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7화 〉 217 ­ 너무 좋아하지 마 (217/243)

〈 217화 〉 217 ­ 너무 좋아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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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드발닦개 님이="" 10,000원="" 후원!=""/>

­불감증은 정신적인 문제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네요. 저는 선생님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언젠간 분명 완치될 거예요!

"...후원 감사합니다. 아니, 그건 그냥 농담이었다고.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뒷수습.

과거의 행적을 수습하는 것만큼 귀찮은 일도 없다. 애초에 수습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과 동일하지 않나. 그게 아니라면 굳이 자기 행동을 후회하면서 반성할 일도 없을 테니까.

엎질러진 물을 걸레로 닦아내다 보면, 내가 왜 멍청하게 물을 엎질렀지라는 자책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법이다. 그걸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사람은 어찌나 미련한지.

전날의 기억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했다. 취기가 돌아 핑 도는 시야 속 방의 풍경. 차가운 술잔의 감촉. 혀를 즐겁게 했던 음식들의 맛. 심지어 뺏어 피운 담배의 향기까지. 굳이 떠올리려 노력하지 않아도 밀려오는 기억 탓에 나는 내가 내뱉은 말이나 행동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분명 술은 먹을 대로 처먹었을 텐데. 뇌가 돌아가는 구조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유독 술이 잘 해독되는 날이었을까.

누군가­ 아마 스벅이 불러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참을 마셨다고 생각했음에도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자정도 되지 않은 밤, 도로에는 자동차가 가득했다. 택시 뒷자리에 몸을 눕히듯 기댄 나는 취기와 졸음으로 몽롱한 정신을 어떻게든 바로잡으며 집으로 귀가했더랬다. 그때는 당연히 방송에 대한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피로에 찌든 몸은 뇌가 보낸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서, 몸을 씻고 침대로 기어들어가는 과정을 수행하는 것만 해도 내겐 충분히 버거웠다.

그러니까 핸드폰 같은 걸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고. 하기야 그 정신에 답장을 보내봤자 무슨 결과가 나타났을지는 뻔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혜민이가 눈앞에 있다거나 하는, 불상사만 초래하고 말겠지. 차라리 정신이 멀쩡해진 아침 쌓이고 쌓인 문자를 확인하는 게 괜찮은 선택이었다. 한참 늦은 답장에 대한 원망 어린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그래도 귀찮은 일은 전부 다음 날로 미룬 덕분에 잠은 잘 오더라. 뭐라 나무랄 데 없는 숙면이었다. 자고 일어난 뒤에 숙취에 시달리지도 않았고. 몸만 생각하면 이보다 술자리도 없었을 터다.

[쾌유하세요 선생니뮤ㅠㅠㅠ]

[그러니까 수습을 하고 방종을 했어야지 거기서 끊어버리면 어떡함? ㅋㅋ]

[클립만 몇 개가 남았는데.. 이미 박제되셨습니다]

[근데 ㄹㅇ 모솔임?]

[방송 일찍 켰으니까 봐드리겠읍니다^^]

[불감 노르드 센세...]

[이미 다 퍼졌던데요 벌써 누가 옆집에다 영도까지 쏘던데]

[이집 육수 잘끓이네]

찝찝한 마음을 누르고 채팅창을 확인한다.

오후 두 시. 경각심을 느끼고 일찍 시작한 방송. 방송이 켜지자마자 달려온 시청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젯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원래 뭔가 떡밥 하나를 던져두면 자기들 멋대로 달려들어 덩치를 키워버리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과연, 어젯밤 내가 의도치 않게 살포한 떡밥은 하룻밤 사이 비대해진 상태였다.

마우스 휠을 긁어내듯 움직인다. 드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게시판 스크롤바가 빠르게 내려갔다. 내가 경각심을 느낀 이유. 인기글에 달린 추천과 댓글의 숫자가 심상치 않았다. 하룻밤에 게시판 페이지가 대체 몇 장이나 늘어났는지는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인기글만 쳐도 다섯 페이지는 넘어간 것 같았다.

밀도 높은 게시판은, 생방송 당시 채팅창의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봐도 무방했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채팅창의 민심이 게시판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탓이다. 대부분의 게시글은 굳이 클릭해서 확인하지 않아도 제목만으로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으니. 방송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실, 그보다는 방송이 끝난 다음이 더 문제였다. 방송이 한창 진행 중일 때보다 끝난 다음에 올라온 글이 훨씬 많았다. 저게 다 후폭풍이라 생각하면,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나로서는 짐작조차 하기 힘든 것이다. 저 몇 페이지가 넘는 게시글이 올라오는 동안 대체 어떤 식으로 떡밥이 변형되고 뒤틀렸을지. 되지도 않는 루머에 해명을 하는 것만큼 속 끓는 일도 없었다. 물론, 이번 일은 원인 제공자가 나 자신인 관계로 변명의 여지가 없었지만.

...생각해보니까 그냥 성 불감증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인 것 같았다. 발상을 전환하면 오히려 괜찮은 실드로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안 그래도 최근 별 같잖은 메일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인기글 항목의 첫 페이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가장 높은 추천을 받은 게시글이었다. 다른 글과 비교해도 유독 높은 추천수.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펴봤을 때 저 정도로 추천을 많이 받는 글은 보통 방송 클립이나 움짤 따위가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유형의 인기글이기도 했다. 대다수의 쓸모없는 글과 비교했을 때, 사진이라도 들어가 있으면 앨범 역할이라도 할 수 있지 않나.

클릭해서 들어가면, 내 예상대로 곧장 사진 하나가 튀어나왔다. 트라이앵글을 캡처해서 가져온 듯했다. 어둑한 야경을 배경으로, 나와 미나가 나란히 서있는 사진. 어둑한 곳에서 찍었기 때문인지 사진이 선명하지는 않았다. 건물에서 나오는 밝은 불빛이 닿지 않는 구석진 곳. 어딘가에서 흘러들어온 흐릿한 간판 빛이 조명을 대신했다.

사진은 그게 의도된 연출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나와 미나는 어깨가 닿을듯 거리가 가깝다. 담배를 한 번 뺏긴 이후로 어딘가 고장난 미나가 정신을 차리고는 찍었던 사진이다.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결과물도 확인하지 않았던 사진. 자세히 보면 둘 모두 얼굴에서부터 취기가 느껴지는데, 얼굴까지 그림자가 드리운 탓에 그것마저 분위기가 있어보였다. 미나는 그 와중에도 이런 구도를 의식하고 찍은 걸까. 적어도 나는 넘볼 수 없는 수준의 실력인 듯 싶었다.

사실 담배를 물고 찍은 비하인드 사진이 있긴 했다. 오늘 아침 미나가 개인 메시지로 보내온 사진. 아마 외부에 공개될 일은 없을 듯하지만.

[와 존나 잘찍었네 사진]

[저 시간에 방송이나 켜달라고!!!!!]

[왜 둘만 찍음? 시커먼 남자들은 다 버린거야?]

[드디어 노르드 방송에서 사람이 찍은 사진을 보네;;]

[우나밍 사진 왜케 잘찍음]

[예쁘다]

[선생님도 제발 사진좀 업로드 해주십쇼...]

다행히 이번에는 시청자들도 나와 비슷한 감상을 한 것 같았다.

극찬이 쏟아지는 채팅과 댓글을 천천히 읽어내린다. 몇 페이지를 가득 채운 인기글이 전부 이런 글이었으면 내가 걱정을 할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쓴맛을 보기 전 위장약을 하나 복용했다는 느낌으로, 뒤로 가기를 클릭한다. 금방 게시글 제목이 주욱 나열되기 시작한다.

'불감증이 뭐가 어때서ㅋㅋ', '술자리 만든 새기가 원흉이네 스벅탓임', '결국 우나밍이 방장 취하게 한거 아니냐?', '근데 어차피 니들이랑은 상관없잖아', 'ㅅㅂ 별것도 아닌걸로 하루종일 쳐싸우네 이 ㅄ들은'­

"...모르겠다. 게시판 어떻게 쓰는지는 여러분 자유니까요. 선만 안 넘으면."

'걱정하는 척 육수흘리는 스윗물소 새1끼들 다 쳐죽이고싶네ㅋㅋㅋ'. 자극적인 제목 하나를 골랐다. 누군가 치고받고 싸우기라도 했는지 200개가 넘게 달린 댓글이 인상적이다. 참지 못하고 클릭해서 들어가면, 엔터키를 뽑았는지 가독성 떨어지는 장문의 글이 촘촘히 자기주장을 하고 나섰다. 씹기 힘든 장문을 억지로 훑어내린다. 얼마나 감정을 눌러 담았는지 글 곳곳에서 화가 느껴졌다. 내용은... 대충 과몰입해서 유사 연애 감정을 내비치지 말라는 소리였다.

이토록 화를 내는 걸 보면 본인도 과몰입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과하게 많았던 댓글 창은 역시 전쟁터였다. 작성자와 다른 유저가 서로 지 말이 옳다며 목청만 터져라 부르짖는 모습. 키보드를 두드리는 싸움만큼 꼴사나운 짓도 없었다.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시간 낭비를 빠르게 읽어내리면, 그걸 읽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시간 낭비도 이 정도면 비극이라 할만했다.

평소 같으면 이 정도로 규모가 커지기 전에 관리자인 주연이 삭제하고도 남았을 상황인데, 용케 살아남아서 계속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편집을 마친 주연이 잠에 들 시간이라 그런가. 아니, 내 편집자는 방금까지도 나랑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삭제하기도 뭐 해서, 그냥 싸우는 걸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언제까지 저렇게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오늘 방송을 끝마치고 난 다음에도 저러고 있다면, 뭐든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병신 중의 병신이라는 칭호라도 줄 법한데.

미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담배 피우는 사실은 비밀로 해달라는 약속. 우나밍의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그녀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에 어떻게 반응할지. 야방 채팅창 속엔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는 미나를 보고 과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평소 방송에서 우나밍이 보여주는 이미지와는 맞지 않다는 이유로.

그래, 수만 명이 넘는 시청자의 속내를 읽으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연예인, 아이돌 같은 우상은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관심에는 당연히 뭐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이 섞여 있을 테고. 마음대로 그려낸 이상을 보면서 점차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키워나가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겠지. 자기 스스로가 품기 벅찰 정도로 감정을 키워서는, 그걸 밖으로 표출하기 시작하는.

아침에 읽었던 메일 몇 통에는 걱정이 듬뿍 들어간 조언이 수북이도 담겨 있었다. 뭐였더라.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면 안 된다, 발언에 주의해야 한다, 남자 앞에서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과도한 합방이 방송을 망치고 있다, 이상한 게임을 가져오지 말고 추천 받은 게임 위주로 플레이해야 한다, 캠방 비중을 늘려야 한다, 야방도 혼자 하는 게 좋다­ 많기도 하지. 노르드님이라면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실 줄 알았다는 실망 섞인 코멘트는 덤이었다.

일방적인 소통은 보기 힘든 법이다. 그걸 강요당하는 입장이라면 더욱더. 나는 누군가가 바라는 이상을 그대로 구현시켜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랑을 감당할 정도로 배포가 크지도 않고.

"저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미쳤음?]

[??]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주접떨지 말고 게임이나 켜십쇼]

[우욱씹 육수새,끼 댓글 어지럽노ㅋㅋㅋ]

[캠켜주세요]

[아직 술이 덜 깨셨나]

[노르드사랑해]

한동안 방 안에는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만 작게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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