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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화 〉 200 ­ 풀어준 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200/243)

〈 200화 〉 200 ­ 풀어준 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 * *

한참을 보고 있어도 찌는 미동이 없었다.

좋은 낚시터를 선정하기 위한 조건들이 있다. 하천 아무 곳에서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내려둔다고 고기가 모여들 리가 없다. 흘러가는 하천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물고기가 특히 많이 모인 서식지가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법이다. 그런 곳에는 어딘가에서 냄새를 맡고 찾아온 꾼들이 하나 둘쯤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을 테고.

여긴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낚시터라고 함은, 곧 물고기가 드문 낚시터를 의미하기도 했다. 주연과 함께 하천을 따라 걸어가는 길에, 우리와 같은 차림을 하고 낚시를 나선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 걸 고려하면... 사실 이 하천 자체가 낚시하기엔 적절치 않은 장소일지도 모른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 반 고기 반에 찌를 내릴 때마다 입질이 있었으면 분명 이곳이 유명한 장소였을 테니까.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찾던 건 월척을 낚아올리는 짜릿함이 아니라 느긋하게 주저앉아 입질을 기다리는 한가함이었으니.

이름 모를 곤충과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움직이지 않는 낚시찌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 한적한 하천의 정경에는 고즈넉함이 있었다. 이런 곳에서 낭만을 찾는 것이, 쓸모없는 것들에 환상을 품는 한량의 특징이었다.

그래, 나는 예전부터 타고난 한량이었던 것이다. 집구석에 처박힌 채로 한적한 낚시터나 상상하고 있던 꼴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튼 그걸 실천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지금이 조금은 더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뭐, 나도 이걸 모두가 좋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와 ㄷㄷ 노르드의 힐링방송]

[정지화면이냐?]

[선생님얼굴보여주세요얼굴보여주세요얼굴보여주세요]

[이게,,, 야방? 지금까지 내가 보던 것들은 도대체]

[이건 무슨 방송인가요?]

[피셔맨이 갓겜이었네]

[낚시에는 소질이 없으시네요]

[얼굴 보여줘... 옆에 눈나는 누구야... 나 궁금해 미쳐버릴 거 같아... 노르드 나 제발 살려줘]

[오 방금 다리보임 ㅜㅑ]

[지,랄염병을하네]

이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 나와 함께 느긋함을 만끽하는 시청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한 것 같았다.

도배와 장문 채팅을 난사하던 시청자들이 대거 숙청되었는지 난리가 났던 채팅창도 조금은 진정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핸드폰 액정의 작은 화면 속에서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들을 캐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심히 본다고 해봤자 눈치껏 분위기를 읽어내는 정도일까.

누구보다 낚시를 원했을 피셔맨 팬들은 수줍은지 채팅을 쓰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정도 화력이면 몇 마디 채팅을 쳐봤자 금방 묻힐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했다. 다수의 의견이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액정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면, 잠잠한 하천의 모습과 난잡한 채팅창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녹색의 하천은 좋게 포장해도 맑은 물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어서, 잔잔한 물결 아래 고기가 몇 마리나 돌아다니고 있을지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채팅창의 시끌벅적함이 하천까지 도달하지 않는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게 가능했다면 안 그래도 적어 보이는 물고기가 전부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도망쳤을 게 분명하니까. 낚시터는 조용해야 분위기가 사는 법이다.

"어...! 노르드 님, 이거."

심심했는지 서로 싸움이 붙기 시작한 채팅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까운 옆자리에서 주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보다 살짝 올라간 목소리에 다급함이 실렸다. 거기에 자연스레 동조해, 주연의 시선이 향하는 쪽으로 카메라를 돌린다.

낚시터에서 급해질 일이 뭐가 있을지는 뻔했다. 하천 위에 둥둥 떠다니던 낚시찌가 가라앉았다. 입질이 왔다.

"낚싯대 잡으세요. 너무 힘줄 필요는 없어요."

주연이 반사적으로 낚싯대를 잡아들면, 하늘로 솟은 기다란 장대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휘었다. 휘어진 정도를 보면 떡밥을 낚아챈 물고기가 클 것 같지는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주연이 낚싯대를 서서히 들어 올렸다. 첨벙거리는 물결이 빠르게 뭍으로 가까워졌다. 카메라로 그걸 포착하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 주연의 얼굴을 바라봤다. 당황이 묻어 나오는 편집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건 꽤나 재밌는 일이었다.

실랑이는 길지 않았다. 주연의 손에 끌어올리듯 당겨진 낚싯줄의 끄트머리, 뭍으로 튀어나온 작은 피라미 한 마리가 몸을 버둥거리며 사방으로 물방울을 튀겨댔다. 탁한 은빛 비늘은 햇빛을 받았는데도 번쩍거리지 않았다. 줄에 꿰인 채 허공을 부유한 어류는 금방 우리의 눈앞까지 날아왔다. 작은 주제에 펄떡거리는 움직임에는 생기가 넘쳐흘렀다.

"어... 어떡하죠?"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피라미를 바라보던 주연이 말했다. 양손으로 낚싯대를 거머쥐고 경직되듯 서있는 모습에서 주저함이 엿보였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생선을 잡아챌 줄 알았는데. 그것도 다 선입견이었던 모양이다. 난생처음 하는 낚시에 어쩔 줄 모르는 게 썩 귀엽게 다가왔다.

"먹을 것도 없는 송사린데 방생해야죠. 잠깐 핸드폰 좀 들어줄래요? 내가 할게."

"아, 네. 저 주세요."

낚싯대와 핸드폰을 맞교환한다. 가까이서 마주한 피라미는, 내 작은 손도 다 덮지 못할 정도로 작은 놈이었다. 잠깐 바둥거리던 걸로 모든 체력을 소진했는지 척하고 늘어진 꼴이 처량했다. 손에 잡은 순간 물 비린내가 확하고 번졌다.

쭈그려 앉은 채 어설픈 솜씨로 바늘을 분리한다. 종을 분간할 수 없는 쪼끄만 물고기는 내게 잡힌 채로 입만 뻐끔거렸다. 뭐가 됐든 빨리 풀어주는 게 좋은 건 당연하겠다만, 익숙한 일도 아닌지라 나는 얼마간 생선 주둥이를 만지작거려야만 했다.

비린내보다 날 꼬나보는 것 같은 물고기의 눈동자가 더 거슬렸다. 알았으니까 그만 보라고.

겨우 분리한 물고기를 물에다 살짝 던지면, 찰랑거리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물속으로 파고든 놈이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뭔가 멍청한 생선이 내 미끼에 혹해 다시 한번 걸려들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넓은 하천에 우리한테 걸려줄 멍청한 놈이 한 놈 정도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

아무튼, 그렇게 바라보면 꽤나 고마운 놈이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마리 생선도 보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면 쓸쓸한 뒷길이 될 게 뻔하지 않나.

풀떼기 하나를 뜯어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는 돌아선다. 낚싯대를 내려둔 자리에서 핸드폰을 잡아든 주연은 가만히 선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폰 화면을 보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무서운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채팅창엔 사람이 멍을 때리고 보게 만드는 요상한 마력 같은 게 있었으니까.

"어땠어요? 너무 작아서 손맛 느낄 겨를도 없었나?"

"아... 혜, 노르드 님. 잠깐 거기 서있어 보세요."

"네? 왜요."

돌연 맥락 없는 말을 내뱉은 주연은, 곧이어 핸드폰을 잡은 손을 조금씩 움직였다. 곧게 서서 손만 미세하게 움직이는 꼴이 사진사라도 된 것 같았다. 졸지에 피사체가 되어버린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모자, 모자 잠깐만 벗어주실 수 있어요? 시청자분들 요청이 빗발치네요. 지금, 그림 너무 예뻐요."

"모자요? 어렵지는 않은데."

왜 저런 요청을 하는 건지. 방금 짜릿한 첫 수확의 맛을 함께 봐놓고는... 소감을 듣고 싶었는데.

아. 그러고 보면 오늘 방송을 켠 이후로 내가 비친 적은 없었나. 그토록 얼굴, 얼굴 부르짖던 시청자들 몇 명이 이때를 틈타 채팅창을 화력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모양이다.

속에서 샘솟는 청개구리 심보를 가라앉히고 캡 모자로 손을 뻗었다. 브이로그 영상까지 대놓고 올린 판에, 이제 와서 뭐가 대수라고. 트레이닝복에 오천 원짜리 모자를 쓰고 있는 꼴이 꽤나 우스꽝스럽게 보였나 싶었다.

모자를 벗으면, 서늘한 공기가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무심코 손을 뻗어 눌린 머리를 헝클어뜨리다, 아직 손에 생선 비린내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황급히 팔을 다시 내렸다. 대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정돈되지 않은 머리가 이리저리 휘날렸다. 곱슬기 없는 머리를 다행으로 여겨야 할 때였다. 이 긴 머리가 엉키기라도 했으면, 동생의 의견이고 나발이고 당장 단발령이 떨어졌으리라.

맞은편에 선 주연을 똑바로 쳐다봤다. 드디어 원하는 각도를 잡았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정된 주연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 바라본다. 그 모습이 조금 우스워서 슬쩍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도 같았다. 거울 없이 제 얼굴이 짓고 있을 표정을 상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델 일도 아무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됐죠? 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

"네... 좋아요."

"좋긴 뭐가 좋아. 아... 물티슈라도 가져올 걸 그랬네. 손에서 비린내가 나서. 핸드폰에 냄새 다 배겠다."

"­그럼 지금부터는 핸드폰 제가 들고 있을 게요."

"어, 그래도 되겠어요? 이제 처음 손맛 본 거잖아요. 입질 왔는데 카메라 들고 있으면 어쩌려고­"

"아니, 전 한번 맛봤으니까 이제 노르드님 차례가 맞죠."

지금껏 내가 핸드폰을 들고 있던 게 미안하기라도 한 걸까. 말까지 끊고 들어오는 주연의 배려는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는 접이식 의자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무튼, 비린내 나는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고 싶지는 않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으음, 시청자분들은 생생한 일인칭 화면을 좋아하지 않나? 조금 아쉬워할 거 같은데."

"...걱정 마세요. 지금 채팅창 분위기 좋습니다."

분명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았는데.

채팅창 분위기가 좋다는 건 무슨 의미일지. 촬영 각도에 목숨을 바친 듯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주연의 모습을 보면 없던 호기심도 솟아날 지경이다. 그렇다고 채팅을 보겠다고 자리를 벗어나기도 뭐 해서, 나는 낚싯대 거치대에 대충 손을 얹어두고는 몸을 기울였다. 방금 풀려난 멍청한 물고기가 근처에 소문이라도 퍼뜨렸는지 내 낚시찌에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잠잠한 물가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으면, 옆에서 주연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노르드님 엘튜브 편집자입니다."

아.

"아, 맞다. 편집자님 소개를 안 했네."

"아뇨. 저는 어디까지나 노르드님 도와드리려고 여기 있는 거니까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시청자분들도­"

"아니죠. 저랑 같이 낚시하러 온 거라니까."

"...예. 그렇네요."

"그렇죠. 편집자님, 음. 계속 방송에서 편집자님이라고 부르기도 뭐 하네요. 그럼 앞으로 냥냥­"

"­노르드님!"

물고기 다 달아나겠다.

갑작스레 언성을 높인 주연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커다랗게 뜬 눈초리가 사납게 변해서는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주연이 본래 사용하던 닉네임을 읊으려던 나는 입을 앙 다물고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예상치도 못한 예민한 반응이다. 아니, 자기 닉네임이 뭐가 어때서 저러는 건지. 저컴 노르드 게시판의 오랜 네이밍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면 될 텐데.

커뮤니티에 남긴 흑역사 정도야, 다들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 아닌가. 주연 정도면 내가 볼 때 그렇게 대단한 정도도 아니었다. 게시판 관리자로 새 계정을 등록한 이후에는 그마저도 별 활동을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왜 그래요? 고기들 다 달아나게."

"아니... 후우. 그냥 계속 편집자라고 불러주세요. 저는 괜찮으니까요. 정말로."

내뱉는 한숨이 무거워서, 나는 그냥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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