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6화 〉 166 ­ 예의가 바른 사람은 (166/243)

〈 166화 〉 166 ­ 예의가 바른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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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스벅님. 어깨를 보면 된다고 했잖아요. 배시나 차징 캔슬로 페이크 넣다가, 상대 어깨 움직임 보고 패링 타이밍 간 보기. 이게 그렇게 어려워요?"

"어깨는 씨이벌..."

"네? 소리가 좀 작은데."

"아니, 아닙니다. 저 진짜 패링 키에 손대고 있던 거예요. 손캠 해드려요? 이게 일반 유저가 할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라니까요."

"스벅님은 반응속도 빠르잖아요. 애초에 심리전보다 반응해서 패링 치는 게 더 많던데."

"빠르... 빠르죠. 아니 근데 아무리 빨라도 견제기 패링 연습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그게 캐치가 되면 제가 프로를 하지."

"그래서 어깨 보라고 하는 건데. 제가 보여드렸잖아요. 어깨 움직임 보고 패링 넣는 거. 상대 무기를 보는 게 아니라 어깨 중심으로 몸 쪽을 보는 거예요."

"무기도 보기 힘든데 그게 말처럼 쉽냐고... 저는 선생님이 왜 프로를 안 하는지가 제일 의문이거든요. 솔직히 어지간한 프로들 다 제낄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떻게 프로랑 비교를 해요. 팀 게임은 완전 다른 거 알면서."

"아니, 씁..."

.

.

.

"그... 이렇게 해봤자 진전이 없을 거 같은데. 혹시 선생님... 음."

"이게 왜 안 돼. 어깨를 보라고."

"......"

"어깨, 어깨가 어딘지 모르나."

"그... 선생님."

"네. 말씀하세요."

"저, 혹시 제 엘튜브 채널 보시나요? 제가 하는 컨텐츠 중에 스벅 키우기라고 있거든요. 저번 시즌 끝나기 직전에도 했던 건데."

"스벅 키우기? 컸는데 그 모양이에요?"

"큽, 그게 아니라 그냥 컨텐츠 이름이... 아오. 됐고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요? 지금처럼 스파링하면서 시간 꼬라박는 것보다는 직접 배우는 게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직접."

"예. 방송적으로도 이게 그림이 좀 괜찮잖아요? 다른 팀도 슬슬 현실 합방 각 보고 있고... 혹시 방돌님 연습하는 거 보셨나? 거기는 아예 스튜디오에서 같이 연습을 하더라고. 거기도 랭크 차이가 많이 나는데. 바로 옆에서 알려주니까 확실히 피드백도 빠르고, 그렇잖아요? 그치. 팀이라는 게 마냥 연습만한다고 발전이 되는 것도 아니지. 팀적인 시너지, 그 동료애랄까 하는 그런 것들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뭔가 상호간의 교류도 늘리면서 소통을 자주 해야 합이 잘 맞아 떨어지게 되는 그런­ 선생님? 저 좀 그만 찌르세요. 뒤지겠어. 아니, 진짜로."

"말이 너무 길어서 토할 거 같아요."

"..."

"그러니까 결국 만나자는 거 아니에요?"

"예... 뭐... 그렇죠. 제가 수작 부리는 게 아니라요. 진짜 저 이런 쪽으로 결백한 사람입니다? 이쪽 업계에서도 청렴결백하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에요. 제 스트리밍 아이디를 걸고 자부할 수 있거든요?"

"그럼 토요일로 하죠."

"예? 진짜로? 이렇게 바로?"

"본인이 제안한거면서 무슨."

"아니, 선생님 성격에 이렇게 바로 예스할 줄은 몰랐죠.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지."

"제 성격이 어때서요."

"그야... 아니, 됐고. 그럼 저 합방으로 어그로 잔뜩 끌어모읍니다? 선생님하고 합방 한다고 하면 시청자 엄청 모일걸요. 저번에 쪼망님하고 같이 한 것도 이만 명이 넘게 보더만."

"맘대로 하세요. 연습이나 빼먹지 마시고."

"이걸요? 이거 진짜 안 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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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 취해 침대에서 미적거리다 보면, 약속 시간은 금방 다가온다. 그 순간 차오르는 건 약속에 대한 기대감 따위가 아니라 한없이 늘어지는 귀찮음과 피로감 뿐이다. 아직 나가서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닌데 피로감이 찾아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외출 기피증은 확연한 질환이다. 누군가 약이라도 만들어주면 좋으련만.

보드라운 이불의 감촉이 전신 피부에 감겨들었다. 이 매끄러움을 만끽하면서 잠들고 싶다. 귀찮은 약속 따위를 잡아두는 게 아니었다. 그깟 대회가 뭐라고... 만나서 연습 좀 한다고 실력이 늘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럴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랭크를 올렸겠지.

온갖 불만을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키는 꼴이, 하찮기 그지없었다.

'스벅 키우기'는 내 생각보다 역사가 깊은 컨텐츠였다. 태그를 달고 있는 영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오는 첫 번째 영상이 무려 2년 전 업로드된 영상이다. 꾸준한 컨텐츠라고 하기에는 영상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다는 게 걸렸지만, 아무튼 가장 최신 영상이 두어 달 전에 올라온 상태였다. 이 정도면 빠듯하게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

유행이나 컨텐츠 소모 속도가 무섭도록 빠른 엘튜브 세계를 생각하면, 2년간 지속됐다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꽤나 대단했다.

아무튼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지속될 수 있는 법이다. 업로드된 영상마다 조회수가 상당히 높았다. 스벅 채널의 메인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감초 역할은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 컨텐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엘튜브 채널을 직접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저런 것 하나하나가 제법 굉장해 보이는 것이다. 최근 연습할 때마다 느끼는 떠버리 이미지와는 확실한 차이다. 역시, 방송 쪽으로는 배울만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게임은 전혀 아니지만.

영상 몇 개를 빠르게 넘기면서 훑어봤다. 제안을 승낙할 때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연습이 끝나고 보니 부담감이 차오른 탓이다. 챕터가 나누어진 고정 컨텐츠. 이건 인터넷 방송이라기보다는 뭔가... 공중파 방송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방송에 들어가기 전 작은 대본이라도 받을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깔끔하게 편집된 영상들은 이런 내 생각을 더욱 부추겼는데, 매 영상마다 포함된 괴상한 질의응답 시간이 가장 큰 원흉이었다. 이게 무슨 토크쇼도 아니고. 게스트라고 출현한 사람들도 대부분이 유명한 유저들인 것 같았다. 빌드 개발자는 물론이고 프로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사람도 있다.

이쯤 되면 내가 나가도 되는지가 걱정이다. 스벅이라는 인간과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분명 첫 번째 목적은 대회 준비에 있는 거 같은데, 이 인간은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영상을 보는 내내 내가 스벅과 처음 마주했던 때의 영상이 둥둥 떠다니는 게 조금 우스웠다. 그래, 따지고 보면 저것도 '스벅 키우기'의 일종이 아닌가. 그때 뿌렸던 비료나 물에는 전혀 효력이 없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이번엔 제대로 된 성장이라는 걸 했으면 좋겠으나... 과연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나는 내키지 않는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괴로운 외출 준비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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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벅의노예:ㄷㄱㄷㄱㄷㄱㄷㄱ

스벅의노예:ㄷㄱㄷㄱㄷㄱㄷㄱ

스벅의노예:ㄷㄱㄷㄱㄷㄱㄷㄱ

스벅:ㅅㅂ 그만쳐

스벅의노예:무요 한명의 시청자로써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는 거신데

스벅:됐고 편집점이나 잘 따놔라. 나중에 편집할때 징징거리지말고

스벅의노예:ㅋㅋ 제가 스벅님인줄암?

스벅:ㄷㅈㄹ?

스벅의노예:질문 정리한 거랑 컨텐츠나 빼먹지마세요. 그것만 다 해도 영상 세 개는 뽑을듯ㅋㅋ 지금 노르드님만큼 핫한사람도 없음ㅋㅋ 어떻게 꼬신건지 아직도 의문이네요 스벅님 주제에

스벅:이새끼 점점더 건방져지네

스벅의노예:아 나도 노르드님 실물보고싶다 ㄹㅇ로.. 캠방 보정 없는거보면 실물도 미쳤을거같은데... 스튜디오 같은거 만들어주심 안 돼요? 나도 좀 구경하게. 돈도 많이벌면서

스벅:내 방 부스에 투자한 돈만 천만원이넘어 이새기야

스벅의노예:ㄲㅂ

스벅의노예:방송 지켜보겠슴니다~ ㅅㄱㅇ

스벅:그래

성호는 베타코드 창을 닫았다.

오후 두 시 반. 예정된 약속 시간이 거의 다가왔음에도, 핸드폰은 아직 조용했다. 분명 근처에 오면 연락을 하라고 했었는데.

전날 밤부터 청소를 거듭해 깨끗해진 방을 둘러본다. 쓰레기통은 진작 속을 비워둔지 오래고, 모니터 옆자리를 차지하던 갑 티슈도 멀리 치워뒀다. 달리 눈에 밟히는 것도 없었다. 마이크 위에 쌓인 먼지도 털었고. 손님을 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정비를 마친 부스. 평소보다 공들여 정리한 책상에서는 광이 나는 것 같았다. 방송도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시작할 수 있는 상태. 준비는 완벽했다.

노르드와의 합방은, 사실 성호가 커플 대항전의 팀이 결성된 순간부터 설계하던 방송 컨텐츠였다. 마침 베일에 가려진 노르드의 얼굴이 세상에 밝혀졌던 시점이다. 방송인으로서 참을 수 없는 기회로 다가왔다. 만약 노르드와의 현실 합방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커다란 관심을 모을 수 있을지. 상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상상은 쪼망과의 합방을 보는 순간 확신으로 변했다. 그날 방송을 지켜봤던 수많은 시청자 사이에는 당연하게도 스벅도 포함되어 있었다. 별다른 멘트도 없이, 꽉 찬 것처럼 느껴지는 방송. 그런 걸 시각적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겠지.

혜진이 무슨 행동을 할 때마다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채팅창이 아직도 눈에 훤했다. 술에 꼴은 쪼망의 투정은 거기에 방점을 더했고. 아무튼, 노르드와의 합방이 대박을 낼 수 있는 컨텐츠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게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져서 그렇지.

그러나 기회는 찾아왔다. 대회 참가, 거기다 같은 팀이라는 행운이 이어져서 만들어낸 천재일우의 기회다. 성호는 대회를 연습하는 내내 합방을 어떻게 권유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노르드를 합방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그녀가 제안을 그토록 흔쾌히 수락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것도 방송도 키지 않았을 때 진행한 연습에서.

부정적 요소가 가득하다는 생각에, 막상 제안을 건넬 때도 망설였던 성호였다. 직접 혜진을 대면했던 경험이 여러모로 발목을 붙잡았다. 함께 술을 마셨는데도 거리감이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는 쪼망과 칼고가 그나마 가까워 보였을까. 사람 사이에 벽을 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합방을 받아들이다니.

날이 갈수록 퇴보한다는 평가를 받는 자신의 나이트폴 실력이 이때만큼은 긍정적으로 다가왔을 정도다. 성호는 합방 당일을 기다리며 잔뜩 빌드업을 진행했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었다. 소위, 뽕 뽑는다고 얘기하던가. 모시기 힘든 게스트를 초대한 이상 한정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맞았다.

주말이 오기까지, 성호는 신나게 홍보를 시작했다. 이번 주 토요일 노르드와의 현실 합방을 진행한다는 소문이 멀리 퍼져나가도록. 눈팅만 하는 유명 커뮤니티에 홍보가 제대로 퍼졌는지 확인까지 마쳤다.

다시 생각해도, 준비는 여러모로 완벽했다. 시청자가 몇 명이나 모일지 두근거릴 지경이다. 성호가 평소 머리를 쥐어짜면서도 컨텐츠 제작에 집중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그 괴로운 과정을 거쳐 준비한 방송이 대박을 내는 순간, 그때 느껴지는 짜릿한 성취감을 위해.

노르드를 부르는 것만 해도 시청자 수는 이미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방송만 어색하지 않게 풀어나갈 수 있으면 성공이다.

...설마 노쇼를 하는 건 아니겠지.

심장이 뛰는 게 무엇 때문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걱정과 초조함, 긴장감 따위가 뒤섞인 미묘한 두근거림이다. 초조함에 한쪽 다리를 덜덜 떨어대며, 성호는 핸드폰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띵동­

울린 건, 핸드폰이 아니라 초인종 소리였다.

문을 활짝 열어둔 방음부스 안으로 현관 벨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성호는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시간에 시키지도 않은 택배나 배달 음식이 올 턱없다. 분명 역에서 내린 다음 전화나 문자를 하라고 전했건만, 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은 찍어준 주소를 보고 곧장 그의 집으로 찾아온 모양이다.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했음에도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정신을 어지럽혔다. 의자를 밀치듯 자리에서 일어난 성호가 현관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갔다. 달려가는 와중에도 정돈한 머리를 만지작거린 건, 차오른 긴장감의 여파였다.

철컥­

성호의 손이 현관문을 열었다.

"아."

혜진은, 특유의 정색한 얼굴로 성호와 마주했다.

뒤풀이 때, 그리고 노르드의 방송에서 봤던 그 얼굴이다. 새초롬한 얼굴에서 선홍색 입술이 생기를 머금고 빛이 났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성호를 빤히 바라보는데, 왠지 모르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문을 연 짧은 순간이 느릿하게 흘렀다.

혜진은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빛의 브이넥 니트를 입고 있었다. 방송에서도 늘 큰 옷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 입은 니트도 혜진의 사이즈보다는 조금 커 보였다. 어지간히 품이 넓은 옷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옷이 조금 커다란 탓에 브이 자로 파인 목둘레선으로 쇄골이 드러난다. 성호는 그 선명한 라인으로 저절로 향하는 시선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중력에 끌려가는 것처럼 움직이는 눈동자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아직도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혜진이 무슨 생각을 할지 몰랐다. 물론, 그 정색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고역은 고역이었다. 왜 이리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것일까.

돌연 혜진이 팔을 들어 올린다.

성호는 혜진이 뭔가를 들고 왔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무게가 있는 듯, 물건을 들어 올린 혜진의 손이 잘게 떨렸다. 제법 고풍스러운 종이 백. 누가 보더라도 선물인 것 같았다.

혜진이 말했다.

"칡즙이에요."

...칡즙?

오랜만에 마주한 혜진의 첫인사는 칡즙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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