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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5화 〉 215 ­ 끝까지 믿지 말던가 (215/243)

〈 215화 〉 215 ­ 끝까지 믿지 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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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드 선생님과 더블데이트 ㅎㅎ ­ 커플대항전 뒤풀이 feat. 파피루스, 우나밍]

:시청자 3.4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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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자마자 잔 채우는거 뭐냐고ㅋㅋㅋ]

[지금 얼마나 마셨음?]

[쓰벅 말리는거 포기하고 본인도 달리기 시작]

[나밍님 얼굴보면 ptsd오는데 이거 킹리적갓심 아닌가요]

[센세 술 왜케 잘드셔;; 나밍님도 그렇고 여기 여스들 대체 주량이?]

[스벅이랑 우나밍 겁나 티격대네ㅋㅋㅋㅋㅋㅋㅋ]

[둘다 찐텐인데?]

[하는짓보면 취한 거 같은데요]

[노르드는 원래 저럼]

[여자들이 먼저 달리는 거 실화냐]

[미나씨 본성 새어나와요 ㄷㄷ]

[노르드 얼빡샷좀 당겨주세용~~~]

[데이트는 ㅅㅂ; 거의 술꼰대들 연말 회식자리수준]

[여러모로 레전드긴해]

스벅이 방송을 시작하고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핸드폰 카메라가 담아낸 방 안의 풍경에도 자그마한 변화가 생겼다. 카메라가 테이블 반대편으로 자리를 바꿔, 노르드와 우나밍의 얼굴이 이전보다 훨씬 잘 보인다는 사실.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운 음식들이 한차례 물갈이를 완료했다는 사실. 그리고 테이블 끝자락 나란히 줄 선 빈 사케 병이 두어 병 정도 더 늘어났다는 사실.

여느 때처럼, 누군가에겐 더없이 사소하게 느껴질 변화였다.

창밖의 어둠이 한층 더 짙어진 탓에 방 안을 가득 채운 화사한 불빛이 더 따스하게 다가왔다. 줄곧 분주하게 움직였던 네 사람의 손도 이젠 여유를 되찾은 듯싶었다.

그건 여태까지 몇 분 간격으로 핸드폰을 들어 올리던 스벅도 마찬가지였다. 팔을 길게 뻗어야 겨우 손가락 끝이 닿을 법한 거리. 시청자들의 성화에 핸드폰을 노르드에게 넘긴지 오래다. 어느샌가부터 핸드폰은 거치대 위를 떠나지 않았다. 카메라에 비친 스벅의 얼굴이 평소보다 불그스름했다. 입을 열 때마다 성량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무슨 준비를 안 해. 원래 술 게임 같은 거 준비했다니까? 대학 시절 소개팅 감성으로다가... 걸리면 흑기사도 해주고, 어? 이게 또 구식적이지만 클래식한 맛이 있거든. 제가 학과 최고 인싸라 그런 거 기가 막히게 잘 알잖아요. 근데 누가 먼저 술을 그냥 달려버리대? 여기서 방송을 어떻게 해요."

"소개팅은 무슨. 구려."

"아니, 아까부터 진짜­ 그렇게 쿠사리만 주지 말고 불만 좀 터놓고 말해봐요."

"자, 자. 한 잔하고 진정하세요."

술자리가 무르익었다.

보이는 그림만 바라보면 방송은 뒷전이요, 네 사람 모두가 음주에 전념하고 있는 상태였다. 단독샷에 부담을 표하던 우나밍은 카메라가 거치대로 돌아간 이후 곧장 밝은 미소를 지워버렸다. 무표정한 얼굴에 퉁명스러운 기색이 맴돌았다.

날카로운 눈매가 향하는 곳은 대체로 스벅 쪽이었는데, 그 시선이 꽤나 노골적이었다. 눈초리만으로 면전에서 핀잔을 주는 꼴이다. 뒤늦게 템포를 따라잡겠다는 듯 연거푸 술잔을 비우던 스벅은 이내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며 우나밍과 티격태격 다투기 시작했다.

중재자 역할은 자연스레 파피루스에게 돌아갔다. 당연한 흐름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두 사람이 다투든 말든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으므로.

"스벅님은 딱 중간 포지션이야. 소개팅 주선하고 적당히 분위기 띄우다 사라지는 역할."

"...제 대학 생활 봤어요? 말 함부로 하네. 그런 잔바리 역할이 아니었다니까? 아오, 이걸 어떻게 보여줄 수도 없고."

"스벅님 대학 중퇴 아니에요?"

"어허, 씁. 중퇴가 아니라 휴학이죠. 방송 때문에 휴학이 좀 길어진 거지."

"누가 휴학을 몇 년 동안 때려요. 그 정도면 사실상 끝난 거지."

안타깝게도 대화의 수준은 점점 낮아졌다.

한발 물러나 젓가락을 굴리던 노르드가 핸드폰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껏 이 자리에서 가장 방송에 무관심해 보였던 사람. 술자리의 분위기가 들뜨기 시작한 뒤로 방송 채팅창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건 노르드였다. 조금만 얼굴을 가까이하면 채팅창을 볼 수 있는 위치 때문일까. 노르드의 시선을 마주한 채팅창이 파도치듯 크게 들썩였다.

[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노르드사랑해]

[그냥 다 치우고 선생님 원샷으로 가죠?]

[저 둘은 언제까지 싸우노ㅋㅋ]

[선생님 눈이 이상해요]

[왜케 찐따같이 채팅창만봄?;;]

[나밍님도 술 쎄시네 ^^ㅎ]

[노르드도 취한 거 아님? 얼굴 조금 빨간거같은데? ㅋㅋ]

[니가 저러고 있으면 찐따지만 노르드가 저러면 도도한거임ㅇㅇ 얼굴 차이를 생각해라]

[한병 더 ㄱ]

[미­개한 쓰벅하고 말을 섞지 않는게 선생님 답네요]

"아이씨, 사람 말을 안 믿네. 연애 썰 한 번 풀어요? 진짜 저수들 저하고 괴리감 느낄까 봐 말 안 하고 있던 건데... 입 여는 순간 끝장납니다."

"와, 스벅님이 씹덕이랑 뭐가 달라요? 말도 안 되는 망상 푸는 거 너무 똑같다아. 농담도 적당히 해야 웃음이 나지, 이건 재미도 없네."

채팅창이 뭐라 떠들어대든 말든, 스벅과 우나밍의 대화에는 불이 붙었다.

노르드의 손이 거치대를 만지작거렸다. 손길에 따라 각도가 비틀린 핸드폰 카메라는, 그대로 스벅과 우나밍이 다투고 있는 테이블 가운데를 포착하기 시작했다. 비틀린 렌즈 때문에 화면에 반쯤 걸친 노르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라도 된 것일까. 본인의 카메라 조절에 만족하는 기색이었다.

술이 들어간 스벅의 목소리가 한층 더 크게 울렸다. 볼륨이 올라간 목소리가 특유의 중저음으로 튀어나오면, 방 안은 생각보다 크고 선명한 목소리로 가득 찼다. 그럼 양옆에 자리한 네 사람을 물론이고, 방송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명확하게 의미가 전달되는 것이다. 술을 마신 뒤로 종종 말 끝을 늘이는 우나밍과 다르게, 스벅의 혀는 발음마저 매끄러웠다.

열성적으로 본인의 연애담을 풀어놓는 스벅의 말소리도 뚜렷이 전달될 수밖에 없었다. 취하면 취할수록 의사전달이 명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그때가 전역한 다음 학기였다고.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요? 복학생 티도 안 내고­"

"됐어요. 스벅님 연애사 같은 건 더 듣고 싶지 않아. 복학해서 신입생한테 수작을 걸었든 받았든 궁금하지 않아요. 난 그것보다 우리 노르드님 연애사가 궁금한데. 노르드 니임?"

변덕스러운 술자리에선 타깃이 변하는 것도 한순간이다.

대번에 온 시선이 노르드에게로 집중됐다. 방 안에 자리한 세 사람뿐만 아니라, 시시덕거리며 스벅의 연애담을 물고 뜯던 시청자들마저도. 테이블 중앙과 핸드폰을 번갈아 가며 살피던 노르드는 급격히 변한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듯 멍한 얼굴로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얼굴에 옅은 홍조가 나타났다.

맞은편에 앉은 우나밍이 팔을 뻗어서 카메라의 위치를 다시 조정했다. 지금까지 방송을 의식하지 않던 모습이 거짓말 같았다.

"...네."

"...파릇파릇한 연애담이 좋긴 해. 선생님이 여기에서 제일 어리니까... 한창 그럴 시기잖아요. 혹시 지금 썸 타는 사람이 있다던가. 솔직히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저 같은 사람도 고백을 많이 받았는데­"

"아, 좀 조용히 해봐요."

짜증기 어린 우나밍의 말에 스벅도 입을 다물었다.

주변을 둘러싼 시선과 묘한 정적이 모두 대답을 재촉했다. 노르드는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어느샌가 들어 올린 잔이 벌주라도 되는 것 같았다.

"없어요."

노르드는 툭하고 내던지듯 말을 하고는 곧장 술잔에 든 내용물을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썸 타는 사람은 없다, 메모... 그럼 옛날에 사귀었던­"

"큽! 콜록,"

"하, 옛날은 무슨 옛날. 그거 사생활 침해잖아. 선 넘지 말고 조용히 하고 있어 봐요."

"아니, 나도 그냥 농담한 거지... 선생님 방송에서 이런 얘기 잘 안 하잖아. 그렇게 반응하면 내가 뭐가 돼?"

"뭐겠어요, 변태지. 그럼 이상형, 이상형은 뭐야?"

뭐라 투덜대는 스벅을 무시하고 눈을 반짝이며 상체를 앞으로 굽힌 우나밍이 들뜬 티를 숨기지 않고 질문을 던져왔다. 누가 봐도 신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주변에서 노르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했다. 노골적인 집중. 당장 질문 하나에 대답해도 화제가 전환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르드의 손가락이 연신 빈 술잔 밑둥을 두드렸다. 살짝 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이상형... 참하고 유한 사람이 좋은데."

[참해...?]

[와 이건 난데]

[뭔 ㅅㅂ 아재냐?]

[개ㄵ]

[아니 이럴거면 그냥 전남친 이야기라도 해줘... 난 괜찮으니까]

[뭐가 괜찮아 븅,신이 노르드가 니 남친 시켜준다냐?]

[방송에서 연애이야기 안하는 이유가 있었네]

[대단한 유교걸 납셨다 그죠]

[저 참하고 유한 사람인데 입후보해도 되나요]

[일단 이 방송 쪼개면서 처보고 있는 저수들은 바로 컷임. 참하지가 않잖아]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인데요?"

"참, 참해? 뭔 30대 아저씨 같은 대답이야. 선생님, 방송각 말고 진심으로 말해주세요. 이상형 정도야 말할 수 있는 거잖아."

"진짠데..."

질문에 대답을 한 이후에도, 좀처럼 관심이 멀어지지는 않았다.

연애를 소재로 나오는 질문들은 흔해 빠졌으되, 그 종류가 무궁무진했다. 기대했던 답변을 듣지 못했기 때문일까. 이상형에 대한 질문은 점차 세분화되더니 구체적인 형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외모를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곳은 어디인지. 신장은 어느 정도를 선호하는지. 키 차이는 얼마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나이 차이는...

중간부터는 재미를 들였는지,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난 스벅이 오랜만에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화면을 집요하게 살피며 질문을 내뱉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채팅 중에서 질문을 골라내는 것 같았다. 나름 성실히 답변을 내뱉던 노르드의 미간 주름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내, 스벅이 '첫사랑'과 관련된 질문을 던질 즈음이다.

"전에 사귀었던 남자 없어요. 별로 숨기려던 것도 아니고, 대답하기 힘든 질문도 아니니까 상관없어요."

다소 직설적인 대답이 신나서 채팅을 읽어가던 스벅을 멈춰 세웠다.

말을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분위기라는 게 있다. 한순간 노르드에게 쏟아지는 건 불신의 눈초리였다. 혜진이 직접 느낀 바에 따르면,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눈초리.

사람은 질문 하나를 던질 때도 원하는 답변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측한 대로의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 대답을 들어도 영 답답함이 풀리지 않는 경우. 이 경우 질문의 목적은 자신의 추측이나 짐작을 확실시하기 위함이다. 목적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느낄 수밖에.

불신이 가득 담긴 동료 스트리머의 눈초리나, 한순간 갈고리로 가득 찬 채팅창을 흘끗 확인한 노르드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충동을 인지했다. 진실만을 말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사람의 억울함은 극에 달하는 법이다. 평소 같으면 충동을 꾹 하고 억눌렀을 이성은, 술기운 때문인지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무슨 개소리를 내뱉든 똑같이 믿지 말라고. 원하는 대답을 정해놓고 기다린다면, 끝까지 개소리만 늘어놓겠다는 심산이었다.

"저 성 불감증이라서."

무심코 내던진 말의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까 후회를 하긴 했으되.

아무튼, 혜진은 입을 벌리고 굳은 주변인의 얼굴을 보고 통쾌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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