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168 그런 질문은 사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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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잡힌 내 얼굴이 어색했다.
모니터 위, 마이크 뒤쪽. 환하게 빛을 발하는 LED 조명판이 인상적이다. 이 정도면 거의 최소한으로 줄인 조명이라고 설명하던 스벅의 목소리가 아른거렸다. 이게 최소한도라고. 애초에 표준이 되는 기준은 누가, 어느 정도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걸 어떻게 아나. 전문 업자도 아니고.
조명을 정면으로 받은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눈이 쨍한 기분이 들었다. 연출이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다못해 얼굴을 조금 화사하게 만들려는 별것 아닌 연출에도 고통을 감내하는 인내력이 필요하다니. 나는 그냥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게임이나 하는 게 맞겠다. 이런 건 분수에 맞지 않아.
다시 송출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역시 어색하게 느껴지는 내 얼굴이 왼쪽 모니터에 비친다. 뭔지 모를 부담스러움에 송출 화면을 최대한 작게 설정한 나와는 달리, 스벅은 모니터링을 굉장히 중시하는 모양이다. 방송 화면도 채팅창도 그 크기가 굉장히 컸다. 무시하고 지나치지 힘들 정도로. 이래서야 아무리 채팅이 빠르게 올라간다고 한들 외면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건 내게 조금 불편한 일이었다.
양쪽에서 조명을 받은 내 얼굴은 그야말로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보정을 받은 자기 얼굴을 구경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거울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이상한 기분.
사람은 의식하지 않으면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많다. 모니터 속에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는 다행히 무표정한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얼굴 근육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구나 싶다. 얼빠지고 멍청한 얼굴 보다야, 쌀쌀맞아 보이는 저 얼굴이 더 나을 테니까.
화면 속 스벅과 나의 거리가 가까웠다. 시야각이 좁은 카메라에 두 사람이 온전히 담기기 위해선 당연한 거리감이다. 쪼망과 합방을 할 때도 이 정도의 거리였나. 방송이 끝나갈 무렵엔 더 가까웠던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시끄러움을 넘어서 광기에 젖은 것처럼 보이는 채팅창은, 일단 무시하고 넘어가자. 어차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크흠, 자. 조금만 진정 좀 합시다.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네. 그... 선생님? 일단 인사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안녕하세요."
"..."
"..."
"네! 오늘의 게스트, 노르드님 모셨습니다! 와 박수!"
박수.
호들갑을 떨며 박수를 하는 스벅이 안쓰러워서 나도 몇 번인가 손뼉을 마주쳤다. 채팅창에서 눈을 떼면 부스 안에 우스운 광경이 펼쳐졌다. 다 큰 성인 둘이 옆에 앉아서 손뼉을 치는 광경이라니. 환호성도 없는 메마른 박수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박수 소리는, 그 규모가 작으면 의외로 굉장히 초라한 느낌을 준다. 뻘쭘하기도 하고.
스벅은 확실히 방송용 발성이 따로 있는 느낌이었다. 나름대로 차분함을 유지하던 중저음의 목소리가,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방정맞은 느낌을 되찾았다.
나에 대한 의례적인 소개를 이어가는데, 중간중간 시선을 내려 종이를 확인하는 모습이 대놓고 드러났다. 대본을 훔쳐보는 행동을 시청자들에게 일부러 보여주는 듯했다. 정신없는 채팅창에 파열음 소리가 난무하는 것이, 의도가 제대로 먹혀 들어간 모양이다. 소소한 웃음이 이어진다.
방송을 시작한 이후부터 정신이 없어진 나는 대부분의 멘트를 그대로 흘려넘겼다. 어차피 내 소개는 별게 없을 테니까.
"그래서 오늘 이렇게 찾아오신 겁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죠? 진짜 오케이 사인받았다니까. 사람 말을 그렇게 못 믿어서는, 원."
[한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남자 스벅ㄷㄷㄷㄷ]
[구라를 한두번쳤어야지]
[센세 조명빨뒤지게받았네]
[눈나 물마시는거 ㅜㅑ...]
[스벅님은 그냥 나가계시면 안되나요?]
[노르드님만 말해주세요ㅠ 쓰벅님 흉한 목소리 듣기 괴로워요]
[표정이ㅋㅋㅋㅋ 당장 나가고 싶다는 얼굴인데?]
[두분 거리가 너무 가까운데 당장 떨어져주세요]
[찐따도네 밴해 그냥 ㅆ1ㅂ 역겨운 새기들]
멘트를 마냥 듣고 있는 게 지루해서 채팅창을 바라보면, 시청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거기에 반응하는 모습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재밌었다.
생각보다 압박감이 크지 않은 것도 신기하다. 조명을 받아 허옇게 변한 내 모습이, 내 진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서 그런 걸까. 그렇게 보면 필터가 일종의 가면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동작에도 곧잘 반응하는 채팅창이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손장난을 반복했다.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 브이 자를 만들었다가, 손가락의 마디를 꺾고는 까딱거린다. 손으로 그림자 연극을 하듯 별 의미 없는 동작을 반복하면 갈고리가 하나 둘 늘어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스벅은 대본에 집중하느라 눈치챌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내 생각보다 제대로 준비했는지 소개 멘트부터 길었다. 나를 소개할 문구가 그렇게 많을 수가 있나. 흘끗, 스벅이 내려다보는 종이를 훔쳐봤다. 낱장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머리가 아팠다.
뭔가 바쁘게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스벅의 뒤에서 몰래 손장난을 하고 있는 꼴이, 옛날 급식을 먹던 시절 선생님의 눈을 피해 친구에게 장난을 걸던 그때와 흡사한 것도 같았다.
...나이 먹고 이게 뭐하는 거지.
"개인 교습에 들어가기 앞서서, 먼저 선생님한테 궁금한 것들이 많잖아요? 여러분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죠. 그래서 일단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어. 선생님? 뭐하세요, 지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계속하세요."
"아니, 채팅이... 그리고 이거 저 혼자 하는 방송 아니거든요? 도중에 끼어들어도 괜찮아요. 대본은 그냥 진행 때문에 있는 거니까."
"그래요? 그럼 그만하고 나이트폴이나 키시죠."
"...일단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어차피 대본대로 할 거면서.
잠깐 나를 쳐다본 스벅은 금방 불퉁한 표정을 짓고는 대본을 넘겼다. 일반 A4 용지인데,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정리까지 했다. 슬쩍 내용을 살피면 번호순으로 길게 나열된 문장들이 돋보인다. 저게 다 질문이라고. 그렇게 홍보를 해대더니 대체 얼마나 준비를 해둔 건지 무서워질 지경이다.
나에 대한 질문. 추측하기도 힘들다. 나는 뭘 어떻게 가르칠지 생각해온 게 전부인데. 스벅은 오늘 있을 방송에 대해 설명을 아끼는 편이었다. 인터넷 방송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가장 좋은 연출이라고 했었나. 개요를 정리한 대본 정도는 미리 제작하되, 그걸 각본처럼 할 수는 없다고.
당연한 말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질문 정도는 미리 받아두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시청자의 입장에선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더 재밌게 비치겠지만... 아. 됐다. 이미 방송이 시작했는데 이런 고민을 해봤자 뭐 하겠나.
대본을 넘기던 스벅은 어디선가 가져온 펜을 들고는 밑줄을 슥슥 그었다. 익숙한 모습인지 채팅창의 반응이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게스트를 부를 때마다 매번 볼 수 있는 광경인 모양이다. 내가 본 엘튜브 편집 영상에는 저런 장면이 없었는데.
"자, 긴장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카페에서 받은 질문들 따로 정리한 거예요. 대답하기 싫으시면 말씀하시고."
"대답하기 싫어요."
"...아니,"
"장난이에요."
"그 표정 보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되거든요? 제발... 크흠. 그럼 첫 번째 질문 들어갑니다."
톡톡, 펜촉이 종이를 두드린다. 시답잖은 장난질에 나를 쳐다보던 스벅은 질문을 내뱉을 때는 오히려 내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보통 사람과 대화하면 눈을 마주하라고 하지 않았나. 저런 걸 보면 인터뷰어로서의 자세가 덜 돼 있는데.
질문이 빼곡히 적힌 질문지를 계속 두드리는 꼴이, 뭔가 망설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호기심이 덩치를 키울 지경이다. 대체 질문이 뭐길래.
"그, 남자친구는 있으세요?"
어이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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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벌놈이 수작질부리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질문수준진짜]
[스벅 팬카페가 그렇지뭐]
[첫번째질문 "남친있으세요??" ㅋㅋ 없으면 사귈려고? 씌벅럼아]
[팬카페같은소리하네 그냥 사심질문아니냐? 쓰벅 미1친넘]
[저거저거 쪽팔려서 고개숙인거보소... 그딴 질문하지를 말던가]
[아니 솔직히 궁금하기는하잖아~ 노르드 너무 신비주의야~]
[이새기 필터없이 질문수집했네ㅋㅋㅋㅋㅋ]
[저 와꾸에 남친이 없겠노ㅋ]
[호들갑ㄴ 당연한 질문인데?? ㅈㄴ 궁금한데?]
[노르드는 남친없어]
[어이엄네...ㅋ 없으면 뭐라도 해보게?]
[육수들 왜케 민감하냐ㅋㅋㅋㅋ]
정적이 무겁다.
거금을 투자해 마련한 방음부스는, 지금 그 쓸모를 전혀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조용한데 무슨 소음이 발생한다고.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은 한 사람의 몫보다 무거웠다.
팬카페를 통해 질문을 선정했다는 말은 사실이다. 그것도, 성호 혼자만의 손으로 고른 질문이 아니다. 편집자와 함께 검증을 거쳐 선정한 질문들이다. 방송적인 재미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그런데도 지금은 그 사실이 조금 부끄러웠다.
선정 기준이 뭐였더라. 나름 방송적인 재미도 살릴 수 있고, 노르드라는 스트리머 자체에 핀 포인트를 맞춘... 그래, 따지고 보면 무슨 여자 아이돌한테 연애 중이냐고 묻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스트리머도 사람이라고. 이게 결코 못할 질문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카페에 저 질문을 해달라고 써갈긴 회원만 몇십 명이 넘는다. 궁금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소리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성호 자신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궁금한 걸 어쩌라고.
차마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대본의 활자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실수를 깨닫는 게 조금 늦었다. 이런 질문으로 포문을 열기로 했다면, 낯짝에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밀어붙이는 게 옳은 방향이었을 터다. 한 번 창피함을 자각한 순간 뒤늦게 그런 태도를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혜진의 얼굴을 마주한 상태로 어떻게 저런 질문을 뻔뻔하게 던지겠냐고. 자고로 남자란 미인에게 약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혜진이 무표정을 하고 쏘아대는 차가운 눈빛은 쉽게 견딜만한 것이 아니었다. 비난의 말을 쏘아대는 TTS 음성을 들으면서, 성호는 내심 불만을 토로했다.
"없어요."
답변이 조금 늦게 돌아왔다. 창피함을 벗어던지고 고개를 들어 올리면, 비뚤어진 자세로 책상에 팔을 올린 혜진이 손에 턱을 괴고는 그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각도 때문인지 묘하게 내려다보는 느낌이 나는 구도다. 주저하면서 마주한 눈빛이 그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채팅창을 보지 않아도 무슨 반응이 나오고 있을지 대충 예상이 갔다.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이라도 얼굴을 두껍게 하는 게 맞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초장부터 헤어스타일을 지적받지 않았나. 대체 뭘 잘 보이겠다고.
"그럼 혹시 어떤 스타일이 이상형인가요? 저 같은 남자는 어때요. 든든한 대학 선배 스타일로다가."
...씨발, 무리수였나?
아까보다 무거운 정적이다. 마주한 혜진의 얼굴에 별다른 표정 변화가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성호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보통 바로 비웃는다든가, 웃으며 손사래친다든가 하는 자연스러운 리액션이 나와야 할 터인데. 정색을 유지하고 입을 다무는 게 일부러 이쪽을 엿 먹이나 싶을 정도였다.
대화가 끊긴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가슴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쪽팔림이라는 단어로 대강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상형.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렇게 오래 생각하고 한다는 대답이 고작 저거다.
성호의 원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혜진은 턱을 괸 손을 풀고는 태연히 머리를 쓸어넘겼다. 딱히 카메라를 의식하고 하는 행동 같지는 않았음에도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끈다. 앞에 있는 사람이 똘주같은 사람이었다면, 성호도 불퉁한 태도를 유지하고는 무슨 말이라도 쏘아냈을 터였다. 혜진의 앞에서는 그게 힘들었다.
혜진이 내뱉은 대답은 성호가 원하던 방향의 그것이 아니었다. 저게 무슨 애매모호한 대답인가.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의 티키타카를 이어가기 어렵다. 성호가 재빨리 다른 질문을 내뱉으려던 찰나, 혜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 생각났어요."
"그렇지. 솔직히 이상형 정도는 다들 있잖아요? 누구 연예인 닮은 사람이라든가... 저도 트러블 지아 같은 스타일 좋아한다고요. 어차피 이상형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칡즙 좋아하는 사람이요."
뻘쭘함을 벗어던지기 위해 열심히 말을 잇던 성호가 다시 혜진을 쳐다봤다. 헛소리를 내뱉은 혜진은, 이전과는 다른 표정을 짓고는 성호를 빤히 바라본다.
선홍빛 입술이 삐뚜름히 기울었다. 귀찮다는 듯, 성가시다는 듯 날카롭던 눈매가 부드럽게 곡선을 그린다. 그것만으로도 변화는 극적이었다. 무심하게 느껴지던 인상이 꽃이 활짝 핀듯 환하게 느껴졌다. 사람의 인상이 이렇게도 반전할 수 있는 거구나.
혜진이 지금 자신을 놀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성호는 잠깐동안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