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3화 〉 123 ­ 잔잔한 방송을 추구합니다 (123/243)

〈 123화 〉 123 ­ 잔잔한 방송을 추구합니다

* * *

"3차, 3차는 노래방으로 가죠. 원래 그게 맞아요."

"...원래 맞는 게 어딨어? 술자리에 법칙이라도 있어요?"

"아니이, 취기 올라올 때 노래방가면 기분이 좋잖아. 몽롱할 때 쿵쿵거리면, 온몸으로 노래를 듣는다고 해야 하나. 그거 몰라요?"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이제부터 알아가요. 응, 소주 두 병. 깔고씨는 두 병이면 딱! 딱 되겠어. 집에 스피커있어요? 조금 커다란 걸루­"

"...난 집에서 술 안 마셔요."

"아. 아쉽네에. 좋은 건데. 그럼 노래방이라도 가죠. 노래방은 사람 적을수록 좋잖아."

"노래방에 왜 이리 집착해요? 저번에 보니까 노래도 거의 안 부르더만. 나도 노래 많이 부르는 스타일아니야. 잘 부르지도 못하고."

"집차악? 집착 아니야. 잘 부를 필요도 업꼬. 그냥, 노래방은 자주 다녔으니까... 조금 그립잖아요. 저번에 안 부른 건 노래가 몇 개 없어서 그랬찌..."

"노래가 없다고? 그런 게 어딨어. 있을 거 다 있었구만. 그냥 사람 많아서 안 불렀다고 해. 부끄럼타는 성격도 아니면서."

"아니, 진짜로 없어요. 내가 아는 노래가. 원래 나 나름대로 레퍼토리도 있는데... 하. 이렇게 된 거 작곡이라도 할까봐. 나는 아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르잖아. 이거 좀 억울할 거 같지 않아요?"

"뭔... 완전 취했구만. 무슨 소리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아­. 그거 취객한테 하면 안되는 말인 거 알죠? 이렇게 된 거 나 혼자라도 노래방갈 거야. 모르는 노래라도 틀어놓고 부를 거라고. 한 열댓 번 반복하면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니면 귀 동냥으로 들은 노래라도 틀어놓고,"

"...염병하지 말고. 오늘은 일단 들어가요. 택시 태워줄 테니까­"

###

토요일 늦은 밤, 노르드의 방송은 갑작스레 켜졌다.

곧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밤낮에 구애받지 않는 인터넷 방송의 생리를 생각하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시간대였다.

일요일을 앞둔 토요일 밤. 특별히 낮 시간을 정규 방송 시간으로 삼은 방송인이 아닌 이상 주중 가장 많은 시청자가 모여드는 때라고 봐도 무방했다. 방송을 시작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으나, 그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게 휴방 선언을 하고 난 다음날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랬겠지.

노르드는 애초부터 방송 시간이 불안정한 스트리머였다. 방송 초창기부터 정규 방송 시간을 정해달라는 이야기가 꾸준히 게시판에 올라오고 있었음에도, 그녀의 방송 패턴은 변하지 않았다.

오후, 저녁, 밤, 새벽, 정말 간혹가다 가는 오전까지.

빈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말 중구난방에 가까운 방송 시간이었다. 그나마 최근 종합 게임 방송을 시작하면서 방송 시작 시간이 저녁 식사 시간 이후로 안정화되었다는 게 다행일까. 물론 그마저도 일정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불과 어제 있었던 새비지 방송만 하더라도 새벽에 시작해 오전에 끝나지 않았나.

난잡한 방송 시간을 대신해 올려준다는 사전 공지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공지를 올리는 시간조차 정해져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시판에 한창 사람이 많을 전날 저녁에 성실히 공지를 올리는 경우도 있는 반면, 방송 시작 불과 몇 분 전 아무런 내용도 없는 공지를 올릴 때도 있었다.

그럴 바에야 공지를 쓰지 말라는 시청자들의 타박을 '시청자와의 약속이니까 썼다'며 받아치는 것이다.

그 불안정한 공지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최근에도 노르드는 방송을 켤 때마다 매번 게시판에 글 하나씩을 올리고는 했다.

놀랍게도 그 공지를 읽고서 노르드의 방송을 찾아오는 시청자도 존재했다. 오죽하면 그걸 위해 그녀의 게시판에 상주하기 시작했다는 시청자도 있었다. 노르드의 게시판이 어느샌가 저스틴 커뮤니티에서 수위권을 차지하는 게시판으로 성장해버린 것도, 이 기이한 방송 패턴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방송 시간으로 시청자를 농락하는 걸 삶의 즐거움으로 삼는 것 같은 노르드가 반드시 지키는 것은 하나 뿐이었는데, 그건 다음 방송에 대한 공지가 아니라... 휴방이었다.

방송을 켠다고 해놓고 오지 않는 날은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덕분에 방송에서 노르드가 내뱉는 휴방 선언은 그녀의 방송을 애청하는 무리들에게 있어 최고의 악재 중 하나로 손꼽히고는 했다. 반전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 최악이었다.

그걸 직접 공지로 올리는 일도 드물어서, 그런 발언이 있을 때면 노르드가 멘트를 내뱉는 즉시 게시판 두 페이지 정도가 '급보' 타이틀을 내걸은 신규 게시글로 채워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고 나면 방송이 비는 다음날까지 게시판의 민심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이다.

관리자가 있는 만큼 직접적으로 험한 말이 오가지는 않았다.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의 묘한 열기가 게시판 곳곳을 맴돌았을 뿐이다.

평소처럼 유머글이라도 올라오면 '그래서 노르드는?' 따위의 시비조 어린 댓글이 여럿 달리고, 거기에 대응해 싸움이 벌어지는. 게시판이 독이 바짝 오른 시청자들의 전쟁터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게시판 주인이 방송을 쉬는 날이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토요일인 오늘은, 노르드의 휴방 날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게시판도 비교적 얌전한 하루였다.

최근 꾸준한 종합 게임 방송으로 꽤나 민심이 안정되어가는 추세였기 때문일까. 평소처럼 공지 없이 멘트 한마디로 결정난 휴방이었음에도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노르드의 게시판은 평화로웠다.

규모가 커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서인지, 방송이 없어도 게시판을 채울 주제는 차고 넘쳤다.

노르드의 이전 방송과 관련된 이야기, 동료 스트리머가 노르드를 언급한 내용, 엘튜브 채널에 새로 올라온 동영상, 그 외 관련 없는 잡담들까지.

그중에서도 오늘 게시판의 주된 화제는 나이트폴 신규 확장팩에 대한 이야기였다. 프리 시즌 종료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확장팩 출시를 코앞에 둔 상태에서 조금씩 풀려나오는 새로운 정보들이 여러 커뮤니티를 거치며 노르드의 게시판까지 들어왔다. 나이트폴 유저라면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많은 탓에, 그녀의 게시판에 상주하는 시청자들도 지금은 나이트폴과 관련된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중이었다.

당연히, 휴방 선언을 내뱉은 노르드의 방송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방송을 킨 것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

­차분하고 잔잔한 방송.

[뭐야 해킹당함?]

[]

[알람보고 기겁하면서 들어왔다... 사랑해요 센세]

[당신 누구야]

[서프라이즈 ㄷㄷ 저 생일인건 어떻게 아시고ㅠ]

[토요일 밤 노르드 생방송? 이거 섹스네요]

[방제뭐임?]

[진짜 나죽어]

[공지도 없이 방송을 켰다고...]

[나이트폴 패치노트보고 근질거려서 온거맞지??? 지금당장 프리서버 성기사 빌드 굴려보는거맞지??]

[와 이번주 노휴방... 설마 내일까지...?]

이곳저곳 흩어져서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이 빨리도 모여들었다. 들릴 리 없는 알람에 반응해 반사적으로 마우스를 움직인 까닭이다.

본래 예상하지 못한 일이 가장 큰 파장을 불러 모은다고 하지 않았나. 휴방이라고 생각한 노르드의 방송은 그만큼 갑작스러웠다.

"아­. 아, 아, 아. 아아아아. 아­!"

[????]

[이사람 왜이래]

[ ㅜㅑ 귀간지러]

[잘들려요...]

[선생님 저 무서워요;;]

[또 술쳐마셨네 이년]

느닷없는 마이크 테스트였다.

입가에 마이크를 바짝 붙였는지, 또렷하다 못해 귓가에 대고 직접 말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폰을 꽂고 방송을 보던 시청자 일부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소름에 몸서리를 칠 정도였다.

채팅창에 한바탕 소란이 난 와중에도, 난리를 일으킨 당사자는 똑같은 행위를 재차 반복했다. 목소리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물론, 갑작스레 방송을 키고 왜 저런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 첫 곡, 첫 곡은 최신 노래로오."

정상적인 문장 구조로 나열한 첫 멘트가 저랬다.

여전히 시청자들에게는 맥락 없는 헛소리였다. 노르드는 이어서 알아듣기 힘든 작은 소리로 뭐라 중얼거리고는, 음악 스트리밍 프로그램을 방송 화면 한 가운데로 움직였다. 클릭 몇 번에 차트 TOP100 항목이 주르륵 나열되어 나타났다.

곧바로 최신 가요가 흘러나왔다.

[이 사람 진짜 뭐해]

[영락없는 취객]

[노르드의 음주방송... 이거 흔하네요]

[노래 나오는거 ㅈㄴ 어색함 이사람 틀딱 클래식만 듣잖아]

[지금 왔는데 뭐임?? 이분 뭐하시는거]

[목소리 풀린거 개꼴리네]

[저새끼 묻어]

.

.

.

"너무 울림이 없지 않아요? 노래가."

아무 말도 없이, 노래 한 곡을 전부 듣더니 내뱉는 평가였다. 하도 조용한 탓에 노래가 흘러나오는 와중에도 노르드의 의식 여부를 두고 논쟁하던 채팅창이 금세 화제를 전환했다. 노르드의 질문에 대답하기 보다 의문을 던지는 시청자가 훨씬 많았다. 주로 갑작스런 방송에 대해 궁금해하는 내용이었다.

자연스레 다음 곡으로 넘어간 스트리밍 프로그램의 볼륨을 낮춰두고는, 노르드가 입을 열었다. 드디어 채팅창을 조금씩이나마 확인하는 모양이다.

"방송, 방송 왜 켰냐구요? 키고 싶어서 켰지. 음악 듣다가­ 응, 추천 받고 싶어서. 노래 추천받으려구 켰어요."

. . .

"술 한잔했는데... 에, 고기랑 먹고 왔는데. 노래나 추천해 주세요. 왜 질문만 던지고 있어."

. . .

"그거 나이트폴 브금이잖아. 그런거 말고 가요나 팝송으로 추천해줘요. 누구랑 먹었는지 알려달라고­ 음, 그럼 추천해 줄 거예요? "

놀랍게도, 노르드의 최근 방송 중 가장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평소보다 다소 과해보이는 취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원하는 채팅만 골라 읽기로 소문난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나른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가 채팅창을 꼼꼼히도 읽어나갔다. 노르드의 방송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경험한 적 없는 상황에, 채팅창의 열기도 과열을 넘어서 폭발 직전으로 나아갈 무렵.

우웅­ 하는 진동 소리와 함께 기본 벨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아. 전화왔다. 잠깐만 있어봐요."

. . .

"네, 여보세요? 아­"

툭.

마이크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작은 소음이 일었다.

노르드의 빈 자리가 만들어낸 정적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스트리밍 프로그램에서 최신 가요가 희미하게 흐르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마우스의 움직임조차 없는 정적인 화면.

이미 뒤틀릴대로 뒤틀린 채팅창과 비교하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오는 고요함이었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