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124 라디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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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고 사라진 노르드가 돌아온 건 몇 분이 흐른 뒤였다.
인기 차트 음악이 희미하게 깔린 정적 속에서, 불타는 채팅창만 바라보고 있던 시청자들에게는 더 없이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채팅창에선 무성한 의혹들이 난무했다. 노르드에게 전화를 걸어온 상대에 대한 추측이 주를 이뤘다. 가장 언급이 많은 건 전화를 걸어온 게 술을 같이 마신 지인이며, 남자친구일 확률이 높다는 추측이었다. 연인관계가 아닌 이상 이렇게 갑자기 전화를 해서 노르드의 입을 틀어막을 이유는 없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동의를 표하는 시청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근거가 있다기 보다는 그게 가장 자극적인 선전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너무 빠르게 올라가는 탓에 제대로 읽을 수도 없는 채팅창에서 불만을 쏟아낸 장문의 채팅이 수 차례 올라왔다. 흡사 연인에게 배신당한 사람이 쏘아낼 법한 문장이었다. 그건 무수한 채팅 속에서 유독 도드라지게 다가왔다. 아마 그 속에 욱여 넣듯 담아낸 감정이 너무 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만취한 노르드가 이대로 잠에 들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무렵이다. 드디어 정적을 깨고 노르드가 입을 열었다. 마이크가 다시 연결되는,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였다.
"아, 아. 안 취했는데... 다시, 노래 추천해주세요. 음. 채팅창 왜 이렇게 빨라."
노르드의 등장과 더불어 해명하라는 한 글자 채팅이 무서운 속도로 채팅창을 밀어올렸다. 금방 채팅창에서 만들어진 의혹에 대한 추궁이었다. 채팅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기다란 문장을 잔뜩 채워넣은 후원이 연달아 쏟아졌다. 응어리가 담긴 듯 억눌린 TTS의 기계음이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난잡했다. 채팅창과 함께 방송을 보는 일반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환경이었다. 이와중에도 음악은 은은하게 깔리고 있었다. 채팅창만 배제하고 본다면, 잠들기 전 볼만한 잔잔한 라디오 방송처럼 느껴질 만도 했다.
채팅창을 제외할 수 있다면 그랬다.
"후원 잠시 꺼둘게요. 아무도 노래 추천을 안 해줘."
드물게도 감정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잠깐 채팅창과 후원을 살핀 듯 입을 다물었다 내뱉은 말이었다. 나른한 어조에 실망감이 깃들었다. 한숨을 몇 번 내쉬고는 다시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이, 난리가 난 방송 채팅에 대한 당혹감 따위는 담겨있지 않은 것 같았다.
기다란 차트 목록의 스크롤을 잡아챈 마우스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느릿한 속도를 보면 하나하나 노래를 훑어보는 느낌이었다. 음악 추천받는 일을 포기하고, 제 손으로 직접 노래를 찾으려는 것일까. 그녀는 난리가 난 채팅창을 진정시키려는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욱 내려가던 스크롤이 동작을 멈췄다.
"이거 쪼망님이 노래방에서 부르던 건데."
마우스가 노래 하나를 집어냈다. '어느날'이라는 제목의 곡이었다.
노르드는 곧바로 노래를 재생했다.
낮은 볼륨 탓에 잔잔한 곡의 멜로디가 희미하게 스러졌다. 그녀가 볼륨 조절을 하고 나서야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음악을 온전히 들을 수 있었다. 가장 낮게 설정했던 볼륨이 급격히 커지는 바람에 황급히 이어폰을 집어던진 시청자도 적지 않았다. 채팅창 곳곳에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볼륨을 최대로 끌어올린 덕분에 노래는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아련한 전주였다. 현악기의 구슬픈 반주를 타고 흘러나오는 여가수의 높은 미성은 담담히 이별에 대해 노래했다. 극적인 고음이나 기교도 없이 잔잔한 멜로디가 이어지는, 발라드 가요였다.
4분여에 달하는 노래가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시청자 중 일부가 채팅창에 지루함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빨리도 싫증을 내는 무리였다. 잠에 빠진 사람, 침대나 이불 따위의 이모티콘이 아직도 해명하라 외치고 있는 채팅창의 일부를 덮었다.
최신 차트에 있는 노래였음에도 아는 사람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높은 순위가 아니기 때문일까.
노르드는 열심히 음악을 듣는지 난리가 난 채팅창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높이 키운 음악 소리 때문에 그녀가 내는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몇 분에 한해서, 그녀의 방송은 라디오나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노르드의 방송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이 대체로 게임 BGM에 불과했다는 걸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라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홀로 잠든~ 어느 날.》
노래는 떨리는 미성과 함께 끝이 났다. 반복적인 후렴구에 참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시청자가 나타날 무렵이었다.
"노래 좋네요. 쪼망님이 똑같이 잘 부른 거였네."
잔잔한 발라드가 감정을 잠재울법한데도, 한 번 불타오른 채팅창을 수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전화의 여파가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노래가 끝난 지금도 지루하다는 이모티콘을 도배하는 시청자가 남아있었다. 잔뜩 뿔이 난 일부 시청자들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노르드는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마우스를 움직이더니, '어느날'을 한 번 더 재생했다. 아련한 전주가 재차 방송을 가득 채웠다. 한마디 분량을 듣고 나서, 다시 움직인 마우스가 반복 재생을 클릭할 때까지. 노르드가 무슨 생각으로 그걸 눌렀는지 예상하는 시청자는 아무도 없었다. 채팅창 곳곳에서 의문을 표하는 갈고리가 올라왔다.
노르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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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 그만해 잘못했어]
[어느날그대있던빈자리를찾아내허전함속에서난울어요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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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몇번째야 무친련아]
[님들 이 방송왜봄?]
[ㅋㅋ 다 꺼져 뷰웅신들아 노르드 명물 개미털기 나가신다~~~]
[후원막아놓고 채팅안보고 존나지루한노래 반복재생ㅋㅋㅋㅋㅋ 엠1창 이게 무간지옥아니냐?]
[응 다 나가 10련들아 원래 이런 인간이야]
[방장 멘탈흔들려던 놈들 서서히 한계 느끼고 나가는 중이죠?? ㅋㅋ... 근데 왜 나도 힘들지]
[갑자기 쪼망을 죽이고 싶어졌어]
[전화한것도 사실 쪼망아니야?? 화가난다]
[님들 듣다보면 이 노래 좋음]
[니기미 ㅆ1발럼아ㅎ]
삼십 분은 지난 것 같았다.
그런데도 방송 화면은 삼십 분 전과 비교해서 바뀐 게 없었다. 여전히 가요 차트가 화면 가운데를 버젓이 자리 잡은 채 비키질 않았다. 변화 없는 방송 화면은 지극히 정적이었다. '어느날'이 흘러나오는 중앙 부근에서 가사 몇 줄이 움직이는 것이 방송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요소일 뿐이었다.
똑같은 화면, 똑같은 노래만 반복되는 기이한 방송 송이다.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시간이 아니었으면 녹화된 영상의 반복 재생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았다.
이 지극히 순환적인 방송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건 채팅창이었다. 노래가 몇 번 반복되었을 당시에 분노를 표출하던 채팅창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울상짓는 표정을 그리며 변해간 까닭이다.
아직까지 방송에 남아있는 시청자들은 무간지옥이라는 단어가 꽤나 잘 어울리는 표현처럼 느껴졌다. 욕설을 내뱉고 방송을 뛰쳐나가는 시청자도 많았건만, 아직까지 이 방송에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탕을 위해 들어왔다가 악에 받쳐 남은 이들도, 채팅창의 반응이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 재밌어서 남은 이들도, 이 반복 재생이 언제 끝날지 궁금해서 남은 이들도, 순전히 노르드에 대한 팬심으로 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저마다 제각각의 이유로 방송에 남아있음에도, 여전히 '어느날'은 똑같이 재생되는 중이었다.
변하는 건 없었다.
그대로 자리를 비워도 무방할 것 같은 노르드는 의외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다음 번이 재생되는 짧은 침묵의 시간에는 멘트를 내뱉기도 했다. 대부분이 노래와 관련된 헛소리였다.
의미 없는 한두 마디 말이 끝나면, 노르드는 매번 노래를 추천해달라는 멘트를 마침표처럼 남겼다. 이전에 난리가 난 채팅창 때문에 노래를 추천받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생각하고 있던 걸까.
지겨움을 넘어서 신물이 날 정도로 반복되는 '어느날'에 지친 시청자들이 점차 진심으로 노래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 지겹기 짝이 없는 지루한 노래부터 바꿔보자는 생각에 내민 추천이었다. 노르드가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팝송부터 가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노래가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도 노르드는 반복 재생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종종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다. 남은 시청자들이 어느덧 가사까지 외워버린, '어느날'의 멜로디였다. 여가수와 노르드의 목소리가 흘러가는 멜로디에 따라 묘하게 어울렸다.
[아 노래 연습하시는 거였구나!]
[ㅈㄹ깝싸지마]
[그래 이럴거면 차라리 니가 불러줘]
[센세 노래 너무좋아요]
[와 진짜 음소거 안하고 계속들었더니 미칠거같네]
[이사람도 소리 안끄고 계속 듣고있는데요? 뭐지 같이 죽자는 건가]
[상대를 고문하려면 일단 나부터]
[님들 잘들어보셈 이노래 진짜 좋음]
[듣다보니까 좋은거 같기도하고...]
[뭔 세뇌당했냐?]
어느덧 채팅창의 독기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방송이 켜졌을 당시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였다. 그만큼 많은 시청자가 빠져나간 까닭이다.
반복되는 노래를 참아내며 남은 시청자들은 굳이 지나간 불씨를 다시 키우지않았다. 분탕을 목적으로 방송을 보는 시청자는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채팅창이 조금 가라앉았다. 이걸로 노르드의 방송도 잔잔한 음악 방송에 한걸음 가까워졌을까.
그녀가 그걸 의도한 건지는 의문이었다.
시간이 더 흘렀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노르드의 목소리가 이제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직까지 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다양했다. 오기로 남아있는 시청자부터, 아예 이 상황을 즐기는 시청자까지.
그러나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공통적으로 바라는 건 이 다음에 이어질 방송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한 시간이 넘게 같은 노래만 반복 재생한 스트리머가, 다음엔 뭘 할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음악만 듣는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들도 채팅창과 함께 노래만 듣는 것에 점차 친숙해지는 과정에 있었다. 이대로 다른 노래로 넘어가면 자연스레 음악 방송으로 전환되지 않을까 하는, 누군가의 바람이 갈수록 간절해지는 시점이었다.
노르드는 그대로 방송을 종료했다.
아무런 전조도 없는 방종에 반응하지 못한 채팅창에서, 몇몇 시청자가 습관처럼 적어둔 '어느날'의 다음 가사가 노래를 대신해 공허한 정적을 메꿨다.
아주 잠시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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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고:진짜 심장떨어질뻔했네
칼고:술 그렇게 쳐마시고 방송키는 인간이 어딨어
칼고:ㅡㅡ; 조심 좀 합시다
Nord:ㅡㅠㅡ
Nord:그렇게 호들갑떨거 아니었는데
Nord:어차피 말 안 했을 거예요.
칼고:내가 전과범 말을 어떻게믿어
칼고:말하면 이악물고 소원권 코스프레 야방 밀어붙인다
칼고:조심하세요
N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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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망e:혜진씨!!! 노래 정말정말 잘들었어용
쪼망e:노래방때 안듣고계신줄알았는뎅 ㅠㅠㅠㅠㅠ 저 어제 방송보고 감동했어욥!!!
쪼망e:근데 혹시 그렇게 오래 반복해서 들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Nord:노래가 좋더라구요.
Nord:쪼망님이랑 똑같이 불러서ㅎ 쪼망님 생각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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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망e:나중ㅇ에 꼮 노래ㅔ방같이가서 불러요
쪼망e:아니다 이번주에 바로 가실래요? 가능한 날있으면 말해주세요!!
N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