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195 요즘 효자는 많이들 불타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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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드의 엘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은 불과 며칠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커플 대항전의 흥행과 제대로 맞물린 덕일까. 프로 리그의 휴식 기간, 커플 대항전으로 쏟아졌던 커뮤니티의 관심이 그대로 노르드에게 이어진 듯했다. 며칠간의 간격을 두고 채널에 올라온 혜진의 브이로그 영상은 모두 엘튜브 인기 급상승 순위에 올라갔다.
조회수가 올라가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여태껏 그녀의 채널에 올라왔던 어떤 영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누적치가 상승했다. 그 모습을 보면, 그녀의 영상이 퍼지고 있는 게 단순히 나이트폴 관련 커뮤니티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노르드라는 스트리머가 인터넷 방송계에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혹은 그보다 더. 급물살을 탄 영상의 효과로 노르드의 유명세는 높아져만 가는 시점이다.
저스틴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생방송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회에서 우승을 거둔 게임 실력도 실력이지만, 브이로그 영상으로 드러난 혜진이라는 인간에 대해 호기심과 관심이 커져버린 탓이다. 알게 모르게 노르드의 저스틴 채널 팔로워는 늘어만 갔다.
그렇다. 정말 조용히 늘기만 했다. 정작 채널의 주인은 지금 며칠째 아무런 소식도 없이 잠적을 하고 있었으므로.
소통의 창구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는 그녀의 고질적인 특징은 여전했다. 우승 직후, 휴방 선언을 하고 사라진 다음. 어디서도 혜진의 소식은 찾을 수 없었다. 브이로그 영상으로 유입돼 혜진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SNS 계정 하나 없는 노르드의 현실을 마주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차오르는 호기심을 해결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미아들이 얼마나 많이 늘었는지. 사용하지 않아 먼지만 둥둥 떠다니는 노르드의 엘튜브 채널의 커뮤니티, 사용자는 많지만 정작 주인이 자리를 비운 저컴 게시판 등 몇 안 되는 소통의 창구에 상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서버 규모가 작은 편인 저스틴 커뮤니티는 과도하게 증가한 이용자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인장은 대체 언제 돌아오는지. 노르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아진 지금.
혜진은... 집구석에서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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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아빠가 안 것 같아."
아빠가 누군데.
힘없이 침대에 널브러져 있으면, 침대 옆까지 의자를 끌고 와 앉은 혜민이가 그렇게 말했다.
반쯤 잠에 취한 정신으로는 동생이 내뱉은 말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다. 몽롱한 와중에 눈꺼풀을 들어 올려 혜민이를 쳐다보면, 핸드폰을 어루만지고 있던 동생이 나를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한 건지 맥락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머릿속으로 천천히 문장을 되짚어 해석했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빠가 언니 방송하는 거 눈치챈 거 같다고."
평온한 어투로 말하는 태도가 퍽이나 자연스럽다.
해이하게 풀어진 머리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저게 무슨 소리라는 말인가. 빈둥빈둥 뒹굴며 휴가를 만끽하고 있는 제 언니의 집에 찾아와서는, 용건이 없는 것처럼 한참을 같이 쉬고 있다가 던진 한마디.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너무 무게감 있는 말이었다. 아빠, 아버지, 부친... 외면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단어가 아닌가.
"혹시 뭐라고 하셨어?"
"응. 나는 아니고 주호한테."
혜민이 답지 않게 뜸을 들이는 게 뭔가 심상치 않았다.
뜨끔하는 속을 붙잡고 생각을 정리했다. 가족, 그것도 부모라는 인간관계를 두고 정리가 필요하다는 게 참 처량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 신세타령을 길게 늘어놓는 것도 이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이었으니까. 이제 납득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게 맞는 단계겠지.
아버지. 단어가 주는 울림조차 이제는 낯설었다. 혜진이 된 이후, 사실상 부모와는 의절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온 탓이다. 끊어진 관계. 같은 집에서 살기는커녕 연락도 나누지 않았다. 부친에 이르러서는... 얼굴도 사진으로 밖에 알지 못했다. 이 정도면 완전한 타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도 그렇다. 나는 혜진을 낳아준 부모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었으니까. 사실, 혜민이나 주호와 이렇게 가깝게 지내게 된 것도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동생들 쪽에서 내게 적극적으로 접근해오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천애고아의 삶을 살고 있을 터다. 그쯤 되면, 차마 고독을 즐긴다는 표현도 할 수 없어진다. 진정 고독한 사람은 외롭다고 말할 여유도 없는 법이 아닌가.
그간 내가 동생들과 이야기하며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혜진은 집 밖으로 거의 내쫓긴 상태였다. 출가외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할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년간 히키코모리 생활을 이어나간 딸을, 엄격한 부모가 더는 못 봐주고 쫓아낸 그림. 술을 마신 혜민이가 울분에 차 토해내던 원망 어린 말은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 생각하면... 꽤나 너그러운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내쫓은 딸에게 원룸까지 구해다 줬으면,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충분히 수행한 것이 아닐는지. 물론 당장 혼자 살게 된 혜진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혜진이 되었을 무렵 살풍경했던 원룸의 풍경을 생각하면 이런저런 추측이 부풀어 오르고는 했으니까. 내가 거기까지 알아낼 수는 없겠지.
요는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내가 이렇게 생각을 정리해 봤자, 다 추측에 그칠 뿐이라는 점이다. 집에 돌아가 어머니를 마주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완전히 연을 끊어버린 것도 아닌 것 같았고. 종종 이곳에서 자고 가는 혜민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그랬다. 관계라는 건 그렇게 분명히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게 부모 자식이라는 끈끈한 관계 일지라도,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면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더 깊숙이 파고들기도 싫었다. 혜진의 삶에 묶여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되, 거기에 매몰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부모와 의절 관계에 가까운 지금이 차라리 마음 편했던 것인데.
"뭐라고 하셨는데?"
혜민이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했다.
혜진을 닮은, 갸름한 눈동자. 극적인 표정 변화는 없었으나 자세히 살피면 주저하는 기색을 읽어낼 수는 있었다. 혜민이는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 제 언니의 관계를 늘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세한 이유는 몰라도, 이젠 거기에 언니를 아끼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기야 부모와 혈육이 갈등을 빚는 가운데 그 사이에 껴있는 입장이다. 그게 얼마나 성가실지는...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지.
"언니, 집에 한 번 와야 할 것 같은데."
대체 왜.
"뭐, 원룸 대출 기간 끝난 거야? 언제까지 갚으면 돼?"
"...언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형용할 수 없는 부담감에 개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날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혜민의 시선에도 솟구치는 감정들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 집에 다시 한번 가야 한다니. 완전히 연을 끊은 게 아니었나, 대체 무슨 사건이 있던 건가... 혜진과 부친의 관계에 대한 온갖 추측이 부풀어 올랐다. 처음 어머니와 마주했던 순간의 그 형용할 수 없는 숨 막힘과 함께. 차라리, 공방 대회를 한 번 더 출전하면 하지. 그런 자리는 질색이었다.
관계는 어떻게 하면 끊어낼 수 있을까. 늘어진 줄처럼, 가운데를 툭하고 끊어버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혈육은 혈육이었다.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는, 연락을 외면한다고 끊어질 정도로 가볍지 않았다. 한 쪽에서 잡아당기면 언제가 됐든 끌려갈 수밖에 없는... 끈질긴 관계.
갑작스레 늘어난 문제에 머리가 아팠다.
"직접, 말씀하신 거야? 찾아오라고 아니, 애초에 나 방송하는 건 어떻게... 게임 대회 하나 나간 게 뭐가 대수라고."
"엄청 대수야, 언니."
아, 또 잘못 건드렸다.
대회 이야기를 꺼낸 순간, 눈을 번뜩인 혜민이 내 눈앞으로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익숙한 화면. 내 엘튜브 채널이 눈에 들어온다. 핸드폰을 내미는 과정에서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은 걸 생각하면 방금까지도 내 채널을 보고 있던 모양이다.
"이거, 조회수 보여? 보는데 게임 카테고리에서 인기 동영상으로 올라왔대. 댓글도 아침보다 이백 개는 더 달렸어. 다 언니 칭찬하는 댓글 일색이구... 여기 댓글 봐봐. 제발 방송 켜달라고 하는 글에 추천이"
"알았어. 아까도 봤잖아, 혜민아. 언니는 그 영상 보기 싫다니까. 너무, 너무 적나라해서 창피하다고 했잖아."
"뭐가 창피해! 언니 진짜 예쁘게 나왔다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기 조금 아까울 정도야. 지금 누워있는 거 촬영해서 올려도 반응 똑같이 나올걸. 왜 다음 영상은 안 올리는 거야. 내가 지금 동영상으로 찍어줄까? 나도 언니 예쁘게 찍을 자신 있어."
발작 버튼을 누른 것과 마찬가지다. 버튼의 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문제지. 대회, 엘튜브, 방송, 결승전, 우승... 따지고 보면 끝도 없다. 오늘 집에 찾아온 이래 혜민은 영상과 관련된 키워드가 나오면 저렇게 눈에 불을 켜고 반응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쪽으로 대화 화제가 옮겨지는 걸 피하려고 했었는데. 사방이 지뢰밭이다 보니 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뭔가 떨떠름한 느낌이 드는 상황이었다. 대박이 터진 것 같다는 주연의 말을 듣고 난 이후에도 그랬다. 좋은 게 좋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뒷맛이 썩 개운하지는 않은 느낌. 예상치 못한 성공에는 언제나 불운이 뒤따르는 법이라고, 나는 지금이 몸을 사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여차하면 휴방 기간을 더 늘릴까도 고민하는 중이었으니.
한동안 영상에 대한 열성적인 의견을 펼쳐놓던 혜민은 이내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휘적거리고 있는 걸 보면, 영상에 새로 달린 댓글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듣기 싫은 주제에 어영부영 대화를 회피하고 있던 나는 그제야 이불 끝자락에서 고개를 다시 내밀었다.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전혀 듣지를 못했는데.
"그래서, 혜민아. 아...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다고? 그만 보고 좀 말해줘."
헤민이는 말을 듣고서 자신도 아차 싶었는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무리 그래도, 내 엘튜브 영상에 대해 주절거리기 위해 집까지 찾아온 것은 아닐 터. 본론은 가족 관계에 관한 중대한 문제일 게 분명했다.
"아, 음. 그, 아마 엄마한테 들어서 눈치챈 것 같아. 사실 엄마는 언니 방송한 거 알고 계셨거든."
"...뭐? 그걸 어떻게 알아. 언제부터?"
"그건 나도 모르겠어. 아무튼 언니도 직접적으로 방송에 나온 건 처음이잖아. 엄청 화제 된 것도 사실이고. 주말에 주호 혼자 집에 있을 때 아빠가 와서 말씀하셨대. 너네 언니 인터넷 방송하고 있지 않냐고."
머리가 띵하다.
공방 출연을 들킨 거야 그렇다 치고, 이전부터 내가 방송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게 훨씬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건 내가 상정한 관계와는 어긋나는 일이었다. 자식에게 연락도 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소홀한 부모가, 출가한 자식이 뭘 하고 살고 있는지 어떻게 알고 있겠는가. 진작부터 내 방송을 알고 있었다면, 자식이 걱정돼서 알게 모르게 신경 쓰고 있었다는 쪽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지경이다. 대체 무슨 관계인 건지.
"자세히 말은 안 했다고 하는데...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였다고 하더라고, 주호가. 언니한테 이건 꼭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언니가 아빠 싫어하는 건 나도 잘 아는데, 그래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저번 명절 때도 집에 안 오고..."
...그래? 내가 아빠를 싫어한 건 맞았구나.
뭐라 칭얼거리듯 말을 마친 혜민은 이내 이불에 덮인 내 복부 쪽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 상태로 입 바람이라도 부는 건지 배가 점점 따듯해졌다.
내가 모르는 갈등.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휘말려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우울해하는 동생을 밀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한동안 고개 숙인 혜민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어야 했다.
아무래도 이번 휴방 기간에는... 안면 없는 아버지를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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