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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8화 〉 158 ­ 이게 내 파트너야 (158/243)

〈 158화 〉 158 ­ 이게 내 파트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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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단이 꽤나 거창했다.

메일에 답장을 보내고, 팀 선정이 끝났다는 확인 메일이 돌아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림 잡아 사흘 정도였나. 그걸 보면 내가 거의 막바지에 자리를 차지한 모양이다. 명단 발표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친분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서도 아는 이름이 꽤나 많이 보였다.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하기는 뭐하지만, 내가 아는 수준이라면 그것만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셈이다. 나는 다른 나이트폴 방송을 찾아보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어지간히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내 귀에 들어왔을 리가 없겠지.

호기심에 검색한 몇몇 이름들은 역시 구독자나 팔로워를 수십 만씩 보유한 유명인이었다. 이쯤되면 대회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걸 인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쓸데없이 커다란 커플 대항전이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을지 의문이다.

아무튼 친분이 있는 사람이 하나 둘 정도는 존재한다는 게 위안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팀을 맺는 것보다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과 맺어지는 편이 훨씬 편하겠지. 이 기묘한 대회는 연습 기간도 상당히 길었다. 뭐가 됐든 간에 팀이 될 사람과 꽤 오랫동안 합을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코드가 안 맞아 어색한 분위기가 지속된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끔찍한 일도 없었다.

마음 같아선 칼고랑 팀을 하고 싶었는데... 참가자들의 랭크 격차를 보면 그건 어림도 없어 보였다. 최고 티어가 킹인데, 룩으로 시즌을 마감한 참가자도 있었다. 숨길 필요가 뭐가 있을까. 그게 바로 스벅이다. 칼고와 스벅이 같은 선상에서 경쟁하는 구도는 꽤나 볼만한 것이다. 당사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뭐 어쩌겠는가.

참가자 라인업을 이렇게 뽑아놓고도 밸런스 맞출 자신이 있었던 걸까. 결국 토너먼트에선 매번 참가자가 나오기 마련이니, 한두 팀 정도야 약체로 구성돼도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회 주최측에서 임의로 팀을 지정해준다고 결정한 이상 팀 밸런스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로 떠오를 터다. 아무튼 참가자들 전부가 자신의 시청자와 팬이 있는 방송인이었으니, 자신이 응원하는 사람이 약체 팀에 배정된 순간 어딘가로 돌은 던지지 않겠나. 책임의 소재가 어디있는지는 이토록 중요하다.

결국 주최측이 팀 밸런스 맞추기에 혈안이 되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는데. 이 사실에 기반하면, 내가 누구랑 팀이 될지는 거의 확정된 일이나 다름 없었다. 어떻게 봐도 여성 참가자 중 가장 돌출되어 튀어나온 건 나였다. 그러니 팀 발표가 나기도 전부터 이미 커플 하나는 완성된 꼴이다.

스벅과 노르드면... 그래도 최약체는 아니겠지. 객관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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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창에 정적이 일었다.

아주 잠깐 멈춘 것뿐이지만, 빠르게 올라가던 채팅창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입장에선 찰나의 정지도 제법 극적으로 다가온다. 평상시 활발하기 그지없는 모습과의 대비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연출이나 다를 바 없어서, 방송 중 채팅창이 멈추는 시점은 대부분 그날 방송의 하이라이트와 마찬가지였다. 순간적인 채팅 입력 폭증이 만들어낸 편집 포인트라나. 물론 이건 내가 아니라 내 편집자의 감상이다. 매번 좋은 편집점이 되어준다는 코멘트를 남겼지.

그 말을 듣고 나서는 나도 이 흐름에 주목하게 됐다. 최근에 깨닫고 있는데, 내가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나 행동이 의외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었다. 눈치가 빠른 편이라 자부하던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는데... 객관적으로 자신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한차례 몸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면 더욱더 그렇고.

아무튼.

다음 순간 무수히 많은 갈고리가 채팅창을 점거했다.

<노칼영원해 님이="" 10,000원="" 후원!=""/>

­지랄좀하지마세요선생님 스벅이라뇨ㅋㅋ 칼고겠죠

<ㅇㅇ 님이="" 10,000원="" 후원!=""/>

­이야 개소리 성능 확실하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으면 구라인줄 알면서도 이렇게 반응이 뜨겁냐 ㄹㅇ

...내가 뭐라고 했더라?

캠을 전체 화면으로 하고 있으면 여전히 생각이 원활하게 굴러가지 않았다. 지속적인 캠방과 민아와의 합방으로 제법 익숙해졌나 싶다가도, 방송을 시작한 직후에는 여전히 큰 압박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계속 시도를 하고 있기는 한데... 간혹 두서없는 말이 튀어나갈 때가 있다.

아마 방금 내가 그런 실수를 한 모양이다.

나는 조용히 머그컵을 들어올렸다. 캠방을 하면서 생긴 요령인데, 이게 또 제법 훌륭하다. 말 실수를 하거나 표정 관리가 힘들어지면 이렇게 컵을 들어올려 차를 마시는 시늉을 하면 된다. 뜨거운 걸 마시는 듯 조금씩 물을 홀짝인다. 그러고는 머리를 굴려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지 천천히 정리하는 것이다. 그럼 뭔가 실수를 하더라도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캠방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불가능했다. 컵을 들어올린 손끝이 덜덜 떨렸거든. 충격요법이란 위험한 만큼의 리턴을 주는 것이다. 나름 빠르게 적응하고 있단 말이지.

"그러니까... 아, 스벅님하고 커플이 됐어요."

그래, 이거였지.

[ㅈㄹ]

[지금 시청자랑 장난해?]

[선생님... 제발 개소리좀 그만하고 겜이나 키십쇼]

[????]

[스벅 구독 팔로우 취소하고 왔어요 ^^]

[와 존나 안어울려]

[눈돌아가는거보고싶나봐요]

확실히, 대회에 대한 엠바고는 풀렸을 터였다.

아마 확정 명단이 담긴 메일에 적혀있었던 것 같다. 오늘부터 커플 대항전 홍보를 시작할테니, 이제 유출같은 건 걱정하지말고 방송에서 마음껏 이야기하라는 식의... 홍보 장려 문구가. 불과 몇 시간 전에 받은 메일이다. 그렇게 볼 때 나는 지금 굉장히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파하고 있는 셈이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다른 스트리머들은 아직 입을 열지 않은 모양이다. 팀 구성은 커녕 대회의 존재조차 잘 모르는 것 같았는데, 커플이라는 단어를 두고 크게 불타고 있었다. 하기야 내 방송 시간이 조금 이른 편이기는 했다. 오늘 저녁쯤 돼서 참가 스트리머들이 하나 둘 방송을 켜기 시작하면 대회의 존재도 빠르게 퍼져나가겠지. 지금은 아직 일렀나.

개척자의 입장이란 참으로 고되다.

"칼고님이랑은 아쉽게도 다음 기회에... 아니, 다음에도 힘들 것 같긴 하네요."

[??? 진짜 미,친련인가]

[뭔말이야]

[이게 노르드다 ㄷㄷ]

[진짜야??]

[장난ㄴㄴ]

[칼고 차였네]

[아니 뭔 개소리세요]

말이 짧으면 오해를 부르기 마련인가. 그런데 그게 또 즐겁게 느껴졌다. 뜬금없는 소리에 불신하는 기색을 풍기면서도, 정말이냐는 의문 섞인 추궁이 조금씩 늘어난다. 사람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어떤 헛소리도 나름 신뢰도가 생겨나는 건지. 상시 포커페이스가 가능한 혜진의 얼굴은 확실히 캠방에서 유효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장난을 쳐볼까.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이 웃고 있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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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난히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스벅, 성호는 알람이 울리는 시간까지 침대에서 뒹굴다가 느긋하게 하루을 시작했다.

눈을 뜬 순간부터 몸이 상쾌했다. 알람도 없이 이렇게 개운하게 일어나는 것도 오랜만이다. 오후 두 시. 아침이 되어서야 잠든 걸 고려하면 그리 오래 잔 것도 아니었는데, 평소 같으면 뻐근해야 할 전신이 기분 좋은 나른함을 만끽하며 퍼져있었다.

정말 몸이 가벼웠다.

첫 퍼즐을 깔끔하게 맞추고 시작하니 이어지는 과정도 더할 나위 없이 순탄했다.

샤워기는 단 한 번의 조작으로 적절한 온도의 물을 쏟아낸다. 샤워를 하기 전 시켜둔 배달 음식은 그가 욕실에서 나와 머리를 다 말려갈 무렵 정확히 집에 도착했으며, 리뷰 이벤트를 신청하지 않았음에도 음식점 사장은 단골인 그에게 두둑한 서비스를 얹어줬다.

새롭게 도전한 신메뉴는 또 기가 막힌 맛을 자랑했다. 배달 음식 레퍼토리를 하나 늘린다는 게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필요로 하는지는 돈 많은 자취생들이나 알고 있을 것이다. 자기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성호는 서비스로 도착한 쫄면까지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먹었다. 두둑한 포만감이 재차 그를 만족시켰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의 방점을 찍은 건 그날 오전에 도착한 메일 한 통이었다.

커플 대항전을 주최하는 아바타 측에서 보내온 메일이다. 상시 켜두는 컴퓨터에서 신규 메일을 확인한 성호는 다 먹은 음식을 모두 정리하고는 곧장 메일함을 열었다. 그의 예상대로, 확정된 팀 명단이 담긴 메일이 도착한 상태였다.

미리보기로 첨부파일의 이름을 체크한 성호는 바로 메일을 클릭했다. 지난날 플랫폼 대전 채널에서의 대화를 통해 누구와 팀이 될지 반쯤은 확신한 상태였으나,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은근한 긴장감이 그의 마음을 조금씩 자극한다. 성호의 시선이 곧장 팀 명단 파일로 향했다. 사실 메일 본문 따위는 별로 알 바가 아니었다.

지금은, 당연히 누구랑 팀이 됐는지가 제일 중요했다. 다소 뻔한 결과가 가디리더라도 그랬다. 마음 속으로 노르드의 이름을 세 번 정도 되뇌인다.

노르드, 노르드, 대가리가 깨져도 노르드.

됐다. 기적적인 팀이 성사됐다.

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격렬한 세레모니를 시작했다. 방송은 당연히 꺼져있어서, 보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끓어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월드컵 승리팀의 감독이라도 된 것처럼 허공에다 어퍼컷을 퍼올리던 성호는, 자신이 내심 이번 대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참가자들의 유명한 이름값이 무의식적으로 그를 자극했던 모양이다. 당연한 팀 선정에도 기쁨이 상당했다.

아무튼, 자신만 1인분을 해낸다면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는 팀이었다. 그는 노르드의 실력을 철썩깉이 믿고 있었다.

성호는 기쁜 마음을 안고 자신의 팬카페로 들어갔다. 팀이 확정되고, 유출 방지를 위한 엠바고가 드디어 풀린 참이다. 그동안 노르드와 팀 대회를 나가게 됐다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하던 걸 어떻게 참았던가. 더이상은 입을 다물고 있을 필요도 없어졌다.

이렇게 된 거 공지사항에 커플 대항전을 암시하는 글을 올려두고, 저녁 방송을 켬과 동시에 노르드와 같은 팀이라는 걸 밝히는 서프라이즈를 연출하면 좋지 않을까.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게 반응할 시청자들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벌써부터 가슴 한 편이 찡하게 울렸다.

확장팩 메타 변경 이후 늘 시청자들에게 못한다고 욕만 얻어먹던 성호는 환호성 섞인 채팅이 눈물나게 그리웠다. 이 정도로 규모가 큰 대회에서 승리를 거두면 분명 그만큼의 보상이 돌아올 게 분명했다. 여론의 반전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가득한 성호가, 기쁜 소식을 안고 자신의 팬카페에 진입하고.

'노르드'라는 태그가 붙어있는 신규 작성글 수백 개가 카페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걸 파악하기까지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커플, 커플... 게시글 몇 개를 읽고 삽시간에 상황 파악을 마친 성호가 황급히 노르드의 방송을 실행했다. 감정의 변화는 빛과 같아서, 카페을 들어올 무렵의 들뜬 마음은 그때쯤 이미 어딘가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쩐지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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