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 208 먹다 보면 괜찮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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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더 스카이(Up the sky).
내가 가져온 알차디 알찬 게임 목록을 걷어찬 다음 시청자들이 요구한 게임의 제목은 저랬다.
"그래픽부터 별로구만."
[피셔맨 임진왜란 이딴거 하시는분이 그래픽 타령하는 건 좀 ㅎㅎ]
[쫑알대는거 너무 귀여웡 ]
[저수가 직접 추천하는 방송용 게임인데 투덜대지마십쇼]
[노르드가 이런 겜하는거 너무 어색한데ㅋㅋㅋ]
어쨌든 내 취향의 그래픽은 아니었다.
추천을 받고 게임을 찾아, 구매하고 설치를 완료하기까지 10분 정도면 충분했다. 가벼움도 게임의 장점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면 일단 먹고 들어가는 게 있을 법도 했다.
올해 발매된, 출시하고 아직 몇 달도 지나지 않은 나름 신선한 새 게임. 그런 것치고는 리뷰나 별점이 생각한 것보다 많았다. 온갖 곳에서 홍보 마케팅이 들어오는 대작 게임들과 비교했을 때는 확실히 적은 편이지만, 인디 게임 영역에서 보면 크게 흥행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겠지. 유행하는 게임이라는 시청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런 것치고는 처참하게 낮은 별점이나 부정적 평가가 돋보이기는 했으나... 그건 뭐 어그로가 끌렸을 수 있으니까.
게임을 실행한다. 들어본 적 없는, 게임 제작사인지 후원사인지 뭔지 모를 로고 하나가 검은 화면 속을 굴러가듯 지나간다. 짧은 기다림이 끝나면, 금방 반쯤 나사 빠진 배경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장난감 병정이 나팔을 부는 장면이 떠오르는, 뭔가 엉성하고 경쾌한 트럼펫 소리. 시작부터 B급 감성의 게임이라는 걸 각인시키는 느낌이다. 하나씩 삑사리가 나는 듯한 음처리가 유쾌하게 다가오기는 했다.
로딩이 끝남과 동시에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타이틀 제목이 올라왔다.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듯한 배경 구도가 게임의 제목을 한번 더 상기시켰다. 업 더 스카이... 대충 하늘 위로 올라간다는 뜻인가. 목표 하나는 분명해 보였다.
투박한 3D 그래픽. 얼핏 보기에도 돈이 많이 들어간 그래픽은 아니었다. 상세한 묘사를 숨기려는 듯 대충 뭉개버린 텍스처에서 인디 게임의 냄새가 풍겼다. 살짝 떨어져 바라보면 깔끔하게 보이는 것 같은 게, 일부러 의도해서 뭉갰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지켜보기에 불편한 수준의 그래픽은 아니었다. 낮은 기술력을 연출로 잘 극복했다고 해야 하나.
타이틀 화면의 배경은 키 작은 무언가가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높은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는데, 그 옆에 높이 솟아난 초록색 풀잎이 무척이나 거대하게 느껴졌다. 자세히 보면 배경 하단부에서 더듬이 같은 무언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제야 게임의 개요가 조금은 이해가 가는 듯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벌레구나.
"무슨 벌레에요? 저."
[몰?루]
[개발자 공인 바퀴임ㅇㅇ]
[본격 벌레로 우주까지 날아가는 게임]
[뭔 개소리야 개발자 무슨 벌레라고 공인한 적 없는데]
[진행하다 강물에 비친 모습보면 빼박 바퀴인데 이악물고 반박하노ㅋㅋ]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싸워 병1신들인가 이거]
하기야 무슨 벌레인지가 중요한 건 아니지.
습관대로 설정에 들어간다. 그래픽, 사운드, 컨트롤... 너무 기본적인 옵션들이라 별로 건드릴 부분도 없었다. 그래픽은 최상옵. 조작을 들어가면, WASD가 먼저 튀어나오는 게 매우 익숙하게 다가왔다. 옵션을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건 제법 칭찬할만했다. 최신 게임이라고 나오는 것들 중엔 더럽게 지저분한 설정을 달고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게임을 건드리면 설정을 잡는 것부터가 커다란 문제였으니.
...아니, 오래 할 게임도 아닌데 뭐.
금방 마음을 다잡고 게임 시작에 마우스 포인트를 가져다 댄다. 남의 권유로 게임을 시작하는 건 또 얼마나 새로운 일인지. 새롭게 게임을 받고 실행하는 과정 속에서도 설렘 따위의 기분 좋은 감정을 품고 기다릴 수 없다는 게 참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시켜서 한다는 사실 하나가 이리도 의욕을 뚝 떨어뜨리는 걸 보면, 나는 역시 삐뚤어진 사람이다.
대충 몇 시간 정도를 투자하면 깰 수 있을까. 플레이 타임을 이런 식으로 헤아리는 것도 참 낯선 일이었다. 이건 숙제가 언제 끝날지를 계산하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할 때, 남은 시간을 억지로 되새기는 짓거리.
"이제 시작을... 이거 클리어하는 데 대충 얼마나 걸려요? 볼륨은 엄청 작은 것 같은데."
[6~8시간 정도?]
[캠켜주세요]
[하는 사람 나름이지]
[켠왕 20시간 박고 실패한 사람도 있는데 무슨ㅋㅋㅋ 오늘안에 못깰수도 있는거지]
[그분은 피지컬이 좀 ㅋ]
[켠왕 선언하시나요]
[똥겜은 똥겜만의 영역이 있다...]
[노르드 피지컬이면 오늘안에 깨는건 무조건이지. 6시간 이하로 봐도 될듯?]
[시킬라고 온갖 수를 다부리네 6시간은 무슨ㅋㅋㅋㅋ]
[오늘 이것만 깨고 방종해도 알찼다고 평가받을수있음ㅇㅇ]
생각보다 오래 걸리잖아.
이 게임이 저스틴에서 유행했다는 말은 사실인지, 게임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모르는 스트리머의 이름도 종종 거론되는 걸 보면 게임 스트리밍 쪽에서 한번 반짝였던 모양이다. 아마 한창 대회 준비에 바빴던 시기일까. 한동안 나이트폴 탭에 상주하다 보니 그런 유행이 돌았다는 사실도 이제 알아차린 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스틴에서 히트친 게임도 조사해 볼 걸 그랬나. 아마 성현에게 물어보면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대충 여섯 시간이면 끝을 볼 수 있다는 사람부터, 오늘안에는 엔딩을 보기 힘들 거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뭔가 추측을 하면서도 설명하기 힘든 기대감을 품고 있는 모습이 조금 아니꼽다. 달릴 준비를 하는데 누군가 옆에서 넘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하면 맞을까. 채팅창은 어느새 오늘 안에는 클리어가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를 두고 지들끼리 의문의 토론을 시작했다. 당사자는 놔두고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개소리를 마냥 바라보고 있는 것도 지치는 일이다. 나는 곧장 게임을 시작했다.
스스스슷
게임 스타트를 누른 것과 거의 동시였다. 유쾌한 배경음이 사라진 정적 속에서, 뭔가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튀어나와 귀를 간지럽혔다. 시선을 둘 곳 없는 검은 화면이 이 불편한 소리를 더 강조하는 느낌이다.
이윽고 컴컴한 화면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한다.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눈을 뜨는 것처럼, 서서히 빛이 번지는 화면. 시야가 선명해질수록 귓가를 스치는 스슷대는 소리도 같이 커져가는 게 아주 꺼림칙했다. 불쾌한 정도를 따지면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람 엿 먹이기 위해 게임을 출시했다면 아주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셈인데.
[어우 시작장면 볼때마다 소름돋네;]
[날개조지는 연출은 신의 한수임 ㄹㅇ]
[플레이어의 고막을 위한 밸런스 패치]
[ㅈㄹ 겜하다보면 개열받아서 그냥 저 소리 들으면서 날고싶어지는데 무슨ㅋㅋㅋㅋ]
[선생님 어리둥절한 반응이 너무 새롭네요. 캠만 켜주시면 더 완벽한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요?]
[캠무새들 적당히하고 걍 쳐봐]
온전히 화면이 밝아진 다음에야 그 불쾌한 마찰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눈높이가 조금 이상한 시야, 좌우로 살살 흔들리는 화면. 묘한 부유감이 느껴진다. 그 상태로 마우스를 살짝 아래로 내리면, 뭔가 미묘하게 요동치는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정확히 말하면 내가 컨트롤하는 벌레는 공중을 날고 있던 것이다.
이 좆같이 불쾌한 마찰음은 비행을 위해 지금도 미친 듯이 부비적대고 있는 날개에서 나는 소리였다. 사람을 삼초 만에 불쾌하게 만든 이 디테일한 사운드에 욕설을 뱉어야 할지 찬사를 보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아무튼, 임팩트 있는 시작을 의도했다면 대성공이긴 했다.
퍽!
"뭐야."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후려쳤다.
부유감이 느껴지던 화면이 단번에 뒤집혔다. 어지러운 듯 일렁이는 시야. 시야가 돌아갈 정도의 힘으로 내동댕이쳐진 다음, 보이는 건 비루한 땅바닥이었다.
마우스를 움직여 주변을 돌려보면 온통 거대해진 사물들뿐이었다. 말 그대로, 벌레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 터무니없이 큰 사물들은 시야 안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아서, 마우스를 찔끔 움직이는 정도로는 그게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애매했다. 살짝만 시선을 돌려도 막막함이 느껴졌다.
땅에 추락한 벌레는 충격의 여파를 날려보내듯 얼마간 비틀거리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날개를 비비적거리는 소리가 이전보다 가냘프게 느껴졌다. 벌레는 공중에 살짝 부유하는 것처럼 몸을 띄우더니, 얼마 못가 힘없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무슨 툴팁 같은 게 나온 건 아니지만 상황을 이해할 순 있었다. 더 이상 오래 날지 못하게 됐다고.
튜토리얼 같은 건 없는 것 같았다. 맵이나 체력, 스태미나 따위의 게임 인터페이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상하던 벌레가 뭔가에 맞아서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만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셈이었다. 여기서부터 어떻게든 높은 곳으로 이동해, 어딘지 모를 목적지까지 계속 올라가는 게 게임의 목표일까.
하다 하다 벌레 새끼를 조작하는 날이 올 줄이야. 이게 대체 왜 인기가 있는 건데.
"자, 이제 제대로 시작합니다. 제대로 보세요. 금방 깰 테니까."
이것보단 별 부시는 게임이 훨씬 낫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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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드의 의문이 어쨌든, 저스틴에서 업 더 스카이(Up the sky)가 흥행했던 건 사실이다.
게임 방송에서 언제나 잘 만들어진 게임만이 유행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다. 소위 방송각이라 평가받는 재밌는 장면들은, 소수의 개발자가 참여한 인디 게임에서 훨씬 더 자주 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명작 게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버그나 사건사고 따위가 방송을 더 극적으로 만들고는 했으니. 저스틴 플랫폼에서도 종종 '똥겜'이라 불리는 인디 게임들이 유행을 타고는 했다.
업 더 스카이도 그런 흐름을 탄 게임이었다. 플레이어가 일인칭 시점의 벌레를 조작해, 높은 곳까지 올라간다는 컨셉의 게임. 신선하긴 하지만 미묘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다. 게임을 더 자세히 파고들면 어떠한가. 벌레 느낌을 살리기 위해 쓸데없는 포인트에 힘을 줬는지 디테일한 사운드와 어색한 조작감, 어디가 길인지 알아보기 힘든 가시성이 한데 어우러졌다. 그래픽과 물리엔진이 호평을 받기는 했으나 좋은 평가보다는 나쁜 평가를 찾는 게 훨씬 빨랐다.
어려운 난이도는 나쁜 평가에 방점을 찍었다. 업 더 스카이의 가장 핵심 요소로 손꼽히는 게 바로 이 난이도 문제였다.
플레이하는 유저에게 욕설을 강요하는 듯한 더러운 난이도. 날개를 잃은 벌레는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수많은 난관을 맞이해야 했다. 기습적으로 다가오는 온갖 위험들. 같은 벌레, 설치류 따위가 접근해 공격하는 건 물론이고, 신문지 따위를 집어 든 사람이 다가와 범위 공격을 후려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플레이어는 빠르게 반응해 판단을 내려야 했다. 엄폐물을 찾아 숨거나, 무빙으로 회피하거나, 비행으로 벗어나거나. 게임이 진행될수록 더 빠른 판단을 강요하는 게임은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스트리머가 고통받은 모습을 보며 즐기는 게 인터넷 방송의 묘미라 그랬던가. 그런 뒤틀린 게임성은 저스틴에서 오히려 컬트적인 인기를 만들었다. 한 유명 스트리머가 이 게임을 플레이한 방송이 대박이 난 뒤로, 업 더 스카이는 유행처럼 저스틴에 파고들었다. 마치 게임 스트리머라면 반드시 클리어해야 되는 필수 과정인 것처럼.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스트리머의 모습은 방송의 재미를 보장하는 흥행 수표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노르드의 시청자들도 업 더 스카이를 언급한 시청자의 후원에 그토록 열성적으로 호응했던 것이다. 아무튼, 노르드가 가져온 틀딱 게임보다야 검증된 게임 하나가 훨씬 재밌을 거라는 생각. 또, 그토록 게임을 잘 하기로 소문난 노르드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물론, 노르드의 방송에서 시청자들의 기대는 대체로 산산이 부서지는 경우가 많았다.
"뭐가 자꾸 튀어나오니까 생각보다 재밌네요."
[벌레 본인임?]
[ㅅㅂ 머임]
[암기겜이 아니라 피지컬겜이었음]
[응 한번씩 안죽어봐도 다깨~ 다 보고 피하면돼~]
[선생님 실례되는 말이지만 혹시 전생에 바퀴벌레셨나요?]
[비둘기 첫트 ㅋㅋ 씹 어디서 예습 존나하고온거 아니냐?]
[노르드가 게임하면서 고전한건 피셔맨밖에 없다 그걸 아직도모르냐 ㅉㅉ]
[어떤 스트리머가 이걸 저렇게 피했는데... 어이가없노]
[어케피한거임]
[왜 지혼자 쳐 날아다니노 날개 다친거아니었음?]
게임을 시작하고 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
대충 게임의 절반 정도를 진행했다는 이정표로 평가받는, 비둘기의 기습. 좌측 사각에서 쏜살같이 튀어나온 새를 자연스럽게 피해낸 노르드는, 태연히 날개를 비비적거렸다.
"듣다 보니 정겹네, 이 소리."
한동안 날개 비비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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