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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화 〉 164 ­ 제 파트너가 이상해요 (164/243)

〈 164화 〉 164 ­ 제 파트너가 이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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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폴에서 궁병은 독특한 포지션을 차지했다.

칼과 칼이 맞붙는 근접전이 주류가 되는 게임이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며 확장팩마다 무기가 대거 추가될 때도, 원거리 무기는 언제나 그 수가 적었다. 그것도 대부분이 투척용에 해당되는 보조 무장이고. 원거리 무장을 중심으로 빌드를 짜보려고 해도 독특하고 개성있는 빌드를 만들기는 힘들었다. 그것도 당연하다. 쓸만한 특성이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매번 패치 노트 따위에서 다양성을 운운해도 변하지 않는 건 존재했다. 나이트폴 개발진은 이 게임이 1인칭 슈팅 게임으로 변질되는 걸 우려한 모양이다. 하기야, 원거리 무기 군의 종류나 빌드가 늘어나면 다들 검에서 손을 떼고 활을 들어 올렸겠지. 성능에 목을 매는 게이머는 언제나 많았으니까.

원거리 무기의 한계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나이트폴이라는 전장에서 궁병의 위치는 언제나 조연에 머물렀다. 팀 게임에서 없으면 매우 아쉽지만, 주목을 받기는 힘든 포지션. 길드에서 선호하는 사람이 적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예 다른 게임을 한다는 소리를 듣는 메이지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궁병도 하는 사람만 하는 클래스에 속했다. 활을 잡는 사람은 늘 활을 잡는다. 매칭되는 상대가 죄다 낯이 익은 랭크에 올라오고 보면, 아군이든 적군이든 닉네임만 보고도 활쟁이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궁병 빌드 하나로 킹 랭크를 달성한 유저 중에는 근접 빌드를 아예 건드리지 않은 사람도 존재했다. 플레이의 방향성만 생각해도 궤를 달리하니 납득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검을 든 유저가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할 때, 궁병은 사격 포인트 확보를 위해 주변을 둘러본다.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게임에 임한다. 이것도 장인의 영역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활을 잡는 순간은 길드원들과 쟁을 할 때 정도였다. 타의에 의한 짬처리나 다를 바 없었다. 절대 인구가 턱없이 부족하던 당시 나이트폴에는, 궁병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줄 아는 사람도 몇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자리가 남았다면 당연히 나는 전열을 선택했을 것이다. 낭만 가득한 대검을 들어 올리고서.

물론, 여기에는 조금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데... 사실 당시 나는 근접전보다 궁병을 훨씬 잘했다. 애초에 내가 다른 길드원보다 근접전을 잘했다면 실력으로 그 자리를 차지했겠지. 내 늙은 손가락은 가벼운 패링조차 버거워했다. 적이 눈앞에 있으면 지극히 좁아지는 시야도 그렇고. 변한 몸뚱이가 이전보다 우월하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뭐 어쩌겠는가. 좋게 받아들일 수밖에.

사람마다 잘하는 게 따로 있고, 적합한 자리가 정해져있다면. 내 적성은 궁병과 잘 맞아떨어졌다. 적성과 선호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지만. 나이트폴에 한창 빠져들었을 때, 몇백 판을 때려 박은 광전사보다 궁병을 하는 쪽이 훨씬 위협적이었다는 평가는 사실 그리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다. 내가 잘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다고.

그래서 노르드라는 이름으로 나이트폴을 시작하고 나서는 내 마음대로 실컷 대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한때 팀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활시위만 당겨대던 날의 기억이 어딘가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

내가 활을 들었다고 그렇게 징징거릴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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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뒤에서 지원해드릴 테니까 겁먹지 말고 들어가라고요."

그게 무슨 개소린데.

신나게 키보드를 눌러대던 손가락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발언이다.

스벅은 황급히 마우스를 움직여 시선을 뒤로 돌렸다. 해석이 필요한 말, 납득할 수 없는 말을 들은 까닭이다. '뒤에서 지원'이라니. 나이트폴에서 지원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냐는 말이다.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우스를 움직이면, 긴장으로 좁아진 시야가 조금은 넓게 확대되는 기분이 들었다. 시원하게 펼쳐진 들판. 노을빛을 머금어 붉은 기가 감도는 풀잎이 바람결에 따라 몸을 뉘었다. 노르드는 그 벌판에 가만히 서있었다. 이상한 거리감이다. 왜 팀원과의 거리가 이렇게나 먼 것인지. 저건 마치 게임에 시작한 이후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것 같지 않은가.

스벅은 그제야 노르드의 손에 들린 괴이한 물체를 발견한다. 육중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대검도, 날렵한 예기를 번뜩이는 쌍검도 아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활. 등 뒤에 삐죽하고 튀어나온 화살통은 앙증맞기까지 했다. 흉터 가득한 얼굴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ㅋㅋㅋㅋㅋㅋㅋㅋ]

[너도 즐겼잖아]

[스벅의 쌍검? 바로 활쟁이on]

[활쓰는 노르드 ㄷㄷ 이건 귀하네요]

[?? 센세 활도 씀?]

[쓰겠냐 걍 스벅 조질라고 드는거지]

[ㄴㄴ 궁병 ㅈㄴ잘하잖아 플랫폼대전때 걍 씹캐리했는데?]

[응~ ㅈ뺑이 쳐봐~ 이거 뒤통수에 화살날아올듯]

[아니 그래서 님 듀오가 활잡으면 같이 겜함?]

[5시 표정 레전드ㅋㅋㅋㅋㅋㅋ]

"지금 장난해?"

필터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말치고는 수위가 낮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자신의 울컥하는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르드는 천천히 앞으로 전진했다.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라도 있는지 달리지도 않고 천천히 걷는다. 화살통에서 화살 한 대를 꺼내 재는 모습에서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귓가에서 점점 긴박감을 더하는 나이트폴의 배경음악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저건 마치 사격 연습을 하는 모양새가 아닌가.

꼰닢의 도발에 못 이겨 빌드를 바꾸는데 집중하느라 노르드가 뭘 하고 있는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쌍검을 사용해도 괜찮다는 허가가 떨어진 이상, 대충 자신의 빌드에 맞춰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이게 맞춘 건가? '지원'이라는 말이 주는 압박감이 이렇게 무거울 수가 있나 싶었다. 어쩌면, 이건 연습을 빌미로 다시는 쌍검 같은 공격적인 빌드를 선택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노르드의 모략일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고 멍청하게 구실을 내어준 꼴이다.

"믿으세요. 플랫폼 대전 연습 때 보여드렸잖아요."

"그게... 그게 지금이랑 같아요? 그건 팀 게임이었잖아! 아니, 누가 이 대 이 붙는데 거기서 활을 쏘고 앉았냐고요. 한두 발 쏘다가 아군 죽는 꼴 보게 생겼어?"

"아, 저기 온다."

"이런 씹,"

이미 시작된 게임이다. 말다툼에 열을 올릴 시간도 없이, 노을진 벌판 저편에서 두 명의 인영이 접근해왔다. 몇 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가깝다. 편의성을 위해 리스폰 지역을 좁게 설정한 탓이다.

스벅은 아찔했다. 이전 게임에서 패배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원래부터 수준 차이가 월등한 칼고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심 얕보고 있던 꼰닢에게 방어가 뚫린 건 그야말로 굴욕적인 경험이었다. 아무리 칼고에게 신경이 분산되어 있었다지만 그렇게 쉽게 돌파당하다니. 비숍에게 패배했다는 채팅창의 조롱은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최근 저조한 성적으로 너덜거리기 시작한 자존감이 완전히 바스러질 지경이다.

설욕을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고 쌍검을 들어 올렸건만, 이젠 단신으로 두 명을 상대하게 생겼다. 차라리 계속 방패를 들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진 않았을 텐데. 이 순간에도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는 두 그림자가 섬뜩함을 더했다.

꼰닢의 창과 칼고의 쌍검. 지극히 공격적인 조합이다. 전열로 나선 칼고의 공격을 받아내다가 쇠꼬챙이에 급소를 뚫리는 그림이 너무나 쉽게 그려졌다. 분명 칼고를 마크해 줄 거라 믿었던 자신의 든든한 팀원은 지금... 등 뒤에서 화살을 만지고 있다.

"이거 빠르게 끝내야 돼요."

당연히 그렇겠지.

"두 발씩 두 번 쏩니다. 상황 봐서 양쪽에 한 발씩, 견제로 날릴 거예요. 정밀에 연발 키고 쏠 거니까 다음 지원까지 딜레이가 커요. 아마 칼고는 저스트로 피할 수도 있는데, 바로 공격하긴 힘들 테니까 넘어가죠. 간격만 잘 유지하세요. 대시 공격 닿지 않을 정도. 그럼 제가 신호 드릴 테니까 대시로 바짝 붙어서 꼰닢부터 자르면 됩니다. 한 합에 죽인다는 마인드로."

"...예?"

...무슨 말이지?

쏘아대듯 밀어붙인 말이다. 이 정도로 상세한 오더는 드물었다. 지금껏 연습하는 과정에서 이런 오더를 들은 적이 있던가. 반쯤 포기하고 있던 스벅은 난데없이 쏟아진 오더를 이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벙하게 되물은 물음에도 노르드는 말이 없었다. 조준을 하고 있는 걸까. 갑작스레 찾아온 침묵에 긴장감이 치솟는다. 정말, 자신을 놀리기 위해 활을 든 게 아닌 건지도 모른다. 연속 사격을 활용한 단판 승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노르드의 오더는 그런 의도였던 거 같은데. 그렇다면 결국 승부는 한순간에 판가름 난다.

어느새 적은 코앞까지 접근했다. 홀로 돌출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상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스벅은 짐작하기 힘들었다. 노르드의 위치는 파악했을까? 딱히 숨어있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여러 변수를 떠올렸으나 결국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 부딪쳐야 한다.

스벅은 앞으로 전진했다. 이전 게임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두 명은 스벅을 향해 거리낌 없이 전진하는 중이었다. 앞서 돌진하는 칼고의 손에 들린 두 검이 흉흉하게 빛났다. 화살 몇 발로 저 인간을 억제하는 게 가능한 건지. 노르드의 오더에 따르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데도 머리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연습 경기에서 이게 무슨 꼴인지, 시청자들의 조롱이 귓가에 울려 퍼지는 느낌이다.

"지금!"

지금.

신호는 간단했다. 대시 공격이 닿을까 말까 고민하는 거리에서, 좀처럼 언성을 높이지 않는 노르드가 크게 소리쳤다. 스벅은 그 소리에 반응해 반쯤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적의 움직임을 보며 침착하게 판단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은 지금 한 가지 명제로 가득찬 상태였다. 신호가 들리는 즉시, 꼰닢의 방향으로 뛰어드는 것. 복잡한 전투 판단은 이미 무리였다.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간다. 가까워진 거리, 긴장감이 차오른 지금 시야는 급격히 좁아졌다. 스벅의 눈은 오로지 꼰닢 하나만을 포착했다. 앞장 서서 달려오던 칼고의 뒤쪽. 우측 후방.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양상이다. 얼굴을 마주할 정도로 가까워지는 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스벅은 의식에서 칼고를 철저히 배제했다. 정면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칼고를 지나치는 순간, 섬뜩한 한기가 흘렀다. 그럼에도 경고음은 울려오지 않는다. 노르드의 견제가 통한 걸까. 생각을 이어갈 겨를이 없다.

스벅은 결전에 임한다는 생각으로 꼰닢과 마주했다. 정면으로 찔러 들어오는 창을 흘리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 한 차례 페이크를 준 건지 예상보다 공격이 들어오는 타이밍이 늦었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회피를 준비하던 스벅은, 거리가 더 좁혀진 순간 망설이지 않고 공격을 시도했다. 낮게 깔리듯 땅을 향하던 칼 끝이 꼰닢을 향해 날을 번뜩인다. 양쪽에서 두 자루의 검이 매섭게 뻗어나갔다.

머뭇거리다 주도권을 놓친 꼰닢은 달리던 도중 몸을 크게 옆으로 비틀었다. 한순간, 정면을 향해 달리던 꼰닢이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날렵하게 쇄도하던 스벅의 공격이 정면의 허공을 가르고 지나간다. 스벅은 회피 동작으로 공격을 캔슬하고는 곧장 꼰닢의 방향으로 따라붙었다. 이미 한껏 좁아진 터널 시야는 꼰닢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땅바닥에 몸을 구르듯 첫 충돌을 피해낸 꼰닢이다. 급하게 자세를 회복하더니, 스벅을 향해 창 끝을 내질렀다. 엉성한 자세로 들어온 찌르기는 피해 내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완벽히 반응하지 못한 탓에 다시금 거리가 벌어졌다. 의식하지 않아도 등 뒤로부터 경보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지금쯤이면, 칼고가 칼을 휘둘러오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이다.

그 순간이다. 꼰닢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스벅을 마주하고 거리를 더 벌리려는 찰나, 짧은 파공성과 함께 화살 하나가 날아들었다. 매섭게 날아온 화살은 꼰닢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억,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꼰닢의 몸이 비틀거린다. 스벅은 더 생각하지 않고 검을 앞으로 찔러 넣었다. 타점을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날카로운 검은 비틀거리던 꼰닢의 목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살을 꿰뚫는 나이트폴 특유의 타격감에 소름이 일었다.

정말이다. 노르드의 말대로. 두어 번의 호흡으로 적 하나를 잡아냈다.

"뒤!"

설욕의 여운을 느끼기도 전이다. 다급한 노르드의 목소리가 스벅의 경종을 울렸다. 검을 제대로 빼내지도 못하고, 시체가 되어버린 꼰닢과 마주한 상태에서 스벅은 다급히 회피 키를 난타했다. 볼품없이 몸을 굴린 탓에 시야가 어지럽게 돌아간다. 몸을 굴리고 지나간 측면에서,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파공성이 들려왔다. 이전에 꼰닢을 꿰뚫은 화살이 날아왔을 때와 같은 소리. 노르드의 지원이었다.

다급히 몸을 일으킨 스벅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언제 공격이 이어질지 모른다. 짜릿함이 전신으로 퍼지기 이전, 아직 승부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고개를 완전히 돌려, 원래 자신이 서있던 자리를 바라본다.

꼰닢의 시체가 쓰러진 자리. 칼고는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넘어지듯 간신히 공격을 피해낸 자신에게 왜 공격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솟아나기 전, 칼고의 전신을 훑은 스벅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칼고는 가만히 서있다. 허벅지와 어깨에 화살 하나씩을 매달아두고서.

"큽, 저 꼴 좀 봐요. 방패도 없이 개수작 부리더니 잘 됐다, 그쵸?"

...저게 뭐가 웃긴 거지. 아니, 대체 언제 화살을 저렇게 박아넣었나. 자신이 꼰닢과 맞붙는 그 짧은 순간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스벅은 노르드의 웃음이 섬뜩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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