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212 그만 좀 쳐다봐
* * *
"저기, 혹시 노르드님 아니세요?"
"네. 아니에요."
"뭘 아니에요, 선생님. 이분 노르드님 맞습니다."
"헉, 사인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고개를 들려 흘끗 눈초리를 보내면, 스벅은 얄밉게도 어쩌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한걸음 뒤에서 우리를 따라오던 파피루스와 우나밍은 느닷없는 조우에 멈춰 선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행인들마저 거리에 멀뚱히 선 우리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보내는 것 같았다.
시선이 몰렸다. 게임에 절여진 내 뇌는 랜덤 인카운터가 잘못 설정됐다는 식의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떠올리며 방황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내가 살던 동네를 벗어난 순간, 초보자존을 벗어난 모험가처럼 온갖 사건을 마주하는 난처한 상황. 나는 주섬주섬하며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는 낯선 이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유명인. 인플루언서.
뭐라 명칭을 붙이기도 애매했다. 내 앞에 수식어로 뭘 붙여야 할지. 원래 그런 건 자칭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그렇게 불러줄 때 의미를 가질 텐데. 유명인 타이틀이 붙는 기준이 무엇인지도 아직 애매모호한 것이다. 엘튜브 구독자나 SNS 팔로워가 몇 만 이상이어야 유명인이란 타이틀이 붙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마음 같아선 눈앞에서 사인을 요청하는, 아마 내 시청자 중 한 명일 누군가에게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제가 누구길래 사인을 받으러 오셨나요,라고.
스스로를 게임 스트리머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게, 사인을 해달라며 낯선 사람이 찾아오는 일은 아직 낯선 일이었다. 그것도 e스포츠센터도, 팬미팅 강당도 아닌 평범한 대로변에서. 거리에서 수없이 많은 인파를 불러 모으는 연예인의 삶을 바라보며, 나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던가. 부럽다기보다는 질린다는 감정이 훨씬 앞섰던 것 같은데. 조금이나마 그 삶을 간접 체험하고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여섯 명째. 오늘 집 밖을 나와 나를 불러 세운 낯선 사람의 숫자였다. 길거리에서 듣는 '노르드'라는 닉네임이 어찌나 새롭게 들리던지. 유명세를 실감한다는 건 마냥 기쁜 일이 아니었다. 당황스럽고 낯선, 이해하기 힘든 오묘한 감정. 얼굴을 오픈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인데도 태연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관심의 무게는 이리도 무겁다. 당연하다. 관심종자의 삶도 아무나 살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어색한 손놀림으로 'Nord'를 서툴게 써넣었다. 오랜만에 잡는 펜은 또 왜 이리 어색한지. 옆자리에 선 스벅이 왠지 모르게 히죽거리며 웃었다. 팔꿈치로 옆구리를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가라앉히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 고맙습니다. 엘튜브 너무 잘 보고 있어요! 실물이 훨씬 이쁘시네요, 진짜."
"...네. 감사합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칭찬 반응하는 알레르기 내지는 두드러기가 존재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 리가 없지 않나.
내가 면역력을 기른 건 명백히 모니터 속 댓글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입 밖으로 쏟아져, 고막을 때리고 들어오는 칭찬이 얼마나 자극적인지. 사람과 대화할 때는 반드시 눈을 마주치라는 오래된 가르침을 무시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욕설처럼 뭐라 반박하거나 마주 입을 털 수 없다는 점에서, 칭찬은 상당히 악질적인 행위였다.
몇 번인가 힘겹게 칭찬을 감내하고 고개를 숙이면, 사인을 받은 시청자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이것으로 랜덤 인카운터 하나를 해결. 경험치를 대신해 보이지 않는 성취감이 올라간 것도 같았다. 사용한 것은 내 정신력과 나를 비롯한 일행의 시간이고.
아니, 이런 일에 수지 타산을 따지고 있는 것도 내가 지금 혼란하다는 증거나 다름없겠지.
"이야, 선생님 역시 인기가"
"조용히 하고 가시죠. 예약 시간 다 됐는데."
시동을 거는 스벅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앞으로 걸었다. 부쩍 서늘해진 날씨. 바깥으로 손을 빼놓고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손이 시리지 않았다.
예약해둔 식당으로 가는 길, 우리는 팬이라고 접근하는 시청자를 몇 번이나 더 마주쳤다. 생각해 보면 일행 전부가 얼굴을 공개한 스트리머였다. 나 혼자 따로 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지경인데, 뭉쳐 있으면 확신하고 다가오는 사람도 늘어나겠지.
걸어가는 내내 옆에서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던 스벅은 일행 넷의 구독자 수를 전부 더하면 백만이 훌쩍 넘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빨리 사람 많은 곳을 벗어나고 싶어 앞장서 걸었던 판단은 패착이었던 것 같다. 팬이라고 접근하는 사람의 태반은 내 정면에서 나를 보고 다가왔다. 눈에 띄는 일행들 사이에서 돌출된 사람이 나였으니 그럴 수밖에. 방송 밖에선 말주변이 한참 모자란 나는 낯선 사람을 눈앞에 두고 어리숙하게 대처할 뿐이었다.
사진 한 장 같이 찍자는 제안이 어찌나 부담스럽던지. 큰맘을 먹고 단호히 제안을 거절하면, 그럼 악수나 한번 해달라는 제법 개선된 요구사항이 돌아왔다. 짧게 마주 잡은 손을 붙잡고 포상을 받았다며 돌아서는 성인 남성의 모습은 썩 재밌는 광경이긴 하더라.
호들갑을 떨며 누군가 접근하면, 자연스레 주변의 시선이 몰리기 마련이다. 쟤네는 대체 뭐길래 사람들이 사인을 받아 가냐 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어딘가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몰려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우린 양해를 구하고 발걸음을 빨리 옮겼다.
결국 오 분이면 도착할 짧은 거리를 돌파하는데 거의 두 배가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부담감을 느끼며 고개를 숙이고 걷던 나는 저기라고 간판을 가리키는 스벅의 목소리를 들은 다음에야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일비. 멋들어진 필기체로 쓰인 간판이 인상적이었다.
스벅이 예약한 식당은, 여기저기 고급스러운 태가 묻어나는 비싼 일식집이었다. 예약할 때부터 코스 메뉴를 지정하는 시스템이라나. 조용하고 정갈한 느낌이 드는 내부를 지나 방으로 안내받으면, 금방 차와 함께 데운 물수건이 나타났다.
조용한 실내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과연, 비싼 곳은 비싼 값어치를 하는 법일 터. 코트를 벗어두고 자리에 앉으면 금세 굶주린 배가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아침 운동 이후 시리얼 하나로 끼니를 때운 나였다. 평소엔 입에 댈 기회가 없는 고급스러운 회나 튀김 따위를 생각하면, 없는 식욕도 고개를 바짝 들어 올릴 듯싶었다.
"어우, 오는 길에 사람들 쳐다보는 거 봤어요? 수군대는 소리 나만 들었나. 거기서 사인 더 해주고 있었지? 그럼 장담하는데 너덧 명은 더 왔어요. 이게 처음 사람이 어렵지 한두 사람 모여들기 시작하면 금방이라. 선생님, 오는 길에 힘드셨겠어요. 늦은 이유가 있었네."
"...저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 택시 타고 오셨나? 그럼 사람 마주칠 일 별로 없긴 했겠네요."
"버스 타고 왔는데..."
"네?"
여기서도 시선이 모여드는 건 사양인데.
흘끗 둘러앉은 일행을 훑으며 차를 입에 삼켰다. 너무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보리 차. 따듯한 액체를 목으로 넘기면 그 사이 차갑게 식은 몸이 알맞게 데워지는 것 같았다.
맞은편에 앉은 우나밍, 미나가 보내오는 시선이 유독 따가웠다. 대중교통에 대한 막연한 혐오라도 있는 걸까.
"아니, 버스를 타고 와요? 오는 길에 알아보는 사람 없었어요? 저희 오는 길에만 몇 명을 마주쳤는데."
"몇 명 있었는데, 많지는 않았어요. 여러 명인 쪽이 알아보는 사람도 더 많을 수밖에 없죠. 혼자 있으면 그냥 누군가하고 지나칠 수도 있고..."
"너를 어떻게 그냥 지나쳐. 멀리서 봐도 못 알아볼 수가 없는데."
"...그런가요?"
"뭔지 알겠다. 혜진 씨가 다가가기 힘든 감이 있긴 하지. 평소에도 거의 정색하고 있으니까."
납득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대다, 나를 제외한 세 사람 모두가 스벅의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억울한 심정에 자동으로 열리는 입을 억지로 틀어막고 차를 한 모금 더 삼켰다. 아무튼 나에 대해선 내 주관적인 평가보다 주변인의 평가가 더 정확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걸 인정하기 싫은 것과는 별개로.
메시지에선 계속 야방, 더블데이트 따위의 헛소리를 부르짖었던 스벅은, 막상 만들어진 자리에선 적당한 선을 지켰다. 방송은 적당히 자리의 분위기가 풀어진 시점부터 시작할 거라고 했나. 그 애매한 기준에 따라, 나는 천천히 차를 마시며 스트리머들의 대화에 참가했다.
방송을 업으로 삼는 네 사람. 나이트폴 대회에 참가한 만큼, 주 종목이라 할 수 있는 게임도 모두 동일했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애써 공통된 관심사를 찾다 보면, 결국 대화 주제는 방송 내지는 게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뭇 20대 남성들의 대화가 군대로 통일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런 대화는 내게 있어서도 그렇게 나쁜 흐름은 아니었다. 방송 경력 몇 달의 풋내기인 내게는, 아직도 궁금한 게 차고 넘치는 주제였으므로.
"그럼, 학교는 안 다니는 거지?"
"네. 진학을 안 해서."
그런 와중에, 내 삶을 비집고 들어오는 미나의 질문은 유독 특별했다.
아하, 그렇구나. 뭔가 납득하겠다는 듯 홀로 고개를 끄덕인 미나는 내 얼굴을 집요하게 쳐다봤다. 여전히 세련됐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 왼쪽 귀에서 흔들리는 파란색 귀걸이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생물학적으로 같은 성별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커다란 유대감을 만들어내는 건지. 대화가 시작된 이후 나에게만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조금은 의아하게 다가왔다. 질문의 종류도 좀처럼 예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취미나 취향 같은, 정말 사소하고 개인적인 질문들. 과거 소개팅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머리가 아찔할 지경이다.
젓가락으로 회 한 점을 집어 들었다. 흰 살 생선. 껍질이 달라붙은 모양새를 보면 아마 도미 같았다. 회 끄트머리를 간장에 살짝 찍고 입에 넣으면, 도톰한 생선 살이 혀에 착하고 달라붙었다. 탄력 있는 생선은 쉽게 뭉그러지지 않고 길게도 씹힌다. 생선 살의 은은한 단맛이 혀에 맴돌았다.
메뉴와 별개로 따로 주문한 사케는, 스벅의 요청에 따라 투명한 유리병과 함께 나왔다. 표면이 두 겹으로 이루어진 기묘한 형태의 유리병. 외벽과 내벽 사이가 얼음으로 가득했다. 손만 가까이 대도 냉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유리병 표면을 어루만지며 시시덕거리던 스벅은 종업원의 설명에 따라 그 속에 사케를 부어 넣었다.
얼음 병에서 찬기를 머금은 술은, 흡사 녹기 시작한 얼음 물처럼 찌르르하고 울리는 맛이 있다. 도수 높은 술을 먹을 때와는 정 반대. 목구멍으로 차가운 얼음을 집어넣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수준 높은 음식과 술이 등장함에 따라 방 안의 분위기도 부드럽게 풀리기 시작했다.
옆자리에선 스벅과 파피루스가 한창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살짝 귀를 기울이면, 나이트폴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도 마음 같아선 저 사이에 껴서 게임에 대한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싶었다. 빌드가 어쩌니, 랭크전이 어쩌니 하는 세상과는 하등 쓸모없는 게임 이야기.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대화 주제였다. 나이 서른을 넘긴 다음에도 친한 친구를 만나면 그런 개소리를 떠들어대고는 했었지.
고개를 들어 올리면 다시 미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회를 먹는 건지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술이 썩 앙증맞게 느껴졌다. 예쁜 얼굴인데, 화장을 조금 옅게 해도 좋지 않을지. 아까부터 하고 있던 생각을 술 한 잔으로 밀어 넣는다.
"듣고 있지? 나만 반말하니까 너무 딱딱한 거 같잖아. 뭔가 거리감도 느껴지구. 말 편하게 해도 돼. 미나 언니,라고."
되겠냐.
술잔을 내려놓고 미나와 눈을 마주했다. 렌즈를 꼈는지 반짝거리는 눈이 조금 부담스럽다. 갑자기 저게 무슨 소리인지. 언니라는 말만큼 입에 붙이기 힘든 말도 없을 거다. 혜민이 앞에서 나를 언니라고 지칭하는 것도 아직 어색하기 짝이 없는데, 다른 사람을 언니라고 부르는 건 오죽할까.
대답을 하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면,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까부터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던 미나뿐만이 아니다. 옆에서 한창 대화를 나누던 스벅과 파피루스도, 무슨 일인지 말을 멈추고선 내 입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왜들 그렇게 보시는 거예요?"
묘한 부담감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냥, 궁금해서..."
"솔직히 선생님 입에서 언니 소리 나오는 게 상상이 잘 안 가서요. 구경하려고 했죠. 아, 지금 방송 켤까요? 뭔가 기록해둬야 할 것 같지 않아?"
벌써 취했는지 헛소리를 뱉어대는 스벅이 아니꼬웠다.
"...제가 반말이 입에 안 붙어서."
아쉽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건 스벅 하나가 아니었다. 마주 앉은 미나가 대놓고 실망했다는 기색을 풍겨서, 나는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술잔을 비웠다. 뜨거운 차와 달리, 얼음 병에 담긴 사케는 목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