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 203 너를 위해 준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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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참 동안 메시지를 쳐다봤다.
댓글을 남긴 것도 아니다. 계정 대 계정으로 직접 문자를 보내온 게 참 저돌적이기 그지없다. 뭐 하는 놈인가 싶어 아이디를 클릭해 들어가면, 놀랍게도 제법 활성화된 느낌의 프로필이 튀어나왔다. 지금껏 올린 게시물이 50개 정도. 맛있게 찍힌 음식 사진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와중에, 군데군데 자리한 나이트폴 화면이 유난히 돋보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가장 최근에 올라온 게시물 하나를 클릭했다. 나이트폴 랭크창. 퀸을 상징하는 체스 말과 함께 573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캡처된 사진 밑에는 이번 시즌 최고 랭크를 달성했다는 문장이 자랑스러운 뉘앙스로 덧붙어 있었다. 요즘은 퀸도 랭크 자랑을 하나. 별짓을 다한다는 생각에 댓글을 확인하면, 댓글엔 의외로 긍정적인 반응이 가득했다. 퀸도 이 정도 찬사를 받을 수 있다고. 대단한 게임이 따로 없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첨부된 사진으로 향했다. 퀸에 속하는 플레이어. 내가 마주했던 유저일 가능성도 적지는 않았다. 아무리 국민 게임이라 할지라도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면 대개 아는 사람들만 남아있는 법이다. 게임은 현실과 달리 위로 갈수록 고이니까.
솔직히 말하면 어디 낯짝 좀 구경하자는 생각이 컸다. 대체 어떤 놈이길래 갓 만들어진 노르드 닉네임 계정까지 찾아와 사칭 운운하며 경찰 짓을 감행한다는 말인가. 하는 짓을 보고서는 대단한 안티인지 대단한 팬인지 구별도 하기 힘들었다. 사실 극성으로 가면 팬이나 안티나 대동소이한 종자로 편하기 마련이지만... 아무튼 궁금한 건 궁금했으니.
크게 확대된 사진을 확인하면 금방 닉네임을 발견할 수 있다. 순위가 표기된 랭크창 바로 위. 딱딱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나이트폴 특유의 익숙한 폰트로 닉네임이 적혀 있다.
'최강전사이무식'...
최강전사 이무식?
이 새끼 내 나이트폴 친구잖아.
저 진짜예요.
뭐라 욕설을 내뱉을까 하다가, 결국 필터를 걸친 존댓말로 답장을 보냈다. 욕도 섞이지 않은 문장으로는 내 억울한 진심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다짜고짜 욕으로 대답하는 것도 수준 떨어지는 일이다. 별생각 없이 써제낀 채팅이 논란으로 번질 수도 있을 테고.
저쪽, 무식이라는 친구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학업이든 업무든 뭔가를 하고 있다면 지금 이 시간에 트라이앵글이나 뒤적거리며 문자를 보내오지는 않았을 텐데. 당장 나이트폴 친구 목록에 저장되어 있는 유저와 이런 대화나 나누고 있는 꼴이 우습게 느껴졌다.
방송 초창기, 랭크에서 만나 결전을 신청하던 유저였다. 그 이후로도 종종 랭크전에서 만나고는 했던 것 같은데.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을 정리하면 제법 오래된 시청자였다. 내 시청자가 인터넷에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는 전혀 알지도 못했고, 굳이 신경 쓸 바도 아니었으나... 그걸 이런 식으로 알게 될 줄은 전혀 몰랐는데.
띠링
...할 일 없는 친구라는 추측은 반쯤 정답인 듯싶다. 무식의 답장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배는 더 빨랐다.
지랄깝싸네 짝퉁련이
계삭안하면 신고테러들어간다. 너같은 새끼 한두번 보는 줄 암? 트라이에 노르드 사칭하던 새끼들이 얼마나 많았는데ㅋㅋ
나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노르드가 사칭범도 거느릴 정도의 월클이었다니. 이건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인걸.
잠깐 노르드를 사칭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떠올려본 나는 금세 머리를 비우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별로 떠오르는 장점이 없었다.
노르드 사칭하는 사람이 많았나요?
한번 말해서 못알아먹나. 몇달전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닉파서 어그로끄는 새끼들 넘침. 남 속이는데 인생 허비하지말고 꺼져 그냥
제가 진짜일 수도 있잖아요. 사진도 직접 찍어서 올린 건데
누가 셀카를 저따구로 찍어서 올려 ㅄ련아; 합성을 하려면 좀 제대로 해서 가져오던가
이 친구 말이 좀 심한데. 내가 사진을 그렇게 못 찍었나.
의문의 실랑이가 계속됐다. 뭐라 채팅을 치는 즉시 답장이 돌아온다. 무슨 말을 하든 대화의 끝은 거의 비슷했는데, 결국 요약하면 사칭 같은 짓은 그만두고 당장 계정을 삭제하라는 말이었다. 말하는 꼴을 봐서는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닌 듯싶었다. 노르드 사칭범을 전문적으로 검문하는 자경단도 아니고.
무식씨 그렇게 안 봤는데 입이 험하시네
아는 척ㄴ
어떻게 같은 나이트폴 동지끼리... 실망입니다.
끝까지 연기하네 씹련이 진짜ㅋㅋ
오가는 말이 훈훈하기 그지없다.
중간부터는 어이가 없다기 보다 그냥 재밌었다. 정말 사칭범이라 생각한다면, 본인이 말한 대로 신고를 누르고 차단을 하면 되는 노릇 아닌가. 그럼에도 무식과의 대화는 쉬지 않고 이어졌는데, 그것도 대화 사이사이의 빈틈이 거의 없었다. 툭하고 치면 툭하고 반응이 튀어나오는 게 거의 ai 채팅봇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할 일이 없는걸 넘어 심심하기까지 한 건지.
이런저런 화두를 던지면 그게 뭐든 찰진 반응이 돌아온다. 거기에 재미를 붙여 계속해서 무식을 자극하다 보면, 내 머릿속으로 불현듯 재밌는 생각 하나가 지나갔다.
무식씨 저 진짜면 어떡할라고 그래요?
지랄. 니가 노르드면 내가 빈스고 데카야ㅋㅋ 진짜면 불알 두짝 잘라서 저글링도 할 수 있음 ㄹㅇ
뒤에서 손으로 툭툭 떠밀면, 별로 힘을 준 것도 아닌데 제 발로 절벽 앞까지 걸어가는 모습. 이게 바로 최강전사의 기백이다.
답장도 보내지 않은 채로, 나는 곧장 저스틴에 들어갔다.
아무튼... 몰래카메라만큼 재미가 보장되는 방송 컨텐츠도 찾기 드물지 않나.
"안녕하세요."
[노하~~~~]
[낮방 스트리머로 전향하신겁니까 선생님]
[오늘은 집이구나...]
[와 ㅅㅂ 물소리안나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방제 똑같은거보고 식겁했읍니다...]
[]
[노르드 사랑해]
[와 이게 얼마만이에요 선생님ㅠㅠㅠㅠㅠ]
[어제 방송은 기억에서 지워버렸음?;;]
이런 일은 신속함이 생명이다. 무식에게 기대하라는 한마디 메시지를 남긴 나는, 지체하지 않고 방송을 켰다.
좌측 모니터로 치워둔 채팅창은, 금세 형형색색의 닉네임이 가득 채웠다. 어제 야방을 해서 그런가. 커다랗게 자리한 채팅창이 이전보다 눈에 잘 들어왔다. 방송을 키면 일단 울기 시작하는 시청자들의 주접도 그렇고. 확실히 모니터는 핸드폰의 작은 화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뜬금없이 찾아온 역체감에 감탄을 하고 있으면, 시청자는 빨리도 늘어났다.
"아, 방제를 안 바꿨구나. 잠시만요."
[휴]
[(현실)만 지우는거 아님?]
[개소리좀하지마 뒤진다진짜]
[캠켜줘캠켜줘캠켜줘캠켜줘캠켜줘캠켜줘]
[대회랑 브이로그 촬영썰 풀때까지 숨참는다 흡]
[방송만 켜주면 난 뭘 해도 좋아.. 노르드사랑해]
제목을 바꾸기 직전. 화면을 전환한다. 내가 보고 있는 방송 설정 창이 그대로 방송으로 송출되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정말 제목을 바꿀 차례였다. 무식의 처형장을 마련할 시간이기도 하고.
마우스 커서가 깜빡인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키보드를 두드렸다. 경쾌한 키보드 소리와 함께, 짧은 방송 제목이 곧바로 완성됐다.
'노르드(진짜)'
의도를 파악했을 유일한 사람을 생각하면, 썩 마음에 드는 방제였다.
[그럼 진짜지 가짜임?]
[괄호에 맛들렸네]
[뭔 뜻임?]
[진짜면 캠이나켜주세요 그때까진 안믿음]
[ㄹㅇ... 목소리 변조하고있는건지 누가아냐]
[그래서 오늘 방송 내용이 뭔가욤? 나이트폴 보고싶은데ㅠ]
툴툴거리는 채팅창 속에서 무식을 찾는다. 잠깐 동안 입을 다물고 채팅창을 뒤적거렸다. 밀려드는 채팅 속에선 무식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시청자는 물론이고, 그렇게 추정되는 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하기야 그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현상수배범이 경찰서에 자진신고를 하는 일이 어디 흔히 있겠는가. 사실 나이트폴에서 사용하는 닉네임과 저스틴 닉네임이 같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오늘은 중대발표가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살며시 운을 떼고 채팅창의 반응을 살핀다. '오' 따위의 채팅이 도배로 올라올 거라 예측했는데. 채팅창은 놀랐다기보다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뭔가 말을 잘못했다는 생각에 황급히 뒷말을 이어붙였다.
"아니, 방종하는 거 아니에요. 오늘 방송 피셔맨 한다는 것도 아니고. 좋은 거예요, 좋은 거."
내가 말을 한 다음에도 시청자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못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어쩔 수 없이 더 끌지 않고 한쪽 구석에 치워둔 인터넷 브라우저를 가져왔다. 창을 크게 확대한 순간, 내 따끈따근한 트라이앵글 계정이 방송 화면에 그대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게시물 1, 팔로워 0, 팔로우 0에 빛나는... 갓 생성된 계정.
막상 띄워놓고 보니 딱히 볼 것도 없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하긴 했다. 이런 식으로 공개하려고 만든 건 아니었는데. 이게 다 무식이라는 놈 때문이다.
"저, 그... 트라이앵글 계정을 만들어서요. 방금 만든 거기는 한데."
[????]
[ㄹㅇ 중대발표였네 시,,발]
[인생의 낭비 입갤ㅋㅋㅋㅋㅋㅋㅋ]
[선생님,,, 대체 왜 저런 인싸들의 전유물을 시작하신 겁니까]
[당장 트라이앵글 설치하러감 ㅇㅇ]
[개처럼 뛰어서 팔로우하러 간다]
[어,,, 그럼 일상사진 올려주시는 건가요? 이걸로 노르드의 남친 자리에 한걸음 더 가까워졌을지도 ㅎ]
[육수 개같이 폭발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폭발적으로 올라오는 채팅창이 민망한 정도를 줄여주기는 했다.
<노르드발닦개 님이="" 10,000원="" 후원!=""/>
매일 사진 올려주시는건가요??? 드디어 시청자와의 소통을 시작하신건가요 선생님 저는 감동입니다...
"후원 감사합니다. 네? 드디어라뇨... 누가 보면 소통 안하는 스트리머인줄 알겠어."
물음표로 도배되는 채팅창은 무시하고 넘어간다. 원래 시청자들은 스트리머가 하는 말이면 그게 뭐든 갈고리를 뱉고 보는 경향이 있었다.
"게시판을 보는데 인기글이 다 제 사진이나 클립으로 도배되어 있더라고요. 그렇게 사진을 원하면 제가 직접 공급해 드리는 게 맞다 싶어서 만들었습니다. 잘했죠?"
내가 올린 첫 번째 게시물을 클릭했다. 적당한 각도, 적당한 세기로 내리쬐는 빛. 정확히 반만 가려진 얼굴까지. 뭔가 그럴듯한 느낌이 잔뜩 묻어 나오는데, 정작 사진을 처음 목격한 무식은 형편없는 합성이라고 평가한 바로 그 사진이다.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 이게뭐노]
[그러면 그렇지 바로 '노르드']
[지나가던 비글이 찍어도 선생님보단 사진 잘찍을거같은데요]
[뭔ㅋㅋㅋㅋ 역광땜에 초점 나가리돼서 얼굴도 잘 안보임]
[이게 현대예술인가뭔가하는 그거냐?]
[그냥 아무렇게나 대충 찍어도 이거보단 예쁠듯... 모델이 아깝다 ㄹㅇ]
[나는 사진 더럽게 못찍는 노르드도 사랑해@@@]
아무도 내 예술성에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다.
한 명이라도 칭찬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채팅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 내가 표정관리를 못하는 거지 사진을 못 찍는 건 아니지 않나. 자기들은 대체 사진을 얼마나 잘 찍는다고.
울컥한 심정에 곧장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저거보단 낫다는 채팅이 제대로 눈에 밟혔다. 얼굴 정면에 핸드폰을 들어 올리고, 각도나 빛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곧장 사진 하나를 찍어냈다. 찰칵하고 사진이 찍히는 소리도 거슬렸다.
결과물을 보면, 당연하게도 정말 흔해빠진 셀카에 지나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항의하는 심정을 담아 내 두 번째 게시물을 등록한다. 이 과정을 마치는 데까지 일 분의 시간도 소요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에 송출되는 내 트라이앵글 계정에 내가 올린 두 번째 사진이 갱신되어 나타났다. 갑자기 조용해진 방송에 의문을 토하듯 물음표만 올리고 있던 시청자들이 뒤늦게 반응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턱을 괴고 채팅창을 읽어내렸다.
[뭐야 지금 올린거임?? 와ㅋㅋㅋㅋㅋㅋ]
[바로 무지성 좋아요 박았습니다]
[제발 캠좀 켜!!!!!! 저 얼굴을 하고 있는데 왜 캠을 안키는거야]
[존예]
[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
[이번엔 비글이 찍었나보네]
[아니 옷 뭐임????? 잠옷임??? 제발 전신샷]
[눈물흘리면서 개추]
[할 줄 아는 사람이 대체 왜;]
......염병.
고개를 숙이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 하나 없는 현실에 한탄하고 있을 때다. 마우스 옆으로 치워둔 핸드폰에서 지잉, 하는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동시에, 인터넷 브라우저 창에서도 작게 팝업창 하나가 확대되어 올라왔다. 작은 메시지 창이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
뒤늦게 방송을 킨 이유에 대해 자각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