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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9화 〉 219 ­ 광고를 좋아하는 사람은 변태잖아 (219/243)

〈 219화 〉 219 ­ 광고를 좋아하는 사람은 변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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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확인하면 되는 건가요?"

<"네. 주의사항도="" 적어놨으니까="" 보내드린="" PDF="" 파일만="" 자세히="" 읽어주시면="" 됩니다.="" 저희="" 모니터링="" 팀이="" 다="" 붙을="" 테니까,="" 혹시라도="" 문의하실="" 내용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게임 광고라는 건 의외로 준비 과정이 복잡하지 않았다.

대본을 외울 필요도 없고, 며칠 전부터 게임에 대해 열심히 조사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아직 공식 오픈도 하지 않은 게임인 터라, 인터넷에 검색을 해도 상세한 정보를 찾기는 힘들었다. 내가 게임을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곤 나와 접촉한 게임사에서 정보를 캐내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게임사에서도 게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유저가 게임을 처음 플레이하는 느낌을 연출하기 위함이라나. 결국 내게 주어진 건 광고할 게임의 장르나 간략한 개요, 최소 사양 따위의 아주 기초적인 정보들뿐이었다. 이쯤 되면 일반 유저나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아무런 지식 없이 광고를 해도 정말 괜찮은 건가. 프로 의식에서 너무 멀어진 게 아닌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편했다. 괜히 숙제가 늘어나면 더 귀찮아졌을 테니까.

주의사항이라고 강조된 것도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들 뿐. 대본이랄 것도 없다시피해서, 특별히 신경써서 지켜야될 내용은 게임에 대한 필수적인 멘트 몇 문장이 전부였다. 이 정도면 내가 미리 준비해야 하는 건 게임 설치 정도를 제외하고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것과 비교하면 차라리 광고 계약을 조율하는 과정이 몇 배는 더 번거롭고 귀찮았다. 광고가 처음인 내가 보기에도 이 경우는 조금 특별하지 않나 싶었다. 분명 처음 광고 방송을 하게 되면 귀찮고 성가신 일이 많을 거라는 성현의 조언을 받은 뒤였는데. 모든 광고가 다 이런 식이라면 좋을 듯싶었다.

아니, 아직 본 광고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편안함을 느끼는 건 지나친 설레발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광고를 진행하다고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이래 뵈도 큰 돈이 오고 가는 거래였다. 적잖이 긴장감을 품는 쪽이 더 올바른 태도임은 분명했다.

규칙이 이토록 간단한 까닭. 어쩌면 광고 규모가 너무 커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광고 제의를 수락한 게임의 이름은 '더 코어(The Core)'였다.

미국의 유명 게임사와 한국 게임사가 협력해서 개발한 신작 게임. 나는 별로 실감하지 못했으나, 주연의 말에 따르면 개발을 맡은 게임 제작사의 이름값 때문에 몇 년 전부터 화제가 됐던 게임이라고 한다. 유명한 게임사의 신작이 주목을 받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기에 많은 자본이 투자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더욱 그랬고.

아무튼 더 코어도 그런 유형의 대형 신작 중 하나인 터라, 출시되기 전부터 제법 많은 게이머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게 주연의 설명이었다. 당연히 나는 알고 있을 턱이 없었다. 몇 년 전에 화제가 된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게임의 장르는, 일단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샌드박스에 가까웠다. 플레이어는 게임 내에서 '코어'라고 불리는 가상공간에 접속해, 그곳에서 집을 만들고 채집을 하고 수렵을 하면서 자신만의 코어를 꾸며나가며... 무언가를 하겠지. 설명이 이상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사실 나도 이 게임이 뭔지 잘 몰랐거든.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나는 이 게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고. 개발사에서 작정을 하고 숨긴 건지, 개발 단계서부터 꽤나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알려진 이 게임은 이상할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었다. 신비주의 마케팅. 트레일러 영상 따위를 찾아봐도 게임에 대한 간략한 정보만 얻을 수 있을 뿐, 대체 게임의 목적이 무엇이고 어떤 내용을 가진 게임인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내가 광고 제안에 혹했던 첫 번째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대체 무슨 게임이지, 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임 설명. 오래된 게이머일수록 새로움에 목말라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영상을 살펴보면, 뭔가 대자연 속에서 집을 짓거나 조잡한 도구를 만드는 둥 그럴싸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걸로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곤 기껏해야 그래픽이 썩 훌륭하다는 사실과 일인칭 시점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이라는 정보가 다였다. 조금 더 보태면 모션이 나름 깔끔하다는 것까지. 개발진 코멘터리를 찾아봐도 의미심장한 내용만 가득해서, 더 코어의 상세한 정보는 거의 미스테리에 가까웠다. 이 정도면 아주 작정하고 숨긴 셈이다.

독특한 점은 이 게임이 싱글 플레이가 아니라 멀티, 그것도 대규모 멀티를 지원하는 게임이라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코어'라 불리는 가상공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되, 다른 수많은 코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교류가 가능하다는 설정. 트레일러 영상에서는 서로 전혀 다른 복장­SF에서나 나올 법한 미래적 의상과 야만인처럼 보이는 투박한 가죽 옷­을 갖춘 플레이어 둘이 만나서 악수를 나누는 장면으로 나타났다.

코어는 서로 다른 환경을 가진 것으로 추측됐는데, 영상의 예시를 생각하면 각기 다른 환경에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발전한 플레이어가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는 등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협력해서 자신에게 할당된 코어에서 오래도록 생존하는 게 목적인 게임인지. 전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게임 내에 존재하는 코어가 총 몇 개인지, 한 서버 내에 몇 명의 플레이어가 접속할 수 있는지 같은 건 공개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물어봤을 때도, 직접 경험해보라는 답변이 돌아왔었나. 이 정도면 숨기는 것도 정성이다.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커다란 규모의 게임. 더 코어는 광고 방식도 남달랐다. 메일에서부터 이번 광고 방송이 다양한 플랫폼, 많은 인플루언서의 손에서 동시간대에 실시될 거라고 단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광고 방송을 하는 바로 그 시간에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방송인들이 동시에 더 코어 광고 방송을 시작한다는 의미였다. 대규모 동시 광고 방송. 주연과 함께 메일을 자세히 읽어가다 동시에 깜짝 놀랐던 구간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극히 효율이 떨어지는 방식이다. 화제성이야 높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몇 날에 걸쳐 유명 인플루언서 다수에게 광고를 요청하는 쪽이 훨씬 지속성 있는 홍보 방법이지 않은가.

광고라기보다 특별한 이벤트에 가깝게 느껴지는 독특한 방식은 개발사에 뭔가 특별한 계획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암시했다. 공식 출시를 기념해서, 인플루언서를 대거 동원해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이벤트. 이게 내 호기심을 자극한 두 번째 내용이었다. 많고 많은 광고 제안 중 하나를 선택하게끔 유도한 가장 큰 요인이 호기심이라니. 갈고리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시청자에게만 존재하는 건 아닌 듯싶었다.

굳이 첨언을 얹어보자면, 저스틴에서도 다수의 스트리머가 더 코어의 광고 방송을 함께한다는 사실이 내게 적절한 안도감을 심어주는 것도 같았다. 합동 광고라니. 그 말인즉슨, 광고 도중 발생할 수 있는 게임 내외부적 사고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만 돌아올 일은 없다는 뜻이었다. 책임의 분산. 이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나 홀로 책임지는 것보다는 큰 흐름에 몸을 맡기고는 대충 묻어갈 수 있는 쪽이 훨씬 편한 건 당연했다.

이런 생각들 때문인지, 생애 첫 광고 방송을 앞두고 있음에도 내 정신은 멀쩡하고 또렷했다. 뭔가 방송에서 처음 뭔가를 시도할 때마다 가슴에 내려앉던 묵직한 부담감이나 긴장감 따위도 지금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여유를 두고 방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실행한 캠 렌즈가 모니터 위에서 눈을 깜박이는 것처럼 번쩍거렸다.

[노하~~~]

[기다렸읍니다...]

[캠방 실화냐]

[노르드가 캠...방...이라고?]

[오늘 무슨 날임?]

[]

[방에 불 좀 켜주세요...]

[존나 어두워요 선생님 제발]

방송에 들어옴과 동시에 주접을 떠는 채팅창을 무시한 채로 방송 설정을 건드렸다.

PDF 파일의 지침에 따라 캠 위치를 좌측 하단부로 옮겨놓고, 적당히 크기를 조절한다. 모니터 귀퉁이를 작게 차지한 캠 화면. 블라인드를 내리고 형광등 불을 끈 탓에 실내는 어두웠다. 캄캄한 방구석에서 모니터 빛을 조명삼아 드러난 얼굴. 검은 옷을 입어서 그런지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가능하면 광고 방송 중 캠을 켜달라고 부탁했었지. 그래도 부탁한 대로 캠을 켰으니 딱히 조명 설정까지 문제 삼지는 않으리라.

마지막으로 방송 제목을 다시 확인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오늘 광고 방송을 한다고 말했던가. 몇 번인가 방송에서 언질을 주긴 했지만, 그게 언제일 거라고 확정 짓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어떤 반응이 흘러나올지 대충 짐작은 갔다. 자고로 광고를 좋아하는 시청자란 존재하기 힘든 법이니까.

<더 코어="" The="" Core="" :="" Rule="" (광고)=""/>

지침에 따라 적어넣은 부제도 의미를 알기 힘들었다.

"아. 방제 바뀌었나요? 방금 적용 눌렀어요."

[ㅇㅇ 바뀜]

[계속 그렇게 불끄고 계시면 눈이 나빠지지 않을까요 ㅎㅎ]

[광고? 드디어 자본주의에 타락하신 겁니까 선생님]

[뭐야 광고방송 처음 아님?]

[아니 노르드도 더 코어야?ㅋㅋㅋㅋㅋ 대체 몇 명을 섭외한거야 퍼소 미친새기들]

[더코어 ㄷㄷ]

[광고든 뭐든 됐으니까 불좀 켜주세요ㅠ]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은 거 같은데. 나는 제목에다 광고를 붙인 순간 채팅창에서 폭동이 일어날 줄 알았다.

<막도생 님이="" 10,000원="" 후원!=""/>

­이게 몇년만인지,,, 캠방 너무 죠습니다 선생님,,, 혹 실례가 안 된다면 불을 좀 켜주실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존안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본사에서 조명에 대한 지침이 내려와서요. 불은 다음에 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이 언젠데]

[본사는 ㅅ,ㅂ ㅋㅋㅋㅋㅋ 니기럴]

[지랄마세요 다른 방송 다 멀쩡히 밝은데서 하고 있는데]

[그래도 캠 켜준게 어디임]

[광고라 캠방하는 거였음? 그럼 맨날 광고받으면 맨날 캠 켜주냐?]

[진짜 느닷없이 광고방송뭐냐. 대기업들 카테고리 다 더코어로 해둔거 소름이네ㅋㅋㅋ 얼마썼지]

채팅을 훑다가 시간을 확인한다.

6시 48분. 아직 공식적으로 광고 방송이 시작되기까지 12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일곱 시 정각이 됨과 동시에 서버가 열린다는 공지를 받았는데, 아직도 방송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오리무중이었다. 이토록 판을 깔아준 걸 보면 참여한 인플루언서 전부를 같은 서버에 수용하는 건 확실하지 않을까. 코어끼리 상호작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유명 방송인들을 통해 보여주려는 의도. 스스로가 내놓은 추측이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문득 저스틴에서 몇 사람이나 서버 오픈을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저스틴에 들어가 홈 메뉴를 클릭. 메인 화면에 들어선 순간 내가 대기하고 있는 더 코어의 섬네일이 화면 중앙에 떡하니 튀어나왔다. 분명 저스틴 메인에는 시청수 집계가 순위권인 게임만 자리할 텐데, 방송 목록 한 줄을 같은 게임이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다시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보통 나이트폴 같은 게임이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대체 몇 명한테 제안이 들어갔는지 의문이다.

이렇게 가만히 오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게, 과거 대규모 RPG 게임을 할 때나 느꼈던 감성을 되살리는 듯싶었다. 그 시절 게임을 즐기던 수만 명의 사람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지만, 개개인이 전부 방송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 각별한 맛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나.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 숫자를 총합하면 어지간한 대형 RPG 유저 수랑 비교했을 때 크게 꿀리지도 않았다.

"...생각보다도 규모가 크네요."

서버 오픈까지 약 10분.

첫 광고에서 되지도 않는 설렘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목을 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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