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화 〉 232 지켜준다고 나서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 * *
칼고의 방송 카테고리가 공포 게임 제목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었다.
나이트폴을 주력으로 하되, 성현은 종합 게임 스트리머에 가까웠다. 그것도 겜잘스라는 타이틀을 항상 동반하고 다니기로 유명한 스트리머. 나이트폴과 관련된 큰 대회에 참가한 다음이나 긴 경쟁전 시즌이 끝나갈 무렵, 여유를 두고 시작하는 칼고의 종합 게임 방송에선 늘 공포 게임이 한두 개씩 플레이 리스트에 포함되고는 했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은 것도 아니다. 어지간해선 스스로의 손으로 게임을 선택했으니까.
칼고의 공포 게임 방송은 다른 스트리머들의 그것과는 성격을 달리했다. 성현은 겁을 먹고 위축되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괴물이나 귀신 따위가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 화들짝 놀라는 리액션으로 웃음을 선사하는 방송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뜻이다.
태생적으로 공포에 면역이 있기라도 한 건지. 얼마나 겁이 없었으면, 무섭기로 소문난 공포 게임의 컷신을 볼 때에도 연출 따위를 일일이 언급하며 감탄사를 토해냈을 정도였다. 그 장면을 담은 영상은 클립의 형태로 저장되어 이곳저곳에 돌아다녔다. 칼고의 겜잘스 이미지가 더 굳건해지기까지, 그 클립도 얼마간 공헌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장르와 어울리지 않게 평온한 분위기로 진행되는 칼고의 공포 게임은 일종의 공략 방송에 가까웠다. 게임 내의 기믹이나 퍼즐을 침착하게 풀어헤치는 잔잔한 공략 방송. 그게 차별점으로 작용했는지 공포 게임 플레이 영상은 다른 종합 게임과 비교했을 때 조회수가 상당히 잘 나오는 편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게임 볼륨이 크지 않다는 장르의 특성상, 극적인 재미는 없더라도 짧고 간결하게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컨텐츠이기도 했으니. 성현이 매번 종합 게임 목록에 공포 게임을 끼워 넣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합방 소재로 대수롭지 않게 공포 게임을 선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어떤 게임이 선택되든 적절한 시간 내에 클리어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공포 게임의 플레이 타임이라고 해봤자, 한두 시간. 길어야 세 시간 정도일까. 짧은 플레이 타임으로 그만큼의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컨텐츠도 드문 것이다.
코스프레를 공개한 다음, 공포 게임으로 분위기를 달구고 먹방을 하면서 방종 각을 잡는. 성현이 계획한 방송 스케줄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제법 깔끔했다.
물론, 그 사이에 혜진이 공포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사적인 흑심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혹시나 혜진이 공포 게임을 플레이할 때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 평소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 기대하기 힘든 장면이었으나, 아무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샘솟는 장면이지 않은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골려대던 혜진이 마우스를 쥐고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없던 가학성도 어딘가에서 당당히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부디 한 번쯤은 꼭 보고 싶은 광경이었는데.
...그게 진짜 가능할 줄은 몰랐지.
게임 모니터 앞에 자리한 혜진에게서 살짝 떨어져 앉은 성현에게,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그 자체로 자극적이었다.
형광등을 꺼버려서 어둑한 실내. 어두컴컴한 게임 모니터와 채팅창을 송출하고 있는 밝은 방송 모니터가 극명히 대비된다. 순간순간 새로운 페이지를 갱신하는 채팅창은 하얀색 배경으로 조명의 역할을 수행해, 창백한 혜진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조명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성현은 어둠에 파묻혀 반쯤 가려진 상태. 지금 방송의 주역은 명백히 혜진이었다.
측면에서 빛을 받은 혜진의 얼굴에 묘한 음영이 내려앉았다. 하얀색 피부를 배경으로 짙게 칠한 눈 화장이 돋보인다. 모니터에 얼굴이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붉은색 컬러 렌즈가 이제야 존재감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이질적인 눈동자 색과 흡사한 붉은빛 입술이 혜진의 인상을 퇴폐적으로 만들었다.
시선을 잡아끄는 외모에 빠져들어가듯 얼굴을 주시하고 있으면, 그걸로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적지 않았다. 평소처럼 무표정을 고수하고 있는 혜진의 눈꺼풀이 간혹 파르르 떨린다거나, 앙다문 채로 유지되고 있는 입술은 이미 몇 번인가 하얀 치아에 짓눌린 경험이 있다거나 하는 사실. 위기 상황이 끝나고 음산하게 깔리던 배경음이 사라질 때마다 한숨을 내뱉은 혜진이 손을 뻗어 머리를 헝클어뜨린다는 사실.
가까이에 앉은 성현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한술 더 떠 키보드에 올라간 그녀의 손이 묘하게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성현은 굳이 자신만 아는 그 사실을 입 밖으로 펼쳐놓지 않았다. 자신만 알고 있는 사실에 이상한 뿌듯함을 느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귀중한 정보를 좋다고 떠들어대지 않아도, 시청자들은 이미 신나서 축제를 벌이고 있는 판이었으니까. 굳이 여기서 분위기를 띄우겠다고 열기를 더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오히려 말려야 할 때에 가까웠다.
"... 괜찮냐?"
"......"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어둑한 게임 화면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시야 가장자리에 희끄무레한 형체가 나타나기라도 할 때면, 즉각 반응해서 캐비닛이나 침대 밑 따위의 은신처로 달려드는 모습. 이 광경만 벌써 십 분이 넘게 반복되고 있는 판국이다. 혜진은 무언가 접근하고 있다는 걸 암시하는 소름 끼치는 배경음이 사라진 다음에야 밖으로 나와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어 번 정도 귀신을 목격한 다음부터는 계속 이 엄중한 사주경계 체제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상형 월드컵을 통해 결정한 '환각'이라는 게임.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플레이어에게 다가오는 괴물의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괴물은 게임의 제목과 같이 마치 환각과 같은 형상으로 아른거렸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대응하지 못하면 그제서야 플레이어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형태였다. 액션 게임처럼 총이나 칼 따위의 무기를 들고 괴물과 대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플레이어는 괴물의 기척이 나타날 때마다 재빨리 도주해야 했다. 실패하면 곧장 게임 오버로 직행하게 되고.
혜진이 당한 첫 번째 게임 오버가 정확한 예시였다. 어둑한 화면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주인공이 딸깍하고 라이터를 켠다. 갑작스럽게 불꽃이 피어난 화면이 환하게 밝아지면, 온몸이 난도질당한 것 같이 상흔이 가득한 형체가 눈앞에 불쑥 튀어나와 플레이어를 덮치는. 플레이어를 놀램과 동시에 끔찍한 비주얼로 두려움까지 더하는 연출. 그건... 성현이 생각하기에도 꽤나 임팩트 있는 장면이었다.
공들인 보람이 있는 연출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겠다. 아무튼 성현은 이 장면을 통해 혜진이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난생처음으로 목격할 수 있었으니까. 방송과 사적인 만남을 통틀어서.
봉변을 당한 혜진이 이전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데도, 게임 진행이 막혀 방송이 지루해지는 일은 없었다.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숨을 곳을 찾는 무빙이 시간을 지체시키기는 했으되, 혜진이 한 곳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스토리 진행을 위해 아이템을 획득하거나 길을 찾아내는 일은 성현이 보기에도 흠잡을 데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상할 만큼 빠른 위기 대처 때문에 공포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임 오버도 더 이상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 공포 게임 플레이 경력은 거의 없어 보였는데, 역시 기본적인 게임 지능이 월등한 건 확실했다.
누가 봐도 잔뜩 위축된 상태임에도, 플레이에서 답답함이 묻어 나오지는 않는다. 시청자들이 공포 게임 방송을 시청하기에는 이보다 더 적합한 경우가 없었다. 여기에 리액션하는 사람의 외모가 시선을 잡아 끌 정도로 뛰어나다면 딱 화룡점정이겠지. 애초에 많은 시청자와 함께 시작된 방송이 시간이 갈수록 더 불어나기만 하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성현은 자신의 방송 경력 최대 시청자 수를 진작 넘어선 현황판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성현이 걱정하는 문제가 있다면, 공포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혜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연약하게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접근하기 힘들었던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철벽이라도 세운 듯 굳건했던 얼굴이나 차가운 분위기는 다 어디로 갔는지. 겁먹었다는 게 눈에 보이는 위축된 몸이나, 무슨 정보를 주지 않을까 하고 채팅창을 흘끗 거리는 모습을 보면 완전히 방비가 풀어졌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지금 혜진은 어떤 상황도 무던히 넘기는 노르드 같지 않았다. 사람의 보호본능을 절로 이끌어내는,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라니. 이게 노르드일 리가.
예컨대, 최근 안 그래도 성화를 치는 악성 무리들을 쓸데없이 자극할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성현의 후회가 한층 더 깊어졌다. 안 그래도 무의식중에 육수를 끓여대고 있는 인간인데, 이런 구실을 던져주면... 얼마 안가 정말 스토커 피해 사례 따위로 뉴스에 등판하는 게 아닌지. 스스로의 손으로 스토커 양성에 불씨를 더했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죄책감이 피어날 지경이었다.
심지어 혜진은 지금 원룸에 자취를 하면서 살고 있었다. 보호자도 없이 홀로. 심지어 얘는 위기감도 별로 없었고. 자기가 본인 생각보다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됐다는 자각도 없는 것 같던데. 하필이면 이 인간은 술까지 좋아하잖아. 성현은 이미 혜진의 메시지를 보고 음주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지경에 다다랐다. 애초에 음주 빈도가 너무 잦은 탓에 익숙해 질수밖에 없던 것이다.
탁.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고뇌하던 성현이 돌연 손을 뻗었다. 혜진을 스쳐 지나간 손가락이 도달한 곳은 키보드 좌측의 Esc 자판이었다. 기계식 키보드 특유의 타격음이 울림과 동시에, 컴컴한 우측 모니터 위로 게임 메뉴가 나타났다. 한창 게임 화면에 집중하고 있던 혜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현을 쳐다봤다.
"왜... 왜요. 집중하고 있었는데."
몇 번인가 내지른 비명 때문인지 혜진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있었다.
"바통 받는다고. 채팅창 보니까 이제 절반 정도 한 거 같아서. 그래도 내 벌칙인데 너만 계속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미리 생각한 것도 아니었으나, 그간의 방송 경력이 힘을 발휘한 건지 말은 술술 나왔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됐는지 멀뚱히 그를 쳐다보는 혜진의 얼굴 옆으로, 발작을 하듯 불퉁한 말을 밀어 올리는 채팅창이 눈에 들어왔다.
[??? 한창 재밌었는데]
[칼고ㄲㅈ]
[나]
[아 칼고 넌씨눈 ㅡㅡ]
[노르드 더 보여줘]
[칼고님 스윗하시넹ㅋㅋㅋㅋㅋ]
[락]
[칼고도 버팔로였노]
[두분 거리좀 벌려주세요^^ 너무 가깝네요]
[직관하는 칼고 너무 부럽네...]
수만 명의 시청자가 던져대는 돌덩이가 꽤나 따가웠으되.
성현의 말을 이해하고선 활짝 미소 짓는 혜진의 얼굴은... 그 정도의 비난은 몇 번이고 감수할만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혜진과 자리를 바꿔 앉은 성현은, 자신도 이미 물소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