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1화 〉 231 ­ 하기 싫은 걸 할 때면 생각나지 (231/243)

〈 231화 〉 231 ­ 하기 싫은 걸 할 때면 생각나지

* * *

"뭐야. 도네 소리 껐어요? 내 쪽에선 후원 목록 안 보이는데."

"어그로 많아서 진작 잘랐어. 신경 쓰지 말고 게임이나 골라. 정산은 제대로 해 줄 테니까."

"누가 정산 때문에 이러는 줄 아나... 그냥 방금 도네 뭐라 했는지 궁금해서 그러죠. 뭐 게임 정보라도 던져주는 거일 수도 있잖아."

"... 대신 읽어줘? 노르드님, 남스랑 단둘이 합방이라니 남자친구가 이 방송을 보면 대체­"

"미안."

나는 더 입을 여는 대신 짧은 사과의 한마디로 성현의 입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바로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선명한 목소리가 저런 개소리를 읊조리는 건, 어중간한 TTS 소리 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어디에 효과적이냐면 내 멘탈에 피해를 입히는 정도가 효과적이라고.

옆에 앉은 내 동료는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의 고충을 이해하는지, 더 조롱을 이어가지 않고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성현이 애써 스킵한 후원을 억지로 끄집어 내려고 시도한 게 잘못이었다. 이 인간이 도네를 스킵했다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놈의 호기심이 대체 뭐라고. 나는 차라리 혼잡한 채팅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나친 호기심은 위험한 감이 있었다. 굳이 알 필요 없는 정보까지 얻어 가며 정신력 수치를 깎아먹는 건, 배드 엔딩으로 직행하는 지름길이 되고는 했으니까.

얼굴을 오픈한 이유로 방송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묘한 지점에서 선을 타는 채팅이나 도네이션이 늘어났다는 것. 거기에 메일은 굳이 포함시키지 않겠다. 일대일 소통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메일을 통해 역겨운 소리를 떠들어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빈도가 늘어난 정도야 시청자가 그만큼 증가했다는 걸로 설명할 수 있겠지. 나는 내 방송에만 유별난 시청자가 많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그 미묘한 지점이 뭐냐 묻는다면, 그거야말로 설명하기 힘든 애매한 요소였다. 굳이 설명하자면 사적인 일에 호기심을 갖거나 캐묻는 것과 비슷할까. 노르드의 방송에서 노르드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혜진에 대해 호기심을 품기 시작하는... 뭉뚱그려 설명하면 침범하지 않아도 될 영역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는 짓이다. 예컨대 무식이와 같은 친구들이 많아졌다고 해야 할까.

유명해질수록 쏟아지는 관심이 사생활까지 파고들 수 있다는 건 여러 사례로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내가 될 거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소위 유사 연애 감정의 대상이 될 거라고도 전혀 상상 못 했지. 세상은 넓고 병신은 많다지만, 그걸 직접 체감할 수 있냐 없냐는 삶의 질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고는 했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건 다들 알고 있지 않나. 그 사람들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그게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시청자가 많아질수록 어쩔 수 없이 느끼는 현실이다. 전체 파이가 늘어나면 이상한 사람도 늘어날 수밖에 없겠지. 짧은 문장에 꾹꾹 눌러 담는 감정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들기 싫었다. 앞서 말했다. 심연을 파헤치는 일은 삼가는 편이 좋다고.

뚜렷한 의도가 담긴 후원을 보고 무던히 넘어가는 것도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다. 여기서는 감정 소모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었다. 한두 개를 넘길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것들이, 층층이 쌓이다 보면 제법 멘탈을 건드리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지금이 그랬다. 평소처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헛소리가 역겹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걸 보고 있으면... 저게 어떻게든 나를 자극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병먹금이 답인 건 나도 알고 있다. 무시도 기술이고 능력이라는 게 문제일 뿐이지. 지금도, 몸에 달라붙는 부드러운 드레스며 스타킹이며 하는 것들을 무시하지 못하고 움찔거리고 있지 않나. 그런 걸 그냥 넘겨버리기엔 내가 너무 예민했다.

"차라리 공포 게임이 낫다 싶네요."

"4강까지 오니까 너도 체념을 하는구나."

"아니... 무서운 건 별 차이가 없다 싶어서요."

"뭔 소리야?"

대답을 하지 않고 성현이 보고 있는 우측 모니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공포 게임 이상형 월드컵. 이렇게 이상형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월드컵이 또 있을지 의문이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반쯤 강제로 시작된 월드컵은, 제법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이제 거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4강. 나는 모니터를 양분하는 두 괴물을 해탈한 심정으로 마주했다.

여기서 굳이 내가 공포 게임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고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애초에 저런 마니악한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 않은가. 예컨대 입술이 아프고 위장이 쓰릴 정도로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피학증 소유의 매운맛 애호가들이나, 사람이나 동물의 사지가 잘리거나 내장이 쏟아지는 걸 보고 짜릿함을 느끼는 고어물 취향의 변태들 정도가 공포 게임 마니아와 비교할 만했다. 나는 그 정도로 딥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면 선호하지 않는 측에 가깝지.

그러니까, 어지간한 게임은 모두 섭렵했던 과거에도 나는 공포 게임에 대해선 문외한에 가까웠다는 말이다. 말했잖나. 나는 사서 고통받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정말 유명한 게임들이야 어디선가 들어봤지만, 플레이한 경험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당연히 지금은 더 심했다. 방송에서 할만한 게임을 찾을 때도 공포 게임은 철저히 배제하고 골랐으니, 무슨 정보가 있을 리가 없다. 월드컵을 진행하는 내내 나는 내 공포 게임 지식이 백지상태에 가깝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을 뿐 어떤 게임이 더 플레이하기 적합할지는 전혀 따지고들 수 없었다. 방송을 진행하는데 하나하나 위키를 뒤져가면서 알아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시청자들이 던져주는 정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지뢰가 더 많았다. 어떻게든 더 무섭고 어려운 게임을 시키려는 속셈이 훤히 드러나는데 내가 누구를 어떻게 믿으라는 건지.

결국 선택이 계속되는 내내, 나는 거의 포기한 상태로 랜덤 룰렛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반면 성현은 이런 게임에 익숙한지 대수롭지 않게 게임을 골라냈다. 중간중간 이미 클리어한 게임이라고 넘긴 항목까지 있는 걸 보면, 이 인간은 앞서 설명한 변태적 기질을 가진 소수에 속하는 게 분명했다. 어쩐지 본인 손으로 공포 게임을 고른 것부터 수상하더니만.

"자, 이제 진짜야. 어떤 거 할래? 니가 골라."

"플탐 짧은 걸로."

"너 아까부터 똑같은 소리만 반복하고 있거든."

"방송을 생각해서 하는 소리예요. 이런 거 길어봤자 루즈하기만 하다고."

"시청자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텐데."

그거야말로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지금은 나 살기도 바쁜데.

안 좋은 의미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게임 중, 내가 고른 건 오른쪽에 있는 게임이었다. 환각(hallucination). 흐릿한 불빛 사이로 이상한 형체가 아른거리는 타이틀이 음산하긴 했으되, 기괴하게 생긴 괴물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다른 선택지와 비교하면 아무리 봐도 이쪽이 선녀다 싶었다. 제목을 봐도 뭔가 무난 무난한 느낌이 맴돌지 않나. 지금껏 내가 게임을 선택할 때 사용한 근거들은 모두 이따위 추측들뿐이었다.

제 딴에는 신중한 결정을 마치고 결과를 확인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게임을 일 순위로 꼽았는지 하는 결과가 튀어나왔다. 의식의 흐름대로 목록을 훑던 나는 생각보다 너무 이른 타이밍에 시선을 고정해야 했다.

3등. 내 손으로 선택한 우승 게임의 순위였다. 공포 게임 월드컵의 순위가 게임이 무서운 정도를 나타낼 거라는 합리적인 추측을 대입했을 때, 3등이라는 순위는... 음.

나는 성현을 바라보고 말했다.

"다시 할까요? 클릭을 잘못했네."

"번복은 인방에서도 금기야."

나는 그런 규칙 처음 듣는데. 중범죄가 아니면 어떻게든 세탁해서 복귀하는 게 이 바닥의 생리가 아니었나.

내 입으로 그런 말을 지껄이는 것도 창피한 일이라,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

"이거 사기잖아요. 이렇게 될 줄 알고 투표는 하지 말라고 했던 건데. 그냥 가위바위보로 하자니까."

"스트리머면 당연히 시청자들 의견을 포용할 줄 알아야지. 다들 이쪽을 원했어."

"투표는 사실 쓰레기 같은 시스템이 아닐까요? 잘못된 결과만 만들어내고 있잖아."

"이상한 풍자하지 말고 마우스나 잡으세요, 노르드님."

단호한 목소리가 말을 마치면, 축소된 캠 화면 속 가운데에 자리한 혜진이 입을 삐죽이곤 팔을 움직였다.

불을 껐는지 한층 어두워진 방 안. 모니터와 방송 조명에서 흘러나오는 빛 때문인지 혜진의 모습은 이전보다 더 뚜렷했다. 드레스 색깔과 흡사한 붉은 입술이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번들거렸다.

혜진과 성현이 담긴 캠 화면의 밝기가 이전보다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아무런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되려 기대감에 찬 듯 속도를 더한 채팅창은 들떴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캠보다 어두운 캄캄한 화면. 일그러진 폰트로 적힌 '환각'이라는 타이틀과, 낮게 깔리는 음산한 배경음이 지켜보는 이의 기대감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 탓이다.

창백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는 혜진의 얼굴은 강렬한 조미료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저 무서워요."

"......"

"말 안 할 거면 후원 소리라도 키면 안 돼요? 나 무서운데."

"­아니, 솔직하게 무섭다고 하니까 너무 어색하잖아. 너무 안 어울려."

"나 이런 게임 못 해."

검은 타이틀 화면. 마우스 포인터는 게임 시작 버튼에서 머무르지 못하고 이곳저곳에서 방황했다. 뭔가 불만이 가득한 듯 비뚤어진 자세로 앉은 혜진은, 비어있는 왼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단정히 정돈된 머리가 산발이 되었다가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거 별로 안 무서워. 그리고 내가 뒤에서 봐준다니까?"

"지금 돈가스 먹자고 꼬시는 엄마 같아요. 진짜 목적은 포경이면서."

"... 꼭 그런 비유 써야겠어?"

"벌써 어지러워. 3D 울렁증 나."

"나이트폴하는 새끼가 무슨..."

주고받는 대화조차 정신이 없었다.

메인 화면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혜진은, 어느 순간 마음을 먹었는지 갑작스레 게임 시작을 클릭했다. 짧은 순간 회백색 글자가 검은 화면에 번져나갔다. 어느새 자취를 감춘 배경음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진첩을 보고 있으면, 게임 시작에 앞서 스토리의 개요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혜진은 여전히 삐뚜름한 자세로 앉은 채 마우스를 연타했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스토리 개요는 눈 깜짝할 사이에 스쳐 지나갔다.

"얼씨구. 스피드런하냐?"

"공포 게임 스토리를 봐줄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아요."

성현은 더 대꾸하는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로딩을 의미하는 호롱 불이 사라지고, 눈을 뜨는 연출과 함께 시작된 게임은 여전히 어두웠다. 광원이 부족한 실내. 유달리 좁은 일인칭 시야는 좁지 않은 공간에 있음에도 폐쇄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제서야 상반신을 일으켜 키보드 쪽으로 손을 가져다 댄 혜진은, 좌우로 걷거나 앉는 등의 기본적인 조작을 반복하다 자리에 멈춰 섰다. 나무판자를 짓밟는 발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여러 조작을 반복하던 혜진이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기능이 있다는 걸 깨달았을 무렵, 그녀는 의자에 쓰러지듯 등을 기대고는 고개를 떨궜다. 힘 빠진 한숨 소리가 성현의 귓가에 닿았다.

"아, 담배 마렵다."

자지러지는 채팅창을 보고도, 성현은 그냥 가만히 있기로 결정했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