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171 숙련된 조교의 시범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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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꽤나 재밌는 일이다.
그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온 신경을 모니터에 집중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훤히 내다보인다. PC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 바둑이나 장기 따위를 보면서 훈수가 남발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둑판 바깥에서 바라보면 하수들의 시야도 크게 넓어지는 법이다.
뒤에서 지켜보는 바둑판은 그렇게 크지 않다. 뻔히 보이는 수를 두지 못하고 방황하는 기객을 보면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에 입으로 훈수를 토해내기 마련이다. 게임도 다르지 않았다. 매번 시청자들이 스트리머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형편없다고 비웃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게 쉽게 느껴지곤 하니까. 저렇게 대놓고 들어오는 공격을 왜 막지 못하나. 다른 화면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닐진대.
그래서인지 소위 '실력 방송'이라 일컫는 방송이 성립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어지간한 플레이로는 시청자의 눈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관찰자의 시점은 한없이 높이 올라가서, 세계 최고 수준의 플레이를 보고도 잘못된 부분을 찾아낼 지경이다. 누구나 감탄할 수 있는 플레이라는 건... 도대체 어떤 플레이를 말하는 건지.
성호가 애초부터 컨셉 플레이를 밀고 나갔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실력 방송은 탑 프로들에게나 허용된 일이었다. 하물며 국민 게임이라 평가받는 나이트폴에 이르러서야. 대다수의 시청자가 게임에 대해 면밀히 알고 있는 상황이다. 수많은 매드무비나 프로 리그 영상으로 익숙해진 눈은 슈퍼 플레이를 판가름하는 기준도 엄격하기 그지없었다. 고랭크에서 백날 꾸준한 모습을 보여줘 봤자, 실수 한 번에 시청자들의 혀차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일이 잦았다. 실력파로 추앙받던 방송인들도 금방 한계를 깨닫고 예능 컨셉을 잡아 우회하기 마련이다. 아니면 어중간한 위치에서 시청자를 잃고 낙오되던가.
그러니까, 성호는 지금 이 순간이 경이로웠다.
푸른빛을 발하는 적축 키보드 위다. 카메라가 집요하게 포착하고 있는데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얼마나 가볍게 누르는지 키를 입력할 때 발생하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것 때문인지 빠르게 움직이는 손가락이 오히려 여유롭게 느껴졌다.
하얀 피부에 가늘고 길게 뻗은 손가락. 키보드보다는 피아노 건반에 어울릴 것 같은 손가락이다. 여유롭고 우아한 움직임까지 그랬다. 이게 지금 나이트폴을 조작하고 있는 거라고.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결과물이 아니었다면, 정말 다른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역동적으로 흔들리는 화면은 익숙한 나이트폴의 개인 화면이다. 정면을 향하고 있는 버클러가 시야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방음 기능이 탁월한 부스 안에서는, 키보드 소리를 대신해 철과 철이 맞닿아 일으키는 충돌음이 계속 울려 퍼졌다. 냄비 뚜껑만한 크기의 작은 방패가 무서운 기세로 쇄도하는 창을 연달아 쳐내면서 발생하는 소음이다. 혜진의 뒤에서 그 광경을 생생히 관람하던 성호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건지. 어지러운 와중에도 일인칭 시점은 창을 쳐낸 충격으로 맹렬히 흔들렸다.
"이렇게 어깨를 보고 쳐내는 거예요. 버클러는 패링 시전 속도가 빠르니까. 보고 반응하는 식으로 움직여도 속도가 맞아."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어깨는 언제봤는데? 화면존나돌아가는데 언제봤음ㅅ;ㅂ;;]
[쓰벅 어리둥절.... 시청자 어리둥절....]
[아ㅋㅋ 보고 따라하라고 몸소 보여주시잖아]
[창을 어케 쳐내노 ㅅ1발려나]
[페이크 구분은 어케함? 몸통 흔들리는 건 똑같은거같은데?]
[눈나...손가락이 넘무 야해요...]
[랭커는 저런거 다 할줄아는거임?]
[지,랄ㄴ]
[집중할때 표정보고 바지내렸음]
[노르드사랑해]
잘하는 사람인 줄은 알고 있었다. 방송에서 그녀를 처음 상대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광전사를 마주했을 때 느끼던 압박감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럼에도, 혜진의 뒤에서 그녀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건 전혀 다른 감흥을 선사했다. 희고 가는 손가락의 유려한 움직임이, 서슬 퍼런 칼고의 공격을 가볍게 쳐내는 결과물로 이어진다는 건... 납득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패링 효과음이 극적인 연출을 더하는 것 같았다.
혜진이 성호를 향해 말을 하는 와중에도 전투는 치열하게 진행됐다. 순수하게 패링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혜진은 완벽한 타이밍으로 패링을 성공했음에도 반격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연습 상대를 자처한 칼고는 별다른 말도 없이 철저히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공격. 패링의 반동으로 창대가 크게 휘어진 다음에도, 곧장 자세를 회복하고 창을 뻗어온다.
성호도 그저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연습을 거듭하면서 소위 '겜부심'이라 말하는 자존심은 닳아 없어지기 직전이었으나, 게임을 잘하고 싶다는 의지가 꺾인 적은 없었다.
시청자들의 비웃음을 환호로 바꿔주겠다는 개인적인 다짐도 여전했다. 혜진의 말에 따라,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도 창을 휘두르는 칼고의 몸을 읽어내기 위해 눈이 빠져라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녀의 말대로 어깨가 흔들리는 것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그가 고꾸라지기만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의 기대 아닌 기대를 배신하기 위해.
그래도, 이건 정도가 과했다.
미친 듯이 창을 찔러대는 칼고도, 그걸 받아치는 노르드도 일반적인 범주가 아니었다. 어깨를 확인하라 하더니. 혜진의 말에 따라 칼고의 어깨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으면, 조그마한 흔들림에도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움찔거리며 긴장하게 된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적의 공격과 허초를 읽어내는 수 싸움이다. 저 흔들림이 공격의 전조인지, 단순히 페이크를 주기 위한 의미 없는 동작인지.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데에도 피가 말렸다. 혜진은 저걸 어떻게 분간하고 있는 건가. 이런 것부터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치솟았다.
페이크를 이어가던 칼고가 드디어 팔을 움직이면, 무작정 뻗는 것 같은 창 끝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공격 도중에 무빙을 섞으면서 예상한 타점을 어긋나게 만드는 테크닉이다. 복부를 찔러오는 공격이 스탭에 따라 때로는 상단으로, 때로는 하단으로 꺾여서 들어왔다. 받아치는 입장에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혜진이 그에게 추천하고 지금 몸소 보여주고 있는 버클러는, 확실히 나이트폴에서 가장 빠른 패링 모션으로 유명했다. 작은 방패를 짧게 끊어치는 간결한 동작. 패링을 주력으로 운영하는 빌드에서 주축으로 사용될만한 장비였다.
그러나 나이트폴에 완벽한 무장은 없다. 버클러는 자체적인 크기가 작은 만큼 판정이 좁다는 명확한 단점도 가지고 있었다. 검이나 도끼처럼 공격 면적이 넓은 무기를 상대할 때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 단점이었으나, 타점이 극히 좁은 창을 상대할 때는 그 단점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타이밍을 정확히 읽어도 조준점이 어긋나면 그대로 패링에 실패한다.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을 읽는다고 패링이 먹혀들어가는 게 아니다. 창 끝이 향하는 방향까지 파악해야 완벽한 파훼가 가능했다. 실패하면, 치명상을 입는 건 자신이다. 하물며 찔러오는 창 끝이 흔들리기까지 한다면야.
...이걸 따라 하라고? 무슨 그림 그리는 뽀글 머리 아저씨도 아니고.
"아니, 선생님. 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너무 많거든요? 저거, 저거. 방금 칼고님이 페이크 칠 때 패링각 안 보고 그냥 빠졌잖아요. 그거 구분 어떻게 하는 거예요? 도저히 못하겠는데."
"어깨 보라고 했잖아요. 창이 아니라 어깨 중심으로 전신을... 페이크는 흔들리는 정도가 달라요. 아, 이건 진짜."
챙!
또 한 번의 일격을 막아낸다. 어떤 식으로 무빙을 친 건지 가파르게 궤적이 바뀌는 창 끝을 조그마한 방패가 정확히 포착하고 튕겨냈다. 완벽한 타이밍에 성공했는지, 방패와 맞닿은 창이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크게 휘었다. 맹렬히 공격을 이어가던 창병에게 또다시 커다란 빈틈이 생겨났다. 실전이었다면, 이 패링 한 번으로 승패가 결정 났을지도 모른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성호는 과하게 집중한 탓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문질렀다.
혜진의, 노르드의 개인 화면. 어느샌가 다시 자세를 회복한 칼고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달려들 준비를 마쳤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혜진은, 잠깐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는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켰다. 머리 위로 팔을 길게 뻗어올리면, 헐렁한 소맷자락의 니트가 가느다란 팔목을 타고 내려갔다. 눈을 뗄 수 없는 역동적인 전투에 집중하던 시청자들의 시선이 대번에 우측 상단, 작게 축소된 캠 화면으로 이동했다.
칼고가 창을 낮게 내리깔고 몸을 움츠렸다. 노르드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지금, 둘 사이의 거리는 몇 걸음에 불과했다. 잔뜩 웅크린 창병이 거세게 땅을 박차면, 한 호흡에 창 끝이 몸을 꿰뚫을 수 있을 터다.
화면 밖 혜진의 태연한 기지개를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공격 태세를 갖춘 칼고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맹렬하게 휘두르던 창을 다시 앞으로 내지른다. 속임수도 없이 직선으로 뻗어오는 창이 무섭도록 빨랐다. 찰나의 순간 가까워진 칼고의 창이 정확히 급소를 노렸다. 아직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성호가, 경고의 한마디를 내뱉기도 전이었다.
창이 노르드를 꿰뚫기를 기다리는 순간.
예상했던 경고음이 들려오지 않는다. 살이 꿰뚫리는 소리를 대신한 건, 쇠가 긁히며 발생하는 날카로운 소음이었다. 어느샌가 움직인 검이 간결한 동작으로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는 창 끝을 흘려냈다.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던 혜진의 손이 마우스를 붙잡고 있었다. 흘러 내려오는 소매를 붙잡지도 않고 움직인 팔이다. 팔꿈치까지 내려간 소맷자락이, 의자 팔걸이와 자연스럽게 맞닿았다.
진도가, 진도가 너무 빠르다.
"칼고님. 기지개 매너 해주세요."
태연히 내뱉는 말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교수님 진도가 너무빨라요]
[기지개 원몰타임...제발]
[진짜 미쳤네]
[방금 노르드 팔 호다닥 움직이는거봤음?ㅋㅋㅋㅋㅋ 넘 커엽]
[칼???패링??? 뭘본거지]
[겨루기 판정 유도해서 흘린거같은데...ㅎ 어이없긴하네요]
[노르드사랑해]
[스벅 얼빠진 표정 보는 방송인가요?]
[성호야... 정신차리고 보내드려라... 저 선생은 눈높이가 이상하다...]
자신의 본래 실력이 어떻든, 시청자의 시선이라는 건 본래 무한한 자신감을 부여하는 법이다.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자신감.
그건 대상의 랭크가 어떻든 상관없이 적용되는 일이었다. 성호도 숱한 랭커들의 방송을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오지 않았나. 게임의 수준 차이는 있을지언정, 저런 플레이를 흉내 낼 수는 있을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을 품고서.
그러니 타인의 나이트폴 플레이를 지켜보면서 이런 막막함을 느끼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그럼, 이제 스벅님이 해보실래요? 충분히 보여드린 것 같은데."
그 뒤로도 수차례 더 패링을 반복하더니 하는 말이다. 반격도 하지 않고 공격만 받아내기를 수 분. 그토록 맹렬한 연격을 상대했음에도 상처는 거의 없었다.
혜진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개인 화면에서 노르드의 일인칭 시야는 테두리가 살짝 붉게 물든 게 전부였다. 이 정도면 생채기가 난 수준이다. 그마저도 패링을 완벽히 성공하지 못했을 때 빗겨나간 창에 의해 생긴 상처일 터였다. 혜진은 이번 전투 동안 일격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주무기가 아닌 창을 들었다지만, 그 칼고를 상대로.
이런 것도 숙련된 조교의 시범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숙련이 정도를 지나쳤다. 교육생의 절반, 아니. 극소수도 흉내 낼 수 없는 시범을 대체 어떻게 따라 하라는 건지. 어느새 의자를 돌려 자신과 마주한 혜진을 바라보면서, 성호는 할 말을 잃었다. 진지한 눈빛을 보면 혜진이 내뱉은 말이 조금도 농담 같지 않았다. 저건, 진짜로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담은 표정이다. 대체 뭘 기대하고 있는 걸까, 이 사람은.
성호는 바로 혜진과 자리를 바꿔 앉았다. 절대 따라 할 수 없을 거라는 자신의 기분을 둘째치고, 여기서 발을 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은 수만 명의 시청자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혜진의 시선 하나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시청자들은 진작에 자신에 대한 기대감을 모두 내려놓고 있건만, 이 사람은 왜 아직까지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실력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인간들보다 훨씬 뛰어난 안목을 가졌을 텐데.
"설정 다시 잡으시고. 창 끝에 현혹되지 말고 어깨에 집중하세요. 나중에 가면 어깨가 아니라 전체적인 움직임에 눈이 갈 텐데, 그건 익숙해진 다음에나 가능하니까. 일단은 어깨에만."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게 나이트폴 이야기가 맞나 싶다.
넋이 나간 상태로 게임 설정을 다시 잡고 있으면, 책상 한쪽에서 팔을 올리고 턱을 괸 혜진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의 플레이를 유심히 관찰하기 위함일까. 이전보다 거리가 유난히 가까웠다. 걸리적거리는지 머리를 쓸어넘길 때마다 성호가 있는 방향으로 샴푸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꽃 냄새와 흡사한 향기는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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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럼이 ㅋㅋ 게임에 집중안하냐? 으딜 선생님을 넘봐 뒤질라고 ㅋㅋ
뜨끔한 성호가 시선을 돌렸다.
그래, 우선은 눈을 번뜩이며 허공을 찔러대는 저 괴한을 상대할 때였다. 어깨... 그놈의 어깨에 집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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