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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6화 〉 176 ­ 큰일을 앞두면 방광을 비우자 (176/243)

〈 176화 〉 176 ­ 큰일을 앞두면 방광을 비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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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대항전.

아바타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이벤트 대회는 준비 단계서부터 대성황을 이뤘다.

개인마다 고정 시청자 몇 천씩을 거느린 스트리머가 대거 참가한 대회다. 방송에서 만나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홍보 효과가 나타났다.

연습 기간이 길게 주어진 것도 거기에 한몫을 더했다. 팀으로 맺어진 최초엔 서먹했던 이들이, 연습하는 과정에서 점차 사이가 돈독해지는 모습. 합을 맞추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기 마련이다. 남녀 커플이라는 컨셉은 과몰입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사랑 이야기가 자극적으로 다가오는 건 인터넷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몇 주간의 연습 과정에서, 커플 대항전이 불러 모은 관심사는 대단히 컸다.

그러니, 공개 방송에 모여든 시청자도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네!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아바타가="" 주최하고,="" 노스텔지아가="" 협력하는.="" 제1회,="" 나이트폴="" 커플="" 대항전!="" 저는="" 캐스터,="" 최주환입니다.="" 반갑습니다!"=""/>

중계방송이 시작된 곳은 저스틴의 아바타 공식 채널이다.

정규 방송이 진행되는 채널은 아니었으나, 아바타 측이 주최한 이벤트전이나 특별 컨텐츠가 있는 날이면 매번 불을 밝히는 곳이다. 공식 방송이 시작되기 몇십 분 전부터, 이미 많은 시청자들이 모여 문을 두드렸다. 저스틴 플랫폼은 시청자의 수에 따라 방송이 나열된다. 모여든 시청자는 그 자체로 홍보 수단이나 마찬가지였다.

금방 몇 천명을 넘어선 시청자는 눈덩이처럼 빠르게 증가해서, 방송이 시작되기를 알리는 카운트가 0으로 수렴할 무렵엔 이미 몇만 명이 넘는 생방송 시청자가 카운트다운을 함께하고 있었다. 120초가 넘는 슬로우 모드를 걸어놨음에도 그게 체감되지 않을 정도로 난잡했다. 정리되지 않은 채팅창은, 이모티콘이나 AA(ASCII Art:텍스트를 활용한 그림)가 잔뜩 떠다녔다. 도배 채팅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관리자 메시지가 부산스럽게 올라왔다.

"글쎄요. 사실 이번 대회에 많은 분들이 주목하신 부분은 역시 듀오 게임이라는 점 아니겠습니까? 보통 나이트폴 대회하면 육 대 육의 팀게임, 아니면 결전을 생각하니까요. 저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살펴봤습니다만, 이게 상당히 속도감이 넘칩니다. 전투가 오래가는 법이 없어요. 한 번의 충돌에서 승부가 반쯤 기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의 인식이라는 게 동시에 달려드는 두 사람을 모두 살필 수는 없으니까요. 교전의 시작점에서 부상이라도 입으면, 그게 커다란 스노우볼로 굴러가서 경기가 금방 결판나는 그림이 많이 나왔어요. 시청자분들이 지켜보실 관점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격돌의 순간을 잘 지켜보셔야­">

세 명의 중계진을 비추던 카메라가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프로 리그를 시청하는 대다수의 시청자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대회가 진행되는 경기장의 모습이다. 중계 카메라가 포착한 관중석은 이미 대회를 지켜보기 위해 찾아온 관중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대회에 참가한 스트리머, 엘튜버들의 이름을 적은 치어풀이 곳곳에서 흔들렸다.

[와 만석임?]

[이렇게보니까 ㄹㅇ NPL느낌 나는데? 공식방송느낌 확나네]

[커플죽어]

[어차피 우승은 칼고!!]

[인방충 대회 수준 어마어마하노 ㄷㄷ]

[근데 왜 1회냐 2회도 한다고? ㅋㅋ]

[선수들 입장부터하지 관중봐서 뭐하라고]

[저수들 인싸였네...]

[응 방구석에 쳐박힌 아싸찐따들이 훨씬많아]

[빨리 겜이나 시작하지]

[우나밍 보여줭]

카메라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중계진과 관중석을 번갈아가면서 비추는 모습하며, 곧 선수들이 입장할 경기석을 조명하는 모습이 마치 공식 리그의 중계방송을 연상케했다.

이어진 중계 화면에서 조명이 꺼지고 높은 일렉 기타 사운드가 울려퍼지는 것까지. 프로 리그의 선수 입장 연출과 매우 흡사했다. 점점 볼륨을 올리는 웅장한 배경음을 뒤로 한 채, 텐션을 높인 중계진들이 선수 소개 멘트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호응을 시작한 채팅창이 과도한 입력으로 눈에 띄게 버벅거렸다.

<"네!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합니다!="" 연출은="" 물론이고="" 긴장감까지="" 리그="" 못지않은데요!="" 먼저="" 블루="" 사이드에서="" 입장하는="" 두="" 선수입니다!="" 칼고="" 선수와="" 꼰닢="" 선수인데요.="" 아,="" 뭔가를="" 준비했나요!="" 이="" 선수가="" 쇼맨십이="" 상당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대회를="" 앞두고="" 진행한="" 사전="" 인터뷰에서도="" 우승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과감한="" 도발을="" 선보였는데요­"=""/>

원형으로 이루어진 경기장의 양 끝, 홈처럼 자리한 선수 입장석에서 어렴풋한 인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커플 대항전 로고를 띄워두고 있던 경기장 중앙의 메인 스크린도 덩달아 화면을 교체했다. 카메라가 향한 곳은 역시 선수들이 입장을 준비하는 입장석이었다.

와아아아­!

관중석의 함성 소리와 채팅창을 빠르게 밀어올리는 시청자들의 아우성이 중계방송을 가득 채우는 지금.

중계 화면에 잡힌 두 선수가 대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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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어느 쪽 보세요? 역시 칼고? 저쪽도 남녀 밸런스 잘 잡혔다고 평가받는 팀이긴 한데."

중계방송이 시작된 직후였다.

대기실 스크린에서 시선을 돌려 스벅을 바라봤다. 중계진의 멘트가 이어지는 내내 연신 긴장된다 중얼거리던 팀 동료는, 평상시와 같은 낯짝을 하고선 거치대에 올려둔 자신의 스마트폰을 빤히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커다란 TV 스크린에 비교하면 현저히 작은 화면. 분명 똑같은 영상이 나오고 있을 진대, 채팅창의 반응이 궁금하다며 핸드폰 중계 화면을 선택한 모습이다. 그게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옆에서 흘끗 훔쳐본 바에 의하면 인터넷으로 송출되는 핸드폰 속 중계방송은 싱크로도 몇 초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저걸 고수하는 걸 보면...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대회 준비를 앞둔 선수를 배려한다고 편집자 둘은 자리를 떠난 지 오래였다. 내내 나를 담아내던 카메라가 사라지니 그것도 조금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편하다고 하기에는, 곧 다가올 경기에 대한 압박감이 마음에 걸렸다. 내겐 긴장했다는 말을 편하게 내뱉는 스벅 쪽이 훨씬 더 마음 편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다 어림짐작일 뿐이지만.

간신히 제시간에 맞춘 대회는 다소 낯부끄러운 입장 연출과 함께 시작됐다. 전대물이라도 흉내 내는 건가 싶은 꼰닢과 칼고의 기묘한 포즈가 인상적이었다. 잔뜩 구겨진 성현의 표정을 보면 누구의 강요에 의해 결정된 사항인지는 분명한데.

밀기에 약한 인간이니, 꼰닢처럼 강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사람이 먹고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 한동안 캡처된 사진이 팬 커뮤니티 사이에서 돌아다닐 걸 생각하면 꽤나 유쾌한 장면이었다. 물론 본인이야 끔찍하게 생각하겠다만.

카메라에 잡힌 화면이야 어떻든, 입장과 동시에 집중되는 조명이며 환호성은 과연 태연하게 넘길만한 성질의 주목도가 아니었다. 프로 리그 선수 등장과 흡사하게 판을 깔아준 건 저런 똘끼를 마음껏 펼치라는 주최 측의 의도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태연하고 뻔뻔하게 제 끼를 뽐낸 꼰닢은 이 대회에 가장 어울리는 주연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저런 식으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나갈 자신이 없었다. 저런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칼고 쪽이죠. 어지간한 변수는 칼고님이 찍어누를 거고, 꼰님이 생각보다 잘해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역시 꼰닢 엄청 고평가하시네요. 저한테는 칭찬도 별로 안 하면서."

"어. 그건 스벅님이­"

"그만! 알겠으니까 멈춰요."

뭐야. 자기가 먼저 말했으면서.

첫 세트 준비를 마친 지금 중계 화면은 선수들의 자리를 비췄다. 본래 여섯이서 들어가야 할 부스에, 지금은 두 명만 앉아있을 뿐이다. 나란히 앉은 두 명의 남녀가 진지한 얼굴로 모니터를 쳐다봤다. 이전에 익살스러운 얼굴로 몸을 움직이던 꼰닢도 지금은 붉은 기가 맴도는 갈색 머리를 올려 묶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대회 모드의 꼰닢이라도 따로 있는 건지. 안 그래도 낯선 얼굴이 더 새롭게 다가왔다.

장소가 장소인 탓도 있겠다. 프로 선수들도 경기를 하는 부스 안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의 수까지 고려하면, 공식 대회와 다를 것도 없고. 가슴에 얹어진 돌덩이가 무게를 더하는 느낌이다. 이래서 매도 먼저 맞는 게 편한 법인데, 참가자 입장에서 지켜보는 대회는 마냥 재밌지만은 않다.

"불협님이 변수 만들 수도 있지 않아요? 조합은 나름 느낌이 매섭잖아. 둘 다 장병기 쓰는 빌드인 것 같은데요?"

"글쎄요. 거리 벌리려고 뒷무빙 치다가 창 대시 공격에 구도 망가지는 그림밖에 안 그려지네요."

"으음."

글쎄, 적어도 내 판단에 의하면 그랬다.

칼고와 꼰닢의 상대로 자리한 건, 불협화음과 파스텔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저스틴의 동업자 둘이다. 각각 전 시즌 퀸, 룩 상위 티어로 준수한 랭크를 가진 팀이었는데, 사실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 팀을 주의깊게 살피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밸런스가 잘 잡히기는 했으나 그런 면에서 따지면 우리가 자주 연습했던 파피루스와 우나밍 쪽이 훨씬 위협적이었으니까. 그나마 시즌 도중에 킹까지 찍은 전적이 있다는 불협화음의 개인 기량이 이 팀의 특기할만한 포인트가 되겠지.

거기서 그친다면 칼고가 밀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 여기서="" 칼고="" 선수가="" 파고들어갑니다!="" 불협화음,="" 불협화음="" 놓쳤어요!="" 파스텔="" 위험합니다!="" 이쪽은="" 지금="" 꼰닢="" 선수와="" 대치하는="" 상태거든요!"=""/>

"아. 끝났다."

"예? 아니, 스포 뭐야."

예견된 그림이다.

블루 사이드의 조심스러운 접근으로 첫 충돌이 무산된 다음이다. 사거리의 이점을 가진 불협화음 측은, 뭐가 대수라는 것마냥 대놓고 쌍검을 들고 나온 칼고를 상대로 철저히 거리를 내주지 않으려는 듯 신중한 전투 구도를 유도했다. 서로의 사거리 안에 팀원을 넣어두고,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거리를 좁힌다. 개인 기량이 어떻든 칼고도 저 교집합 가운데로 뛰어들어가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터다.

그러나 둘이라는 숫자로 방진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우함과 동시에 돌파당하는 꼴은 면할 수 있었지만, 지지부진한 대치 구도를 유도한다고 한들 어느 쪽이 유리해지는 건 아니었다. 결국 상대를 패주 시켜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 최대한 천천히 거리를 좁혀 합격을 시도하려던 불협화음 팀은, 기동성을 활용해 계속 포지션을 바꾸는 칼고의 움직임에 흔들리고 말았다.

상대적으로 육중한 장병기를 거머쥔 상태로 칼고 쪽을 노릴 수는 없는 상황. 그렇다고 칼고를 무시하고 꼰닢을 향해 달려들면 후환이 두렵다. 의도치 않은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지고, 꼰닢을 빠르게 처리하지 못한 블루는 연이어 페이크를 시도하며 대치 구도를 깨뜨린 칼고의 손에 의해 각개격파 당하는­ 비교적 허망한 그림이다.

수비적인 빌드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연습 과정에서 기동력을 앞세운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합격을 통해 비교적 약체로 평가받는 꼰닢을 빠르게 무너뜨리는 전략을 구상해온 걸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기량이 고루 뛰어난 팀 특성상 순간적인 일대일 구도가 만들어져도 꼰닢을 바로 돌파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짐작에 불과하다. 저 팀의 연습까지 챙겨볼 시간은 없었거든.

결과가 이렇게 나온 이상 이미 승기는 기울어버린 셈이나 마찬가지다. 다음 세트 칼고와 꼰닢이 똑같은 빌드로 밀어붙이면, 패배한 측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패한 첫 번째 전략을 다시 사용할지, 아니면 또 다른 패를 꺼내들어야 할지. 이걸 고민해야 하는 것부터가 커다란 문제니까.

때마침 중계 카메라에 잡힌 두 사람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매번 수천 명의 시청자들 앞에 노출되는 스트리머들도, 대회라는 특수 상황과 무대 앞에선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스 앞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 중인 중계 카메라도 신경 쓰일 게 분명하고. 애초에 현장에서 울려 퍼지는 관중들의 환호성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수도 있다. 지난 개막전 직관을 했던 경험이, 몇백 명의 관중이 함께 부르짖는 함성 소리가 얼마나 웅장한지를 참 선명하게도 알려왔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긴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말이다. 사실 아까부터 갈증이 나는데도 억지로 물 마시는 걸 피하고 있다. 경기 도중에 화장실 신호라도 오면 그게 무슨 개망신인가. 여자의 방광이란 생각보다 신축성이 떨어지는 기관이라는 걸 지난 몇 달간의 체험으로 깨달은 나였다.

아무튼... 사고를 방지하는 건 철저한 준비에서 시작하는 법이니. 그리고 내 짐작이 맞다면, 곧 다가올 우리의 첫 번째 게임은 경기 시간이 길어질 가능성도 꽤 높았다. 괜히 첫 경기가 고비라고 징징대는 게 아니다.

<팀명:파밍/>

파피루스, 우나밍

그래, 대회라는 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않나.

나는 대진표를 보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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