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144 노르드, 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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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벅:횐님들 혹시 영도키셨으면 조심하십셔
스벅:개막전 클립 겁나 날아옵니다
스벅:저만큼 연기 잘하는거 아니면 큰일날수도;;
dallon:?? 이미 망한거아니에요? 보자마자 노르드님이라고 외쳤을거같은데
스벅:ㅈㄹ 내가 똘주로보이냐?
돌돌주주:머래
dallon:니는 뭔데 빨리 반응하냐
돌쇠야:예
스벅:떠보는 시청자 겁나많아요. 저도 이정돈데 합방 자주한 칼고님이나 쪼망이는 훨씬 더할듯ㅋㅋ;
쪼망e:저랑 칼고님 둘다 영도 비활성화라 괜찮아욥!
스벅:일반 도네로 살살 긁을수도있음 유도심문 장난아니에요 시청자들
스벅:칼고님 일요일 방송이 대박이었는데 진짜
스벅:영도 안킨 사람들도 당분간 조심해야할듯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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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d: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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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 사이에 이렇게나 길게 정적이 깔리는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혜민은 턱끝까지 차오른 불만을 내색하지 않고 집어삼켰다. 벌써 2교시 째다. 반에서 그녀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친구는, 아침을 잘못 먹었는지 오늘따라 유난히 이상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서는 혜민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한다. 먼저 입을 여는 일은 없고, 혜민이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다.
그러고서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는 것이 장난기가 가득했다. 종종 나오는 눈빛이다. 남몰래 뭔가 짖궂은 장난을 시도하고는, 제발 알아봐달라는 듯 기대감에 잔뜩 차서 바라보는. 유정과 상반된 성격을 가진 혜민으로써는 감당하기 힘든 눈빛이었다.
펼쳐둔 책을 읽어보려 해도 노골적인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이지를 촘촘하게 채운 활자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쉬는시간이라 교실 전체가 떠들썩하게 시끄러운데도, 웅성거림보다 유정이 보내오는 시선이 훨씬 거슬렸다.
더 이상 참기 힘들 정도로.
"유정아."
"..."
"당장 고개 안 돌리면 눈을 찌를거야. 하나, 둘"
덜컥
"아니아니아니, 미안. 진짜 찌를 거 같아."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어두었던 유정이 곧장 자세를 바로잡았다. 눈을 내리깔고 의자를 돌려앉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대화할 마음이 생긴 것 같았다. 이럴 줄알았으면 처음부터 눈을 터뜨린다고 했을 텐데. 한숨을 내쉰 혜민은 조용히 책을 덮었다.
"그래서, 왜 그러는데?"
혜민이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잠깐 정상적인 차분함을 되찾았던 유정이 다시 입꼬리를 올리고는 실실대며 웃었다.
매번 유정이 반 친구들에게 장난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었는데, 직접 당해보니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혜민의 참을성이 조금이라도 부족했으면 당장 손이 나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야, 야. 얼굴 좀 펴라. 장난을 못 치겠어, 진짜. 혜민쓰 얼굴 보면 나 뺨이라도 맞을 거 같잖아."
"다음은 안 참아."
"...농담이 아니네?"
혜민의 선은 언제나 뚜렷했다. 넘어오는 사람에게 가차없는 철퇴를 날리는 것도 그랬다. 한 학기가 지났는데도 아직 반에서 혜민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많은 건 그 때문이었다.
눈치가 빠른 유정은 평소 그 선을 절대 넘어서지 않는 사람이었다. 해도 되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명확히 구분했다. 장난기가 가득한데도 그게 혜민을 향할 때는 거의 없었다. 그녀가 장난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으니까. 아마, 그런 점 때문에 유정과 혜민이 가까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혜민을 건드는 데에도 이유가 있겠지.
사실...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더 예민해지고 있는 것이다.
혜민의 표정이 굳은 탓일까. 아침부터 생기가 넘치던 유정도 더는 장난을 이어가지 않았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더니, 혜민 쪽으로 고개를 가까이 기울였다. 창가와 가까운 자리라 그런지 햇빛이 그대로 유정의 얼굴에 드리웠다. 유정은 그걸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속삭였다. 바로 앞에 앉은 혜민도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였다.
"너네 언니, 저스틴에서 방송하고 있지?"
소문이란, 어디서 시작되어 어떤 경로로 퍼져나가는지.
혜민의 커진 눈동자에 웃고 있는 유정의 얼굴이 투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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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잉
'혜민'.
액정에 표시된 이름을 확인하고 화면을 종료했다. 굳이 읽지 않아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금 답장을 늦춰도 되지 않을까. 지금은 어지러운 정신머리를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종종 숨길 수 없는 사실들이 있다.
소문이라는 건 퍼져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한 번 물꼬가 트인 이상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넘쳐흐르는 물결을 두 손으로 막으려 해봤자 무의미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는다. 흘러가는 와중에 돌과 흙이 섞여드는 것도 그랬다. 사람은 생각보다 무기력한 것이다.
조금 잔인할지 몰라도, 애초부터 소문이 퍼질 계기를 만든 게 문제였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지 않나. 결벽증이라도 있는 것처럼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고 신중을 기했다면...
아니지.
이런 후회는 대체로 부질없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예방할 수 있는 일에도 정도라는 게 있는데, 어떻게 모든 문제를 사전에 틀어막을 수 있겠냐고. 소모적인 자책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여기선 차라리 운명론을 가져오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가득한 비밀은, 아무리 잘 숨겨도 결국 누군가에 의해 밝혀지지 않나. 조금 우습게 느껴지지만 내 얼굴이 그런 비밀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궁금해하는 사람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던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일이 이렇게 커질 일도 없었겠지.
대충 말리고 나온 머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을 풀어 머리카락을 쥐어짜듯 털어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서 그런지, 머리가 조금 멍했다.
반쯤 넋이 나간 머리에 지난 칼고의 방송이 떠올랐다.
주말 저녁 칼고의 방송은 주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고서도 시청자가 차고 넘쳤다.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비밀을 밝혀야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무리들 속에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처신하겠는가.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는 모습을 보면 죄책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플랫폼 대전 뒤풀이에 참가한 스트리머들은 대개 비슷한 일을 겪고 있을게 뻔했다. 모두 내 얼굴을 알고 있으니까. 호기심 가득한 무리가 가만히 지나칠 리가 없는 것이다.
이미 반쯤 베일이 벗겨진 비밀을 숨기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불편한 거짓말을 반복해야 한다면.
그냥 밝혀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그게 뭐 별거라고.
모니터 위에 대충 설치한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쌓였다. 기왕 사는 거 괜찮은 걸 사야겠다고, 성능을 조금씩 올리는 바람에 제법 비싸게 구매한 물건이다. 덕분에 화질이 꽤나 선명했지. 손캠을 위해 구입하고는 지금까지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나, 아마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애물단지의 먼지를 닦아낼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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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켜지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창을 열고 밖을 보면, 아직 세상이 밝은 시점이다. 남들보다 끼니를 일찍 해결하는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이제 막 시작할 시간. 노르드의 방송은 그때 켜졌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간의 휴방을 거친 다음이다. 주말 사이 크게 과열된 게시판 때문일까. 오늘 방송에는 평소 올리던 공지도 없었다. 정각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그녀의 방송 시작을 알리는 건 늦게 반응하는 알람뿐이었다.
알람에 따라붙는 방송 제목과 설명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나이트폴이라는 단순한 제목. 알람을 보자마자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한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운 제목이다.
해명까지는 아니어도, 뜨거운 이슈와 관련된 키워드가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르드라면 무슨 의혹이 터지든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직도 유효했다. 어쩌면, 오늘도 별다른 말없이 게임만 하다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고.
절대 그러지 못하게 해주겠다며, 알람을 클릭한다.
아직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검은 화면의 방송에선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곧장 노르드의 방송에 들어서기 시작한 시청자들은 저마다 다른 마음을 품고 기다렸다. 특별한 공지 없이도 시청자는 빠르게 차올랐다. 알람을 듣고 반응한 시청자들이 게시판,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며 확성기 역할을 수행했다.
관련 커뮤니티는 물론이요, 저컴 게시판까지 점령했던 화제가 아직 뜨겁게 굴러가고 있는 참이다. 시청자가 어느정도 들어선 시점부터 직관녀, V녀 따위의 관련된 단어가 채팅창을 가득 채웠다. 거기에 평소 노르드가 방송을 키면 올라오던 인사말과 이모티콘이 섞여들면서, 노르드의 채팅창은 벌써부터 혼돈 상태로 치닫았다.
부욱, 하는 작은 소음과 함께 마이크가 켜진 건 그때였다.
"오늘 방송은 짧게 합니다."
방송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저랬다.
그 짧은 사이에 모여든 시청자가 만 명을 넘어섰다. 관리자도 없는 채팅창이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불타올랐다. 미동도 없는 검은 화면과 역동적인 채팅창이 대조적이다. 과도한 입력이 반복된 채팅창은 기어코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진정들 하세요. 호기심은 풀어줄 테니까. 렉이 좀 심하니까 슬로우 모드부터 키고... 한 60초 해야 되나."
속삭이는 듯 말하는 미성이 평소보다 가라앉은 것 같았다.
딸깍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채팅창 올라가는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제야 도배 채팅 사이사이로 간결한 채팅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나 둘, 제 호기심을 털어놓는 시청자가 늘어났다.
딸깍, 딸깍
고요한 방송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울렸다. 몇 번의 클릭으로 화면이 뒤바뀌고, 모니터에는 방송 설정창과 채팅창이 함께 나타났다. 천천히 움직인 마우스 커서가 채팅 몇 개를 긁어내렸다.
"너무 대답할 게 많아요."
애매한 멘트에 집요한 채팅이 이어졌다. 모여든 사람이 많은 만큼 의견이 갈리는 분위기였다.
그때 마우스 커서가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되지 ㅈㄹ하네ㅋㅋ'라는 채팅을 정확히 포착했다. 정지된 채팅창에서 드래그된 문장 하나가 유독 도드라졌다. 웃음을 형상화한 자음이 무수히 올라온다.
"그렇지.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되는데."
다시, 딸깍거리는 마우스 소리.
방송 설정을 건드는 것 같았다. 채팅창을 송출하던 화면이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이리저리 뒤바뀐다. 노르드의 방송을 봤던 시청자들에겐 익숙한 화면이 여럿 스쳐 지나갔다. 평소 방송 준비 화면으로 사용되던 대기 화면들이었다.
이내, 화면이 다시 검게 물든다.
엉성해 보이는 방송 설정에 채팅창에선 다시 난리가 났다. 채팅창에 모여든 시청자들을 관중이라 생각하면 여기저기서 음료나 음식물을 던지고 있는 것 같았다. 노르드는 별다른 변명도 없이 재차 마우스를 움직였다.
다시 클릭 몇 번이 이어진 후.
검은 화면이 반전했다.
뒤바뀐 방송 화면을 가득 채운 건, 흐릿한 빛이 내리쬐는 실내 공간이었다. 해가 지지 않은 이른 저녁. 형광등 하나로 비춰내는 방 안은 바깥보다 어두웠다.
그 중심에서, 혜진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확대된 캠 화면이다. 별다른 조명이 없는데도 창백한 피부는 여전히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얼굴이 송출되고 있는 상황이 어색하게 느껴졌을까. 반개한 눈동자가 초점을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살짝 내리깐 눈꺼풀을 따라 기다란 속눈썹이 움직였다.
날렵한 콧대를 타고 내려오면, 옅은 붉은색의 입술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처럼 우물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어를 고르고 있는 건지. 뭔가를 입 안에서 계속 되뇌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에는 아직 물기가 남아있다. 가는 손가락을 타고 넘어가는 검은 머리칼이 촉촉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머리를 쓸어넘기자, 하얗고 섬세한 목선이 드러났다. 머리를 모두 넘긴 왼손이 가느다란 목선에 내려앉는다. 동시에 손등을 덮고 있던 검은색 긴팔티셔츠의 소매가 손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드러난 손목도, 혜진의 목처럼 희고 가늘었다.
"이거 좀 창피하네..."
잠깐의 정적 속에서, 입술을 우물거리던 혜진이 끝내 한마디를 내뱉고.
과부하가 걸린 채팅창에 의해 방송이 잠시 정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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