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7화 〉 147 ­ 준다는데 왜 그래 (147/243)

〈 147화 〉 147 ­ 준다는데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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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님이="" 10,000원="" 후원!=""/>

­캠화면좀 키워주세요

<ㅇㅇ 님이="" 1,000원="" 후원!=""/>

­얼굴

­게임보러온거 아니라고

<왜안보여줘 님이="" 1,000원="" 후원!=""/>

­왜얼굴안보여줘왜얼굴안보여줘왜얼굴안보여줘왜얼굴안보여줘왜얼굴안보여줘왜얼굴안보여줘

<노스텔 님이="" 100,000원="" 후원!=""/>

­리액션으로 캠 확대좀 부탁드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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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기능을 켜자마자 일어난 일이다.

후원 내용을 읽어주는 TTS는 한 번에 하나의 문장을 읽을 뿐이다. 시청자의 후원이 동시에 여러 개가 들어온 경우, 받은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문구를 읽어나갔다. 그게 방송 진행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데, 아무리 많은 시청자가 후원을 보낸다고 한들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장이 아무리 길어도 10초 내외면 후원 하나가 지나갔다. 채팅처럼 모든 시청자가 내용을 입력하는 게 아닌 이상, 시간이 지나면 후원이 그치는 공백이 생겨나는 것이다.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은 그 여백을 사용해 후원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그건 노르드의 방송도 다르지 않았다. 채팅을 선택적으로 읽는 것으로 유명한 스트리머였으나, 그녀도 후원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게임에 집중하고 있을 때가 아니면 곧바로 감사의 인사가 돌아왔다.

별다른 리액션은 없었다. 후원 금액이 크면 감사하다는 말이 몇 번인가 더 추가될 뿐이었다. 때문에 그간 노르드의 방송에서 후원에 의해 방송 진행에 차질이 생겼던 적은 없었다. 후원이 잠시 몰린다고 해도 금방 소화가 됐으니까.

지금은 달랐다.

"네, 네. 확대해드렸습니다. 어... 도네가 밀렸네요."

[뭘 확대한거임?]

[십만원에 1미리 ㄷㄷ 누가 돈좀쏴라]

[와 돈이 복사가 되네]

[캠키워!!!!!!]

말 그대로 후원이 쏟아졌다.

어눌한 말투로 단어 하나하나를 씹어먹듯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지나가면, 곧장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효과음으로 더해진 짤랑거리는 소리는 이미 식상할 지경이었다. 음성의 종류는 어찌나 많은지, 혜진이 방송을 시작하고 몇 달간 들어본 적도 없는 목소리도 종종 들려왔다.

그게 십 분이 넘게 지속되고 있었다.

<섬동네개새 님이="" 1,000원="" 후원!=""/>

­병신들ㅋㅋ 나는 이미 확대해서 얼굴만 보고 있는데 ㅋㅋ

이건 또 몇 분전의 도네이션인가.

얼굴을 공개했을 때 후원을 켜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캠 화면을 작게 축소한 탓일까. 혜진은 연달아 후원이 쏟아지는 이유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가 볼 수 있는 후원 목록에는 이미 스크롤바가 생긴지 오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목록이 길어지는 중이다.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면서도, 정신이 분산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이대로는 후원 문구만 읽다가 방송이 끝나겠는데.

혜진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화면에 출력되는 숫자들은 현실감이 없었다. 당장 눈앞에 만 원짜리 지폐를 가져와 내미는 것과 마찬가지일 텐데. 대체 뭘 했다고 후원이 들어오고 있다는 말인가. 자신은 지금 화면 귀퉁이에 작은 캠을 띄워두고 있을 뿐이었다.

캠 화면을 크게 키워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시청자들에겐 별 것 아니겠지만, 혜진에게는 승낙하기 어려운 부탁이었다. 방송을 제대로 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니까. 지금 화면을 확대해버리면 어제처럼 어버버대다가 방송을 종료할 게 뻔했다. 그게 그렇게 빨리 극복이 될 리도 없고.

...그러나 큰 후원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여기까지. 여기가 제 한계에요. 진짜 더 이상은 안 바꿀 겁니다."

혜진이 방송 화면을 보고는 읊조렸다. 화면 귀퉁이에 티끌만한 모습으로 박혀있던 제 얼굴이, 이제는 알아볼 수 있는 수준으로 확대됐다. 그녀의 기억에 있는 칼고의 방송 설정보다 살짝 작은 수준이었다. 나이트폴로 치면 미니맵을 거의 가릴 정도일까.

목덜미에서 쇄골, 양쪽 어깨로 이어지는 부근이 따갑게 간질거렸다. 누군가 작은 바늘로 콕콕 찌르고 있는 감각이다. 크기를 얼마나 키웠다고 즉각적인 반향이 찾아오는지. 혜진은 목 언저리를 왼손으로 주물렀다.

채팅창은 만족을 못하고 불타올랐다. 방송 화면 속 혜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고개를 살짝 돌린 상태였는데, 아마 채팅창이 위치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한동안 그쪽을 바라보던 혜진은 곧장 고개를 돌리곤 컵을 들어올렸다. 광택이 나지 않는 남색 머그컵이 그녀의 입가에 닿았다.

당장에 게임을 하든가 해야지. 캠방에 대한 경이로움이 점차 커져가는 기분이다.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띄워놓고, 몇 시간씩 방송을 한다고? 그럴수가.

자신의 얼굴로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여전히 고역이었다.

혜진은 곧장 나이트폴을 실행했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돌릴 무언가가 필요했다. 더 극적이고 화려한 화면을 보여주면 자연스레 그쪽으로 시선이 돌아가겠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캠 화면이 아니라.

피부 안쪽에서 느껴지는 따가움이 그녀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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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 춤을 춘다.

흔히 할 수 있는 감상이 아니었다. 이건 나이트폴의 자유로운 관전자 시점이 아니라, 불편하고 제한적인 일인칭 개인화면이었으니까. 조작에 따라 화면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면 시야 중심에 떠오르는 건 적의 형상 뿐이다. 휘두르고 있는 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따위는 신경 쓰기 힘들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모니터를 가득 채운 화면에서 백색 검광이 비산했다. 연달아 검을 휘두르는 유려한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성당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찬란한 빛무리가 검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반사각을 바꾼 검이 궤적을 틀어 움직일 때마다, 지나간 빛 너머로 붉은색 피가 흘렀다.

시야의 전환이 더 없이 역동적이다. 어떻게 움직이는 건지 한순간에 정면이 뒤바뀌기 일쑤였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마주한 적의 형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적이 달려들듯 움직이는 순간, 검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금새 시야가 돌아간다.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단말마가 달려들었던 적의 운명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줄 뿐이었다.

보이는 건 검 밖에 없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적의 형체가 아니라, 팽이돌듯 회전하는 시야에서 유일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한 자루의 검.

언뜻 스쳐간 화면으로 무수히 많은 인영(人?)이 흔들거렸다. 전부 성당의 중심지로 달려드는 그림이다.

그럴 수밖에 없을 터였다. 리스폰되는 위치가 가까울 뿐더러 격전이 펼쳐지는 구역 또한 제한적이었으니까. 필경 승리하기 위해선 이 중심지에서 학살을 펼치고 있는 괴물을 잡아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승산을 점치기 힘들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문제겠지.

...저게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라고, 성현은 생각했다.

화면을 축소한 그가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두 시. 스트리머들에겐 이르다고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까지 메세지를 나눴었는데, 이토록 일찍 방송을 시작한 걸 보면 정말 부담이 컸던 모양이다.

방송을 시작하고 약 한 시간 반. 이 정도면 잠도 거의 못 잤을 텐데. 성현의 시선이 방송 화면 하단부의 혜진에게로 향했다.

피곤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우두둑­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기지개를 켜자 방금 일어난 뻑적지근한 몸이 피로를 토로했다. 목 부근이 유독 뻐근한 것이, 지난 밤 핸드폰을 붙잡고 뒹굴었던 시간이 독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고개를 들어올린 순간 아릿한 통증이 뒷목을 타고 흘렀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싶은데.

화면 속 혜진은 온전히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흔들림이 없고, 마우스를 붙잡은 오른팔만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가녀린 팔의 굴곡이 조금씩 드러났다. 어제 방송과는 색만 다른 듯한, 남색의 커다란 박스티. 목을 제외하곤 상반신 전체의 굴곡을 가리는 커다란 긴팔티였다. 가슴께에 그려진 해골 모양이 인상적이다. 저런 취향이었나.잠깐 얇은 셔츠를 입은 혜진을 떠올린 성현이 고개를 내저었다.

혜진의 얼굴은 작게 축소시켜놔도 시선을 끌었다. 나이트폴을 하는 모습이 오히려 그걸 더 가증시키는 느낌이었다. 조명이 없는 공간에서도 도드라지는 새햐얀 피부부터가 그랬다. 전문적으로 설정을 만지면 어떻게 될지. 성현의 눈이 작은 캠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저 여자가, 이런 플레이를 펼치고 있는 당사자라니. 그건 쉽게 결합시킬 수 있는 사실이 아닌 것이다. 잔뜩 모여든 시청자들 중에서 가장 혜진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성현도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혜진이 노르드라는 사실은 쉽게 연상할 수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인상이 강렬한 탓일까. 게임과는 쉽게 연결할 수 없는 사람인데.

나이트폴 개인화면은 여전히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평소 노르드의 화면을 생각해도 과한 흔들림이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적을 의식하며 끊임없이 거리를 조절하고, 방향을 뒤트는 과정에서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거기에 따라붙듯 선을 긋는 검격까지도. 성현도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의 난잡한 동작이다.

나이트폴을 실행한 직후 빌드를 검색할 때부터 알아봤다. 어울리지 않게 기동성에 특화된 검사 빌드를 채택하더니, 경쟁전을 돌리지 않고 매칭 설정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곧장 데스 매치를 골라 게임을 시작하더랬다.

팀전도 아닌 개인전. 맵은 또 가장 좁은, 전투가 끊이질 않는 장소였다.

게임이 잡히자마자 성당 중심의 격전지로 뛰쳐나간 노르드는 끝나지 않는 전투를 시작했다. 동서남북 모든 방위에서 나타나는 적 플레이어를 가리지 않고 상대하는, 정신나간 짓거리. 자신에게 유리한 지형을 찾아 이동하는 일도 없었다. 광전사를 고르지 않았을 뿐 하는 짓은 똑같았다.

전투가 계속되는 나이트폴. 거기다 사용하는 빌드도 화려하기 짝이 없는 기교 중심의 빌드다. 빛을 품은 듯 반짝이는 성당에서 검광이 난무하고, 접근하는 적은 끊이질 않는다. 두세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한 번에 달려드는 순간의 반복이다. 나이트폴을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어떻게 여기서 시선을 돌릴 수 있을까.

혜진의 생각을 알만도 했다. 얼마나 캠을 의식하고 있는지도. 그래서 굳이 무리해서 캠방은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고집은 왜 그렇게 쎈 건지.

성현은 슬쩍 채팅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장 캠을 확대하라며 불길을 피워올리던 채팅창은 어느샌가 게임 화면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인터넷 방송에서 여론이란 이런 법이다. 아무튼, 당장에 자극적이고 재밌는 화면을 제공할 수 있으면 화제를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혜진이 내린 처방은 나름 효과를 보고 있었다.

이게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성현의 시선이 좌측 상단부로 올라갔다. 방송 화면의 상단부다. 반투명한 검은색 창이 작게나마 방송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검은 창 안으로 작은 글씨가 촘촘히 새겨져 있는 모습이다.

스트리머에게 특정한 미션을 제안하고 달성했을 시 걸린 만큼의 금액을 후원하는, 미션 시스템. 그 인터페이스가 추가 금액을 알리며 번쩍거렸다.

'캠화면 한시간동안 풀스크린으로 땡기기'

1,650,000 원.

방금 추가된 금액으로 이백만 원으로 향하고 있는 미션금이 눈에 밟히지 않을 수 없었으니.

정말 오래버티지는 못할 거라고.

성현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돈이 많이 걸렸으니 좋아할까?

지난 밤에 나눴던 채팅을 생각하면,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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