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 204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
* * *
[누구임?]
[뭔데 디엠보내냐? 뒤1질려고]
[수락안하면 메시지창 안뜨는데 언제받은거지]
[누구야저거내가첫번째로팔로우했는데내가먼저했는데뭔데감히처음을뺏는거야내가노르드첫맞팔이되야하는데]
[내 메시지도 받아줘]
[억지 광기ㄴ]
[캠켜노르드!!!]
무식이 보낸 메시지가 모니터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 잡았다. 방송에서도 마찬가지겠지. 매 문장 끝에 섞어 넣던 조롱기 섞인 자음은 어디로 갔는지, 느닷없는 사과의 메시지에선 정중함이 묻어 나왔다. 나는 턱을 괴고 있던 팔을 내리고는 목을 축였다. 몰래카메라라. 어찌 됐든, 이미 '몰래'는 물 건너 간 셈이다.
그래도 방송 알람을 듣고 후다닥 찾아와 발을 동동 굴렀을 누군가의 모습을 생각하면 목표했던 바는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몰래카메라도 결국 사람이 당황한 모습을 보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으니. 의문이 섞인 채팅을 쏘아대는 채팅창 어딘가에 숨은 채로, 초조하게 방송을 지켜보고 있을 무식을 상상한다. 그건 꽤나 재밌는 일이었다. 무식의 정체를 전혀 모르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 말이 늦었네요. 사실 지금 방송을 켠 이유가 있거든요. 원래 오늘은 저녁 방송을 하려고 했는데."
천천히 뜸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이어질 멘트를 생각하면서, 마우스를 잡은 오른손을 빙빙 돌렸다. 내 얼굴 사진을 막아선 무식의 메시지 창 위로 자그마한 마우스 포인터가 빙글빙글 빠르게도 돌아갔다.
"그런데 트라이앵글 계정을 만들자마자 문자 하나가 날아오는 거예요. 첫 글 올리고 몇 분도 안 지나서. 뭔가 좀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엔 그냥 시스템 메시지인 줄 알았죠. 어디서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문자를 보내겠어요. 처음 만든 계정인데."
슬그머니 채팅창을 훑어보면,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 동의를 표하는 채팅이 많았다. 시청자의 관심을 이렇게 한 데 끌어모을 수 있다니. 다짜고짜 무식의 존재를 커밍아웃하기라도 했으면 채팅창도 무지성 갈고리로 도배되었을 게 분명하다. 이야기의 빌드업이 이렇게 중요하다.
"뭔가 하고 읽어보니까... 방송을 꼭 키고 싶어지더라고. 아. 문자 내용 뭐냐고요?"
여기까지 말하고 간을 본다. 그럼 얼마 지나지 않아 신규 메시지가 띠링 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진동 알람이 디폴트 값으로 되어있는지 요란하게 울어대는 핸드폰이 시끄러웠다. 쉬지 않고 떨어대는 핸드폰을 무음 상태로 진정시킨다. 무식이 보낸 메시지 창에는 무수히 많은 '죄송합니다'가 갱신된 채였다.
가만히 있으면 어그로라도 덜 끌릴 텐데. 시청자들이 뻔히 보고 있는 지금 대놓고 메시지를 던져대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저건, 자기 존재를 제발 알아달라고 보채는 꼴이 아닌가. 아니면 정말 내가 메시지 내역을 전부 공개하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해서 미리 사과를 하는 건지.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닌듯싶었다.
하기야... 사람이 늘 현명한 선택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니까.
"무슨 큰 죄를 지으셨나 봐요. 이렇게까지 사과하는 걸 보니까."
주고받은 메시지가 죽 나열된 창을 크게 확대해서 펼쳐놓고, 마우스 휠을 드르륵하고 돌리기 시작한다. 죄송하다고 보낸 메시지에 밀려난 지난 채팅 내역이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가장 최근, 불과 몇 초 전에 받은 최신 메시지는 '아 제발'이라는 세 글자다.
방송 도중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낸 순간부터 방송에 계정이 노출되는 건 당연한 수순일 터였다. 그나마 무식이 본인의 계정에 얼굴 사진처럼 대놓고 신상이 드러나는 게시물을 올리지는 않았다는 점이 다행일까.
만 명이 넘는 시청자 앞에서 자기 SNS 계정을 공개하는 심정이란, 어떤 기분일지. 보통 사람이라면 가슴이 철렁거릴 테고, 특수한 관종이라면 제 쪽으로 쏟아지는 관심에 기분이 짜릿할지도 모른다.
채팅창에선 이미 계속 축적된 호기심에 뿔난 시청자들이 메시지 내역을 공개하라며 시위하고 있는 상태였다. 쟤는 뭔데 혼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냐며.
초조한 듯 오타까지 섞인 무식의 메시지를 읽어보면서, 나는 천천히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게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왜 걸어서는. 허공에 뱉은 말조차 업보가 되어 돌아오는 판에, 기록으로 남는 문자는 오죽할까. 이래서 함부로 키보드를 두들기면 안 된다. 별 대수롭지 않은 약속이라도 함부로 내뱉었다간 언제 박제당해서 올라올지 모르는 일이거든.
"그래도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으니까 다 보여드리기는 그렇고. 조금만 보여드릴게요. 자."
방송을 대기 화면으로 돌려놓고, 대화 내용을 캡처하기 위해 스크롤을 올렸다. 파격적인 공약에서 망설이기를 잠깐.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셈 치고 좀 더 스크롤을 위로 끌어올린다. 상황을 설명하기에 적절한 수준의, 비교적 수위가 낮은 두 문장을 캡처해서 끌고 왔다.
'지랄깝사네 짝퉁련이'
'계삭안하면 신고테러들어간다. 너같은 새끼 한두번 보는 줄 암? 트라이에 노르드 사칭하던 새끼들이 얼마나 많았는데ㅋㅋ'
이 정도면 수위가 낮은 편이긴 했다. 진짜로.
"저도 잘 몰랐거든요. 트라이앵글에 저 사칭하는 사람이 있었나 봐요?"
캡처된 채팅을 띄워 놓고 화면을 다시 돌리면, 그제야 호기심을 해결한 시청자들이 속이 시원하다는 듯 제 의견을 쏟아냈다.
[미친놈인가ㅋㅋㅋㅋㅋ 진짜도 못알아보냐]
[아 이거 땜에 억울해서 방송킨거임? 저수가 또 한건했다!]
[무식이 채팅 화끈하게 치네]
[됐고 선생님이랑 일대일 챗한거 너무 괘씸한데 그냥 처형하죠]
[누구냐 저거]
[어떻게 계정 생성하고 몇분만에 저런 디엠을 보냄? 이정도면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는 거 아니냐]
[무식이 저거 선생님 저격했던 랭커같은데요]
[사칭하는 새기들 꽤 많았지ㅋ]
[antlr? 쟤 노게에 죽치고 사는 놈인데]
[저게 진짜 선생님도 못알아보는 주제에 어딜 팬이라고 ㅉㅉ]
[사칭범들 며칠 못가서 다 뒤지던게 이유가 있었다]
[병청자가 아니라 열사인데? 노르드 사칭범잡다가 방송까지 키게 해주고ㄷㄷ]
[처음올린 사진보면 솔직히 이상하긴하잖아 존나 합성같은데ㅋㅋㅋ 나같아도 짝퉁으로 알듯?]
꽤나 우호적인 반응이다.
불알 저글링이라는 충격적인 공약을 공유하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 결국 내가 방송을 키게 유도했다는 점이 더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하기야, 몇십 분간 짝퉁 취급을 당하며 약이 올랐던 건 내가 경험한 일일뿐이다.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겐 그것조차 재미로 느껴지겠지.
사실 무식의 사과 메시지를 받은 순간 살짝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괜히 화가 잔뜩 난 시청자들에 의해 무식의 트라이앵글 계정에 댓글 테러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짝퉁 취급을 받았기로서니 거기에 보복성 테러를 가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원치 않아도 시청자들의 여론이 그렇게 만들어졌으면 막기 힘들었을 텐데. 아무렴, 바짝 독이 오른 시청자들이 무식의 계정에 테러를 가하지 않게 됐다는 점은 다행이었다.
성현의 평가에 따르면 거칠기 짝이 없는 시청자들 이었던가. 그게 무슨 스트리머의 성격을 닮아서 그런 거라는 헛소리를 내뱉던데, 역시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시청자가 스트리머를 닮는다는 말부터, 내 시청자가 이상하다는 말까지. 엄청난 음해가 아닌가. 그래도 보고 있으면 사리분별은 할 줄 아는 사람들인데.
천천히 채팅을 읽어보면, 무식의 정체를 짐작하는 시청자가 몇 명 보인다.
그래도 계정을 둘러보기는 한 걸까. '최강전사' 따위의 쉽게 잊을 수 없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인간이다. 나처럼 트라이앵글에 들어가 확인해 봤다면 알아보는 사람 한두 명 정도야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무식은 내 엘튜브 채널 영상에도 종종 등장하는 유저였다. 그래서 나도 더 놀랐던 거고.
그걸 내 입으로 밝혀도 되는 건가 싶었다. 나이트폴 닉네임을 까발리는 정도야 불알 두 쪽 지켜준 대가로 상쇄시키고도 남을 것 같긴 하다만, 혹시 모르지 않나. 나이트폴에 인생이라도 바쳤으면 이 쓸데없는 커밍아웃을 굉장히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 아무튼 나는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잠깐을 망설일 때다.
<최강전사이무식 님이="" 10,000원="" 후원!=""/>
선생님 죄송합니다. 다시는 선생님의 본체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겠습니다. 진짜를 구별하는 안목을 기르겠습니다. 제 불알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이트폴 친구 삭제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이 새끼는 생각보다 더한 관종이었다.
부욱, 하고 살을 꿰뚫는 섬뜩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새롭게 후원 알림음으로 추가한 나이트폴 처형 모션 특유의 효과음이다. 뒤이어 맥빠지게 늘어지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후원 음성을 읽어나가기 시작하는데, 후원을 받음과 동시에 후원자의 닉네임을 확인한 나는 그저 어이가 없었다. 자기 입으로 지 정체를 까발리는 꼴이라니. 트라이앵글 계정 테러니 신상 정보니 뭐니... 이 친구는 별로 그런 배려가 필요한 인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까 닉네임을 저렇게 짓는 사람이 정상인일 리가 없었는데. 저놈이 첫 조우부터 전체 채팅으로 결전 어그로를 끌던 병신이라는 걸 까먹고 있었다.
"하..."
[무식이니?]
[개무식ㅋㅋㅋㅋㅋㅋㅋ 저새기 랭커아님?]
[저 친구 밴좀 해주세요^^]
[시발 할짓이없어서 무슨ㅋㅋㅋㅋㅋㅋ]
[미친새기ㅋㅋㅋㅋㅋㅋㅋ]
[불알은 ㅅ1ㅂ 선생님 앞에서 더럽게]
[뭘지켜?]
<최강전사이무식 님이="" 10,000원="" 후원!=""/>
불알은 선생님과 저만의 소중한 비밀입니다. 알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이렇게 기분 나쁜 후원은 처음이다.
순식간에 갈고리와 자음으로 뒤덮인 채팅창이 두통을 유발했다. 이때를 노리기라도 했던 걸까. 후원 하나가 이렇게 난리를 일으킨 꼴을 보고 있으면, 무식이 처음부터 이 상황을 유도하고 설계한 게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피해 망상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아무튼 범상한 놈은 아니었다. 아주 부정적인 방향으로.
"후원으로 채팅창하고 소통하지 마세요. 아니, 그냥 넌 후원을 하지 마세요. 가만히 있어."
네 선생님
이번엔 후원 알림을 대신해 트라이앵글 메시지 창이 불쑥 튀어나왔다. 말을 참 잘 알아 처먹는구나. 당장 창을 닫고 차단을 할까 생각하다, 아이디를 클릭하고 무식의 계정으로 들어갔다. 이미 개판이 다 된 채팅창을 보면 차라리 관심을 좋아하는 놈에게 판을 깔아주는 게 낫다 싶었다. 정 진정될 기미를 안 보이면, 조금 이른 타이밍에 방종을 하면 그만이다.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antlr_98의 계정. 방송을 틀어놓고 남의 SNS나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이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전에 봤던 기억을 되살리면 볼만한 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손이 가는 대로 무식이 올려둔 게시물을 하나씩 클릭했다. 무식이 찍어 올린 걸로 추정되는 음식 사진들은, 아무리 봐도 잘 찍었다고 평가하기는 애매해 보였다. 대충 앉은 자리에서 찍어서는 앱에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아무 필터나 덮어씌운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사진 참 못 찍네요. 고기가 맛없어 보이기도 힘든데."
[ㄹㅇㅋㅋ]
[딱 입시 노르드수준이네]
[둘이 겨루면 자강두천할듯]
[와,,, 무식이는 노르드가 트라이도 봐주네,,,]
[포상지리고]
[돼지새끼 겁나 쳐묵었네]
재미없고 비루한 음식 사진들을 보다 보면 결국 나이트폴 전적으로 손이 향하기 마련이다. 이건 비단 나이트폴 유저인 내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사진에 붙은 하트나 댓글 수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음식 사진보다 나이트폴 스크린샷이 더 인기가 있는 상황에 위화감을 느끼며 동영상 탭에 들어갔다. 사진과는 다르게, 영상 목록은 나이트폴로 추정되는 영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유혹을 참지 못하고 영상 하나를 클릭한다. 몇 천 단위로 놀던 게시물과는 달리, 만 단위를 넘어가는 영상의 조회수부터가 인상적이었다. 이 정도면 조금 규모가 작은 엘튜브 채널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 같은데. 1분 이하의 짧은 영상인데도 댓글도 제법 많았다.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은, 엄지를 치켜세운 이모티콘. 실력에 감탄하는 댓글들이 주를 이룬다. 아마 매드무비 같은 느낌의 영상일까.
"퀸이 무슨 하이라이트 영상을..."
선생님 그런 말씀은 삼가해주세요. 제 자부심입니다.
아무튼, 반응 속도 하나는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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