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 169 내 취향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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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스트리머 활동 전에는 어떻게 지냈어요? 이것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노르드님이 워낙 사적인 이야기를 안 하다 보니까."
"먹고, 싸고, 자고 했겠죠."
"...저 지금 자극하는 거죠? 열받는 거 보고 싶어서."
"으음. 아니에요. 어... 사실 일상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설명하기 힘들어서. 제가 스벅님한테 평소 뭐하고 지내시냐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실 거 같아요?"
"그야 방송하고, 게임하고, 엘튜브 보고... 뭐 남는 시간에 영화를 본다던가 한다고 말하겠죠. 음, 조금 애매하긴 하네. 그래도 전체적인 그림이라는 게 있잖아요? 시청자분들이 궁금해할만 한 거. 애초에 노르드님 방송 전에 뭘 하셨는지도 다 모르잖아. 대학을 다녔다던가, 알바를 했다던가 하는 거."
혜진은 의자에 파묻히듯 깊게 등을 기댔다. 의자 팔걸이에 머물러있던 두 팔이 복부 위쪽에서 가는 몸을 감싸 안는다. 점점 움츠러드는 모습이 어딘가로 숨는 것처럼 보였다. 땅을 파고드는 두더지를 연상케했다.
"말할 게 별로 없어서요. 독립하고서 그냥 생활을 하느라 바빴... 바빴죠. 그래서 기억나는 게 별로 없어요. 저는 진학도 안 했고."
"어, 선생님 고졸이었어요? 아. 이거 비하 발언 아닙니다. 조금 어감이 이상하네. 크흠, 암튼 그럼 완전 백수잖아. 놀다가 방송 시작한 거예요?"
"...백수. 그렇네요. 너무 아무것도 안 해서 기억이 안 날 정도야."
"아니, 여러분 돌 좀 던지지 마 봐. 무슨 질문을 못하겠어. 다른 썰 별로 없으면 나이트폴 관련해서 말씀해 주셔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왜, 선생님 결전 대회 나왔을 때 대체 본캐가 누구냐고 말 많이 나왔잖아요. 저렇게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 인지도가 없는 게 이상하다고. 그때 커뮤니티에서 분석이니 뭐니 하면서 선생님 본캐 찾는 거 저도 봤거든요. 결국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 못 찾아서 싸움 나기도 했는데. 아직도 그거 캐는 사람들 남아있을걸요? 해외 서버 뒤지고 있을지도 몰라. 집요하잖아, 그쪽 사람들."
"그건 제가 여러 번 대답했는데. 공식 대회 중계방송에서도 했어요."
"엥? 저는 금시초문인데."
질문을 하고 혜진을 바라보던 성호가 고개를 돌린다. 책상 좌측에 있는 모니터였다. 화면의 사분의 일 정도를 차지할 것 같은 커다란 채팅창이, 성호의 의문에 대답하듯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잠깐 채팅을 확인하던 성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노르드 닉 쓰는 게 본캐? 아이씨, 그런 연막 말고 진짜요. 솔직히 선생님 방송 보고 누가 그 말을 믿겠어요. 실력은 둘째치고 빌드 짜는 거나 게임 보는 각이 뉴비일 수가 없는데. 저는 솔직히 북미나 유럽 오픈 때부터 했던 고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선생님 직접 보기 전에는 나이 좀 있을 줄 알았어. 그때 게임하던 사람들 보면 삼십 대 유저들도 많으니까."
질문이 거듭될수록 의자에 더 깊숙이 파묻히던 혜진이 몸을 끌어올렸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생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사실대로... 근데 그걸 그렇게 궁금해해요? 알아서 뭐 하려고. 전부터 유명한 유저라고 하면 바뀌는 게 있나."
"아니, 거기서부터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냥이죠, 뭐. 따지고 보면 다른 질문도 다 똑같잖아요. 노르드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는데. 이거 알아서 뭐 하겠습니까? 그냥 겁나게 궁금한 거지.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성호의 말을 듣고 혜진이 채팅창을 확인했다. 가까워진 얼굴에 호들갑을 떠는 채팅들 사이에서, 성호의 말에 동의하는 채팅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손을 들어 올린 혜진이 연거푸 머리를 뒤로 넘겼다. 대답이 궁해질 때면 매번 보여주는 것이, 습관처럼 보였다.
"음. 사실 시작한 지 엄청 오래됐네요. 킹도 여러 번 달았고."
"어, 어? 진짜요? 뭐, 조금 더 오픈 좀 해주세요. 기왕 할 거 확실하게."
"길드에서 쟁도 엄청 많이 나갔어요. 제가 짬을 맞아서 활쟁이를 많이 맡았죠. 성적은 대체로 좋았던 것 같은데, 1위는 별로 못 해봤고"
"아니 아니, 뭐요? 쟁을 나가? 길드는 또 뭐고. 그때가 언젠데요. 몇 년 전인데 그때가."
"칠... 팔 년 전인가."
"..."
"좋은 때였죠. 그때 나이트폴이 참 재밌었는데."
"...그럼 다음 질문입니다."
성호가 쥐고 있던 대본을 다음 장으로 넘겼다.
이어지는 문답은 대부분 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졌다. 성호가 준비한 질문들은, 한차례 여과된 것이었다. 언제나 선을 넘나드는 시청자는 적지 않게 존재하는 법이다. 시청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건 더했다. 생생한 느낌을 살리겠다고 후원으로 즉석에서 질문을 받다 보면, 어떤 대참사가 일어날지 몰랐다. 사생활을 깊이 캐묻는 질문이나 정도를 넘어서는 질문을 방지하기 위해서 선정 과정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럼에도 만들어낸 대본에 유독 사적인 질문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얼굴을 공개했음에도, 노르드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너무나 적었다. 본명이 무엇이며, 방송을 하기 전에는 무엇을 했고, 지금은 왜 독립해서 살고 있는지. 시청자들은 노르드라는 스트리머에 대해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비밀은, 그게 비밀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마련이다. 그건 꽃에 벌들이 모여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혜진은 자신의 과거와 관련된 질문에는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적어도 성호와 시청자들이 느끼기에는 그랬다. 일부러 민감한 질문을 제외했음에도, 원하는 답변이 돌아오지 않는다. 조금 정도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풀어도 괜찮지 않은가 하고, 성호는 생각했다.
물론 혜진의 입장에선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게 없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다음 질문... 선생님? 조금 앞으로 나와주세요. 왜 점점 뒤로 가. 몸은 왜 내려가고. 이 인간이 진짜."
"의자가 편하네요. 이따 브랜드 좀 알려주세요."
"...다음 질문입니다. 아, 선생님 동생분에 대한 질문이네요. 이 질문도 꽤 많았어요. 동생분도 너무 예쁘셔가지고. 직관 중계 카메라에 잡혔을 때, 이때 진짜 레전드긴 했죠. 저희 모여있는 채널에도 바로 움짤 올라왔죠? 기겁을 했는데, 진짜. 시청자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저희는 뒤풀이로 노르드님 얼굴 알고 있었잖아요? 이게 무슨 사고인가 했지. 이것도 좀 궁금하네. 방송에서 이거 썰 푸셨어요?"
"말했던 것 같은데요. 캠방하면서."
"...아니라는데요? 여기 봐봐. 존나 짧게 했으면서 무슨 지럴, 크흠. 말 좀 이쁘게 합시다들. 선생님 썰 풀이에 하자가 많은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설명이 너무 부족해요, 진짜로. 설명충도 문제지만 너무 없어도 문제거든요.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어차피 뭐 숨길 필요도 없잖아. 이건 다 오픈된 건데."
"자세히 풀었던 것 같은데. 저 날 동생이랑 직관 가서 카메라에 찍힌 거예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동생분이랑 사이가 좋은가 봐요? 원래 자매 사이는 같이 스포츠 직관 다니고 그러나? 저는 진짜 상상도 못할 경운데요. 이런 거."
"으음. 좋은 편이죠. 그리고 티켓도 두 장을 받은 거라."
"받았다고요? 개막전 티켓 엄청 구하기 힘들잖아."
"아... 무상님한테 받았어요. 연습 도와준 대가로."
"뭐? 아니, 그런 걸 먼저 말해야지! 프로 연습을 도와줬으면서 뭐야. 그럼 무상이 쓴 빌드 직접 알려준 거예요? 그냥 참고만 한 게 아니라?"
"알려준 건 아닌데요. 그냥 스파링 느낌으로 몇 판 했는데."
잠깐 소요가 일었다.
시끄럽게 조잘거리는 성호를 옆에 두고, 혜진은 채팅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리만 들리지 않았지 거기도 소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진짜 별거 아니에요. 너무 호들갑 떨면 제가 조금."
만류하는 말에도 상황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채팅창은 자기들끼리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무상이라는 이름이 곳곳에서 언급됐다. 신나게 멘트를 이어가는 성호도 그걸 멈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지지부진하게 흐르던 인터뷰에서 뭔가 구미가 당기는 내용을 이끌어냈다는 생각 때문일까. 혜진이 의자에 더 깊숙이 파묻혀갈 무렵에야 채팅창이 진정될 기미를 보였다.
"그럼 따지고 보면 무상님도 내 사제쯤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선생님한테 배운 거 제가 제일 빠르지 않아요? 애초에 발견을 내가 했는데, 그쵸? 선생님."
"스벅님은 파문이에요."
"또 왜요. 아, 뒤로 좀 그만 가시라고."
성호가 의자를 잡아끌면, 혜진이 힘없이 책상 앞으로 끌려왔다.
"알았어요, 알았어. 이 얘기는 조금 있다가 다시 하죠? 어차피 빌드 관련 빌드도 남아있으니까. 그럼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서, 노르드님은"
이어지는 질문이 끝도 없었다. 성호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잠깐 대본 쪽을 흘끗 바라본 혜진은, 체념했다는 듯 다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무표정한 얼굴에 음영이 짙어진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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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담이니까 답변 해주세요."
"으음... 쪼망이랑 칼고 정도?"
"어, 두 분 반말하는 사이에요?">
아삭.
입안에 있는 푸성귀가 아삭거리며 진액을 쏟아냈다. 씁쓸한 채소의 맛이 상큼한 드레싱과 어우러졌다. 별로 선호하는 맛이 아니었음에도, 성현은 그걸 몇 번이나 더 씹은 뒤 삼켰다. 채소란 것들은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을 주지 않았다. 샐러드 사이사이에 있는 하얀 닭 가슴살도 그렇고. 드레싱 때문인지 불쾌한 레몬향이 혀끝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다시 샐러드를 집어올리는 과정에서도, 눈은 모니터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커다란 와이드 모니터에 낯선 얼굴과 낯익은 얼굴이 공존했다. 짙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기름지게 올려 넘기고는, 선이 굵은 얼굴을 이리저리 뒤트는 못 미더운 남자.
그 옆으로 제법 큰 게이밍 체어에 눕는 것처럼 몸을 기댄 여성이 자리했다. 조명을 받은 하얀 피부가 유난히 깨끗했다. 짙은 회색의 니트가 드러내는 목선이, 자꾸 그의 시선에 걸리적거렸다.
둘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았다.
스벅의 방송은 성현이 평소 즐겨 보는 방송이 아니었다. 플랫폼 대전을 거치면서 예의상 팔로우는 해놨으나, 애초에 방송의 성격이 그와는 잘 맞지 않았다. 매번 하이텐션을 유지하며 언성을 높이는 게 그랬다. 방송을 보고만 있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듯해서, 사실 성현이 스벅의 방송을 보러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그래, 이번에도 그랬을 터였다. 혜진이 합방을 한다는 소식을 듣지 않았다면.
성현은 스벅과 노르드의 합방 소식을 스벅의 홍보를 통해 알게 됐다. 그전까지, 평소처럼 혜진과 메시지를 나누면서도 이렇다 할 언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과 관련된 상담을 그토록 자주 요청했으면서, 왜 이번 합방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을까. 합방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성현의 머리를 지배한 상념이다.
그건, 아직까지도 유효했다.
"근데 저도 궁금했거든요. 저희 뒤풀이 때도 봤잖아요. 칼고님이랑 노르드님이 꽤 친한 것 같던데. 합방도 많이 하시고... 어떻게 친해지신 거예요?">
성현의 눈이 시청자 수가 표기된 화면 하단으로 향했다. 스벅이 열심히 홍보를 한 보람이 있는지, 지금 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놀랄 정도로 많았다. 아마 지금 저스틴 한국 서버 중에서 시청자가 가장 많은 방송일 것이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스벅 정도의 규모를 가진 스트리머가, 마음을 먹고 홍보를 감행하면 파급력은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홍보하는 방송의 내용이 내용이지 않은가.
노르드라니. 쪼망을 제외하면 합방을 했던 적도 없는, 희소한 유명인이다. 쪼망과의 합방도 노르드의 방송에서 진행되었으니... 제대로 따져 보면 스벅의 방송이 최초였다. 최초로, 노르드가 게스트로 출현한 방송.
뭔지 모를 후회가 솟구쳐 올랐다.
"어, 이거 우결충들 회로 불타는 소리 들리는데요? 크흠. 저랑 비교하면 어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이번 대회는 저랑 선생님이 팀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삭.
잘게 자른 양배추가, 입 속에서 형체도 남기지 않고 바스라졌다.
성현은, 역시 스벅의 방송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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