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2화 〉 182 ­ 불타오르는 (182/243)

〈 182화 〉 182 ­ 불타오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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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벅피셜]경기끝나고 방장="" 팬미팅있음.="" 직관간사람="" 꼭확인할것=""/>

<미팅참여하면 방장이="" 악수해준다는거="" ㄹㅇ="" 실화임?=""/>

<지금 택시탔다.="" 직관안가도="" 참여가능하냐=""/>

<시발 이걸="" 놓치나ㅋㅋㅋ="" 아니="" 알았으면="" 나도갔지=""/>

<솔직히 멀리서="" 사진한장만="" 건져도="" 그게어디임?="" 그러니까="" 제발="" 사진="" '찍어줘'=""/>

<방장 게시판="" 상주하면서="" 이="" 기회놓치는="" 흑우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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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보세요? 경기 시작했는데. 아, 중계방 채팅창 보고 계시나? 그럼 이쪽으로 와서 제 걸로 같이 봐요! 쑥스러워하지 마시고."

"...좀 조용히 하고 봅시다."

성현은 핸드폰 화면에서 시선을 돌렸다.

대기실 맞은편에 앉은 꼰닢이 이쪽을 보고는 활짝 미소 짓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타의로 선택된 성현의 파트너는, 청각만큼이나 시각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재주가 출중한 인간이었다. 웃는 얼굴. 염색을 어떻게 했는지 뚜렷한 색을 발하는 금발이 형광등 빛을 받고는 사방으로 존재감을 뿜어냈다.

한쪽 귀를 장식한 거창한 귀걸이, 목걸이. 콕 집어서 말해야 할 요소가 워낙 많아서, 무언가 하나를 지적하기 힘든 수준이다. 멀리서 보면 괜찮을 것처럼 느껴지는 게... 가수들의 무대 의상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저런 걸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과한 것이 정도를 넘어서면 또 다른 경지가 개척될 수도 있는 거라고, 성현은 꼰닢을 보면서 깨달았다. 과한 패션을 저렇게 소화하는 것도 꼰닢이라는 사람이 지닌 능력이라면 능력일까. 지금에 와서야 차라리 존경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지만.

몇 주의 연습 과정을 거치면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상대했던 대회 동료. 그러나 그것도 전부 인터넷상에서의 이야기다. 이런저런 컨텐츠를 만들며 현실에서도 만남을 가졌던 많은 팀들과는 달리, 칼고와 꼰닢은 대회 당일인 오늘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좀처럼 스케줄을 맞추기가 힘들기도 했으나, 성현이 합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탓도 컸다. 그의 이성은 현실에서 마주할 시간에 스크림이나 한 판 더 돌리는 게 훨씬 효율적인 선택이 될 거라는 결론을 내린지 오래였다. 그건 스벅과 노르드의 합방을 봤을 때부터 결정된 사항이었다. 저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짓인지. 성현은 치솟는 짜증을 달래면서 자신은 저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첫 만남에 다소 어색함이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했던 때도 있더랬다. 정말로 잠깐이었다. 만나자마자 웃는 상을 하고 접근하던 꼰닢은 연습할 때와 조금도 다를 것 없는 태도로 성현의 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때론 방송에서의 캐릭터와 현실 모습이 일치하는 인간들도 존재했으니. 꼰닢이 바로 그런 부류였다.

웃는 얼굴을 상시 유지한 상태로 쉬지 않고 입을 놀린다. 성현이 상대하기 힘들어하는 인간상이었다. 만약 게임 실력까지 떨어지는 편이었다면, 이번 대회는 진작 포기하고 연습도 대충 넘겨버렸을지 모른다. 그럼 일단 마음은 편해졌을 터다. 감내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졌을 테니까.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게도, 꼰닢은 꽤나 훌륭한 원석이었다. 성현이 가르쳐주는 내용을 누구보다 빠르게 흡수하는.

게임이 끝날 때마다 성현이 보내는 피드백은 훌륭히 먹혀 들어서, 꼰닢은 연습 기간 동안 급속도로 성장했다. 뭐가 어떻든 대회 결승까지 올라오는 데에 꼰닢이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시끄럽고 성가시다고 한들 성현도 이제는 불만을 내뱉기 힘들어졌다. 아무튼 대회에 참가한 이상 성현의 가장 큰 목표도 우승이었기 때문이다. 대회에 참가한 첫 번째 목적은 다른 이유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그걸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방금 전까지 살펴보던 노르드의 저컴 게시판의 게시글들이 떠올랐다. 웬... 놈팡이 같은 놈을 만나서는.

"아, 또 광전사 빌드. 아까부터 엄청 공격적인 빌드만 가져가네요. 쓰벅 씨는 검방 원툴 느낌이고... 음음, 다른 빌드는 결승전 대비해서 아껴두는 건가? 연습 때 썼던 것만 보여주는 느낌이야."

성현은 조잘거리는 꼰닢의 말을 대충 흘려듣고 스크린을 바라봤다.

스코어는 1 대 1. 세 번째 세트였다. 이어지는 게임에서 전부 광전사 빌드를 선택한 노르드는 이번 세트에서도 같은 빌드를 들고 나왔다. 빌드를 자세히 살펴보면 게임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구석이 있었으나, 게임 운영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보면 똑같은 빌드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무튼 상대하는 방법이 변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맞서는 상대방도 승리한 세트에서 사용했던 빌드를 그대로 들고 나왔다. 상반신의 절반쯤을 가리는 것 같은 타원형의 방패와 아밍소드. 다른 한 명은 언월도에 가까운 형태의 폴암. 방패를 선택한 쪽은 칼고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방패들고돌진. 줄여서 방돌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과거부터 활동했던 네임드 유저. 랭크에서도 저 방패를 몇 번인가 마주했던 기억이 있었다.

빌드 상성을 따졌을 때 우위를 가져가는 조합이라는 중계진의 멘트가 유독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래, 아무튼 첫 매치에서 그렇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노르드를 방금 한 번 꺾어내고 승리를 얻은 참이다. 해설들이 언성을 높여가며 분위기를 띄울 정도는 될지도 모른다. 명백한 전력 차이를 두고, 언더독의 편을 들어줄 수도 있는 법 아닌가.

빌드 상성. 성현이 생각했을 때는 공허한 말이었다. 빌드 간의 상성이 존재한다고 한들, 나이트폴은 상성만으로 승부가 결정되는 게임이 아니었다. 플레이에 따라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는지. 사실 상성이라는 것조차 플레이어가 제 손으로 증명해야 의미를 찾는 말에 불과했다.

그게 지금은 더 우습게 느껴지는 것이다. 네 명의 플레이어가 손수 증명해야 마땅한 그 기본 원칙이, 단 한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는 걸 생각하면.

당장 노르드의 컨디션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좌지우지되고 있지 않나.

중계 화면은 역동적이었다. 중계 시점을 조절하는 옵저버가 이전 두 세트에서 깨달음이라도 얻었는지, 노르드를 중심에 두고 관전을 시작한 탓이다. 경기가 시작한 이후부터 노르드는 카메라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다. 이 순간, 게임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주연을 맡은 배우는 관객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광전사는 코앞까지 접근한 두 명의 적을 상대로 조금도 물러나지 않고 정면에서 맞서 싸웠다.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쇠붙이를 가까스로 쳐내고, 흘려내고, 떄로는 상처를 허용한다. 그럴 때마다 마주 휘두른 대검이 반드시 동등한 대가를 만들어냈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몸을 빼거나 뒤로 물러서는 일은 없었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 접근하는 노르드의 서슬 퍼런 기색에 질렸을까.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쪽은 뭉친 채로 광전사와 대치하던 두 명이었다. 노르드는 물러나는 적을 향해 발을 내뻗었다. 붉게 물든 눈동자에서 광기가 느껴졌다.

일격만 허용하면 목숨이 끊어지는 빈사 상태에서도 극한의 공격성을 유지하는. 빌드를 떠나서... 나이트폴을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매료될 수밖에 없는 플레이.

"와... 진짜 연습 때랑 하는 거 너무 다르지 않아요? 어떻게 저렇게 아찔하게 할 수가 있는 거야. 이거 실수 한 번 하면 끝나는 거잖아요. 생명줄 있는 빌드도 아닐 텐데."

"작정하고 나온 거겠죠. 연습 때도 저렇게 했으면 다른 참가자들도 대비를 해왔을 테니까."

"그래도! 연습도 안 하고 저렇게 하는 게 이상하다고요. 노르드님 개인 방송에선 평소에 저런 식으로 겜해요? 왜 인기 많은지 알겠어, 진짜."

본래 혜진은 저런 식의 플레이를 지향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여도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의식하면서 플레이하는 게 노르드의 방식이었으니까. 실수 한 번에 게임이 무너지는 리스크를 짊어질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노르드가 게임 내에서 직접 보여주고 있는 플레이 스타일은 분명 곡예에 가까운 극한의 줄타기였다. 따지고 보면 파피루스와 우나밍을 상대한 첫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인 그림만 생각했을 때는 일방적으로 두드리기만 한 것 같았으나, 게임의 구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위기의 순간이 많은 게임이었다. 노르드가 한 번이라도 카운터를 허용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적어도 그렇게 일방적인 양상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 나이트폴도 당연히 리스크를 짊어질수록 더 많은 리턴이 돌아온다. 노르드가 앞에서 더 공격적으로 움직일수록, 상대적으로 스벅의 움직임은 훨씬 자유로워지겠지. 적어도 수준 높은 상대의 공격에 휘말려 방어하기에 급급한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공격성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플레이. 팀원 간의 실력 차이가 심하다면 확실히 고려할 수 있는 전략일지도 모른다. 지난 경기와 이번 경기를 계속 지켜보면서, 성현은 혜진이 무슨 생각으로 게임 운영을 준비했을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걸 진짜 수행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파트너의 짐을 대신 들어주겠다니. 보통은 그러다 자신이 무너지는 경우가 태반일 텐데.

"들어갔다!"

결정적인 장면이다. 주인 모를 피를 잔뜩 머금은 광전사가 성난 황소처럼 뛰어들었다. 맹렬한 차징. 어설픈 견제 공격은 무시하고 비집고 들어온다. 결정타를 먹이기 위해 강공격을 준비하는 방돌팀을 상대로, 주변을 배회하던 스벅이 엇박자로 파고들었다.

스벅의 돌진에 대응하기 위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오더가 갈렸을까. 방돌팀의 대응이 순탄치 않았다. 당장 다가오는 스벅을 상대했어야 할 민코의 반응이 느렸다. 비스듬히 치켜 올렸던 폴암이 느슨하게 땅바닥을 바라본다.

진형을 다잡으면서 희미하게 생긴 빈틈을 노르드의 대검이 사납게 찢어냈다. 방돌이 내지른 회심의 일격은 광전사의 허리춤을 얕게 스쳐 지나가는 데에서 그쳤을 뿐, 노르드를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중계진의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노르드 언니­! 나 죽어!"

언니는 무슨, 지가 나이도 더 많으면서.

옆에서 발광하듯 소리치는 꼰닢의 비명을 무시한 채로, 성현은 앉아있던 의자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노르드를 담아내던 중계 화면은 어느새 혜진의 얼굴을 송출하고 있었다.

부스 안의 조명 때문인지 혜진의 얼굴은 평소보다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게임이 방금 끝났는데도 줄곧 모니터를 쳐다보는 시선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자신을 클로즈업하고 있는 카메라의 존재를 모르는 걸까, 아니면 신경도 쓰지 않는 걸까. 한동안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눈을 감고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지금쯤 중계방송 채팅창에서 어떤 반응이 흘러나오고 있을지. 성현은 직접 보지 않아도 그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다. 스벅과 합방했을 당시와 비슷한 꼴이 나타나고 있을 게 뻔했다. 시청자란 제법 한결같은 족속들이었다. 적어도 예쁜 여자에 한해서는.

어느샌가 혜진과 스벅이 한 화면에 함께 나타났다. 스벅은 승리가 기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노르드를 향해 연신 입을 벙긋거렸다. 자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생각해 보면 왜 부스를 같이 사용하는 걸까. 음성 채팅 기능을 사용한다면, 같은 공간에 들어갈 필요는 전혀 없을 텐데.

성현은 구겨지는 미간을 굳이 억지로 펴지 않았다. 그렇게 한다고 치밀어 오르는 좆같음이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꼰닢님. 전략 다 기억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다시 점검해 봅시다. 아마 저쪽이랑 결승하게 될 거 같은데."

"에? 아우, 무슨 또 점검이에요. 어제부터 계속 계속 계속... 몇 번이나 했는데. 진짜 몸에 새겨질 정도로 연습했다니까요."

"검토하죠. 우승하려면 해야지."

뭐라 주절거리는 꼰닢을 무시하고, 성현은 중계 화면의 소리를 완전히 줄여버렸다.

아무튼... 우승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저 꼴을 다시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성현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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