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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4화 〉 214 ­ 예쁜 사람이 보기 좋잖아 (214/243)

〈 214화 〉 214 ­ 예쁜 사람이 보기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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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주량이 이만큼이나 된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건 갓 대학생이 된 미숙한 친구들이나 하는 짓이다.

괜한 주접, 허세. 알코올 수용량이 높다고 주장해 봤자 대체 어떤 이점이 있다는 말인가. 굳이 장점을 꼽자면 몇 병이라 외친 순간 주변에서 쏟아질, '오­'하는 외마디 감탄사 정도가 전부겠지.

철없는 무리 사이에 낀 채로 제 뛰어난 주량을 자랑하기라도 하면, 금방 사방에서 내미는 술잔을 거절할 명분이 사라지고 만다. 예컨대 술자리에서 광역 도발을 발동한 탱커처럼 되는 것이다. 허세 하나 섞이지 않은, 정말 대단한 수준의 주량을 가지고 있다면 괜찮겠으나... 대체로 사람이란 정해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마셔봤자 얼마나 마신다고. 어차피 꺾일 운명이라면 나서지 않는 쪽이 좋은 건 당연한 법이었다.

고주망태가 된 상황을 그토록 선호한다거나, 길어지다 못해 토할 정도로 늘어진 술자리를 선호하는 독특한 취향인 경우엔 마음껏 주량을 높여 불러도 좋을 것이다. 살아남아 술자리의 끝을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데 뭐. 물론 이 경우 정신을 붙잡은 동료에게 피해를 주고 말겠지만, 이미 갈 때까지 갔다면 미안함을 느낄 겨를도 없을 테니 괜찮다.

애초에 사람에게 정해진 주량이 어디 있겠는가. 같은 사람이라도 컨디션에 따라 매번 버틸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질 텐데.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기 주량을 늘 최저한도로 잡아두기 마련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바로 그 수준으로.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더더욱, 본인의 컨디션에 따라 몸에 들어가는 알코올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좋다거나 그날따라 유독 술맛이 좋다거나 하는 한심한 이유로 밑도 끝도 없이 술을 들이부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을 터다.

물론... 이건 이상적인 경우를 말하는 거고.

주정뱅이에겐 전부 탁상공론이다. 말로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걸 전부 따라 실천할 수 있다면, 세상 문제라는 게 다 쉽게 해결되고 사라지겠지. 술 문제에 있어서 나는 대체로 미련했다. 그래, 애초에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술을 입에 가져다 대지도 않았겠지. 참된 주정뱅이란 시작점에서부터 이런저런 밑밥을 깔고 마시는 법이니까.

"자, 짠!"

"짠!"

꿀꺽.

그래서, 나는 지금 마시고 있다. 사양도 가감도 없이.

비싼 술에 비싼 안주. 평소 안주를 가리지 않는다고 지껄이던 과거는 때깔 고운 회 앞에서 다 헛소리로 변해버렸다. 딸려 나왔다기엔 지나치게 정갈하게 생긴 튀김으로 위장에 기름칠을 하고 난 뒤에는, 나는 더 이상 거리낄 것도 없이 술을 부어 넣었다. 사람이라면 사양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어야 하는 법. 내겐 지금이 바로 그랬다.

이게 방송으로 나가고 있다고. 테이블 끝, 멀찍이 떨어진 스벅의 핸드폰은 별로 와닿지 않았다. 내 눈에 채팅창이 안 보이니까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후원 알림음도 꺼놨는지 조용한 상태. 묵묵히 젓가락을 움직인다.

거나하게 차려진 상이 내 시선만 잡아끌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오래간만에 함께 잔을 비운 네 명은,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다 같이 젓가락을 집고 안주를 물색하고 있었다. 가장 손이 많이 향하는 쪽은 역시 메인인가. '고급' 타이틀이 붙은 식당답게 있어 보이는 플레이팅으로 나온 모둠 회는 벌써부터 밑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애초에 양이 많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역시 본격적으로 입을 대기 시작하니 먹는 속도가 빨랐다.

코스 요리는 적잖이 먹어갈 때쯤 도착하는 다음 접시를 기다리는 맛이 있었다. 평소에는 그 기다림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도, 술과 함께라면 얼마든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오히려 그걸 기대하고 있을 지경이니까.

흘끗, 테이블의 분위기를 살핀다.

방송을 의식했는지 대화에 집중하던 스벅과 파피루스는, 줄어가는 술병과 안주를 뒤늦게 의식했는지 먹는 템포를 끌어올렸다. 남자 둘이 참전하자 안주 줄어드는 속도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 그래, 이런 자리에서 방송을 의식하며 뭔가 만들어보려 해봤자 생각대로 그림이 만들어지겠는가. 야방에서 방송각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법이라고, 지난 낚시 야방에서 몸소 깨달았던 나다. 억지로 몸을 비틀어봤자 인위적인 향기만 더해진다고 해야 할까. 내 방송 시청자들은 유독 '억텐'이라는 방송 리액션에 엄격한 편이었다.

낚시터에서 낚시를 하는 것처럼,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그림일 터. 어설픈 방송각은 안 잡으니만 못하겠지.

"자아, 또 한잔 받아야지."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저 사람.

술기운이 내 눈에 적당한 필터를 덮어 씌운 느낌이다. 몽롱하게 붕 뜬 시야에 미나가 들어왔다. 짙은 화장기를 뚫고 불그스름하게 홍조를 띤 얼굴.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은 묘하게 힘이 풀려서 게슴츠레하다. 아마 나도 비슷한 꼴을 하고 있지 않을까.

미나는 아직까지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는 얼음 병을 들고는 내 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크기나 재질 때문에 나름 무게가 나가는 병이었는데, 한 손으로 손잡이 위쪽을 잡고는 비스듬히 들어 올리는 모습이 제법 자연스러웠다. 병에 술이 가득 차 있을 무렵 잔을 따라줄 때도 저렇게 간단히 들고 있더만. 생각보다 힘이 좋은 편인 모양이다. 적어도 병을 받치는데 양손을 모두 사용해야 하는 나보다는 대단하리라.

미나의 말에 따라 무의식중에 빈 잔을 들어 올린 나는, 문득 지금 나와 미나가 몇 잔 째 술을 주고받았는지를 헤아렸다. 몇 잔 마셨는지 따위를 세면서 마시지는 않는 편이지만, 벌써 어림잡아 열 번은 넘는 것 같았다. 보충을 하겠다고 추가한 사케 병이 테이블 끄트머리에서 흐릿하게 비쳤다.

내 주량은 몇 병이더라. 소주를 사케로 치환하는 방법 같은 건 나는 모르는데. 술이라는 건 심오하기 짝이 없어서, 주종(??)에 따라 한계치가 전부 달랐다. 단순히 알코올 도수로 환원해서 주량을 측정하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적어도 내 감성에 따르면 그랬다.

사케. 맑은 술은 대체로 잘 받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조금 옛날이야기긴 하지만.

몽롱한 정신으로 길게 생각을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주는 술을 거절하지는 않는 법이지. 반사적으로 치켜든 잔을 적당한 높이로 들어 올리면, 금방 술잔에 쪼르륵하고 맑은 액체가 흘러들었다.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찬기가 기분 좋아서 잔 밑단을 몇 번인가 톡톡 두드렸다.

"술 잘 먹네에."

묘하게 끝을 늘리는 말투.

어떻게 대작을 시작하게 됐더라. 방송을 의식해 말을 아끼고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무심코 잔을 비울 때마다 미나가 술병을 잡아 들어서는. 같은 현상이 반복되면 자연스레 상대가 의도적으로 나와 템포를 맞추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그건 꽤나 기꺼운 일이었다. 잘 움직이지 않는 낯짝 때문에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다고 치더라도.

내가 미나의 잔을 마주 채워주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는 뜻이다. 받기만 하고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술 먹방 같은 건 안 해? 캠 켜고 술 마시는 거, 사람들 엄청 좋아할 거 같은데. 왜, 지난번에... 쪼망님이랑 했던 것처럼."

취기에 힘입은 미나는 말 그대로 성큼성큼 거리를 좁혀왔다. 살짝 어색함이 느껴지던 반말이 이젠 익숙하게 다가올 지경이다.

"씻고 차려입는 게 귀찮아서요."

"아­ 그치. 그거 엄청 귀찮지."

즉각적으로 대답이 돌아온다.

내 맞은편의 미나는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테이블 모서리 빈자리에 왼쪽 팔꿈치를 기대고는 살짝 기울어진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 처음 대면했을 때나, 몇 시간 전에 만났을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웃음기 사라진 얼굴에는 평소의 밝은 에너지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스벅을 쳐다볼 때면 샐쭉한 눈꼬리가 날카롭게 찢어졌는데, 그때 미나의 인상은... 굳이 말하자면 사납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오른손에 젓가락 대신 담배 한 개비를 쥐여주면 기가 막히게 어울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래서 방송 볼 때마다 미나 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취기에 적당히 마비된 내 혀는 입발린 말을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다. 물론, 내 딴에는 진심 어린 말이었다. 방송 스케줄이나 컨텐츠 세우기도 바쁜데 얼굴 상태나 복장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최근 캠방을 하지 않는 이유도 다 그런 번거로움 때문이다. 휴방을 끝내고 복귀한 이후로는 캠을 켜지 않아도 시청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추세이기도 했고. 제발 캠 좀 켜달라고 후원하는 금액도 생각보다... 아, 이건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

미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그 날카로운 눈매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눈이 마주쳤는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애매해서, 잠깐 동안 나와 미나 사이에 기묘한 눈싸움이 이어졌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눈을 치켜뜨고 한동안 나를 관찰하듯 집요하게 살펴보던 미나의 눈매가 부드럽게 풀린 건, 거의 삼십 초가 넘는 시간이 흐른 다음이었다.

"...그래? 내 방송 자주 봤어?"

자주 보지는 않았다.

"대회 준비할 때 열심히 봤죠."

"흐음. 그럼 대회 끝난 다음에는?"

묘하게 추궁을 받는 구도였다.

어떻게 대답할까 하고 술잔을 어루만지고 있으면, 무언가가 테이블 밑에 자리한 내 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다리에 닿는 가벼운 감촉.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가 하나밖에 없었다. 미나는 홍조 띤 얼굴로 짓궂은 표정을 짓고는 내 대답을 재촉했다. 다리를 두드리는 감촉은 여전했다.

...꼬시기라도 하는 건가? 뭐 하는 거야, 이 사람.

"왜 자꾸 두 분만 따로 얘기해. 저희 지금 더블데이트로 나온 거라니까요? 방송 제목도 그거야."

"그런 건 이미 끝났어요. 술이나 더 시켜요, 병 거의 다 비었는데. 나는 우리 노르드님이랑 대화하고 있을 테니까."

"...나밍님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내가 뭐 잘못했어요?"

"잘못하긴 했지. 대회 박제된 거 업보라고 생각해요."

"아니 나도 채팅창 보고 이러는 거라니까, 진짜. 시청자들은 시꺼먼 남정네 둘이 말하는 것보다 여자들 대화를 더 궁금해한다고. 지금이라도 자리 바꿔요? 아니다, 폰을 저따 두면 되는구나. 자, 두 분도 방송의 무게감을 좀 느껴보세요. 무슨 작정한 것처럼 술만 마시고 있어. 저, 저 얼굴 빨간 것 좀 봐."

호들갑을 떠는 스벅에게서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셀프 카메라 시점에, 측면에 채팅창이 자리 잡은 모습. 좀처럼 익숙해지기 힘든 화면이다. 얼굴을 가져다 댄 탓에 화면에 대문짝만 하게 튀어나오는 내 얼굴부터가 문제였다. 무슨 설정인지 필터라도 씌운 것처럼 화면이 뿌옇고 밝았는데, 덕분에 안 그래도 허여멀건 내 얼굴이 광원처럼 빛나고 있었다. 형광등이 따로 없다.

멀쩡한 상태로도 읽어내기 힘든 속도의 채팅창을 술기운과 함께 꼬나보다니. 제대로 이해할 턱이 없다. 그나마 보이는 건 한 번에 채팅창을 전부 차지하는 도배 채팅이 전부였다. '노르드 사랑해'. 언제나 그렇지만 이 인간들은 사랑에 헤프기 짝이 없었다.

바로 카메라 시점을 전환하고 핸드폰을 들어 올린다. 내 얼굴이 사라진 자리에 술자리 현장이 담기기 시작했다. 카메라맨이라도 된 기분으로, 내 옆자리에 앉은 스벅부터 천천히 얼굴을 담아낸다. 전환된 시점이 인상적인지 다시금 채팅창이 발작했다.

"아."

"왜요? 본인 찍으라고 넘겼더니 우리를 찍고 있어."

"스벅님 얼굴 꼴 받는다고 빨리 카메라 돌려달래요."

"...그런 건 제발 읽지 마세요. 야, 매니저들 밴 빨리빨리 안 하고 뭐 하냐!"

모처럼 읽어낸 채팅창 의견에 따라 카메라를 빠르게 움직였다. 아무튼, 내가 시청자 입장에 선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요청은 아니었다. 이게 스벅의 방송이었나. 매일 보는 면상보다야 신선한 얼굴을 보는 게 낫겠지.

안경을 닦기 시작한 파피루스를 바로 넘기고는 미나 앞에서 카메라를 멈췄다. 프로 스트리머는 카메라에 포착되자마자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는 한쪽 손바닥을 활짝 펼쳐 턱 밑에 가져다 댔다. 감탄을 유도할 만큼 재빠른 변화였다.

"예쁜 사람 보여드릴게요."

거치대를 짧게 줄여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린다. 조금 각도가 엉성하기는 했지만, 미나의 얼굴을 담기엔 충분했다. 밝게 웃는 얼굴이 액정을 밝게 채워 넣는 구도. 우나밍 방송의 이모티콘으로 추정되는 하트가 채팅창을 가득 밀어올렸다.

"...에? 계속 그렇게 두려고? 나 하나만 나가잖아, 이거."

"네. 다들 좋아하고 있어요. 하트 계속 올라와."

미나의 발끝이 다시 내 정강이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저번보다 훨씬 강도가 높아서, 나는 잠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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