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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1화 〉 221 ­ 생존에는 협력이 중요하지 (221/243)

〈 221화 〉 221 ­ 생존에는 협력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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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쪽 코어는 철광석이 넘치겠네요? 뭐 위험한 건 없었나요?"

"그냥 지형 자체가 위험해요. 멀쩡한 땅에서 갑자기 이상한 폭발이 터져 나오는데, 저랑 같이 겜하시던 클로님 그거 맞고 죽었어요. 눈앞에서 죽었다니까요? 물이랑 식량 구하기도 힘들고..."

"무슨 느낌인지 알겠네요. 그럼 이쪽에 캠프 만들고 광석 필요할 때만 움직이는 식으로 합시다. 그게 효율이 좋겠어요."

가닥을 잡은 것 같았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어낸 베이스캠프 앞이었다. 가공하지 않은 목재로 어설프게 세운 기둥이 허름해 보였으나, 아무것도 없던 시작점과 비교하면 충분히 뿌듯함을 느낄만했다. 적어도 갑작스럽게 퍼붓는 호우에 몸을 숨길 정도의 역할은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당장 삼십 분 전만 해도 비만 떨어지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거의 문명 하나를 이룩한 셈이다.

퍼브는 방금 만든 상자를 열어 보관 중인 재료 아이템을 정렬했다. 목재와 가죽에서 시작해, 방금 조우한 유당한테서 얻어낸 철광석까지. 보기만 해도 포만감이 찾아오는 만족스러운 파밍 상태. 깔끔하게 정리를 완료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철광석은 정말 뜻하지 않은 커다란 수확이었다. 그가 스폰된 코어는 거의 정글과 같아서, 아무리 탐색을 거듭해도 광석과 같은 소재는 찾아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사방에 널린 건 풍부한 식재료와 목재뿐. 어느 정도 제조를 진행해서 장비를 갖춘 다음에는 발전의 여지가 없어서, 동물 뼈를 활용해야 하나 고민을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철광석을 들고 있는 스트리머가 이렇게 손수 찾아오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스폰 지점 근처에 위치한 게이트는 진작부터 발견하긴 했으나, 반대편 코어가 무슨 환경일지 아무런 정보가 없는 게 문제였다. 정글에 적합한 복장을 입은 채로 아무런 대비 없이 코어에 들어갔다가, 만약 건너편 코어가 극한의 환경이라도 된다면.

영미권에서 진행된 알파 테스트부터 더 코어에 대해 알아봤던 퍼브는 코어를 건너가는 행위가 얼마나 큰 위험성을 동반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게이트를 이동하면 생기는 보이지 않는 쿨타임. 적어도 몇 분간은 원래 있던 코어로 돌아오는 게 불가능했다. 단순히 문을 두드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오갈 수 있는 통로가 아닌 것이다.

재차 베이스캠프 정비를 완료한 퍼브는, 유당에게 미리 채집한 열매를 내어주고 함께 식사를 완료했다. 게임을 시작하고 약 한 시간이 지난 시점. 스폰한 이후 지금까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흐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위협적인 야생 동물과의 조우도 없었을뿐더러, 진작 게이트를 발견해서 베이스캠프의 위치도 쉽게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반대쪽 코어에서 넘어온 우호적인 플레이어와 교류까지 마쳤고. 이렇게까지 게임이 좋게 흘러가는 게 얼마나 보기 힘든 그림일지. 퍼브 본인이 직접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영미 커뮤니티의 장황한 토론을 떠올리면 이런 흐름은 보기 드물 정도로 순탄한 그림이었다.

이게 돈을 받고 하는 광고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평소 이와 비슷한 장르의 게임을 주력 컨텐츠로 삼는 퍼브에게, 이건 광고라기보다 곧 공식 출시될 대작 게임을 미리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베타테스트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수십 명의 대형 스트리머들 사이에서 부각될 수 있는 판까지 마련된, 최적의 환경. 좋은 스타트를 기점으로 남들보다 앞서간다면 그것 자체로 많은 관심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기회일 터. 당장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시청자가 방송의 흥행을 증명하고 있지 않나. 이 상태로 좋은 결과를 맞이하면 훌륭한 엘튜브 각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이다. 그가 지금 게임에 열심히 몰입하고 있는 것도 당연했다.

"광석 가공하려면... 가마 같은 거 만들어야 된다는데요? 그것도 다 이쪽에다 만들까요?"

"네. 어지간하면 여기에 만들 거예요. 멀리 안 가고 근처에서 물도 구할 수 있어서 좋으니까. 그건 제가 만들 테니까 유당님은 목탄 만들어 오실래요? 나무에 불지르면 될 거예요. 숲이라 그것만 주의하시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렇게 하죠. 하는 김에 여기 맵 좀 탐방하고 올게요. 화산만 보다가 숲에 들어오니까 확 새로워지네, 게임이. 금방 오겠습니다."

분업은 순탄했다.

별다른 친분이 없었음에도, 퍼브와 조우한 스트리머 유당은 매우 협조적이었다. 아마 종합 게임을 주력으로 하는 스트리머였지. 평균 시청자가 비슷한 터라, 저스틴에서 스크롤을 쭉 내리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닉네임. 샌드박스 게임을 즐겨 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코어 내부의 가혹한 자연환경 못지않게, 이 게임의 알파테스트에서 악명을 떨쳤던 건 PK(Player Killing) 행위였다. 죽으면 계정 내에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해야 한다는 가혹한 시스템. 다른 플레이어에게 죽은 유저가 울분을 토해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몇 시간, 혹은 며칠간 노력한 끝에 이룩해낸 장비나 건축물, 식량 따위를 단 한순간의 실수로 모두 날려버릴 때의 허탈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게임의 죽음에는 구제책이 없었다.

반대로 상대 플레이어를 죽이는 데 성공한 유저는 아무런 페널티 없이 모든 전리품을 얻어 갈 수 있었다.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놨으면서 다른 코어와 교류하며 윈윈하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라는 말이나 내뱉다니. 게임의 구조를 생각하면 서로에게 신용을 가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영미 커뮤니티에서도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았는데, 나중에는 유저들 사이에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을 정도였다. 호의적으로 접근해 뒤통수를 치는 악성 PK 유저들의 이름을 담은 블랙리스트. 이십 년 전 게임에서나 나눌 법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비웃었었는데... 막상 이렇게 게임이 잘 풀리고 보니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죽으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럼에도 퍼브는 유당과 조우했을 때 먼저 모습을 드러내고 우호적으로 나섰다. 이 게임의 인 게임 보이스는 가까워질수록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것이다. 목소리를 내며 접근했을 때 유당이 얼마나 놀라던지. 리액션을 보면 확실히 놀리기 좋은 스타일의 스트리머였다.

먼저 접근한 건 단순히 유당을 믿어서라기보다, 광고를 위해 오픈된 이 특별한 서버에서 PK의 위험도를 낮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서버에 입장한 건 모두 어느 정도 이름을 떨치는 인플루언서들이다. 게임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부족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PK를 감행할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퍼브의 판단은 유효했다. 당장 생존하는데 급급한 상황에서 적대적 플레이어를 늘리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협력은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첫 협력자가 다른 코어에서 넘어온 플레이어라는 사실은 더할 나위 없는 강점이었다. 정보가 무엇보다 귀한 상황에서 획득한 귀중한 정보원. 상자에 넣어둔 돌더미를 그러모으면서, 퍼브는 천천히 계획을 늘려나갔다. 광고 시간이 전부 끝나더라도 서버는 며칠간 계속 오픈할 거라고 공인받은 상황.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영상 각을 만들 수 있을지는 지금 얼마나 밑바탕을 잘 만들어두는지에 달려 있었다.

그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다 불 질러도 되겠지? 이렇게 나무 몇 개만 따로 떨어져 있는 데가 별로 없잖아. 나 벌써 십 분은 걸은 거 같은데? 어... 그러자. 뭐 산불처럼 확 퍼지고 그러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지. 이걸로 충분히 나올지가 더 문제 같다. 아오, 게임 개 빡세."

숲의 외곽이었다.

울창한 정글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숲도, 모든 공간에 균일하게 뿌리를 뻗친 건 아니었다. 비교적 나무의 밀집도가 낮은 지형. 물가를 따라 적절한 지점을 물색하던 유당은 십 분이 넘게 이동을 하고 나서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기이한 지형이었다. 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 널찍한 공터. 어디를 둘러봐도 식물들이 가득한 정글 속에서 보기 드문 공간이다. 공터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나무 서너 그루가 서로의 가지가 맞닿을 정도로 가깝게 모여 있었다. 땅을 파고 들어가면 아마 뿌리도 서로 맞대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거리감. 그럼에도 잎사귀는 생생하게 푸르렀다.

아무튼 목탄을 얻기에는 적합한 장소였다. 숲에 큰 화재가 나지는 않게 하되, 충분한 양의 목탄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나무. 유당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우습게 느껴지는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역시 게임은 게임인 것일까. 찾다 보면 특이한 지형이나 조건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유당은 망설이지 않고 나무 가까이 접근했다.

인벤토리를 열어 부싯돌을 꺼내들었다. 작은 부싯돌로 아무리 노력해 봤자 생목 하나를 태울 만큼의 불을 한순간에 피워 올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잠깐 고민을 하다 유당이 떠올린 방법은, 나무 밑동 근처에서 모닥불을 만들어서 불이 번지게끔 만드는 일종의 편법이었다.

채팅창에서 올라오는 감탄사를 보고 시시덕거리던 유당은 금세 앉아서 모닥불 제조를 시작했다. 화면 중단에 제작 진행도를 알리는 게이지가 나타났다. 화산 코어를 거치면서 제작 숙련도를 상당히 쌓은 덕인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화산에 비하면 천국인데? 늑대도 불 보면 그냥 도망간다매. 아오, 나도 여기서 시작했으면 훨씬 편했을 거 같은데. 괜히 클로님만 죽었네. 이거 모닥불 정도로 불붙을까? 이 게임 엔진 괜찮아서 대충 아래다 피운 다음에 비비면­ 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붉게 물든 건 그때였다.

"뭐야!"

당혹감에 황급히 키보드를 두드려도 조작은 먹혀들지 않았다. 무언가에 머리를 맞았을까. 한순간 붉게 물들었던 시야는 곧장 흐릿하게 변해버렸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화면 속에서 제대로 사물을 분간할 수 없었다. 초조함에 젖은 유당은 더욱더 키보드를 난타했다. 야생 동물의 기습인가. 퍼브가 이 코어에 대해 경고했던 사항을 아무리 뒤적거려도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법한 위협은 찾아낼 수 없었다. 휘청거리는 신체가 위급한 상황을 더 혼탁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네? 뭔­"

그건 정말,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산뜻한 목소리였다. 당황한 상태로 아무런 멘트나 다급하게 내뱉던 유당이, 무심코 말을 멈추고 대답을 할 정도로.

짙은 안개가 바람에 떠밀려 사라지듯, 흐릿한 시야가 천천히 개는 와중이다. 온통 초록색의 초목만 가득했던 시야 한복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한쪽 손에 무언가를 들고 똑바로 서있는 모습에서 이해할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유당의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점차 초점을 되찾은 시야는 알 수 없는 괴한의 차림새를 보다 명확히 포착했다. 그림자처럼 새까맣다고 생각한 전신은 검붉은 빛이 맴도는 투박한 가죽 옷의 영향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겉으로 드러나는 전신을 가죽으로 둘러싼 모습.

오른손에 들고 있는 건 보기만 해도 단단해 보이는 돌도끼였다. 한 손으로 들고 있기에 딱 적합한, 투척에 용이할 것 같은 한손 도끼. 기분 탓인지 돌로 만들어진 머리 부분에서 옅은 붉은색이 감도는 듯했다.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맥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들었던 미성의 목소리가 저 흉측한 괴한한테서 나왔다는 것도 매칭하기 힘들었다. 혼란스러운 건 자신뿐만이 아닌지, 게임에 대해 활발히 의견을 나누던 채팅창도 범죄 현장을 조우한 목격자처럼 혼란스러움을 토해냈다. 유당은 지금 자신이 마주한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남기실 말이 있나요?"

"네, 네? 아니, 무슨... 에?"

"삼, 이­"

"녜? 잠깐만요! 저, 저 살려주세요! 저 화산에서도 힘들게 살아남았단 말이에요! 광고 시간도 아직­"

"일."

마지막 순간, 눈앞에서 검붉은 도끼날을 본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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