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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화 〉 222 ­ 봉화를 피우는 사람 (222/243)

〈 222화 〉 222 ­ 봉화를 피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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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수색에 나서자마자 사람의 흔적을 발견한 건, 제법 운이 좋았다.

플레이어를 찾기 위해선 먼저 게이트를 발견해야겠다는 판단이 유효했다. 내가 자리한 코어에만 해당되는 사항일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트를 발견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게임 시작과 동시에 주어지는 몇 안 되는 기본 지급품에는 나침반이 존재했는데, 이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로 게이트의 위치였다. 설계에서부터 대놓고 게이트를 찾는 것에 집중하라고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침반에 따라 울창한 숲을 헤치고 코어를 가로지르면, 게이트보다 먼저 사람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무를 쓰러뜨린 흔적, 땅을 파헤친 흔적, 죽은 사냥감의 시체, 짓눌린 발자국... 하나였다면 유추하기 힘든 흔적들이 겹치고 겹쳐 하나의 길을 만드는 듯했다. 얼마간 추적을 이어나간 뒤로는 이름 모를 유저가 남긴 흔적들이 더 선명하게 보였는데, 그건 탐색과 추적 숙련도가 상승하면서 나타난 결과였다. 이 게임에는 별의별 숙련도가 다 숨겨져 있었다.

그걸로 나는 한층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더 코어라는 게임은 단순한 샌드박스 게임이 아니라... 일종의 서바이벌 헌팅 게임이라고.

쓸데없이 묵직한 조작감이나 세분화된 숙련도 따위는 전부 플레이어 킬의 짜릿함을 위한 장치였다. 자신의 코어를 먼저 정복하고, 기반을 마련해 다른 코어를 침략해 사냥을 거듭하는 일종의 정복 사업. 사냥감은 물론이고 사냥꾼의 환경도 시시각각 변한다는 점에서 이건 제법 훌륭한 게임이었다. 얼핏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냥에 커다란 변주를 마련해두지 않았나.

첫 단서를 찾아낸 뒤에는 비교적 단순한 과정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흔적을 따라 이동하며 사냥감의 위치를 특정하기. 놀랍게도 내가 발견한 사냥감은 게이트 근처 양지바른 곳에 대놓고 주거지를 차려놓고 있었는데, 캠프가 꾸며진 모습을 보면 이 짧은 사이에 꽤나 많은 것을 이뤄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투박하지만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춘 목재 아지트. 고기나 버섯 따위의 식재를 늘어놓은 건조대. 나란히 자리한 상자 속에는 얼마나 많은 소재 아이템이 들어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한 시간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뭔가 많았다. 나는 그 시간에 뭘 했더라. 늑대를 잡고, 늑대를 잡고, 늑대를 잡고... 방향성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뭐, 사냥 숙련도를 올렸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잘못된 행동은 아니었다. 모두 보다 큰 사업을 위한 밑거름으로 작용하겠지.

멀찍이 떨어진 채로 캠프를 관찰했다. 울창한 숲. 마음만 먹으면 몸을 숨길 곳은 차고 넘쳤다. 늑대 고기로 식욕을 채우며 천천히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몸이 달아오른 쪽은 내가 아니라 시청자들이었다.

기다리는 과정에서 지금이 기회라는 채팅을 얼마나 봤는지. 추적을 시작하고 얼마간 얼떨떨한 기색을 내비치던 사람들이 대체 언제부터 과몰입 상태에 빠져들었는지는 나도 의문이었다. 지루한 추적 과정에 넋이라도 나갔을까.

이름도 모르는 사냥감에게 일행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건 관찰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같은 플레이어. 저스틴에서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위화감이 넘치는 행색을 보면 이 정글이 아닌 다른 코어에서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라는 사실이 명확했다. 게이트를 이용해서 이곳으로 넘어온 플레이어.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냥했을 때의 가치가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희귀종이라는 뜻이지. 당연히 내 사냥감은 둘로 늘어났다.

장비의 수준을 측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코어에서 건너온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처음 사냥감으로 정해둔 유저가 껴입은 방어구도 내가 알고 있는 생김새와는 거리가 멀었다. 적어도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방어구는 아닌 것 같았는데... 게임에 대한 지식이 워낙 부족한 탓에, 그 수준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저 장비가 내가 가진 것보다 한 티어는 높은 등급의 장비라면, 최대한 모습을 숨기고 기습을 감행할 필요가 있었다.

모르는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피격 판정, 모션 딜레이, 혹시라도 존재할 상태 이상 효과, 방어도 개념... 정해진 패턴대로 달려드는 늑대 무리와는 다르게, 플레이어를 상대로 고려해야 하는 사항은 한두 가지로 간단히 요약할 수 없었다.

예컨대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를 상대할 때 어떤 시스템이 적용되는가 하는 문제다. 플레이어의 급소는 어디인가.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으나, 만에 하나 머리가 급소가 아니라면 나는 굳이 집중해서 머리를 노릴 필요가 없겠지. 결국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게임 시스템에 따라 전투 양상이 극명히 뒤바뀔 것은 당연했다. 마우스 에임에 따라 타격 부위가 바뀌는 디테일한 조작을 생각하면 그렇게 단순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졌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으니까.

따라서 나는 뭉쳐있는 두 플레이어를 상대로 무작정 뛰쳐나가지 않았다. 제대로 된 시스템도 모르는 상태에서, 수적 열세를 컨트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터무니없는 오만이겠지. 나는 결국 언제가 됐든 두 사람이 떨어질 시기를 기다려야 했다. 침착하게, 입질을 기다리는 낚시꾼의 마음으로.

그리고, 멀지 않은 시기에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까 이름을 못 들었네요. 누구시지."

[캬]

[유당이었네 저거]

[사이코패스세요?]

[유당 시점 존나무서웠다 씹ㅋㅋㅋㅋㅋㅋㅋㅋ]

[유당이 뭔데 씹1덕새기들아]

[아 이건 좀;;]

[갓르드 사랑해]

[스트리머 하나 과감하게 쳐내는 대황르드 ㄷㄷㄷㄷ]

[이 사람 눈깔보면 ㄹㅇ 사이코패스가 틀림없음]

[맛이 없긴 해 템 별거없네]

[다른 놈도 죽여버리죠]

[스트리머 죽인 거 처음이냐?]

시체를 한참 뒤적거려도 딱히 영양가 있는 아이템은 보이지 않았다.

피 묻은 시체 너머로 말린 고깃덩이 몇 개를 주워들었다. 돌칼, 부싯돌, 식수, 철광석... 당장에 큰 수확이라 부를만한 아이템은 없었다. 그나마 특별한 게 있다면, 몸을 지키겠답시고 입은 방어구가 처음 보는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점 정도일까. 표면이 거친 엉성한 방어구는 널브러진 아이템 속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고 있었다.

정글 속에서는 본 적 없는 재질에 혹하기는 했으나, 그래봤자 성능적으로는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걸 깨닫는 건 금방이었다. 내가 착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완성도가 거기서 거기다. 게임을 시작하고 한 시간가량이 흐른 시점. 피차 별다른 정보 없이 게임을 시작한 처지에, 유별나게 빠른 발전 속도를 보이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나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필요하지 않을지. 나는 넘치는 고기를 씹어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떨어져가던 식량을 보충했으니까.

첫 킬은 의외로 간단했다.

기습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지 털썩 주저앉은 상대의 머리를 조준하고, 돌멩이 하나를 투척하는 것. 그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돌멩이의 궤적을 눈대중으로 가늠할 수 있으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허술한 투석구의 보조를 받은 돌은 세차게 날아서 목표 지점을 강타했다. 딱, 하고 머리 깨지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멀리서도 느껴지는 타격감에 그 순간 킬을 확신했을 정도였다.

내가 기대했던 대로, 이 게임은 일격 일격이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꽤나 사실적인 게임이었던 모양이다. 머리를 가격한 돌멩이가 치명적으로 작용했는지, 비틀거리던 사냥감은 내가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바둥거리고 있었다. 돌을 맞고 떨어진 새가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것처럼. 반박할 수 없는 치명타였다.

인사를 건넨 건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그래도 이 게임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플레이어인데 그냥 보내기는 아쉽다는 생각. 다른 한편으로는 인게임 보이스가 가까운 곳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관찰하던 거리에선 두 사람이 대화하는 내용이 조금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반대로 기회를 잡기 위해 조금씩 가까워졌을 때는, 방송 멘트를 치며 혼자 중얼대는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목소리가 커지는 그 현장감이란. 꽤나 몰입도를 높여주는 괜찮은 시스템이었다.

어떤 설정을 사용하는지, 죽기 직전 소리를 내지르던 누군가의 목소리는 제법 선명하고 우렁찼다. 직접 옆에서 떠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정도면 따로 음성 채널을 활용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내가 그걸 활용할 일은 많지 않겠지만.

먼저 떠난 사람의 소원을 대신 들어주고자 모닥불을 마저 피웠다. 다른 플레이어가 제작하던 아이템도 이어서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도 지금 처음 알았다. 목탄이라. 맥락을 살펴보면 목탄이 필요한 이유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소재 가공을 위함이겠지. 그럼 붙어 있던 두 사람이 따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설명할 수 있었다. 효율적인 분업을 위함이다.

가공에 필요한 정성을 생각하면, 새로운 소재는 아마 다음 단계로 분류할 수 있는 재료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게임에서 한 등급 높은 장비가 얼마나 높은 밸류를 가지던가. 어쩌면 쉽게 뛰어넘기 힘든 간극이 존재할 수도 있었다. 연료가 공급되는 건 막았으나, 반대쪽에서 다른 방법으로 재료를 구했을지도 모르는 일. 지금은 서두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나무에 붙은 불은 활활 잘도 피어올랐다. 나는 캠프에서 기다리고 있을 사냥감이 이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걸 보고 안도하고 있기를 바랐다. 아무런 변칙도 없이, 목탄은 예정대로 준비되고 있다고. 아무튼 연락도 못하는 지금 나무 타는 연기가 봉화를 대신하는 것이 아닌가. 불길 사이로 떨어진 아이템들을 하나씩 던져 넣었다.

문득 피어오르는 호기심에 사체를 불 쪽으로 툭툭 밀어 넣었다. 힘없이 밀쳐진 사체는, 멀쩡한듯싶다가 어느 순간 불길에 잠식되듯 먹혀가기 시작했다. 기분 탓인지 연기가 한층 더 짙어진 것 같았다. 시체의 발끝까지, 전신을 모두 불꽃이 집어삼켰음을 눈치챘을 때. 나는 화장을 끝마치고 고개를 돌렸다.

"다음으로 갈까요? 캠프 쪽으로."

아직 한 사람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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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늦으시지."

늘 그렇듯, 방송을 키고 지껄이는 혼잣말은 보다 많은 사람이 듣기를 바라며 내뱉는 소리였다.

이십 분... 아니. 체감상으로 그 배는 넘는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부족한 재료까지 보충하며 가마를 완성한 퍼브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유당을 기다리고 있었다.

퍼브는 몇 분 전엔가 숲 저편에서 올라오던 연기를 생각했다. 높은 나무를 힘겹게 제거해서 주변이 트인 캠프에서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시커먼 연기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꽤 늦기는 했지만, 결국 괜찮은 지점을 찾아서 성공적으로 목탄을 만들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벌써 몇 분 전의 일이다. 유당은 아직도 도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복잡한 숲의 구조가 시간을 지체시키고 있는 걸까. 당초 그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기다림이 배는 더 길어졌다. 베이스캠프가 게이트 근처에 있다는 걸 고려하면, 목탄을 만들고 나서 캠프로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는 가정도 근거가 부족했다. 설령 길을 잃었다고 한들 나침반을 활용하면 금방 돌아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닌가. 유당도 바보가 아니면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가능성이 높은 건 늑대 무리의 습격이었다. 캠프로 돌아오는 길, 느닷없이 늑대의 습격을 받았다던가. 그건 꽤나 위협적인 일이었다. 운이 나쁜 경우 꼼짝없이 늑대 무리에게 포위당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한 번 포위 당한 이상 포위망을 빠져나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더 코어의 야생 환경은 가죽이나 목재 소재의 허접한 장비를 두른 상태로는 극복하기 힘들었으므로.

마중을 나가야겠다고 판단한 퍼브가 습관적으로 채팅창을 훑어내릴 때였다.

[유당 노르드한테 뒤졌음ㅋㅋ]

[노르드 온다]

[퍼브님 도망쳐야돼요;;]

[ㅂㅂ]

평소와 달리 어수선한 채팅창을 보고, 당황한 퍼브가 제자리에 멈춰 섰을 때.

"안녕하세요."

"으악­!"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브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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