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화 〉 205 물어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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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나이트폴 플레이 하이라이트 영상은 어딜 가나 차고 넘쳤다.
그건 내가 방송을 시작하기 전부터 느꼈던 점이다. 조금만 알아봐도 나이트폴과 관련된 영상이나 컨텐츠가 얼마나 많은지. 엘튜브에서 나이트폴 영상을 시청하다 보면, 조금만 지나도 알고리즘에 온갖 관련 영상들이 걸려들기 시작한다.
개중 슈퍼 플레이를 위주로 만든 하이라이트 영상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유명 방송인이나 프로게이머 플레이부터, 조회수가 얼마 나오지 않는 일반 유저의 영상까지. 뒤적거리고 있으면 과연 이게 국민 게임의 위용인가 싶을 정도였으니.
공급이 많은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영상이 계속 올라오는 이유. 단순히 나이트폴을 즐기는 유저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하이라이트 영상의 인기도 많았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날카로운 검을 흘려내고, 완벽한 반격으로 적의 목을 베어내는. 의도된 플레이가 성공했을 때의 짜릿함은 그걸 조작한 플레이어를 넘어 보고 있는 사람들마저 자극하기 마련이다.
당장 내 엘튜브 채널부터가 그랬다. 운영을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내 채널에서 나이트폴 하이라이트 영상은 대부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것도 컷 편집을 제외하면 별다른 효과도 더하지 않은 순수한 플레이 영상들이. 방송을 계속하다 보면 올리기만 해도 몇십만 조회수가 나오는 컨텐츠라는 게 얼마나 희소한지 쉽게 체감할 수 있었으니. 그토록 많은 하이라이트가 올라오는 것도 이해할만했다. 게임 실력만 보장되면 무궁무진한 하이라이트를 뽑아낼 수 있었으니까.
게임 플레이 영상이 그토록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건 그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겐 분명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오는 일이다. 게임을 하는 도중 멋진 플레이가 나왔다 하면, 장례식에서 그 장면을 틀어달라는 우스갯소리나 해대는 게 게이머라는 족속들 아니던가. 생전 고인의 개쩌는 플레이를 봐달라는 정도의 자기과시는, 사실 그렇게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다.
내가 무식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천상계 취급을 받는 퀸 랭크의 유저가 본인의 SNS에 자기 플레이를 모아놨다고 해도 그게 쪽팔리거나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건 몇 만이 넘는 영상의 조회수만 보더라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처음 내 랭크를 들었을 때 주호가 보여줬던 반응을 생각하면 일반인들 사이에서 퀸이 얼마나 높은 랭크일지는 알 만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주변 지인들한테 자랑하고 다닐 수는 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수준.
물론... 조회수가 늘 플레이의 수준을 대변하는 건 아니었다.
"효과가 조금 과하네. UI 없애고 보정 넣어주면 그 자리에 누가 와도 슈퍼 플레이처럼 보이잖아요. 심지어 타격 모션에도 따로 이펙트까지 준 거 같은데요. 이럼 솔직히 다른 게임이라고 봐도 되지 않나."
"멀티 킬 장면이라 올린 것 같은데... 상대 대처가 너무 이상해서 감흥이 없어요. 차징으로 어깨부터 밀어 넣는데 무빙도 안치고 정면에서 거리를 내줘. 스태 다 긁었다고 하기엔 뒤에 백업으로 붙는 사람까지 상태가 안 좋잖아요. 이거 배치 때 찍은 영상 아니에요? 양학을 포장해서 올리는 건 좀."
"여긴 상대편 닉네임까지 나오네요? 아, 프로 유망주로 날리는 유저라고. 그럼 이거 박제 영상이네요. 박제하는 건 상관이 없는데, 평소엔 안 보이다가 이럴 때만 닉네임 보이게 설정하면 이겨서 신난 티가 너무 나잖아요. 일관성이 없으니까 조금 추하네요."
이제 그만해주세요...
['그만']
[무혐을 멈춰주세요]
[지가 평가해달라며ㅋㅋ 관종이면 달게 받아라]
[그래도 영상 은근 고퀄인데? 편집 본인이 한건가ㅋㅋ]
[만명앞에서 선생님한테 조리돌림이라니,,, 무식이 너무 부럽고]
[98년생 이무식... 오늘도 하이라이트 장면 하나를 뽑기 위해 무던히 노력 중]
[왜 노르드는 박제 안했음? ㅋㅋ]
[이긴적이 없으니까]
겉만 번지르르한 영상이 대부분이다.
미니맵이나 스태미나 게이지 따위의 인터페이스를 제거한 깔끔한 인게임 화면. 무슨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웅장한 배경음까지 삽입했다. 짧게 편집된 영상은 대체로 30초에서 1분 정도의 길이였는데, 그런 것치고는 꽤 공을 들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리플레이 기능을 활용했는지 짧은 영상임에도 시점이 은근히 다양했다. 자신이 플레이한 개인 화면은 물론이고, 3인칭 관전자 시점이나 상대하는 적의 시점까지 빈번히 튀어나왔다. 영상마다 두어 개 씩은 나오는 것 같은데. 편집 프로그램을 만지다 보면 느끼는 점이지만, 소스 영상이 늘어날수록 편집의 번거로움은 배가 된다. 사실 그 수고를 감당했다는 것만으로도 무식의 영상은 높게 평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관종에게 당근까지 던져주는 건 별로 내키지 않았다. 동영상 탭으로 페이지를 넘긴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자기 어필을 시작하던 인간이다. 호평이라도 했다간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기고만장해서는 별의별 헛소리로 방송에 침투하겠지. 아무튼 이런 사람을 대할 때는 적당히 억눌러주는 게 중요한 법이니까.
다시 영상에 집중한다. 두꺼운 투구 때문에 반쯤 가려진 시야가 오히려 영상의 긴박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지켜볼 때 답답함까지 느껴지는 나이트폴의 일인칭 시점. 그러나 전투 순간의 급박함과 현장감을 느끼기에는 또 이만한 시점이 없었다.
빠르게 달려가는 도중, 고개를 돌려 측면의 적을 흘끔 확인하고 지나친다. 몸놀림이 가벼워 보이는 경갑, 들고 있는 무기는 창.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정면으로 내밀고 있는 창끝이 위협적이다.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순간 측면의 적을 확인한 무식은, 그걸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방패를 들어 올린 정면의 적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쿵. 충격의 순간 크게 화면이 흔들린다. 편집으로 강조된 흔들림은 평소보다 강렬했다.
차징으로 크게 물러난 방패병만 봐도 온몸에 중갑을 두른 무식의 육중한 질량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비틀거리는 방패를 검은 다리가 다시 한번 걷어찬다. 발차기의 반동으로 잠시 휘청인 무식이 그대로 자세를 낮췄다. 좁은 시야 속, 양손으로 굳게 잡은 워해머가 투박한 은빛을 번뜩였다. 바닥에 끌릴 정도로 낮게 내리깐 둔기. 적막 속에서 바닥을 차는 발소리가 점점 선명함을 더해갔다.
다음 순간, 묵직한 쇳덩이가 바닥에서부터 반원을 그리며 솟구친다.
커다란 파열음. 달려들던 기세를 그대로 담아 창을 내지르던 창병이 기습적인 카운터에 복부를 내주고 날아갔다. 공격의 반동으로 흔들리는 시야와 비산하는 파편, 커다란 충격에 잠깐 허공에 붕 떠오르듯 밀려난 적 창병과 화면을 흐릿하게 만든 편집 효과까지. 타격 장면은 강렬하기 짝이 없다.
결과는 두말할 것도 없는 즉사였다. 타격 소리를 강조하기 위함인지 잠깐 조용했던 영상. 창병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무렵에서야 다시 배경음이 흘렀다. 한층 내려간 볼륨 때문인지 클래식 소리가 잠잠하게 다가왔다.
이 정도면 나이트폴보다 영상 편집을 더 잘하는 것 같은데.
"무식 씨, 편집 배웠어요? 게임 스킬보다 편집 기술이 더 괜찮은데?"
사람들이 보는 눈이야 대체로 비슷하다. 내가 나름대로의 호평을 보낸 영상은, 함께 영상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에게도 꽤나 그럴싸하게 느껴진 것 같았다. 잘 만들었다는 평가와 더불어 감탄사를 토해내는 채팅이 많았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좋아서 까무러칠 상황 같은데.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이번에도 내 멘트가 끝난 것과 거의 동시에 답장이 돌아왔다. 무식에게는 편집에 대한 칭찬보다 게임 실력에 대한 지적이 더 깊숙이 와닿았던 모양이다. 영상 평가는 그렇다 치고, 플레이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고 계속 보채는 꼴이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이 인간은 대체 몇 살인 걸까. 대화를 나눌수록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다는 점에서, 무식은 제법 매력적인 인간이었다. 아무튼 계속 관심이 이어진다는 건 충분한 매력 포인트가 아닌가. 사람들 앞에서 불알 운운하는 어투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고 치면.
"자꾸 채팅으로 대답하지 말고 그냥 베코 하실래요?"
판은 깔아줬으니 들어와 보라고.
아무튼, 나도 남의 SNS 영상이나 훔쳐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아, 아. 드, 들리시나요?"
[무하]
[무식쿤 목소리 생각보다 여리여리한데?]
[닉이랑 매칭이 안되노ㅋㅋㅋㅋ 무식이 잼민이였니?]
[와 존나 부럽네 진짜]
[목소리 쌉게이갔네 ㅅㅂ;]
[나도 신규 계정에 시비털고 다니면 노르드랑 통화할 수 있는거임? 오늘부터 dm 테러하고 다닌다 다 뒤졌다]
[불알 불알 집착을 하더니 불알이 없어서 그런 거였음]
[좀 적당히 놀려라;]
[목소리 개떨리잖아 지금ㅋㅋㅋㅋ 무식이 찐따였냐고]
무식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가늘었다.
최강전사이무식. 남성성이 물씬 풍기는 닉네임을 생각하면,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잔뜩 깔린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았는데. 들려오는 건 중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얇은 목소리였다.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감을 표하는 것도 얼빠진 일이다. 딱히 낮은 목소리가 튀어나오는 걸 기대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괜히 목소리만 듣고 비난을 쏟아대는 시청자 몇몇을 차단하고는 입을 열었다.
"잘 들려요. 마이크 음질이 되게 좋네요. 그냥 헤드셋 마이크에요?"
"네? 네. 비싼 건 아니고... 그, 가성비로 유명한 제품이에요. 엑스티에서 새로 나와가지고"
"아니, 브랜드까지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요. 무슨 광고하세요?"
"예? 네. 아니, 아니요. 죄송합니다."
존나 소심하잖아.
가성비 제품이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쓸데없이 음질이 좋은 마이크는 끝으로 갈수록 작아지는 무식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포착했다. 세상 관종인 것처럼 어그로를 끌어대던 메시지 창에서의 그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불알 운운하던 그 모습도 그렇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위축된 목소리가 조금 안타깝게 느껴질 지경이다.
확실히 키보드 워리어라느니 방구석 여포라느니 하는 말들이 괜히 생길 리가 없었다. 그런 표현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온 말이겠지. 많은 시청자 수를 의식한 건지 목소리를 떨어대는 무식의 모습을 보면 그런 단어들이 참 적절하게 어울리는 듯싶었다.
방송각 따위를 생각해며 판을 깔아준 게 잘못된 판단이었나.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건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 흔쾌히 통화를 수락한 이유가 대체 뭘까.
"최강전사이무식님."
"켁, 큽! 네, 네?"
"최강전사이무식님?"
"큼, 큼! 아니, 그냥 무식이라고 불러주세요. 너무 길어서 부담스러우실 테니까..."
"아뇨. 전혀 부담스럽지 않으니까 그냥 계속 이렇게 부를게요. 최강전사이무식님."
사레가 들렸는지 계속 캑캑거리는 꼴도 애처로웠다.
"여기 올린 영상들 전부 혼자 편집해서 만든 건가요? 꽤 양이 많은데."
"네... 이 년, 아니, 삼 년 정도 됐어요. 그전에는 시즌 통틀어서 몇 개 안 만들었는데, 제가 졸업한 다음에는 시간이 많아서..."
"아, 졸업을 하셨구나.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스, 스물넷이에요."
새파랗게 어린놈이었다.
스물넷. 말하는 걸 들어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놀고먹는 상태였다. 편집 솜씨를 보고 관련된 내용을 배운 사람이 아닌가 싶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그건 또 아니었다. 관심이 있어서 따로 독학을 해서 배웠다나. 대답이라고 하는 말들이 전부 두루뭉술하고 분명하지 않아서 무식이라는 인간에 대해 감을 잡기 힘들었다. 하기야, 이토록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 신상을 떠들어대는 것도 조금 껄끄러운 일이긴 하겠지. 궁금하다고 더 이상 캐묻기도 뭐 했다.
매번 질문을 받는 입장에 있다 보니 역으로 질문을 던지는 게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궁금하게 그렇게도 많나 싶던 시청자들이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호기심이라는 건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정보까지 손을 뻗치곤 했다. 떠오르는 질문들을 대충 눌러서 뭉개버린다.
"그래서, 경찰짓은 왜 하신 거예요?"
"녯?"
그래, 물어봐야 하는 건 이런 질문이지.
갑작스러운 질문이 당황스러웠는지, 잠깐 어버버대며 말을 더듬은 무식은 질문과는 상관없는 말을 지껄이며 말을 돌려댔다. 나이트폴 플레이와 관련된 피드백이 듣고 싶어서 찾아왔다나.
내가 신경 쓸 바는 전혀 아니었다. 그런 걸 원했으면 가만히 앉아서 방송이나 보고 있었어야지. 통화에 응한 이상 나는 내가 궁금한 걸 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질문에 대답하시면 피드백 해드릴게요. 먼저 대답부터 하세요. 왜 사칭법 찾겠답시고 갓 만들어진 계정까지 찾아와서 메시지를 남기는 거예요? 따지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그래.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어서."
"그게, 그게 아니라요..."
"천천히 말하세요. 채팅창 볼 필요 없으니까. 애초에 계정 만들어진 건 어떻게 알았어요? 맨날 노르드 닉네임 검색하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맨날 검색하고 있었어요..."
"네? 뭐라고?"
"노르드, 맨날 검색하고 있다고요... 저, 저! 맨날 노르드 검색하고 새로고침하고 그런다고요! 트라잉앵글만 그런 게 아니라 엘튜브랑 게시판도 확인하고 있다고요. 전 찐 육수니까!"
한계까지 높인 목소리가, 가성비 훌륭한 헤드셋의 마이크의 한계를 시험하듯 음질을 찢어댔다.
...때론 물어보지 말아야 되는 것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