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192 브이로그는 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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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르드입니다.
커플 대항전이 끝났습니다. 대회에 집중하느라 잘 몰랐습니다만, 어제오늘 게시판이 너무 과도하게 활성화된 감이 있네요. 서버 폭주와 관련해서 저컴 운영자 분의 연락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화력이 대단하다는 칭찬을 받으신 겁니다. 조만간 무슨 팬카페라도 만들어서 이주해야 하는 생각을 하게 됐네요. 다들 감사합니다.
대회 다시보기를 돌려봤습니다.
시청자 수에 한 번 놀랐고, 저희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네요. 관중석에서 피켓을 열심히 흔들고 계셨던 분들 중에서는 얼굴이 기억나는 사람도 몇 있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팬미팅 때 직접 마주친 분들이겠죠. 게임에 집중할 때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뒤늦게나마 발견해서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대회가 끝나고 진행한 팬미팅에 대해서는 제가 죄송한 점이 많습니다. 여러모로 경황이 없었던 터라 소홀한 부분이 많았거든요. 사전에 공지하지 않았기도 하고.
저 하나 보자고 그 늦은 시간까지 그렇게 많은 분들이 남아있을 줄 몰랐습니다. 악수가 아니라 뭐 포옹이라도 해드렸어야 하는데. 굳이 거기까지 원하시는 분들은 없는 것 같아서 얌전히 악수만 해드렸습니다. 시간 관계상 모든 분들께 해드릴 수 없었다는 점은 양해 바랍니다. 원래 모두가 똑같은 보상을 받을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아무튼, 경기장을 방문해 직접 응원해 주신 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적다 보니 대회 후기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네요. 목적은 따로 있었는데 글이 길어졌습니다.
제목처럼 이 글은 휴방을 알리는 공지입니다.
대회를 위해 준비한 시간이 길었습니다. 결과가 좋게 나와서 기쁩니다만, 방송적으로는 역시 미흡한 부분이 많았던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구장창 일대일, 이대이 매칭만 하는 건 역시 좀 그렇잖아요. 평소 방송처럼 다양한 게임을 한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널 댓글에도 피셔맨을 그리워하는 팬분들이 종종 보이더라고요. 이 부분은 제가 피드백해서 방송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걸 포함해 대회에 전념하느라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방송도 그렇고, 운영하고 있는 엘튜브 채널도 그렇습니다. 대회도 끝이 났으니 이제 남겨놓은 것들을 정리할 시간이 온 것 같네요. 저는 잠깐의 휴식기를 가지고 쉬다가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 뒤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럼 20,000.
추신) 엘튜브에는 대회 날 촬영한 영상이 따로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대충 브이로그 비스므리한 뭔가. 편집자님의 의견에 따라 회차가 구분되는 시리즈 영상으로 만들게 됐습니다만, 반응이 좋지 않으면 다음 화는 이어지지 않을 겁니다. 알아서들 판단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노르드발닦개:1빠!!!! 우승 ㅊㅊㅊㅊ
노르드발닦개:휴....방? 일주....일? 이왜진..??
냥냥코로:사랑해요
나랑달:대회 후기방송 ㅇㄷ???? 우승하고 바로 장기 휴방은 씹 방장 텐련아
ss0220:노르드! 황르드! 갓르드! 눈나 하고싶은거 다해ㅐㅐㅐㅐ 휴방만빼고 제발
검방커신:포옹...포옹이요? 다음 팬미팅 열때까지 숨참습니다 흡
cattle_:라고 써져있는데요 선생님?
네네키미:넌 그냥 뒤져 씹련아. 악수한 새끼가 욕심이많아ㅅㅂ
antlr98:우승 축하드립니다. 엘튜브 채널에 이상한 댓글남기는 사람들 빼먹지말고 다 신고합시다.
화살한방울:아,,, 그냥 우승하지말지,,, 그럼 휴방안했을텐데,,,
노르드랑칼고랑:칼고님이 벼르고있던데 무서워서 도망가시는 건가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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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드의 엘튜브 채널에 신규 영상 하나가 업로드된 건, 노르드가 공지를 남긴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다음이었다.
'커플 대항전 Vlog'. 제목은 단순했다. 그럼에도 유난히 눈에 띄는 영상이었는데, 그건 업로드된 영상이 노르드의 엘튜브 채널에 있는 다른 영상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표지를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 플레이 화면으로 뒤덮인 영상들 속 유일하게 사람의 뒷모습이 담긴 표지. 그건 고철더미 속 보석만큼이나 눈에 띄는 섬네일이었다. 검은색 장발을 허리까지 매끄럽게 늘어뜨린 여성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연히 사진의 주인공은 혜진이었다.
혜진의 뒷모습. 뒤에서 이름이라도 불렸는지,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의 찰나를 촬영한듯한 모습이었다. 살짝 돌아간 고개 때문에 얼굴 옆라인이 드러났다. 얼굴이 온전히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보이는 윤곽만으로도 사진 속 여성이 미형이라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하얀색 피부와 날렵한 콧대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노르드 채널을 구독한 시청자들에게는 이미 표지부터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영상이었다. 얼굴 공개를 하고 난 이후에도, 노르드는 엘튜브 채널에 본인의 얼굴이 드러난 영상은 올리지 않았던 탓이다. 채널에 올라오는 건 대부분이 게임 플레이에 집중한 영상들뿐. 대회 연습이 길어졌던 최근에는, 멘트가 거의 없는 영상도 드물지 않을 정도였다.
게임 플레이. 세밀한 컨트롤이나 뛰어난 상황 판단이 돋보이는 장면들을 중심으로 편집이 들어갔다. 스벅과의 합방을 제외하면 대회 연습 기간 내에 특별한 컨텐츠를 진행하지도 않은 터라, 근래 노르드의 엘튜브 채널은 나이트폴 매드무비의 연속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채널 구독자들이 노르드의 영상들을 나이트폴 '실력 방송'이라고 인식하며 시청하는 것도 이제는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스트리머 노르드와 엘튜버 노르드를 분리해서 바라볼 정도는 아니더라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노르드의 캠방송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선 그녀의 생방송 스트리밍을 찾아봐야 한다는 것도 이미 정설로 굳어진지 오래. 엘튜브 채널은 소위 '빡겜'이라 일컫는 진지한 게임 플레이 영상을 중점으로 운영되는 중이었다. 그런 방향성을 구독자들도 알게 모르게 다 인식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느닷없이 브이로그 영상이 올라왔다. 그동안 채널에서 보여준 적 없는 노르드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무려 삼십 분에 가까운 길이의 기다란 영상이.
조회수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것도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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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대항전 Vlog]
원룸으로 추정되는 방 안. 컴퓨터가 배치된 책상 앞, 의자에 앉은 혜진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녀는 뭔가 어색한지 연신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 모습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카메라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 오늘은 대회가 있는 날이에요."
"그 말 아까도 했어요."
"...... 그건 편집으로 좀 넘겨주세요. 큼. 어... 내가 평소에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그냥 경기장 가서부터 찍으면 안 돼요? 집에 있는 거 봐서 뭐해. 방송할 때랑 뭐가 다르다고."
"이미 많이 다르니까 걱정 마세요."
"음..."
"..."
"...술이라도 한잔하고 갈까요?"
**
철컥, 툭.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 전환된 화면이 어둡다. 온통 어두운 화면 속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볼륨을 더했다. 익숙한 미성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거 지금 촬영되고 있는 거 맞죠? 여기 눌렀는데. 응, 뭐 따로 설정해야 하는 거 없어요? 아하."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어지럽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탓에 사물을 분간할 수 없었다.
이윽고, 회전을 멈춘 화면이 점차 또렷하게 맑아졌다. 김이 서리듯 뿌옇던 시야에 안개가 걷히면서 혜진의 얼굴이 드러났다.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가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다. 렌즈와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이걸 돌려서... 아, 나온다. 화질이 깨끗해서 거의 거울 수준인데. 음. 베에."
"뭐하세요?"
"아... 혀가 깨끗한가 싶어서요."
"...갑자기요?"
"...옛날에 자주 하던 습관이라."
민망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혜진의 얼굴이 점점 멀어졌다. 카메라와 눈싸움을 하는 것처럼 뚫어지게 렌즈를 쳐다보던 그녀가, 갑작스레 한쪽 손을 들어 올리고는 손가락으로 이런저런 모양을 만들었다. 길게 뻗은 손가락이 브이 자를 만들었다. 얼굴 근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잠깐 동안 가만히 멈춰 섰던 혜진이 손을 내려놓고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원숭이도 아니고... 동영상을 무슨 셀카처럼..."
부웅, 하고 차 엔진 울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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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왔네요."
세련된 인테리어의 실내. 주변에서는 희미하게 최신 팝송이 흘러나온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묻어 나오는 목재 테이블 너머로 혜진이 자리했다. 두꺼운 머그컵을 양손으로 마주 잡고는 내용물에 후, 하고 입바람을 불었다. 뜨거운 김이 컵 위에서 흩어졌다.
"노르드님은 약속 시간에 딱 맞추는 스타일인가요?"
"아... 저는 일찍 나가는 편이죠. 머리는 딱 맞추는 걸 선호하는데 마음이 그렇지 않다고 해야 하나. 잔걱정이 많아서 그렇네요. 오늘도 많이 일찍 나온 거 같고."
"늦는 것보다는 훨씬 낫죠."
"음. 역시 아까 술이라도 한잔했으면 지금 딱 적당한 시간에 도착해서"
편집점. 영상이 빠르게 다른 화면으로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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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어딜 봐서 닭으로 보여요? 누가 봐도 피닉스구만."
"피닉스?"
전환된 화면, e스포츠센터의 외관이 보이는 바깥이었다. 피닉스 동상에 다가선 혜진이 동상 앞 명패에 시선을 돌렸다. 그 옆에서 혜진을 바라보던 스벅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조금 커다란 닭인 것 같은데. 꿩인가?"
"선생님 설마... 피닉스가 뭔지 모르세요?"
"알죠. 드라군이잖아요."
"드라... 뭐요?"
스벅과 얼굴을 마주한 혜진이 스벅을 따라 하는 것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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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송 안 켰던데."
공동 대기실이다.
분주함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카메라는 칼고와 혜진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흘러드는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소리 때문에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온전히 드러났다. 혜진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쌀을 찌푸리고는 테이블에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칼고가 입을 연 다음에서야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했다.
"뭐요. 전략회의하느라 안 켰는데. 칼고 씨도 안 켰잖아. 아, 낮에 잠깐 켰던가."
"나는 켰지. 이번 주 휴방은 이미 썼으니까."
"...대회 주간에도 스케줄을 지켜요? 철저하시네. 스트리머의 귀감. 참 방송인."
"너랑 비교하면 대체로 성실하다는 소리 듣고 넘어가겠지."
주고받는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성실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즈음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있던 혜진이 제대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칼고의 손가락이 테이블 끝자락을 두드렸다.
"준비는 잘 끝났어요? 연습하는 거 많이 봤었는데. 대진표 저 반대편에 있는 상대한테 시간 너무 많이 쏟은 거 아니에요? 그러다 일차전 탈락하면 어떡하려고."
"...우승 생각하는 거지. 너네 팀 올라올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생각했으니까."
칼고의 대답이 의외였을까. 뭐라 말하려던 혜진이 곧장 입을 다물었다. 소란스러운 대기실 한복판에서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테이블 위 사탕 비닐을 만지작거리던 혜진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웬일로 솔직하시네. 음. 결승에서 보면 좋겠네요. 저도 기왕이면 밀리 대 밀리로 결승하는 게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편집점. 천천히 말하는 혜진의 뒤쪽으로, 커플 대항전 결승전 영상이 반투명하게 스쳐 지나갔다. 화살에 꿰뚫리는 칼고의 캐릭터가 흐릿한 잔상처럼 비쳤다 사라졌다.
카메라가 태연하게 사탕을 입에 집어넣는 혜진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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