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193 두 번째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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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재충전을 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피로가 많이 쌓였다고 한들, 얼마만큼의 피로는 하루치의 휴식으로도 손쉽게 채울 수가 있는 법이다. 고장 날 정도로 망가진 게 아닌 이상에야 그랬다. 사람이 튼튼하다는 말에는 내구성뿐만 아니라 회복력도 포함되어 있었으니.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피로가 가득 누적됐다고 생각했던 내 가녀린 몸뚱어리는, 휴방 이틀차에 도달했을 때 즈음 이미 정상적인 컨디션을 회복한 상태였다. 잠을 푹 잔 덕분인지 개운한 머리는 평상시보다 맑게 느껴졌다. 가벼운 머리, 적당히 나른한 몸. 이 정도만 돼도 불규칙적인 생활 패턴으로 일그러진 내 평상시의 몸 상태보다는 훨씬 괜찮다고 느낄 지경이다. 쉬는 날이란, 단어가 가진 마력이라도 있는 건지.
그러니까... 나는 이번에 스케줄 하나 없는 깔끔한 휴가를 맞이하게 됐다는 말이다.
회사에 출근하던 때, 모처럼 긴 휴가를 맞이하면 그 시간을 허투루 사용하기 힘들었다. 온전히 주어지는 자유의 시간. 당장 며칠이야 새벽 알람에 눈뜨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쾌락을 만끽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집에 가만히 있는 시간들이 전부 허송세월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모처럼 귀중한 휴가를 얻었는데 뭔가 의미 있는 일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은... 정말인지 쓸데없는 압박감이다.
집에서 멍청히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아쉽고, 그렇다고 거창한 여행 계획 따위를 세우기에는 몸이 피곤한 묘한 딜레마. 평상시에는 허송세월 보내기가 특기였으면서 그때는 시간이 뭐가 그렇게 아까운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 떠올린 게 가벼운 드라이빙 여행이었다. 차를 끌고 갈 수 있는 멀지 않은 거리의 여행지를 물색해서,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오는 사소한 여행.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제법 괜찮은 만족감을 주는 준수한 휴가 계획이었다. 아무튼 어딘가 새로운 곳을 보다 보면 짙은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수 있던 것이다. 서른이 넘었을 무렵에는 그게 좋아서 꽤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요는 '새롭다'라는 점이다. 대체로 집 안에 박혀있는 쪽을 선호하는 나로서도,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집구석에서 땅을 파고 있으면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여행은 그 공허함에 대한 특효약이었다. 새로운 것들은 내용물이 무엇이든 새로운 자극을 주기 마련이므로.
과거의 습관인지, 오래간만에 생긴 휴식기에 자연스레 여행이 떠올랐다. 혜진이 되고 난 이후로는 어딘가로 여행을 가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보면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될 것들이 모두 해결된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여유가 생긴 것도 같았다.
휴가로 생긴 여유를 만끽하면서, 어디로 가볼까 하고 목적지를 정하던 순간이다. 나는 멍청하게도 정말 뒤늦게 사실 하나를 깨닫고 말았다.
혜진... 나는, 차는 물론이고 면허도 없었다.
면허도 없으면서 드라이빙 계획이나 세우고 있었다니. 그게 무슨 멍청한 짓거리인지. 알 수 없는 자괴감에 휘말려, 나는 보기 드문 행동력으로 그 자리에서 면허시험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할 거 없을 때 면허나 따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무시하고 넘겼을, 혜진을 탓하면서.
머리맡에 핸드폰을 두고 일어났다.
늦게 일어난 주제에 침대에서 뒹굴거리기까지 하다 보니, 이미 정오를 넘긴 시간이었다. 해가 중천에 이르렀을 때 눈을 뜨는 삶은 그 자체로 사치스러웠다. 화장실에 들어가 대충 세안을 마치고, 주린 배를 부여잡은 채로 트레이닝복에 팔을 꿰어 넣는다. 잔뜩 늦장을 부린 지금도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했다. 면허시험장이 가깝다는 쓸모없는 지리적 이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올 줄은... 정말 예측하기 힘든 일이다.
최단기간으로 면허를 획득하기 위한 절차를 그리면서, 나는 곧바로 운동화에 발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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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보고 진짜 눈물질질흘리면서 들어왔습니다... 브이로그라뇨...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 휴방은 아닌것같습니다...]
ㄹㅇ 채널 잘못들어온줄알았음
휴방은 진짜 선넘었지... ㅅㅂ
나도 질질흘렸음
뭘흘려 미친새낀가
아니 진짜 안누를수가없는 썸네일임ㅋㅋㅋㅋㅋ 노르드미쳤다
노르드? 선생님이 니 친구냐?
[하는짓이 죄다... 방송볼때부터 느꼈지만 선생님 진짜 존나게 사차원이시네요. 술얘기 계속하는거보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알고리즘타고 들어와서 영상하나봤는데 바로 팬됨ㅋㅋㅋ 너무 매력적
23:17 드라군인가 드라곤인가는 뭔 소리임? ㄹㅇ 맥락하나도없네
정신나갈거같다... 영상 세 번째 다시보는중
못생긴게똘끼=병1신, 예쁜사람이똘끼=매력포인트 ㅇㅇ 이정도로 예쁘면 하는 짓 전부가 걍 매력적인 개성으로 승화된다고 봐도 무방함.
[아니ㅋㅋㅋㅋㅋㅋ 내내 담백하게 편집하다가 마지막장면 실화냐? 칼고한테 왜그럼진짜 주인장닮아서 편집자도 악질이네]
대회봤으면 노르드한테는 악질이라는 말도 가벼움.... 어째 집요하게 활만쏜다고 했더니 이유가진짜...
악질짓이 아니라 훌륭한 심리전이죠? 노르드는 결과로 증명함ㅇㅇ
저도 거기보다 터졌음ㅋㅋㅋㅋ 대회봤던 시청자들은 터질수밖에 없는 장면... 칼고님한테 조의를 표하면서 ㅎㅎ
칼고랑 진짜 친하긴 한가보다... 나도 노르드랑 친해져서 괴롭힘당하고싶어...
부럽긴해
[언니너무예뻐요ㅠㅠㅠ 07:21 미쳤음 진짜ㅠㅠㅠ 씹덕사할거같아요ㅠ]
222222 게임만 천재인줄알았는데 얼굴도천재였으뮤ㅠㅠㅠㅠ 제발 트라이앵글에도 갠사 자주 올려줬으면 좋겠..
3333 넘나 빠져드는것... 나도 아까부터 계속 돌려보는중,,ㅋㅋㅋ
이새끼들 컨셉이냐? 노르드방송보는 계집,년이 어딨다고 씨1발럼들이 성별가라를 치고앉았네
나 여고생인데 내 동년배들 다 노르드방송보면서 광전사빌드 공부한다,,,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우승축하드립니다. 대회 플레이보고 반해서 왔는데 브이로그 보고 다시 한번 반하게 되네요ㅎㅎ 방송떠나서 사람자체가 매력적이신듯... 바로 구독했습니다.]
말투스윗해서개역겹노
좆 댔 다! 얼굴 오픈해서 전국 인싸새끼들 다몰려들겠네 ㅅㅂ,,,
유명해지면 좋지 왜 발작함?
나작노가... ㅠㅠ 노르드님 그만 유명해지세요
노르드가 작았던 적이 없는데 염1병한다 아주
[잘하는거 알고봤는데도 존나잘하더라. 엘튜브에 올리는 영상이 편집본이 아니라 그냥 일상이라는 걸 실감하게됐음. 플레이스타일이랑 얼굴이 너무 매칭이 안돼서 놀라고간다.]
생방 시청자가 십만명이 넘은 레전드 대회...ㅋ 이 영상도 조회수늘어나는 거 보니까 이제 나이트폴에서 노르드 모르는 사람은 없을듯ㅋㅋ
ㄹㅇ 얼굴보면 tv에 나와야될것같은 비주얼인데ㅋㅋ 대회 때도 ㅈㄴ 공격적인 광전사 플레이보여주다가 노르드 얼굴 클로즈업하니까 갭 지렸음. 말도 안돼ㄹㅇ
[눈나사랑해요눈나사랑해요눈나사랑해요눈나사랑해요눈나사랑해요눈나사랑해요]
[08:30 당분간 내 바탕화면]
[노르드 텐련아 제발 방송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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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도, 혜진은 방송을 켜지 않았다.
드르륵하는 소리를 내며 마우스 휠이 돌아갔다. 로딩, 로딩, 또 로딩.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새로 늘어나는 댓글 창은 쉽게 끝을 보여주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댓글들. 간절히 혜진의 존재를 찾는 댓글들을 가볍게 훑고 넘어간다. 이전에 못 보고 넘어간 스팸성 댓글을 삭제한 주연이 페이지를 새로고침했다.
조회수를 확인한다. 몇십만을 넘어간 숫자가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굳이 통계나 영상 알고리즘 따위를 고려하지 않아도 금방 백만을 넘어서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습관처럼 새롭게 달린 댓글 몇 개를 더 확인한 그녀가 브라우저 창을 종료했다. 인터넷 창이 사라진 모니터에 새롭게 편집 중인 영상이 나타났다.
두 번째 브이로그 영상이었다.
영상을 올리고 먼저 반응을 살피자는 혜진의 말과는 달리, 주연은 진작부터 두 번째 영상을 제작하는 중이었다. 반응을 살피자니. 첫 번째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폭발적인 반응을 확신한 그녀에게는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 의견이었다. 달리 할 일도 마땅치 않던 주연은 첫 번째 영상의 업로드를 예약한 순간부터 두 번째 영상 제작에 들어섰다.
촬영한 영상을 돌려보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영상을 찍을 때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혜진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원래부터 한 번 작업을 시작하면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는 주연이었다. 흥미와 능력이 함께 들어간 영상 제작은, 일반적으로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능률을 제공했다. 결국 대회 당일의 촬영본을 짜깁기한 혜진의 두 번째 브이로그 영상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완성됐다.
그때쯤, 첫 번째로 올린 브이로그 영상에 대한 반응이 극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커플 대항전이 예상을 뛰어넘은 흥행으로 끝이 난 다음이다. 나이트폴과 관련된 커뮤니티는 노르드와 관련된 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커뮤니티에서 소문이 퍼져나가는 속도란 무시무시해서, 여러 곳에서 언급된 브이로그 영상의 조회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며칠간의 여유를 두고 반응을 살피자는, 혜진의 말이 의미를 잃어버린 순간이다. 조회수가 올라가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누가 봐도 두고 봐야 될 때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은 오히려 흐름을 타기 위해 당장 새로운 영상을 올려야 되는 타미잉에 가깝겠지.
두 번째 영상은 이미 완성된 다음이다. 검수까지 완료한 영상은 혜진에게 확인만 받으면 곧장 업로드가 가능했다. 오래 앉아있던 후유증으로 뻐근한 몸을 어루만지던 주연은, 잠깐의 기지개를 마치고 바로 혜진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게 엘튜브 채널 운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만큼 아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절대 놓칠 수 없는 타이밍으로 비칠 터였다. 그건 주연 자신도 마찬가지였고.
...
Nord Love:그래서 지금 바로 업로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Nord Love:허가 주시면 업로드하겠습니다. 영상 보고 연락해 주세요.
답장은 조금 늦게 돌아왔다.
Nord:제가 지금 밖이네요.
Nord:끝나고 들어가면 저녁... 조금 천천히 올려도 되니까 보고 연락드릴게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간 혜진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그녀와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눴던가. 주연은 혜진이 외출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었다. 취미라 할만한 것들이 전부 실내에서 해결 가능한 일이라는 점도,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도, 집에서 술 마시는 걸 선호한다는 점도.
차차 더 긴밀한 관계가 되기 위해 혜진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있는 주연이다. 그런 그녀에게 혜진이 이런 대낮부터 밖에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의외인 일이었다. 잠깐의 볼일 때문에 밖에 나서는 경우야 자주 있겠지만, 직접 저녁에 돌아온다고 확언까지 하다니. 그건 꽤나 드문 일이었다. 차라리 지금까지 자고 있었다는 말이 훨씬 와닿을 정도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그녀가 혜진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무엇 때문에 저녁까지 시간을 못 내냐는 물음이 담긴 메시지다. 혹여나 사생활에 간섭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불편하면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친절한 덧붙임까지 추가했다. 자신은 결코 혜진의 일상을 캐물으려는 악질이 아니었으니까.
...
Nord:아 저 면허시험장에서 교육받는 중이라서. ^6^
Nord:6시까지는 꼭 확인할게요.
면허... 갑자기?
언제나 그렇듯, 혜진의 대답은 예상에서 한참을 벗어난 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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