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160 나만 연습하는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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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나밍이 너 벌써 퀸 승급전이야? 진짜 무섭다, 무서워. 페이스만 보면 진짜 대회 전에 퀸 달 수도 있겠어."
"헤. 오빠도 비슷하던데요, 뭘. 저희 그래도 퀸퀸으로 맞춰야죠. 커플이니까."
커플이니까. 혀 끝에서 울리는 말이 참으로 낡았다.
제 입으로 떠들면서도 뭔가 탐탁지 않았다. 요 며칠간 지속된 은근한 권유를 제대로 끊어내지도 못하고 받아주고 있기 때문일까. 어차피 방송은 내숭으로 시작해 내숭으로 끝나는 것일 텐데, 새삼스레 이런 불편함을 느끼는 게 이상했다. 우결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채팅창에선 근래들어 극성인 시청자가 계속 눈에 밟혔다. 구독자 뱃지를 달고 활발히 채팅을 올려대고 있는 저 놈. 합방 중인 파피루스를 은근히 비꼬는 꼴이 참 역겨웠다. 파피루스가 욕을 먹는다는 사실 보다는, 눈에 띄게 침입자를 밀어내려고 움직이는 저 행태가 보기 싫은 것이다.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이 밉상이 되면 행동 하나하나가 띠껍게 보이기 마련이라, 이젠 저것이 'ㅋㅋ'만 쳐올려도 기분이 나빠질 지경이었다.
내 구독자. 내 후원자... 큰 돈을 주는 시청자가 이렇게 미워보인다는 게 참 우스웠다. 미꾸라지 하나가 물가를 온통 진흙탕으로 만든다. 그걸 잡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나는 얼굴이 찌그러지는 걸 막기 위해 억지로 입꼬리를 틀어올렸다. 송출 화면 속 자신이 환하게 미소 짓는다. 오늘따라 화장이 잘 먹었다. 방송에 비치는 우나밍은 자기 눈으로 보기에도 제법 예쁘게 느껴져서, 미나는 그나마 기분이 풀렸다. 역시 예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 미인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
"내쪽은 일단 전시즌 퀸 찍었던 지인이 도와주기로 했어. 킹은 역시 구하기가 어렵더라고. 오방님한테 얘기해두기는 했는데 아마 오늘은 안 될 거 같아."
"그래요? 어제 연습 도와주신 분이 오늘도 괜찮다고 하셨는데. 그분도 잘하시니까 오늘은 그렇게 해봐요. 오빠 오늘도 길게 가능하죠?"
"응. 근데 우리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진짜 우승하겠어. 이러다."
안 된다고 할 리가 없지. 의례적으로 하는 소리도 마음에 안 들어.
생각을 입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는다. 미나는 자신이 본심을 내뱉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가 산산조각 날 것을 잘 알았다.
신경쓸 일도 아니다. 사람이라면, 여자라면 누구든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기 마련이다. 자신과 같이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사는 업을 택했다면 그건 한층 배가 된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예쁜 가면을 만들어내는 건 기만이 아니라 재능이다. 본심을 숨기느라 힘들다고 찡찡거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가감 없이 본성을 드러내도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동심을 잃은지가 오래돼서 그런지 꿈 같은 이야기는 대체로 유치하게 다가왔다.
어느새 얼굴이 싸늘해져서, 미나는 다시 웃는 표정을 만들었다.
"음, 이번엔 어떤 조합으로 부탁할까. 쌍검 한 번 더? 우리 빌드로 상대하기가 좀 까다롭더라고. 빠질 때 추격하기가 너무 힘들어."
쌍검. 마치 연상 퀴즈를 하는 것처럼, 대번에 머릿속으로 쌍검과 관련된 플레이어가 떠오른다. 파피루스는 아마 칼고를 염두에 두고 말했을 터였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쌍검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칼고였으니까.
그러나 미나는 달랐다. 그녀가 떠올린 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스트리머 한 명을 난자하던 여성의 얼굴이다.
희고 갸름한 얼굴, 가느다란 몸선, 예쁘게 조형된 이목구비를 가진 여성. 그녀는 게임에 집중할 때 미간을 찌푸리는 버릇을 가졌다. 미나는 그 표정을 좋아해서, 종종 그녀의 다시보기를 돌려보고는 했다. 얼굴에 집중하느라 게임 플레이를 놓치는 경우도 많았다. 표정 변화가 드문지라 그걸 캐치하기 위해선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얼굴을 보는데 한 번, 플레이를 보는데 한 번. 그야 다시보기 시간이 길어지는 건 당연했다.
다행인 건 그녀의 게시판에 찾아가면 매번 새로운 움짤이 갱신되어 올라온다는 점일까.
노르드. 미나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예쁜 사람을 좋아했다.
"한 명이 히트 앤 런 운영하는 방식이면 다른 쪽을 파면 되겠죠. 그러니까 포커싱 당하기 쉬운 하나는 아마 생존 좋은 빌드로 갈 거예요. 어질 특화로 도망치거나, 대방패 들고 버티는 식으로."
노르드와 스벅의 연습 과정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번 대회는 다른 팀의 연습 과정을 염탐하기 용이했다. 우승 상금이 생각보다 크다지만, 근본부터가 이벤트에 가까운 대회인 탓이다. 대회에 참가한 유명 스트리머, 엘튜버를 가릴 것 없이 참가자 모두가 전력 노출에 신경쓰지 않고 연습을 감행했다.
아무튼 전원이 인플루언서인 이상, 두 사람이 팀을 맺고 합을 맞춰가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운 컨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대는 방송각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사람은 없었다.
모든 연습이 어딘가의 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는 판이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팀의 준비 과정을 모두 시청할 수 있었는데, 미나가 가장 신경 쓰는 대상은 노르드였다. 사실 오로지 노르드라 말해도 무방하다. 다른 방송은 별로 보지도 않았으니까.
그건 일상의 연장선이나 다를 바 없었다. 최근 미나의 일상은 언제나 노르드의 방송을 챙겨보는 것으로 끝났다. 팀 명단이 발표된 첫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노르드의 팀이 어떤 빌드와 전략을 준비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확인했다. 거기에 너무 집중해서 다른 팀의 전력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을 지경이다.
당연히, 실상은 평소처럼 노르드의 방송을 매번 챙겨봤을 뿐이었다. 그녀는 파피루스처럼 모든 팀 방송을 훑어보며 전력을 분석할 정도로 꼼꼼하지 않았다. 대회를 한다고 해도 그런 노력을 기울일 생각은 없었다. 그 시간에 자기 실력이나 다듬으면 다듬었지. 미나는 그저 노르드 방송의 애청자였다.
구태여 그걸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지켜본 노르드 팀의 전력이야 이미 파피루스도 알고 있을 터였다. 어쨌든 노르드가 포함된 팀이 우승 가능성이 높다는 건 확실했으니까. 우승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대비해야 하는 팀이다.
지난 며칠간의 연습 과정에서 노르드는 오직 쌍검만을 사용했다. 이 대책 마련을 우습게 여기는 시청자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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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링조아 님이="" 1,000원="" 후원!=""/>
칼고님은 갈증안쓰고 선회써요 도와주시는 분한테 말씀드려야 할듯
[훈수충 ㄲㅈ]
[노르드님은 갈증써요~]
[파피님 디테일 엄청 신경쓰시네ㅋ 이번대회 작정하고 나온듯]
[팀 선정 이렇게 됐으면 우승노려볼만하지ㅋㅋ 제일 밸런스 잘 맞는 팀이라]
[지금 칼고나비쪽 대비하는 건가요?]
[한명 방패든거보니까 노르드상대인듯]
[노르드는 연습때 쌍검만 쓰다가 대회에선 츠바이들거같은데ㅋㅋ 대책 의미가 있음?]
[일주일동안 쌍검만 쓰던데 그게 연막이겠냐]
대회 기간에 훈수가 늘어나는 것도 여전하다.
미나는 입을 다물고 채팅창을 훑었다. 지금은 입을 열 필요가 없는 시점이다. 연습방을 파놓고 도움 준다는 사람을 초대하고 나면, 세부 설정과 빌드 따위를 알려주고 조정하는 역할은 파피루스의 몫이었다. 그의 꼼꼼한 성격은 이럴 때 빛을 발했다.
지금 요구하는 빌드는 노르드와 스벅이 사용하는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스벅이 방어에 치중된 빌드로 잔뜩 웅크리면, 노르드가 쌍검을 들고 활개치는 형태의 조합. 최근 연습 과정에서 많이 보여준 패턴이다.
빌드의 구성부터 간단한 조합 설명에 이르기까지. 파피루스의 설명은 노르드의 방송에서 봤던 모습과 거의 일치했다. 아까 미나가 했던 말을 통해 그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모양이다. 칼고가 아니라 노르드 팀 상대로 연습하고 싶다는 의미였는데, 확실히 머리가 좋은 남자다.
파피루스의 상세한 설명은 10분이나 더 길게 이어졌다. 세세한 플레이나 디테일까지 언급하는 바람에 중간부터는 알겠다는 대답에도 귀찮음이 묻어나왔다. 장점과 단점이 저렇게 명확하게 공존하는 것도 참 웃긴 일이다. 좋은 점이 싫은 점이 될 수도 있다니.
채팅창은 서서히 눕는 이모티콘이 점거하기 시작했다. 끝을 모르고 이어지던 지루한 설명은 미나가 직접 나선 뒤에야 끝이 났다. 파피루스는 그러고 나서도 뭔가 부족한듯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음, 조금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은데. 방패를 든 쪽은 능동적으로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한 박자 느리게 움직여야 되거든. 아무래도 랭크 차이가 있으니까. 제대로 연습이 될까 모르겠네."
"...저희 내일부터는 그냥 다른 팀 불러서 연습할래요? 시청자가 아니라 다른 참가자 팀 불러서요. 이미 몇몇 팀은 하고 있던데 상관 없잖아."
"어? 그럴까? 스크림하면 나쁘지 않지. 이렇게 조합 설명 길게 할 필요도 없고. 괜찮네. 그럼 내가 스벅님한테 먼저 물어볼까? 친추돼있거든."
"...스벅님? 어"
다소 갑작스러운 이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벅의 옆에 함께 붙어있는 노르드라는 이름이 그랬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대회의 참가자 명단이 발표된 순간부터, 미나가 가장 의식한 사람이 바로 노르드였기 때문이다.
절대 이런 곳에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사람. 그 이름을 보고 나면 자기 팀이 누군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대회 당일 날 노르드를 직접 마주할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중증이다. 미나는 자신의 팬심이 얼마나 커졌는지는 자각하지 못했다. 타인을 좋아해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왜, 너무 강팀이라 좀 그런가? 그럼 다른 팀으로"
"아뇨, 아뇨! 스벅님 팀 좋네요. 내일 바로 연습할 수 있을, 아니 내일로 하죠. 스크림도 많이 할수록 좋으니까. 응."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습관처럼 송출 화면을 바라보면, 화면 속 자신이 잔뜩 들뜬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아주 뛰어난 연기였다. 백이면 백, 진심이라고 속아넘어가지 않을까. 가식적인 웃음과는 차원이 다른 얼굴이었다.
미나는, 자신의 모습이 조금 깬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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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d:쌍검빌드 좀 줘봐요 평소 쓰는 걸로
칼고:gd에서 내 전적 긁어다가 써
Nord:귀찮아서
칼고: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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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고:22 연습 할래? 5판 3선으로
칼고:빌드 자율
Nord:
Nord:
칼고:왜
Nord:그러다 우리팀 만나면 어쩌실려고
Nord:얕보다가 큰코 다칩니다.
칼고:내가 언재 얕봤냐? ;;
Nord:'빌드 자율'에서 불순함을 느꼈어
Nord:어차피 전략 하나인 병신팀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보약에 불과하다고
칼고:그런 생각 안했는데
Nord:스벅님은 그렇게 형편없지 않아요
칼고:아니 형편없다고 안 했다고
Nord:젊은 여자랑 실컷 놀아나서는... 자기 마음대로 다 되는 거 같겠지.
칼고:.
Nord:유력한 우승후보라고 어깨 펴고 다니는 것도 지금뿐입니다
칼고:뭐라는
칼고:또 술마셨냐?
칼고:ㅅㅂ 아니 연습할거야 말거야
Nord:언제요
칼고:내일
Nord:그럼 낼 8시에 하는걸로
칼고:너 술마셨지
Nord:ㅂ2~~
칼고:제대로 돌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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