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145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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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은 마른 세수를 반복했다.
계속 흘러내리는 게 불편했는지 기다란 소매를 걷어올린 상태였다. 하얀 손이 작은 얼굴을 가릴 때마다, 마치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채팅창이 출렁거렸다.
당장 얼굴을 드러내라는 신호다.
얼굴을 몇 번 쓸어내리고 뒤늦게 반응을 확인한 그녀가 키보드 위로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시선은 여전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방황하는 중이었다.
"채팅... 채팅 좀 치지 말아봐요."
먹힐 리가 없는 말이다.
안 하느니만 못했다. 혜진이 뱉은 말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슬로우 시간을 120초로 늘리면서 조금은 진정됐던 채팅창이 재차 발작을 일으키며 폭주했다. 분명 팔로우 제한도 걸었던 것 같은데. 순간 아찔함을 느낀듯 혜진이 눈을 감았다.
평소 노르드가 방송을 할 때도 이랬을까. 멘트 사이로 드러나지 않았던 공백이 표정과 몸짓으로 생중계되는 순간이다. 이전엔 절대 찾아볼 수 없던 부끄러움에 격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새삼스레 내용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성한 문장 하나 찾아보기 힘든 채팅창을 보며, 혜진은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얼굴을 보고 쏟아내는 직접적인 문장들. 내용보다는 상황 자체가 문제였다. 평소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이쯤 되면 생각하는 것이다. 캠방이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맨날 얼굴을 까고 방송을 한다는 건, 대체 무슨 멘탈을 가진 건지.
"...물 좀 떠올게요."
누가봐도, 도피성 가득한 발언이었다.
보기 싫은 걸 외면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린 혜진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니터에 고정된 카메라가 그녀의 상반신을 포착했다. 검은 긴팔티가 화면의 중심을 가로막았다. 색채의 대비 때문인지 왼쪽 흉부를 장식한 흰색 소용돌이 문양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혜진이 입은 긴팔티는 소매를 걷어올리지 않으면 손등 절반을 덮을 정도로 길었다. 일어선 혜진의 골반까지 가리는 것이, 적어도 두 치수는 커 보였다. 통이 넓은 박스 티. 상반신 전부를 감싸는 옷 때문에 몸의 굴곡은 거의 가려졌다. 혜진이 컵을 들어올리기 위해 팔을 뻗었을 때, 가느다란 팔의 윤곽이 조금 드러날 뿐이었다.
일부 시청자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주인이 자리를 비웠음에도 방송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혜진이 일어선 자리로 방의 풍경이 온전히 드러났다. 대체로 살풍경한 모습이다. 천장에서 방 안을 비추는 형광등도 수명을 다했는지 흐릿해서, 곳곳에 음영이 진 실내는 쓸쓸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가구라고 있는 건 침대 뿐이다. 혜진이 앉아있던 자리 뒤쪽에 자리잡은 싱글 사이즈의 침대에는 감색의 이불이 개켜져 있었다. 곳곳에 주름이 진 것이 혜진이 사용했던 흔적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캠 설정을 어떻게 했는지, 별다른 보정도 없는 카메라는 선명한 화질로 대부분의 공간을 가감없이 투영하는 중이었다. 삭막함이 느껴지는 공간에 채팅창의 웅성거림만 더 커져갔다. 적만한 방 안의 정경과 지극히 혼란스러운 방송 채팅창이 대조적이다.
어느덧, 시청자는 이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돌아온 혜진은 연거푸 물만 들이켰다.
멘트의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든 모습이다. 본래 노르드의 방송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 정도가 심했다. 그럼에도 채팅창에는 한 줌의 불평도 나오지 않았다. 소리가 없어 비어버린 공간을 혜진의 얼굴이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을 마시기 위해 컵을 들어올리거나,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어색하게 움직이는 손.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가 말을 대신하는 방송의 컨텐츠였다.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는 채팅창이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다. 사소한 동작들이 전부 의식되는 것 같아서, 혜진은 지금 이 순간을 견디기 힘들었다.
...원래 캠방을 하는 스트리머는 이런 농밀한 집중을 견디며 방송을 진행하는 건가. 민낯을 드러낸 상태였다. 평소 방송을 하던 것처럼 채팅창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마음 같아선 가면이라도 쓰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럼 조금이나마 뻔뻔하게 나설 수 있었을 텐데.
"그, 호기심은 다 풀렸, 풀렸겠죠."
속으로 정리해둔 멘트가 떠오르지 않는다. 혼돈에 가까운 채팅창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멘트는커녕 정상적인 사고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캠을 했을 때처럼 술이라도 집어넣고 방송을 시작할 걸. 이 중압감을 감당할 바에야 방송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은데.
간략한 용건만 마치고, 빨리 방송을 종료하고 싶었다. 최소한 캠이라도 꺼야겠지.
[후원 좀 키라고@@@@@@@후원좀 키라고@@@@@@@ 후원 좀 키라고@@@@@@@]
슬로우 모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 사이로, 나 좀 봐달라는 의지를 가득 담은 듯한 채팅 하나가 혜진의 눈에 들어왔다. 살짝 심호흡을 한 혜진이 어지러운 정신을 다잡았다. 하나씩, 하나씩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 일상적인 방송처럼.
"후원은 켜두면 정리가 안 될 것 같아서. 방송 시작할 때 꺼놨어요."
당연한 선택이었다. 방송을 전광판 삼아 어그로를 끌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특히 이렇게 시청자들이 많을 때면, 후원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몇 시간을 허비하게 될 지 몰랐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소통의 수단 중 하나를 막아놨기 때문일까. 슬로우 모드로 인해 채팅창 이용에 제약을 받고, 간신히 시간을 채워 채팅을 입력하면 다른 채팅에 치이고 치여 금방 밀려나는 상황이다. 온전한 소통은 커녕 짤막한 대화도 오고 가기 힘들었다. 후원을 켜달라는 요구가 점차 늘어났다.
혜진은 시청자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인터넷 브라우저를 실행했다.
동시에 방송 화면을 가득 채웠던 캠 화면도 절반 가까이 줄여버렸다. 상상할 수 없는 폭거라도 목도한 것처럼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최대한 뻔뻔하게,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마음 속으로 몇 번인가 되뇌인 혜진이 연달아 마우스를 클릭했다. 채팅이 아닌 다른 걸 보고 있자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듯싶었다.
뭔가를 찾는 것처럼 분주히 움직이던 혜진이 들어간 곳은 자신의 저컴 게시판이었다. 인기글 항목을 쭉 훑던 그녀는, 이내 찾고 있던 걸 발견하고는 습관처럼 머리를 쓸어넘겼다. 어루만진 목덜미가 식은땀이라도 났던 것처럼 끈적거렸다.
찾았던 것은 직관 당시의 움짤이다.
방송 전부터 준비된 흐름이었다. 목적성이 명확한 캠방이지 않나. 방송을 오래 끌고갈 생각도 없었다. 방송을 켜자마자 캠을 실행하고, 직관 움짤을 가져와서 게시판을 달궜던 의혹을 단번에 종결시키는. 정말 간략한 절차였다. 얼굴이 송출된다는 부담감이 생각보다 훨씬 큰 탓에 조금 딜레이가 되기는 했으나, 혜진의 계획에는 차질이 없었다.
방송 화면이 양분되어 나타났다. 한쪽에는 움짤이 실행되는 중인 브라우저 창을 띄워놓고, 다른 한쪽은 캠 화면이 자리잡았다. 조명과 화장의 차이가 있기는 했으나 누가봐도 동일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구도였다.
혜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움짤 속 자신의 포즈를 따라했다. 왼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얼굴 근처로 들어올리는, 간단한 동작. 분명 관중석에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그걸 재연하려니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기분이다. 시청자가 지켜보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까. 귓볼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큼, 큼. 이거 저예요."
...저예요? 생각해둔 멘트는 이게 아니었는데.
채팅창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시야 모퉁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밀려올라가는 채팅창이 존재감을 내비쳤으나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았다. 무슨 내용이 올라오고 있을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혜진은 마우스를 쥐고 있던 오른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채팅창은 여전히 외면한 상태였다. 방송 설정에 들어가, 미리 저장해둔 방송 대기화면으로 화면을 전환한다. 간단한 클릭 몇 번에 화면 가득 송출되던 자신의 얼굴이 사라졌다.
송출 화면을 통해 그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혜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전신을 찌르듯 자극하던 시선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뜨거워진 머리가 조금씩 식어가는 것 같았다.
그제야 혜진이 채팅창을 확인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당장 다시 캠을 켜달라며 호소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필터를 거치지 않고 생각을 쏟아내는 것 같은데, 욕설 섞인 도배들이 인상적이었다.
이제야 채팅창이 익숙하게 다가왔다. 채팅창의 혼란스러움에 비례하여 정신이 조금씩 맑아지는 것 같았다. 몸을 짓누르던 중압감이며 부담감 따위가 깨끗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 무게감을 새삼스럽게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손캠 방송을 할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수만 명이 얼굴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병이 생길 지경이었다. 단순히 증명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확실히 안일했다.
"오늘 방송은 짧게 한다고 했잖아요. 진정하세요, 여러분."
그새 여유를 되찾았을까. 검은 화면에서 울려퍼지는 혜진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맑게 느껴졌다.
진정하란다고 진정할 시청자들이 아니다. 얼굴을 공개했다는 소식이 어디까지 퍼졌는지, 과하게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방송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뒤늦게 찾아와 혜진의 얼굴을 보지 못한 일부 시청자가 거센 반발을 토해냈다. 그러나 그 채팅도 다른 채팅에 밀려 순식간에 사라진다.
"노래 한 곡만 듣고 갈게요. 내일, 내일도 아마 방송 킬 거예요."
분개한 채팅창과 상반된, 잔잔한 발라드 음률이 흘러나오고.
이내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소란스러운 방송을 뒤덮었다.
방송 시간... 약 30분.
이제 막 달아오르던 시청자들에게는 너무나 짧은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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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게시판="" 보는거="" 맞지?=""/>
제발 오늘 영상 엘튜브에 올려줘
편집 안해도 돼. 아니 안 하는 게 더 좋아. 그냥 통째로 올려줘. 계속 돌려볼 수 있게
안 올리면 무슨 짓을 벌일지 나도 모름.
꺆뀨륚띠:동의합니다.
나랑달:지금 다시보기 남아있으니까 녹화라도 떠놔라. 방장 성격에 지울 거 같진 않은데.... 캠방이면 혹시 모르니까. 아니면 쪽지로 메일 보내놔. 녹화뜬거 보내드림.
노르드발닦개:헉 바로 쪽지보냈음. 너무 고맙다
antlr98:저도 받을 수 있나요?
화살한방울:나도
나랑달:그만; 니들이 녹화떠 병신들아
냥냥코로:?
<너무이뻤다/>
조명도 없고 얼굴 화장기도 옅고.. 심지어 캠은 보정도 없는 고화질 캠이던데 왜케 이쁨
직관짤이 엄청 잘나온줄 알았는데 그냥 사람 자체가 그렇구나.
smatafuc:표정변화 별로 없는게 젤 신기했음. 가만히 보면 어색해하는거 눈에 보이는데 얼굴은 그대로고ㅋㅋ
저수지낚시하는노르드:근데 진짜 저렇게 얼공해서 증명할줄은 몰랐다.
<서버 몇번="" 터지냐ㅅㅂ=""/>
씨발 생방때부터 게시판 존나터지네 벌써 몇 번째야
센세 움짤 저장했으면 알아서 게시판 닫고 나가 이씹새들아
검방커신:내가왜? 새로운 짤 나오는거 대기타야되는데ㅋ
네네키미:참았다가 내일 한번에 확인해라. 나는 급하니까 못나간다
<결국 직관같이간="" 사람은="" 누구임=""/>
방장 레전드짤 같이 잡힌 여성분은 누구임?
방송에서 언급도 안한거같은데. 오늘 방송 세번정도 돌려봄
서윗각설:생긴거보면 동생이겠지 뭐... 동생한테 피해갈까봐 말 안한거지. 눈치있으면 걍 닥치고 있으셈
motaor11:유전자 좆사기긴해 짤보면
<노르드 절대="" 아니라고하던="" 새기들="" 다="" 어디="" 숨었냐=""/>
이악물고 아니라면서 은근슬쩍 비꼬던 새끼들 다 어디갔는지 안보이네 ㅋㅋ 지들 본진으로 돌아갔나
근데 방송진짜 너무 짧다.... 가만히 얼굴만 보고 있어도 ㅈㄴ 재밌었는데 진짜
DefoSSS:존나짧음. 시청자 그렇게 많은데 매정하게 가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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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떠오러가는 갤주님=""> [236]
<머리넘기는 노르드="" ㅜㅑ=""> [154]
<직관 재연짤.jpg="">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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