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179 잘 보면 되던데
* * *
[미쳤다]
[눈나...나 쌌어...]
[걍 무친련이네 혼자 드리블치는게 ㅋㅋㅋㅋㅋㅋ]
[이제 노르드 무지성 풀배팅하는걸로 ㅎ]
[진짜 이상적인 플레이.... 광전사는 수준이 다르다]
[나밍이 울어욧.ㅠㅠ]
[우리 스벅도 칭찬 좀 해주세요]
[이 쒸,,불련땜에 포인트 다날아감 ㅋㅋ]
[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
[아군 칼찌 개무리수라 생각했는데 어이가없네 씹]
여운이 맴돌았다.
한바탕 폭발적인 반응이 지나간 다음이다. 노르드의 광전사가 남긴 붉은 발자취가 아직까지 선명히 남아있었다. 경기를 요약하는 것처럼 흘러나오는 하이라이트 화면에서, 미친 듯이 대검을 휘두르는 광전사의 모습이 보였다. 흥분한 채로 멘트를 쏟아내는 중계진의 목소리가 시청자의 마음을 대변했다.
홀로 남은 우나밍은 두 명을 상대로 오래 버티지 못했다. 교차되는 공격에 스태미나가 다 떨어지고 난 다음. 무릎을 굽힌 방패병의 머리로 육중한 대검이 단두대처럼 나타났다. 이미 한차례 피를 머금은 대검이 요사스럽게 번들거렸다. 옵저버의 시야는 대검을 떨어뜨리는 광전사의 붉은 안광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줬다. 누가 승부의 주역인지를 강조하는 연출이었다.
다음 순간, 이어진 화면은 부스 안에서 재킷을 벗어던지는 혜진의 모습이다. 짙은 남색의 재킷이 비어있는 의자에 올라갔다. 단정하게 목 아래까지 잠근 단추를 몇 개인가 풀어헤친 그녀는, 그제야 마음이 풀렸다는 듯 의자 뒤로 등을 기댔다. 고개를 숙이자 얼굴에 드리운 음영이 한층 더 짙어졌다. 중계 카메라가 집요하게 혜진의 얼굴을 포착했다.
[눈나ㅏㅏㅏㅏㅏㅏㅏ 나죽어]
[ ㅜㅑ]
[와 대회에서 육수조련을 하노 무친련;;]
[이건 귀하네요]
[카메라 일 잘하네]
[스벅 ㅈㄴ부럽내]
[확대좀 더해바]
[채팅 뒤집히는거보소 ㅋㅋㅋㅋㅋ]
[어우노,,,쒸벌련들아]
[오늘 공방 짤 존나나오겠다...]
일방적이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되던 매치였다. 대진표가 완성된 이후로 노르드 팀과 파피루스 팀이 맞붙은 적은 없었지만, 다른 팀을 상대한 전적을 비교하는 건 가능했다. 팀마다 연습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스크림의 전적은 데이터로 쌓인 덕이다.
두 팀이 가장 많이 연습했던 상대는 칼고 팀이었다. 토너먼트 대진의 정반대 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과,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한 강팀이라는 평가가 맞물렸다. 몇 주라는 연습 과정에서 수차례 스크림을 반복했다. 커플 대항전에 대한 떡밥이 꾸준히 돌아간 커뮤니티 등지에선, 지금 맞붙은 두 팀의 전력이 비슷한 수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칼고 팀과 연습할 때 나타난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부에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우세를 예상한 시청자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분석이 언제나 정확한 예측을 보장하는 건 아닌 법이다.
<"아! 여기서="" 노르드="" 선수가="" 접근합니다!="" 아까부터="" 전장을="" 가장="" 넓게="" 사용하고="" 있어요.="" 기동성이="" 부족한="" 파밍="" 팀의="" 허점을="" 너무="" 잘="" 찌르고="" 있습니다.="" 빈틈을="" 노리는="" 카운터는="" 이제="" 거의="" 통하지="" 않는다고="" 봐도="" 될="" 거="" 같습니다!="" 전부="" 피하고="" 있거든요!"=""/>
곡예에 가까운 플레이가 이어진다.
이어진 게임에서 쌍검을 들고 나선 노르드다. 한계까지 중량을 줄인 가벼운 차림을 하고는 상대 팀을 농락하는 것처럼 발을 움직였다. 전투의 구도는 이전 세트와 달랐으나, 주도권은 여전히 노르드가 잡고 있었다. 잰걸음으로 빠르게 접근한 노르드의 양손이 교차하며 우나밍을 베어냈다.
서로 병장기를 맞대는 일조차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몇 차례 검을 휘두른 노르드는 민첩한 동작으로 공격을 빗겨내며 빠져나갔다. 우나밍이 뻗어낸 공격은 빈번히 허공을 가르기 일쑤였다. 얕은 상처가 생긴 팔뚝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누가 봐도, 일방적인 게임 양상이다.
[파밍 개ㅈ밥인데 왜케 올려치기한거임?? 개발리는데?]
[노르드가 잘하는거임]
[스벅이 파피루스 마크하는게 충격... 거품이었나]
[빌드가 다 읽혔네ㅋ 걍 노르드가 튀면 절대 못잡는 조합이구만]
[몇주전에 붙었을 때는 거의 비슷한 수준아니었음?]
[그저 갓르드..]
[실수 한번하면 뒤지는데 안죽고있는 노르드가 미친거지]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나는 것 같다는 시청자들의 감상과는 별개로, 부스 안에서 키보드를 조작하는 혜진은 집중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탁, 타닥, 탁
"지금, 다시 찌를 거예요. 푸시하세요."
단조로운 어조로 빠르게 오더를 쏘아낸다.
큰 보폭으로 움직이는 와중에도 시야는 두 명의 상대를 모두 포착하고 있는 상태였다. 스태미나를 회복하기 위한 시간을 내줘서는 안 된다. 방어 자세를 풀고 호흡을 내쉬는 타이밍. 반복된 기습으로 호흡 조절에 민감하게 신경쓰는 상대가 일부러 틈을 내주는 게 아닐지. 예민해진 신경이 사납게 경고음을 발산했다.
우나밍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던 노르드가 다급히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아직 칼을 뻗어도 공격이 닿지 않을 거리였다. 곤두선 감각 속에서 방패 뒤로 흔들리는 우나밍의 오른쪽 어깨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바로 다음 순간, 검은 철퇴가 부웅하고 허공을 갈랐다. 찰나의 간격으로 공격을 피해낸 노르드가 다시금 땅을 박찼다. 양손의 검이 우나밍을 사납게 몰아쳤다.
"아, 씹 뒤치 조심!"
스벅의 탄성이 들려온 것과 거의 동시였다. 좌수의 검을 찔러 넣던 공격을 캔슬한 노르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땅바닥에 몸을 굴렀다. 연이은 공격과 회피 동작으로 떨어진 스태미나가 거의 바닥을 보이기 직전이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시야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전, 혜진의 오른손이 부채꼴을 그리며 움직였다. 빠르게 회전한 시야에 달려드는 파피루스의 모습이 들어왔다. 허리춤을 향해 들어오는 도끼창의 묵직한 일격이 교차된 두 검과 맞닿았다. 종이 한장 차이로 살아난 노르드가 백스텝을 밟으며 물러났다.
여전히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래야만 했다. 기동성을 위해 선택한, 터무니 없이 가벼운 경장비. 일격을 허용한 순간 이번 게임이 패배로 직결될 거라는 사실을, 혜진은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게 호각지세가 예상된 첫 번째 대진에서 승리하기 위해 준비한 그녀의 전략이었다.
"오래 끌면 우리가 불리해요. 다음번 푸시로 게임 끝내야 됩니다. 패링 심어둔 거 먹혔으니까 다음번엔 우나밍 쪽 봐주세요. 어지간하면 신중하게 대기할 겁니다. 타이밍만 잘 맞춰주세요."
달궈진 머리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굴러갔다.
스벅의 대답도 확인하지 않고, 노르드가 앞으로 내달렸다. 이전 세트부터 집요하게 우나밍을 공격하던 노르드다. 예상된 충돌에 대비하듯 우나밍이 커다란 방패를 다시 들어 올렸다. 몸 곳곳에 생긴 상처 때문에 시야 바깥 쪽으로 붉은빛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사나운 쌍검이 다시금 방패와 맞닿았다. 방패가 가리지 못한 빈틈을 찾는 것처럼, 두 자루의 검이 우나밍의 방패 이곳저곳을 거칠게 두드렸다.
혼자 남았던 이전 게임의 기억이 뼈저리게 그녀를 괴롭히는 상황이다. 우나밍은 노르드의 빈틈을 노리는 것보다 그녀를 붙잡아두는 일에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굳세게 잡은 방패를 정면으로 밀어붙인다. 방패 때문에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 노르드와의 대치 구도를 만들기 위한 판단이었다. 무거운 방패의 질량에 밀려나는 것처럼 노르드가 뒤로 물러났다.
파피루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건 그때였다.
뒤를 조심하라는 경고가 비명소리처럼 흘러나왔다. 그녀는 당황하지 않았다. 파피루스가 노르드를 기습했던 것처럼, 듀오 게임에서 측면이나 후방은 절대 안전하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팀원과 마주하고 있던 상대가 언제 방향을 바꿔 기습을 감행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일대일의 대치 구도가 순간적으로 이대일로 바뀌는 경우도 전혀 드물지 않았다. 크게 당황할 일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이런 일을 대비하기 위해 방패를 선택한 것인데.
우나밍은 밀어붙이던 방패를 무름과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살짝 고개를 돌리면 과연 무서운 속도로 접근하는 스벅의 모습이 나타났다. 다행스러운 점은 스벅이 뛰어들어오는 방향이 자신의 배후가 아니라는 점이다. 노르드에게 휘둘리느라 진형이 무너진 와중에도, 적에게 뒤를 내주지 않기 위해 의식해서 자세를 뒤바꾼 보람이 있었다. 측면에서의 합공이야 감당하기 어렵지 않았다. 재차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우나밍이 마우스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두 명의 적을 한 화면에 들어오게 하기 위함이다.
바삐 움직이는 시야 속. 노르드가 빛살같은 속도로 뛰쳐나갔다.
정확히 스벅이 달려오는 방향이었다. 짧은 순간. 노르드와 스벅이 직선으로 교차했다. 스벅의 뒤를 황급히 쫓아오던 파피루스는 졸지에 쌍검을 든 노르드에게 지근거리를 허용했다. 달려드는 기세를 그대로 담아 두 검을 앞으로 찔러넣는다. 다급한 목소리로 부스를 채운 파피루스가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나 몸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가까이 접근한 노르드가 맹렬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옆자리에서 침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아연하게 바라보는 우나밍의 전면에, 어느샌가 당도한 스벅이 자리 잡았다. 자신의 방패와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작은 버클러가 코앞에서 아른거렸다.
버클러를 착용한 왼손이 어깨춤까지 올라왔다. 정권을 지르는 것처럼 곧게 뻗은 왼손의 손가락이 정확히 우나밍을 가리켰다. 뭘 하는 걸까. 의뭉스럽게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활짝 펴진 다섯 손가락을 위아래로 까딱거리는 스벅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건... 도발 모션이다. 공방에서 인성 나쁜 친구들이나 활용한다던.
"...씨발."
그 순간 공방임을 완전히 망각한 미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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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축하드립니다! 이야, 정말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셨어요. 경기 중에 인상적인 장면이 정말 많이 나와서, 질문할 거리도 많은데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지켜보신 시청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쿡
"...저부터 하라구요? 크흠. 안녕하세요. 스트리머 스벅입니다. 승자 인터뷰로 첫인사를 드리게 돼서 기쁜 마음뿐이네요. 반대라고 생각하니까 조금 아찔하더라고요. 아니, 노르드랑 같이 팀을 해놓고 광탈을 해버리면 제가 대체 무슨 말을 들을지 싶고. 이겨서 정말 다행입니다. 응원해 준 스청자들 고마워!"
"하하,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주셨으니 당당하셔도 될 것 같아요. 네, 노르드님도 인사 한말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노르드입니다."
"..."
"..."
"여, 여전히 과묵하신 노르드님이셨습니다! 그럼 경기와 관련된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첫 세트에서 보여주셨던 전략에 대해"
[노르드!노르드!노르드!노르드!노르드!]
[노르드특)인터뷰 존나못함]
[뭔솔. 얼굴로 인터뷰 다하고있는데? 빡캐리중인데?]
[후욱후욱,,,]
[노르드쨩 피곤해보이자나...]
[땅만 보는거 무엇ㅋㅋㅋㅋㅋㅋ]
[나도 옆구리 찔러줘]
경기가 끝나고 이어진 승자 인터뷰 시간이다.
대부분의 시청자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두 팀이 맞붙은 승부는 일방적이었다. 보이는 경기의 내용도, 결과로 드러나는 스코어도. 다소 싱겁게 느껴질 수 있는 결과가 나타났음에도 대회 중계방에 모여든 시청자들은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다. 노르드와 스벅이 보여준 경기력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인터뷰석에 자리한 혜진은 고개를 비스듬히 내리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 렌즈에서 시선을 피하는 듯한 구도였다. 시선의 끝에 뭐가 있나 궁금증을 유발하는 상태에서도, 인게임과 관련된 질문에는 명료한 대답을 내놓는다. 묘한 광경이었다.
"다음 질문입니다. 사실 경기에서 중계진들이 가장 대단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노르드 선수가 보여주신 줄타기 플레이였습니다. 한 번이라도 허용하면 치명상이 될 수 있는 카운터를 몇 번이나 피해내는 모습에서 정말 감탄사가 흘러나왔는데요. 반응속도라고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장면이었어요. 시청자분들 중에서도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대답해 주실 수 있나요?"
"음... 방송에서도 여러 번 알려드렸던 것 같네요. 스벅님한테도 알려드렸고."
"...어?"
"아, 그런가요? 그럼 노르드님의 방송을 지켜본 시청자분들은 대단한 꿀팁을 얻어 가셨겠네요. 여기서 한 번 설명해 주시면 좋을 거 같은데요."
[???]
[와 ㄷㄷ 노르드 방송보면 카운터 회피가 공짜!]
[전혀모르겠는데요]
[스벅 표정보셈... 뭔 개소리냐는표정]
[내가 안본방송이있었나]
[나만모름?]
"네. 어깨를 보시면 돼요."
"...네? 어깨요?"
"네. 잘 보고 있으면 공격 전에 어깨가 흔들리거든요. 그걸 보고 캔슬 회피에 들어가시거나, 타이밍 된다 싶으면 패링을 넣으시던가 하면 될 거예요. 이건 판단의 문제니까."
갈고리로 도배된 채팅창과는 상관없다는 듯, 혜진은 고개를 내리깔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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