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0화 〉 210 ­ 고양이 하나 지나치지 못하는 (210/243)

〈 210화 〉 210 ­ 고양이 하나 지나치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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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d Love:낚시 야방 편집 완료했습니다. 메일로 보냈으니 영상 확인해주세요.

Nord:벌써요? 좀 쉬면서 하셔도 되는데.

Nord Love:방송 보면서 천천히 한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N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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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d:오 캠코더로 찍은 영상 되게 이쁘게 잘 나왔네요.

Nord Love:예쁘게 나올 수밖에 없죠 ㅎㅎ ^^*

Nord:바로 업로드할게요. 다음 영상은 업 더 스카이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알고리즘 고려해도 괜찮나.

Nord Love:이미 원본 영상 받아놨습니다. 편집 준비하고 있어용

Nord:?

Nord:어느날 갑자기 쓰러지는 거 아니죠?

Nord Love:방송 보면서 천천히 한거예요.

Nord:잠은 대체 언제 자

Nord Love:이제 슬슬 잘 거 같네요. 혜진씨는 아직 안 주무시나요?

Nord:?

Nord:전 아침 산책 나왔는데요;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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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서 눈을 뗀다.

동이 틀 무렵....은 한참 전에 지났을까. 아무튼 아침에 마주하는 햇살은 각별한 맛이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바깥으로 밀어낸 만큼, 그걸 성취감으로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왜, 힘든 일을 해낸 건 맞지 않나. 별다른 명분도 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겠지. 내 아침 조깅이 점점 습관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대회 우승만큼이나 대단한 성과였다. 성취감이 조금 분산되어 다가올 뿐이지.

바람이 불었다. 쌀쌀함이 명백한 추위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운동하면서 달아오를 걸 예상해 적당히 주워 입은 트레이닝복을 뚫고 찬 공기가 피부에 스며들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추위는 집에 도착하기 직전에야 느낄 수 있을 텐데. 주연과 문자를 나누느라 멈춰있던 시간 동안 몸이 다 식은 탓이다. 등 뒤에 닿은 티셔츠에서 식어가는 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연약한 몸은 아침 운동 몇 달 정도로는 튼튼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으슬으슬한 게 점점 감기몸살이 가까이 다가오는 기분이다. 잔병이 접근하는 걸 이렇게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신체라니. 이것도 장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적당히 긍정적인 정도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아, 고양이.

다시 뜀박질을 하기 위해 굽혔던 다리를 일으켜 세운다.

수풀 밖으로 몸을 빼꼼 내밀었던 놈은, 내가 버젓이 눈앞에 있는데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풀더미에서 빠져나와 고스란히 몸을 드러냈다. 검고 앙상한 도둑고양이. 대가리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몸뚱이의 곡선이 제법 매끄럽다. 지저분한 몸체와 달리 제법 말갛고 투명한 눈초리가 인상적인 괭이였다.

뒷산 초입,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는 한적한 산책로였다. 그 조용함이 마음에 들어서 내가 매번 애용하는 길이기도 했다. 관리가 잘 된다기보다는,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 깨끗함이 유지되는 것 같은 인적 없는 길.

사람만 없는 게 아니라 동식물도 드물었다. 여기가 동네 뒷산이라는 걸 증명할 만한, 정말 최소한의 나무와 풀떼기를 제외하면 딱히 볼 것도 없는... 그런 장소. 어디에나 있을 법한 도둑고양이 한 마리의 존재가 시선을 잡아 끄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익숙한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게 튀어나오면, 그걸 못 보고 지나치기 힘든 노릇 아닌가. 이렇게 나를 제발 봐달라고 떼를 쓰는 것 같은데.

"뭘 꼬라봐."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검은 고양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멀리 도망치지도 가까이 접근하지도 않았다. 내가 신기하기라도 한지, 일정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건 괭이를 마주 보고 있는 나도 비슷해서, 한동안 우리는 가만히 서서 서로를 빤히 관찰하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얼굴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수염 하며 검디검은 털의 명암까지 판별할 수 있었다.

볼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시선을 잡아채 놓아주질 않는 건지. 그 자리에 꽤나 길게 머물렀던 것 같다. 어느샌가 차게 식어버린 몸이 한기에 떨리는 것도 무시한 채로.

...무섭구나, 고양이 놈.

슬쩍, 주머니에 집어넣었던 핸드폰을 다시 꺼내 들었다.

고양이는 내가 뭘 꺼내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 멀뚱히 서있었다. 본래 야생동물에겐 일분일초가 생존을 위해 투자해야 할 소중한 시간이 아니던가. 이놈은 태생부터가 나태한 놈인지, 이곳에서 나와 함께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앙상하게 마른 몸이 평상시의 나태함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게으른 인간은 비대해지는 반면, 게으른 길고양이는 앙상해진다. 그건 참 문명과 야생의 아찔한 낙차가 아닐 수 없었다.

최대한 주의를 끌지 않게 조심스레 핸드폰을 조작해서 카메라를 실행한다. 찰칵거리는 소리를 최대한 막기 위해 핸드폰 스피커가 달린 구멍을 손가락으로 세심히 틀어 막았다. 곧 카메라 렌즈 속으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온전히 담기기 시작했다. 계절에 따라 숨을 죽인 마른 풀잎들 사이로, 새까만 털을 한 괭이의 존재가 도드라졌다.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흐른 찰칵 소리에도 놈은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야생의 감각이라는 게 다 소실된 멍청한 놈인 걸까. 잠깐 달려드는 시늉이라도 취해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뭔가 귀한 장면을 내팽개치는 것 같아서 그만뒀다. 대신 쭈그려 앉아 눈높이를 비슷하게 맞췄다. 건방진 괭이 놈은 내가 움직이는 대로 시선을 맞춰 움직였다.

...하는 김에, 영상도 조금만 찍어둘까.

내 아침 조깅은 평소보다 이십 분 가량 더 길어졌다.

yohamo_k:선생님 트라이앵글,,, 보자마자 바로 팔로우했읍니다,,, 너무,,, 이쁘십니다,,,!

lovesikg2:아니 이런 귀하신분이... 사진 대충 찍어 올려도 원판이 원판인지라 태가 사네요

0029_qqq:노르드 사랑해

musang_:예쁘시네요...

­kimgi413:???? 이왜진ㅋㅋㅋㅋㅋㅋ

­wonsangsss:무상게이야... 육수 냄새 풍기지말고 연습이나 열심히 해라

­unsas_0573:ㅋㅋㅋㅋㅋㅋㅋ 노르드 계정오픈은 무상도 못참지

­sohuynS2: 무상 오빠... 여기서 이러시면 안돼요

k2mg99:진짜 사진 너무 못찍는다

­uiboowoo:팩폭 ㄴㄴ

­hanso_:ㅋㅋㅋㅋㅋ 그래도 이쁘자낭

chaehyun_lo:언니 나 카메라맨으로 고용해주면 안돼...? 내가 찍으면 이것보다 이만배는 더 잘 찍어줄수있는뎅... 언니 얼굴 너무 아깝다규

simbo7787:옷 대체 뭐야ㅋㅋㅋㅋ 동물 잠옷인거같은데?? 노르드 그런 취향이었어? 반전미 뭐야 진짜

fortk___:노르드 방송 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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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무지성으로 댓글을 훑으며 계정을 구경하다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래는. 이게 바로 인생의 낭비인가.

새로운 게시물을 올리러 들어갔을 때부터 흠칫 놀라기는 했다. 방송에서 계정을 만들었다고 오픈한 것이, 그렇게 홍보 효과가 거대했던 건지. 며칠 사이에 늘어난 팔로워의 숫자가 심상치 않았다. 구독자든 팔로워든, 이럴 때마다 새삼스레 인지도가 올라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는 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게시물은 단 두 개에 불과했다. 계정을 생성하고 처음으로 올린 사진과, 방송을 키고 즉석에서 찍어올린 두 번째 사진. 별 차이가 없는 댓글 수에 비해, 하트로 표시된 좋아요의 개수는 왜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지. 계정 생성에 관한 건 둘째치고 사진에 쏟아지는 비평만 봐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사진이 주가 되는 SNS인 만큼, 자기 신상을 까고 활동하는 사람이 많긴 많았다. 개중 내 첫 번째 게시물에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도 적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이더라. 그렇게 말하는 자기는 사진을 얼마나 잘 찍는데, 하고.

팔로워 천 명가량을 보유한 여성 팔로워는... 그래. 썩 괜찮은 촬영 실력을 가진 것 같기는 했다. 어디 TV 프로그램에서나 소개될 법한 여행지나 고급스러운 식당의 음식들. 전부 때깔이 곱기는 하더라. 차마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하고 멍하니 뒤로 가기를 누른 내 모습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추했다.

어쩌겠는가. 많이 찍어보지 않았으니 사진을 못 찍는 것도 당연하지. 처음부터 잘 찍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다고... 애초에 요즘 핸드폰 카메라는 별로 건드릴 필요도 없이 알아서 보정도 해줄 만큼 발전하지 않았나. 조금만 더 찍어보면 나도 저만큼은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출 욕심이 조금 과했던 것뿐이지.

자신을 드러낸다는 건 점점 중독되는 행위나 다를 바 없었다. 가면 쓰기에 급급했던 때가 얼마나 지났다고. 브이로그 영상에 달린 소름 돋는 댓글 수백 개를 읽어가다 보면, 면역이 생기는 건 물론이고 무슨 댓글이 달려도 다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외모에 쏟아지는 극찬이라니, 그 생소하고 멋쩍은 감각에 어떻게 익숙해지나 싶었는데. 명예욕이니 인정욕이니 하는 것들도, 사실 다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던가. 결국 인간은 다 타고난 관종이었다.

아까 찍은 고양이의 사진과 영상을 포스트해서 올렸다. 게시글 뒤에 이상한 태그를 잔뜩 붙이는 문화에는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대충 고양이나 산책 따위의 일반적인 태그 몇 개만 첨부했다. 저게 무슨 기능을 하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었다. 온갖 태그를 다 붙여서 더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기 위함인가. 그렇다면 이해가 가는데.

띠링­

게시물을 올림과 동시에 댓글이 달리는 조금 유명한 사람. 심각한 관종. 이젠 SNS까지 시작해 인생을 곱절로 낭비하기 시작한 인간. 그게 나란 사람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닌 법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대부분의 인간은 다 자기혐오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자기를 망치로 내리치고 난도질할 수 있는, 타고난 정신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 암.

생각보다 빠른 알람에 기시감을 느끼고 흠칫하고 놀란 것도 잠시. 태연한 척 차분함을 가장하고 방금 달린 댓글을 확인한다. 대충 하트 달린 이모티콘 정도가 예상 가능한 범주였다. 요즘 트라이앵글 댓글 메타가 그렇던데.

seokhyun_kim:노르드의 고양이가 되고 싶다. 배변패드 갈 필요도 없이 나 혼자 치울 수 있는데. 밥도 혼자 먹고 밥그릇 설거지까지 할 테니까 제때 밥만 챙겨주면 되는데. 노르드 집에서 노르드와 함께 호흡하고 노르드와 함께 잠을 잘 수 있다니... 선생님 저 키우실래요.

이모티콘은 지랄. 예상하려야 예상할 수 없는 댓글이었다.

...아니, 이거 무식인가? 요즘엔 컨셉인지 진심인지 구별할 수 없는 종자들이 많아서 문제였다. 오랫동안 인터넷을 하면서 '진짜'들은 경험할 만큼 경험했다고 생각했건만, 심연은 파도 파도 끝이 없었다.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에 바로 새로고침을 하고 다른 댓글을 살폈다.

yohan21s:고양이는 됐으니까 셀카 올려주세요.

parkminjoo__:헉 고양이 너무 귀여워요

fortk___:털바퀴 찍어올리지말고 방송켜라

민주 씨처럼 고양이에 대한 평가를 해줘.

몇 번인가 새로고침을 반복하면, 그럴 때마다 댓글이 너덧 개씩 늘어나는 게 참 새로웠다. 채널에 영상을 올린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눌러도 눌러도 새로운 댓글이 갱신되는 걸 막연히 지켜보고 있는 나. 샤워를 하고 나와 노곤한 몸이 나태함을 부추기는 게,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계속 이 짓거리만 반복하게 될 것만 같았다. 아직 오늘 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했는데. 스벅과의 약속을 생각하면 오후가 오기 전에 채널에 영상을 업로드해야 했다.

핸드폰에서 손을 떼고, 나른한 몸을 억지로 침대에서 일으킬 즈음이다. 베개 옆에 내던진 핸드폰에서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나태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트라이앵글 댓글 알람을 꺼버린 걸 생각하면... 저건 다른 메시지일 텐데. 오늘 약속과 관련된 스벅의 문자일까.

Nord Love:사진 올린 거 잘봤어요. 고양이 옆에 혜진씨가 같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욕심일까요? ㅎㅎ

...아직도 안 잤어? 뭐 하는 거야, 내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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