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126 새로운 걸 보면 눈이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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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노래="" 좋아...=""/>
이런 잔잔한 노래 취향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센세가 흥얼거리는 클립 계속 들으니까 좋아졌어...ㅎㅎ 이제 방송만 키면 완벽한데, 왜 방송이 안켜질까?
오늘도 안키고 내일도 안키고 글피도 안키고...
어느날 가사가 계속 머리에 맴돌아...
DefoSSS:그걸 따로 듣고있다고? 난 방송보고 좆같아서 원곡자 차단까지 해놨는데
Atarx14:노래가 잔잔해서 잘때 틀어두면 좋아. 엘튜브에 누가 센세 흥얼거리는 부분만 떼서 영상 올려놨드라고... 재생시간도 길어.
DefoSSS:아니 좆같아서 안듣는다고;; 뭔 권유를 하고 있냐. 진짜 세뇌당함?
화살한방울:가사들으면 거의 마지막방송임
<게시판에 불타는="" 애들="" 왜케="" 많아졌냐=""/>
요근래 종겜 꾸준히 달려서 그런가? 이 인간 공지도 없이 휴방하는거 하루이틀도 아니고; 어차피 나이트폴 확장팩 나오니까 그때 복귀해서 길게 방송할거 아니야. 하루종일 게시판 불태우고 있어봤자 뭐라 반응할 사람도 아닌데 왜 난리임
stook94:그냥 휴방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렇지ㅋㅋ 그날 방송 보긴했음? 해명도 제대로 안하고 좆같은 돌림노래만 듣다가 방종했으니까 불타는거지. 그러고 다음날 방송 킨것도 아니고, 벌써 삼일째 휴방하고 있음ㅋㅋ 이게 노르드가 기름부은거지 뭐임?
아이도:해명? 뭔 해명. 누구랑 같이 술마셨는지 안알려준거? 애초에 남친하고 술마셨다는 좆같은 떡밥도 지들이 굴렸으면서 왜 방장보고 해명을 하라는건데ㅋㅋ
뭐 같이 술마신 친구 신상이라도 까야되냐? 막말로 그게 진짜 남친이든 뭐든 뭔상관이야. 그거에 불타는 거 자체가 과몰입 육수새끼인거 증명하는거지 애초에.
감나라배나라:요즘 게시판에 흑화 육수가 절반임. 휴방은 구실이고 그때 전화온게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는거지 뭐... 시청자 많을 때 잘 안보이다가 뭐 하나 터지니까 기어나오는게 역겹긴해
mazeR:아닌데? 그냥 방송안키는 방장문제인데? 방송 조금만 켰어도 다 정리됐음. 중계글로 게시판 가득찼을 거 뻔한데ㅋㅋ
<오늘 방장="" 방송킨다="" yes="" or="" no?=""/>
나는 무조건 yes임 ㅇㅇ
왜? 지금까지의 휴방은 나이트폴 확장팩을 위한 빌드업이었으니까. 증거는 딱히 없음. 사실 그냥 내 바램임. 만약에 오늘도 방송 안키면 열받아서 죽어버릴것 같아서 ㅇㅇ 내가 안죽을라면 노르드가 방송 켜야댐.
서윗각설:이새끼 머리가 많이 단단하네
나랑달:no. 절대 안킬듯. 이유는 니가 이런 글 올려서. 방장 성격상 이런거 읽으면 절대 방송안킬듯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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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ㅅㅂ="" 방송켜짐=""/>
성전 출시직후 낮방송on ㅋㅋㅋㅋㅋㅋ
노르드발닦개:이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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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십자가가 새겨진 깃발이 바람에 따라 휘날렸다.
새하얀 순백 바탕의 깃발이었다. 깃발 한 가운데에 정교하게 새겨진 십자 문양은 얼핏 보면 붉은 꽃이 피어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로 세로 일정한 비율을 가지고, 끝이 살짝 갈라져 있는 모습이 꽃잎을 연상시킨 까닭이다.
거센 바람에 붉은 꽃잎이 사정 없이 휘날렸다. 마르고 투명한 푸른 하늘에도 바람은 거세게 불어닥쳤다. 세찬 바람이 세상을 쓸어넘기는 소리가 점차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럼에도, 깃발을 들고 발을 내딛는 기사는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쿵 쿵 쿵
내딛는 발걸음이 땅을 울렸다.
몸소 바람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깃발과는 달리, 기사의 발걸음은 더 없이 묵직했다. 온몸을 감싼 갑옷이 기사의 다리에 무게를 더했다. 바람에 따라 갑옷 위에 덧대 입은 흰색 코트의 끝자락이 조금씩 흔들릴 뿐이었다.
청명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은색 투구 위로 여과되지 않은 맑은 빛이 그대로 떨어져내렸다. 기사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투구에 반사된 빛이 사방으로 산란했다. 마치 머리를 중심으로 광휘를 두른 것 같았다.
코트의 가슴부에는, 깃발 문양과 같은 형태의 붉은색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다.
마르고 갈라진 황폐한 땅을 걷던 기사가 걸음을 멈춘 건 능선 하나를 넘어간 시점이었다. 시야를 틀어막던 방해물이 없어졌기 때문일까. 고개를 들어올린 기사의 시야에 넓게 펼쳐진 황야의 지평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메마른 땅이었다. 번개가 훑고 지나간 듯, 생기가 없는 땅은 곳곳에 거친 선을 그리며 갈라져 있었다. 땅을 뒤흔들고 박살낼 정도의 커다란 지진이 몇 번이나 지나간 것 같은 모양새였다.
땅 위 드문드문 존재하는 비틀어진 선인장을 제외하면, 생명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생기 하나 없는 황야는 그 자리에 고독하게 존재했다.
그 거칠고 말라붙은 땅 너머 지평선 위로 하얀색 선 하나가 덧씌우듯 희미한 형체를 내비쳤다. 길이가 꽤나 길었다. 지평선 전체를 덮어버리지는 못할지언정, 투구에 가려진 기사의 시야는 가득 채울 정도는 되는 정도의 길이.
그건 도시였다. 흰색 벽돌로 외벽을 쌓아올린, 순백의 선으로 둘러쳐진 거대한 도시.
성지다.
기사는 들고 있던 깃발을 다시금 고쳐 잡았다. 붉은 꽃잎과 닮은 십자가는 여전히 힘차게 펄럭거렸다.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지평선 너머의 성지를 향해서.
성기사는 다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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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폴(Knight fall): 성전(Crusade)'
화면을 가득 채운 타이틀이 무슨 빛을 반사하듯 번쩍거렸다. 모니터를 가득 채운 글자에서 철과 흡사한 단단한 질감이 느껴졌다. 미세한 흠집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하고 결벽한 모습의 강철. 매번 어딘가 피 얼룩 하나씩은 묻히고 다니는 평소의 타이틀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 작은 디테일 하나에 이번 확장팩의 특징이 조금은 묻어나오는 것 같아서, 혜진은 살며시 웃음을 흘렸다.
[노스킵충 씹극혐]
[원래 오프닝 영상은 봐주는게 국룰이지]
[십자군 뽕차오른다... 이교도 뿌셔 성지 뿌셔ㅠㅠㅠ]
[침략자들 미화 좆대는 확장팩 ㄹㅇ]
[간지나면 됐지 뭔지,랄이야]
[뭐야 방송 언제켰는데!!!]
[장기휴방동안 남친 얼마나 만나고왔냐ㅋ]
[오셨군요 ]
점심시간이었다. 주말이 아닌 평일의 점심시간. 며칠 간 휴방을 마치고 방송을 켜기에는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방송 시간이 제멋대로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빈도를 따졌을 때 이 시간대의 방송은 굉장히 드문 편에 속했다. 갑작스런 오후의 방송은 신규 확장팩 출시라는 대형 이벤트와 맞물려 채팅창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길어진 휴방에 대해 분노를 표하는 채팅과 예상하지 못한 방송에 기쁨을 표하는 채팅이 함께 어우러졌다. 다른 곳에서 방송을 보다 왔는지, 새로운 확장팩에 대한 정보를 푸는 채팅도 적지 않았다. 이제 막 오프닝 영상을 봤음에도 느린 진행에 열변을 토하는 훈수까지 채팅창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까,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는 소리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네요."
오늘 노르드의 첫 번째 멘트였다. 별다른 대기 시간도 없이, 오프닝 영상과 동시에 방송을 시작한 그녀였다. 알람이 울리자마자 방송에 들어온 사람들도 곧장 성전의 오프닝 영상부터 관람해야 했다.
뛰어난 그래픽을 보며 빠져들긴 했으나, 어리둥절함을 표할 만도 했다. 아무튼 며칠 간의 휴방 이후에 켜진 방송이다. 그간의 공백을 떠올리는 시청자가 적지 않은 것도 당연하리라.
방송 화면은 어느새 나이트폴의 메인 화면으로 넘어갔다. 확장팩 출시와 함께 배경이 뒤바뀐 모습이었다. 노르드의 상징이 되어버린 광전사가, 거대한 십자 문양을 뒤로 하고 서 있는 광경은 꽤나 이질적이었다.
메인 화면 이곳저곳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던 노르드가 돌연 손을 멈췄다. 뭔가 허전한을 느낀 걸까. 곧바로 축소된 채팅창이 방송 화면 좌측 하단부에 자리잡았다.
그러고는 채팅을 읽는 모습이, 시청자와 소통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아, 아. 낮시간인데 많이 오셨네요. 예? 아니, 백수라고 하는 건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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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아직. 괜찮아요. 게임은 공복에 더 잘 되니까.
아... 저녁 때 킬까 했는데, 못 참아서요. 나이트폴 방송하는 사람도 너무 많아서.
방송은 당분간 길게 하지 않을까요. 길게 쉬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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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로 채팅창을 읽냐... 저 채팅 매번 읽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뭔 개소리야, 씨발'... 음, 너무 과격하게 채팅 치면 자동으로 차단됩니다. 이거 금지어 설정이라는 시스템이 있더라구요. 심심해서 몇 개 넣어봤어요.
채팅으로 빌드 컨셉 몇 개만 추천 받고 시작하려구요. 아, 아뇨. 컨셉만 받고 제가 처음부터 만들 거예요.
후원? 아, 맞다. 후원 알람 꺼놨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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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켰습니다. 성기사요? 음."
새로운 맵이나 게임 모드 따위가 추가되었는지, 못보던 인터페이스가 이곳저곳에서 번쩍거렸다. 대규모 확장팩이라 자부했던 것답게 뭔가 늘어난 컨텐츠가 많은 모양이다.
뭐든 눌러보라는 듯 존재감을 발하는 버튼들을 보면, 게임에 질리도록 파묻힌 고인물이라도 잠깐이나마 과거 초보자 시절의 설렘을 느낄 법했다.
그러나 노르드의 관심사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빌드창부터 실행했다. 신규 모드나 새로운 경쟁전 시즌 따위를 고려하기 이전, 가장 중요한 건 빌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우스가 새롭게 추가된 특성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파란색 테두리로 감싸인 신규 특성들이 하나 둘 상세한 정보를 밝혀갔다. 확장팩 출시 이전, 몇몇 특성이 사전에 공개되기는 했으나 그렇지 않은 특성들이 훨씬 더 많았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처음 보는 생소한 특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노르드는 곧장 특성 옆 작은 '+' 기호를 클릭했다. 빌드창에서 특성을 클릭해 세부 정보를 누르면, 상세한 부가 설명이 덧붙여진 기다란 텍스트가 튀어나온다. 나이트폴을 어느정도 플레이한 유저라면 한번쯤은 겪어봤을 화면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대부분의 유저들에게 매우 지루하게 다가오는 광경이기도 했는데 빌드 하나를 만들기 위해 그 기다란 텍스트를 모두 읽으며 분석하는 것은 당연히 지겹기 짝이 없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이 귀찮음을 피해가고자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진 빌드를 조금씩 수정해서 사용하는 게 아닌가.
하물며 그걸 방송에서 보고 싶어 할 사람이 있을지는... 굳이 누군가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다른 스트리머들이 신규 추가된 컨텐츠를 직접 즐기고 있을 때, 골방에서 빌드 설명이나 읽고 있는 꼴이었다.
노르드가 특성을 세세히 읽어가는 모습을 보고 불안함을 느꼈을까. 급격히 멘트가 줄어든 노르드에게로 후원 하나가 날아왔다.
<ㅇㅇ 님이="" 1,000원="" 후원!=""/>
설마 내내 빌드만 깎을라고 방송 일찍 킨거 아니지...? 갱생 노르드가 아니라 역시 노르드였던 거 아니지...?
울먹이는 후원 음성에, 시청자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것 같았다.
노르드는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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