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 218 적기는 위기와 함께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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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관심이 집착에 가까운 메일만 유도했던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번거롭게 메일 계정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뒤적거린 이유는 분명했다. 다분히 비즈니스적인 마인드. 당장 커플 대항전만 하더라도 메일로 받은 섭외 요청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내가 메일을 오픈한 이유는 사적인 소통을 위함이 아니라, 사무적인 소통을 위함이었다. 한마디로 돈이다. 돈과 관련된 제안을 받기 위해서.
대표적인 예시로는 역시 광고 제안이 있겠지.
사실 내가 광고 요청을 받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이었다. 저스틴 결전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몇 주 정도가 흘렀을 때였나. 새롭게 오픈하는 게임을 홍보하기 위한 광고였는데, 당시 광고 같은 제안을 받기에는 너무 성급하다고 판단했던 나는 그 제의를 완곡히 거절했더랬다. 방송을 시작하고 초기. 신경 써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도 했고.
그렇게 대충 흘려 넘긴 그 게임은 저스틴에서 몇 번인가 만나볼 수 있었는데, 다른 스트리머의 광고 방송을 통해서였다. 광고를 받은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닌 것 확실해 보이더라. 대기업 스트리머 몇몇이 방송 제목에 광고를 달고는 그 낯익은 게임을 하고 있는 광경이란. 내가 저 사이에 껴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꽤나 오묘한 감정이 밀려왔었지.
단순히 단발적인 광고는 아니었는지, 며칠 뒤에도 비슷한 광경을 봤던 걸로 기억한다. 방송에 들어가 보지는 않은 터라 게임을 플레이했던 스트리머가 같은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광고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꽤 유명한 스트리머들이 나열해 있던 것 같은데... 몇 주 지나지 않아 저스틴에서 그 게임을 다시는 목격할 수 없었던 걸 보면, 역시 광고가 게임의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그 홍보비를 아껴서 게임 개발에다 투자하지. 게이머들의 생각이란 모두 거기서 거기인 법이다.
아무튼, 요지는 내가 광고 제의를 받은 게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드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지. 솔직히 말하자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많은 제안을 받아왔다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광고 제의. 대부분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넘어갔다.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광고를 조금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으니. 한창 내가 개미털기에 열중하던 시기였다. 일시적인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인기가 독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하던 때. 나는 광고 제안을 단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모두 내쳤다. 수락하는 광고도 없고, 메일 답장도 제대로 보내지 않았다. 거의 벽을 세운 거나 마찬가지였지.
얼마간 그게 반복되니 결국 들어오는 광고가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커플 대항전에 나온 이후로는 그것도 다 헛소리가 되어버렸다. 지난 몇 주간 들어온 광고가 대체 몇 개인지 모르겠다. 기업 입장에서 홍보 모델로서의 '노르드'가 그토록 메리트가 있다고 계산된 모양이다. 기업이란 결국 가장 계산적으로 사고하는 치들이 아니던가.
늘어난 광고는 단순히 양만 증가한 게 아니라서, 나는 이상하리만치 가짓수를 넓힌 광고의 종류를 보고 또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 광고야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는데, 화장품 광고는 대체 왜 들어오는 건가. 아마 브이로그 영상의 여파일 거라고 유추할 수는 있지만... 그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돈으로 움직이는 법이다. 그동안 광고를 받지 않았던 게 일종의 몸값 부풀리기로 작용했는지, 광고 단가가 처음의 그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올라가 있더라. 주연과 성현, 스벅을 포함한 주변 사람에게 몇 번인가 정보를 구한 나는, 이 정도면 광고를 받아도 괜찮은 지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거품도 이 정도로 쌓이면 물리적 영향력을 가지기 마련이다. 인기라는 건 어떻게 관리해도 한순간에 사그라질 수 있는 법, 아무튼 지금이 이 인기를 이용할 수 있는 적기인 건 확실했다.
그래서 지금이다.
"과자라도 드릴까요? 초코칩 사다 둔 게 있는데."
"아뇨, 괜찮아요."
컴퓨터 책상 앞이다.
첫 광고를 아무거나 받을 수도 없던 내가 누군가에게 상담을 요청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편집자인 주연은 첫 손에 꼽히는 대상이었고. 가까워질수록 더 실감하고 있는 점이지만, 주연은 인터넷 방송 쪽에서 망령에 가까웠다. 분명 단순한 시청자의 입장에서 몇 년을 보냈다고 하는데 뭐 그리 아는 것들이 많은지. 직접 방송을 하는 게 아니면 알기 힘든 정보들을 술술 내뱉는 모습을 보면 든든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떤 광고를 받을지 주연과 함께 한창 고민을 이어나가던 중이었다. 메시지 창에다 구체적인 계약 조건까지 늘어놓는 게 번거롭게 느껴지는 건 금방이었다. 결국 날짜를 잡고 구체적인 회의를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떨어지기 무섭게, 약속일은 당일로 확정되어 버렸다.
마지막 문자를 주고받은지 고작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새 집 앞까지 도착해 초인종을 누른 주연은 커피 두 잔을 들고는 원룸으로 들어왔다. 점점 집에 사람 찾아오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 게 기분 탓은 아니겠지. 조만간 손님을 위한 가구라도 추가해야 될 판이다.
"지금 졸리지 않아요? 원래 잘 시간이잖아. 이런 건 다음으로 미뤄도 괜찮은데. 어차피 기간은 충분해요."
"오늘 새벽에 눈 좀 붙여서 괜찮아요. 저 말고 혜진 씨는요? 늦게까지 방송한 건 똑같아요."
"난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는 사람이라니까."
이래 봬도 그렇지.
이쪽으로 뻗어오는 주연의 팔을 붙잡고는 그녀가 앉은 의자를 모니터 쪽으로 돌려놨다. 주연의 옆자리. 구석에 박아둔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 앉는다. 가격도 떠오르지 않는 접이식 의자는 등받이도 없는 일체형이었는데, 어떻게 앉아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두어 시간 앉아있으면 그게 누구든 엉덩이가 배길 것 같은 정도. 하기야, 애초부터 오래 앉아있을 물건이 아닌 것이다. 혼자 살면서 앉을 자리가 부족한 경우가 이렇게 자주 생길 줄은 몰랐지.
주연의 옆에서 마우스를 잡았다. 주연이 오기 전 미리 훑어본 메일함은 여전히 난잡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메일은 분류하는 것도 일이라, 가볍게 훑어본다는 말이 무의미할 정도였다. AI가 중요도 따위를 분류해 알아서 정렬해 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요령을 바랄 수도 없는 처지. 나는 오래된 순서로 메일을 읽어내릴 뿐이었다.
끝도 없이 늘어나는 스크롤 바를 계속 내리면, 드문드문 회색으로 칠해진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순서를 지키지 못하고 먼저 읽은 메일들이다. 대부분은 중요도가 높아 보였던 메일들이고, 드물게 어그로에 끌려 클릭해버린 비운의 메일들도 숨겨져 있었다. 간혹 어떻게든 사람을 클릭하게끔 연구한 것처럼 누를 수밖에 없는 메일들이 날아오고는 했던 것이다.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그마저도 정신노동에 가까우니.
"좀 많죠? 조금이었으면 제가 정리해서 보내줬을 텐데, 그럴 여유가 없어서."
"저는 다 괜찮아요. 이것도 다 저희가 같이 혜진 씨, 이건 무슨 메일이에요?"
광고메일의 제목만 드래그하며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는 중. 돌연 주연이 마우스를 쥐고 있던 내 손을 멈춰 세웠다. 마우스 위에 손을 겹치고 주연이 인도하는 곳으로 커서를 가져다 대면, 그건 내가 지나치지 못하고 낚여버린 메일 중 하나였다. 옅은 회색빛으로 뒤덮인 박스 칸 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제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저 그 고양이 알고 있어요. 선생님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떨려요]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뭔가 수치심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급한 어그로에 끌려버린 게 한심해서? 나 스스로도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화제를 전환하기도 전에, 마우스를 뺏어 쥐다시피 가져간 주연은 다시금 그 개 같은 메일을 열어버렸다. 개별 메일을 따로따로 지우는 것도 귀찮아서 남겨둔 건데, 그게 더 귀찮은 일을 초래해버리다니. 주연이 메일 내용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대충은 예상이 가서, 나는 잠깐 고개를 돌려버렸다. 외면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이런 메일 자주 받았어요?"
"네? 아니, 보통은 거의 무시하죠. 근데 이번에는 낚여버린 거라. 주연 씨도 낚였으니까 꽤나 머리를 잘 썼"
"괜찮은 거 맞아요?"
어깨까지 잡고 물어오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마주한 혜진 너머 모니터에서 활자들이 깜빡거린다. 저 내용을 채워 넣은 주인을 닮은 건지, 불쾌할 만큼 자기주장을 하고 나서는 듯했다.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주연의 눈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내가 지금 괜찮나. 몸 건강을 자가진단하는 것도 힘든데, 정신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건 버거운 일이었다. 메일 목록을 쭉 훌어내리면 느껴지는 답답함 내지는 불쾌함도 괜찮지 않다고 대답하기 위한 근거가 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집요한 눈초리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어딘지 안 나와 있잖아요. 그냥 어떻게든 메일 읽게 하려고 어그로 끈 거 같아. 제대로 걸렸어요."
"...그게 아니라 메일 내용이 문제잖아요. 차단했어요? 신고는?"
"했어요. 진짜 괜찮다니까."
메일 내용은 평소와 별다를 바가 없었는데. 굳이 평가하자면 본인이 불감증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레퍼토리 정도가 새로웠다. 어그로꾼은 내 방송을 제법 열심히 챙겨 보는지 트렌드 파악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게 한층 더 역겨움을 더했지.
"메일 계정, 제가 관리해 드릴까요? 쓸데없는 건 다 삭제하고 알려드릴게요. 이런... 이런 쓰레기들 다."
농담으로 넘어가기엔 주연의 얼굴이 너무 진지했다. 내 편집자는 드디어 정신이 나가버린 걸까. 지금도 연락할 때마다 수면 부족에 허덕이면서, 무슨 할 일을 추가하겠다고. 나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주연의 입을 틀어막고 말했다. 입을 막은 건 또 이상한 반박이 나오는 걸 원천봉쇄하기 위함이다. 저런 저급 어그로때문에 이만큼 시간을 낭비한 것만 해도 이미 엄청난 손해를 본 기분인데, 여기서 더 시간을 허비하는 건 너무 억울했다.
"뭔 소리야. 진짜 안 자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광고 제의나 읽어봐요. 그게 저 도와주는 거니까."
뭔가 불퉁한 표정을 짓는 주연을 밀어내고 다시 마우스를 붙잡았다.
계속 눈짓을 보내는 주연을 애써 외면하고 광고 제의를 확인한다. 화제를 전환하려는 내 의도가 먹혔는지, 아니면 노골적인 내 태도가 안쓰러웠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연도 곧 메일 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시 훑어봐도 지나치게 많았다. 제안이 들어온 광고의 총량도, 그 종류도. 들어온 제안을 소거법으로 하나씩 쳐낸다. 이렇게나마 줄여가다 보면 그래도 바닥이 보이겠지.
"확실히 많긴 많네요. 생각해둔 건 있나요? 크게 크게 잘라내는 게 낫겠어요."
사실 게임 광고로 가닥을 잡아두기는 했다.
단순히 내가 게임 스트리머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내게 들어온 수많은 광고들을 분류하면, 아마 가장 많은 제안을 받은 것이 게임 광고일 터다. 그건 굳이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명확했다. 당장 지금 페이지 내에만 게임 광고가 너덧 개는 보이는 판국이었으니까.
광고 방송을 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돈을 받고 하는 일인 이상, 나는 그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보상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게 광고라면 내가 책임감을 가져야 되는 건 홍보 효과겠지. 받는 금액이 백 단위를 가볍게 뛰어넘는 거래. 아무리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날로 먹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화장품이나 유명 브랜드에서 들어온 광고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떻게 이걸 홍보할 수 있을지. 내 빈약한 머리로는 효과적인 방법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캠을 켜고 대책 없이 얼굴에 화장품을 펴 바르기라도 하나? 그거야말로 날로 먹는 광고가 아닌가.
마케팅 부서에서 광고 대본을 만들어 제공하는 경우도 많다지만, 생방송에서 대본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할 수는 있는데 그냥 싫었다. 어색하게 대본을 그대로 수행하는 우스꽝스러운 방송이라니. 당장 박제 당해서 이곳저곳에서 밈으로 소모될 게 뻔했다. 중간에 실수를 해서 방송 사고나 안 내면 다행이지. 제품 이미지에 손상을 입힐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결국 제일 만만하게 다가온 건 게임 광고였다. 브이로그고 나발이고 애초부터 내 근본이 게임 스트리머이기도 하고. 게임 스트리머의 첫 광고는 게임이 되어야 하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그림일 터. 나는 거의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문제는 어떤 게임을 광고하느냐지.
"처음은 게임 광고 받기로 정해놨어요. 근데 거기서 고르는 것도 쉽지가 않아서."
게임만 해도 종류가 수도 없이 많았다. 정식 출시를 앞두고 홍보를 준비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이미 서비스 중인 게임이 대규모 패치나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구미가 당기는 게임을 대충 골라낼 수도 없었다. 그러다 선택한 게임이 지뢰작이면 어쩌나. 홍보 내내 굳은 표정을 짓고는 썩은 멘트를 날리며 방송을 진행할 모습이 눈에 훤한 것을.
그래서 주연을 부른 것이다. 나 혼자 이러고 있으면 하루 종일 메일을 확인해도 결론을 내지 못할 게 뻔했다.
"모바일 게임류는... 일단 거르죠. 홍보 방식도 그렇고 게임 플레이 방식도 평소 혜진 씨 방송하고는 안 어울려요."
"아... 이거 말하는 거죠?"
"네. 조금 아래로 내려서... 네, 이것도. 어지간하면 신규 오픈한 게임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런 건 보통 홍보 시작할 때 많은 스트리머한테 동시에 제안을 넣거든요. 그럼 독박으로 이상한 덤터기를 쓸 위험성이 많이 줄어들어요. 광고 받으면 그런 것도 의식할 수밖에 없으니까."
...주연은 확실히 조언자 역할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광고를 받을 때 생길 수 있는 디메리트를 최대한 줄이고 줄이는 선택지. 길잡이의 역할은 이토록 중요하다. 주연의 말을 참고해서 들어온 광고 제의를 뭉텅뭉텅 잘라내면, 막막하기만 했던 선택지도 어느샌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기에 광고 금액 따위의 조건까지 더하는 순간, 그다음은 정말 금방이었다.
결국, 나는 내 첫 광고 방송이 될 게임을 선택했다.
"...왜요? 여기서는 제 취향대로 고르라고 하셨잖아요."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보는 주연을 제외하면, 속이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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