을지 몰랐다. 이쯤되자 노르드의 복부에 총알을 박아 넣겠다는 미나의 바람은 소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응... 또 죽었네. 갈 데까지 가보죠. 다음 매칭 바로 갈게요."》

또 한번의 기회다. 미나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저격러들이 활약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노르드의 방송이 언제까지고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녀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약속 따위는 상관 없다는 듯 그대로 방송을 종료해버리거나, 어쩌면 저격러들을 실력으로 짓누르고 우승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다.

노르드의 방송이 송출되는 모니터를 쳐다보고, 타이밍에 맞춰 매칭을 연타한 바로 그 순간.

방송과 거의 동시에 잡혀버린 매칭을 보며, 미나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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