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화 〉 201 분위기를 깨는 건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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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이 생각하기에, 인터넷 방송의 흥망을 판단하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단순히 시청자 수를 헤아리면 그만이다. 어떤 식으로든 방송이 재밌으면 더 많은 시청자가 모여들기 마련이다. 방송국에서 시청률을 의식하고, 엘튜브에서 조회수를 의식하는 것처럼. 방송에선 시청자가 몇 명이나 모여들었는지를 의식해야 한다. 그게 보다 뚜렷한 지표였으니까.
애매한 기준 따위가 아니라 수치로 증명되는 지표라는 점에서, 방송인들은 자신의 컨텐츠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다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평소보다 시청자가 많은지 적은지를 생각하면 되는 일이다. 많다면 방송 내용이 재밌다는 증거일 테고, 적다면 평소보다 방송이 조금 떨어진다는 증거가 되겠지. 거기서 방향성을 어떻게 수정할지는 주연이 생각할 바가 아니었다. 아무튼 지표는 주어졌으니, 시청자를 더 끌어올리기 위해 무슨 시도를 할지는 철저히 스트리머 개인에게 주어진 임무일 터다.
그게 한창 인터넷 방송에 미쳤을 당시 주연의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노르드의 편집자를 하고 있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시청자 수는, 스트리머에게 있어 그 어느 것보다 명확한 지표로 작용했다. 자신의 방송 컨텐츠가 괜찮은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그러니까... 지금 혜진의 낚시 방송은 성공적인 컨텐츠라고 봐도 무방했다.
갈수록 올라만 가는 시청자 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런 결론 밖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짤랑거리는 효과음과 함께 앳된 느낌이 감도는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연이 들어 올린 핸드폰에서 나온 소리다. 소리를 들은 혜진이 모자를 벗고는 핸드폰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였다.
[리액션 씹혜자 ㄷㄷㄷㄷ]
[브이로그가 찐이었구나]
[편집자 누님 사진 개잘찍을듯ㅋㅋ 앵글지리네]
[줌 더땡겨주세요]
[만원에 모자벗기... 누가 백만원정도만 써봐 얼굴 더보게]
[어라...? 낚시 방송 나쁘지 않을지도...?]
[여기 어디임??]
[넋놓고 보게되네... ㄹㅇ 얼굴이 컨텐츠다 ㅆㅅㅌㅊ]
[어딘지는 왜 궁금해 병1신 육수,련이]
[노르드는 카메라를 안잡는게 맞다 ㅇㅇ]
[제발 모자좀 그냥 어디 버려주시면안될까요?]
[낚시에 관심있으면 궁금할수도있지;;]
[여기 낚시에 관심있는 새기가 어딨어 븅신아]
하천 위에 떠있는 낚시찌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별다른 내용이 없는 방송. 주연이 촬영을 맡은 이후로는, 혜진은 채팅창과의 소통도 할 수 없었다. 그전에 소통을 제대로 했는지는... 둘째 치고서.
작은 모바일 화면에 자잘한 글씨가 빼곡히 올라간다. 설정에서 폰트와 크기를 조절한 탓에 눈에 띄게 작아진 채팅. 그 속에서 용케 혜진에 대한 찬사만 골라 읽는데 성공한 주연은 곧장 다시 중요한 포인트로 시선을 옮겼다. 채팅창이 축소된 자리에 방송 화면으로 송출되고 있는 카메라 시점이 드러났다.
당연히도, 메인 모델은 혜진이다.
어느새 우중충하게 가라앉은 느낌의 하늘. 회색 구름이 태양을 가렸다. 구름이 채 가리지 못한 빈틈 사이로, 드문드문 밝은 햇살이 내리쬘 뿐이었다.
혜진은 그렇게 내리쬔 한줄기 햇살을 비스듬히 받고서 앉아있었다.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접이식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옷과 색깔을 맞춘 듯 대충 눌러 쓴 검은색 캡 모자도 그녀의 미색을 가리지는 못했다. 한쪽 무릎을 굽히고는 팔을 얹어 턱을 괴고 있었는데, 몇 분간 미동도 하지 않고 강을 쳐다보는 모습이 마치 화보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다.
마음 같아선 혜진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모든 각도가 담기게끔 사진을 찍어두고 싶은 기분이었다. 방송만 아니었어도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을 텐데. 멋모르고 고정시켜둔 캠코더의 위치가 아쉽게 느껴질 지경이다. 지난 대회 날 촬영한 영상 전부를 하드에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혜진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연은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집어삼켰다. 지금은 작은 소리도 내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다시금 자신 쪽으로 흘러들어오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됐다. 만 명이 넘는 시청자 앞에서 자신의 뒷계정이 들통나는 장면을 상상하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두어 번 잡히더니 다 도망쳤나... 집자님. 집자님?"
섬세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혜진의 얼굴을 확대하고 있으면, 물가를 바라보고 있던 혜진이 갑작스레 고개를 돌렸다. 혜진의 얼굴을 향해 확대된 초점. 연한 갈색빛이 감도는 눈동자가 카메라 렌즈와 눈을 마주쳤다. 크게 요동치는 채팅창을 애써 외면한 주연이 태연한 척 대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저녁은 근처에서 해결하고 가는 게 좋겠죠? 아침 먹고 쭉 공복이잖아요. 라면 끓여먹게 버너라도 들고 올 걸 그랬나 봐.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네."
진심으로 말하는 듯 이쪽을 쳐다보는 혜진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브이로그 영상을 위해 하루 종일 촬영을 진행했던 대회 날에도, 혜진의 얼굴에 저토록 뚜렷한 감정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었는데. 오늘 혜진은 의아할 정도로 감정 표현이 도드라졌다. 유난히 솔직한 태도와 들뜬 기색이 역력한 언행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나 낚시를 좋아하나 싶었다. 아니면 기분 좋은 일이라도 따로 있는 건지.
한편으로는 자신과 함께 있는 걸 그만큼 편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온통 벽을 세우고 다니듯 타인의 접근을 막아서는 혜진은, 어느 순간 제 쪽에서 먼저 발을 뻗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건 서서히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고양이의 습성과도 비슷했다. 가까워질 수 있게끔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 좀처럼 가까워지기 힘든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망상이 짜릿함을 불러왔다.
"돌아가는 길에 먹으면 되죠. 노르드님 편한 대로 하세요. 저는 아직 배가 안 고파서."
"아, 여기서 먹으면 운전을 못하니까 안 되겠네."
"네? 술만 안 마시면 상관"
"에이, 낚시터에 왔는데 어떻게 술을 안 마셔."
"...뭔가 부장님 같은 발언이네요."
툭. 잠깐 말을 멈춘 혜진이 발치에 있던 자갈 하나를 걷어찼다. 힘없이 설설 굴러가던 돌멩이는 물에 닿기 직전 동력을 상실하고는 털썩 멈춰 섰다.
"으음... 그냥 하루 자고 갈까요? 근처에 모텔이나 찾아서."
순간 말을 잃은 주연이 돌멩이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굳이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폭발적인 채팅창 반응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과한 입력을 받은 채팅창이 눈에 띄게 버벅거렸다. 무수히 많은 물음표가 한꺼번에 화면을 채워 넣는다. 주연 스스로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러니까, 혜진은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태연스럽게 폭탄 발언을 내던질 때가.
"그게 무슨... 너무, 계획에도 없는..."
"시작부터가 무계획이었는데요, 뭐. 서울까지 올라가서 먹기에는 너무 늦을 거 같지 않아요? 지금 출발해야 될 텐데. 너무 빠듯하잖아요."
굴곡이 있는 땅에 대충 설치한 의자는 무게 중심을 바꿀 때마다 지면에 닿았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일으켰다. 거기에 재미라도 들린 건지, 혜진은 연신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뇌에 과부하가 걸린 주연은 멍한 얼굴을 하고는 그 광경을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채팅창에선 서서히 선을 넘나드는 채팅이 올라왔다. 거기에 화들짝 놀라 반발하는 시청자로 인해 채팅창에는 한바탕 소란이 발생했다. 아무튼 주연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주연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과 비교하면, 전부 유치한 소꿉장난이나 다를 바 없었으므로.
"집자님? 어때요."
혜진의 등 뒤로 꼬리가 흔들리는 듯한 환각까지 보일 무렵이다.
우와아아아악! 워어! 워어! 워!
핸드폰에서 터져 나온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거친 샤우팅 소리 뒤로 익숙한 TTS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쇳소리 섞인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일침이라도 가하듯 강한 어조로 후원 문구를 읽어나간다. 멍하니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주연이 황급히 핸드폰의 볼륨을 조절했다.
뭔데, 뭔데 갑자기 이렇게 큰 소리가 나는 건지. 후원 TTS 소리 이전에 큰 소리로 터져 나온 샤우팅 때문에 깜짝 놀라 핸드폰을 놓칠 뻔한 참이다. 그 뒤에 붙은 후원 음성은 제대로 인식하기도 힘들었다.
"이게, 이게 무슨?"
"아... 저거 어젯밤에 후원 알림음 설정한 건데. 십만 원은 알아듣기 쉽게 헤비메탈 사운드로 넣어놨거든요. 생각보다 크네요. 깜짝 놀랐네. 아, 큰 후원 감사합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얼굴은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주연이 가장 낮은 단계까지 볼륨을 줄였다. 깨질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던 게 거짓말처럼, 하천은 빨리도 적막을 되찾았다. 태연한 얼굴로 주연이 서있는 방향에 인사를 남기는 혜진을 보면 헛웃음이 절로 흘렀다.
[ㅅ1ㅂ, 깜짝이야]
[이어폰 집어던졌다 10련아ㅋㅋㅋㅋㅋ]
[편집자님 제발 꿀밤한대만 갈겨주세요]
[이거 우리 엿먹이려고 그러는거맞지????]
[아니 소리를 무식하게 크게 해놨네ㅋㅋㅋㅋㅋ 이거 계속 십만원 박으면 방송 테러아님?]
[거의 영도테러수준]
[물고기 다 도망가겄다]
...놀랄 만큼 큰 소리가 들렸던 건, 방송을 진행하는 당사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후원 알람 설정. 주연도 알고 있는 기능이다. 여러 세부 설정을 파고들면 후원 금액마다 다른 소리가 나게끔 설정하는 것도 당연히 가능했다. 실제로 많은 스트리머들이 사용하는 기능이기도 했고. 혜진이 쉬는 기간 동안 그걸 건드렸다고 해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렇게 하드한 사운드를 저만큼이나 큰 볼륨으로 설정했다는 게 문제였다. 핸드폰 스피커로 적막한 하천을 화들짝 놀랠 정도로 큰 소음. 이전까지 받았던 후원을 생각하면 이건 방송 설정의 문제도 아니었다. 혜진이 설정한 십만 원 후원의 알림음이 지나치게 클 뿐이지.
탓하는 것처럼 혜진을 바라보면, 혜진은 뭔가 억울한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대답했다.
"아니, 칼고가... 칼고님이 알려준 거예요. 후원 금액 클수록 효과음도 크게 하는 게 좋다고 했다고요. 그래야 쏜 사람들도 강조 효과 제대로 받아서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럼 저런 효과음을 넣었으면 안 됐죠. 애초에 왜 저런걸..."
"강조 효과가 넘치잖아요. 칼고님도 재밌을 거 같다고 했는데, 진짜. 테스트할 때는 그렇게 크지도 않았어요. 막판에 볼륨 조절을 잘못했나.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후원 음성도 잘 안 들리네. 뭐라고 했는지 들었어요?"
"...잠시만요. '아니 내일 방송은 어떡하고' 큼. '술 먹을 생각에 눈이 돌아갔네'라고 하셨네요."
"아."
혜진은 멋쩍은 듯 모자의 챙을 어루만졌다. 후원 목록에 들어가 후원자의 닉네임까지 확인한 주연은, '미친련'이라 적힌 항목을 보고는 말없이 후원창을 닫아버렸다. 정곡이라도 찔렸을까. 말도 하지 않고 접이식 의자에 가만히 앉은 혜진의 모습을 보면 정말 다음날 일정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혜진의 말을 듣고 혹해 망상을 피어 올렸던 주연도 덩달아 한숨을 내뱉었다. 때아닌 소음 공해가 가라앉고, 진정을 되찾은 채팅창은 한창 후원 내용에 격한 동의를 표하고 있었다. 뭔지 모를 아쉬움이 입맛이 씁쓸했다. 어쩌면, 오늘은 야방을 키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주연의 머릿속에서 덩치를 키워갔다.
우와아아아악! 워어! 워어! 워!
볼륨을 줄인 탓에 힘을 잃은 샤우팅만 하천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