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화 〉 234 숫자만큼 확실한 것도 없더라
* * *
본디 인터넷 방송의 시청자란 굴러가는 눈덩이와 같아서, 몸집이 크면 클수록 더 쉽게 비대해지고는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카테고리로 구분된다고는 하나, 플랫폼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시청자는 사람이 많은 순으로 나열되는 방송 목록을 보고 볼만한 방송을 고르는 일이 잦았다. 설령 전혀 관심이 없는 방송 카테고리를 달고 있다고 하더라도,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의 수가 몇만 명을 상회한다면 한 번쯤 시선이 향하는 것도 당연했다. 대체 이 방송은 뭐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보고 있나 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호기심. 예컨대 줄이 길게 나열된 식당에 사람이 몰리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불러 모으는 건 인터넷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날 생방송 목록에 어떤 방송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지. 인터넷 방송계의 트렌드란 하루가 다르게 바뀌기 마련이라, 관련 커뮤니티가 형성될 정도로 커다란 플랫폼에선 하루하루의 시청자 순위에 따라 많은 말들이 오고 가고는 했다. 익숙한 스트리머의 이름이 상위권에 올라오면 시답잖은 찬사를 보내고, 간혹 보기 드문 스트리머의 이름이 상단부로 올라오면 다 함께 저게 누구냐며 의문을 토해내는. 실시간 시청자 수란 그 자체로 그날의 가장 주요한 화젯거리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까, 금일 저스틴 최대의 이슈는 칼고와 노르드의 벌칙 합방이었다. 굳이 온통 칼고와 노르드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된 커뮤니티 상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2등과 배는 차이 나는 압도적인 시청자 숫자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으니.
스트리머 둘의 벌칙 방송 따위가 대규모 이벤트 방송과 비슷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기어코 술을 마시겠다?"
"맥주는 콜라 대용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대체 누가 그러는데."
"자꾸 잔소리하지 마세요. 사실 땡기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그 옷 입고 제정신으로 있는 것도 고역일 거 같은데."
"그건... 아오. 나도 모르겠다, 이제."
방송용 카메라의 정면. 길게 늘어지는 옷자락을 몇 차례 여민 성현이 방구석으로 밀어둔 테이블을 앞으로 당겨왔다. 그동안 잠깐 옆으로 빗겨 섰던 혜진은, 테이블이 카메라 중앙에 자리하는 즉시 양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가감없이 송출됐다.
뒤따라 캔 따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럼 맥주잔 꺼내 야, 그거 입대고 마시지 마. 캔 주둥이에 더러운 게 얼마나 묻어있을 줄 알고... 잔 준다니까 그새를 못 참아?"
"크으. 설거지 귀찮게 잔은 무슨. 조금 더러운 정도로 사람 안 죽어요. 그냥 앉아. 음식 식잖아요."
"식어봤자 얼마나 식는다고. 기다리고 있어, 잔 가지고 올 테니까."
"예이."
화사한 꽃무늬를 이리저리 흩날리던 성현이 금세 카메라 밖으로 모습을 감췄다. 탁, 하고 문 닫는 소리가 들린 다음. 비닐봉지에 손을 넣고 하나씩 내용물을 꺼내 정리하던 혜진은, 나무젓가락을 하나 집어 들고서 의자에 앉았다. 주고받는 말소리가 사라진 방 안이 한순간에 적막에 잠겼다.
종이 포장을 뜯지 않은 젓가락이 테이블 모서리를 두어 번 두드린다. 곧이어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본 혜진의 시선이 뭔가를 찾는 듯 방황했다. 한동안 방황하던 시선이 멈춰 선 곳은 정면 카메라와 조금 어긋난 측면이었다. 무엇을 주시하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린 혜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시청자가 왜 이렇게 많아."
채팅창을 한껏 채운 문자뿐인 대답은 당연히도 들리지 않았다. 채팅창을 확인하는 듯 시선을 유지하던 혜진은 이내 맥주 캔을 집어 들고는 안에 담긴 내용물을 홀짝거리기 시작했다. 뾰로통한 표정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혜진은 눈썹을 간지럽히는 앞머리가 계속 신경 쓰이는지 캔을 잡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연달아 머리를 쓸어넘겼다. 공포 게임의 여파로 한껏 헝클어진 윗머리는, 머리를 쓸어넘기는 가벼운 동작으로는 정상적인 컨디션을 되찾지 못할 듯싶었다.
"아. 궁금한 게 있었는데 제가 코스프레한 이 캐릭터, 역할이 뭐예요? 보니까 이게 디폴트 복장이던데. 뭔데 옷을 이렇게 입고 다녀."
헐렁한 카디건은 팔을 들어 올리는 가벼운 동작에도 조금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질문을 던진 혜진은 답변을 확인하기 위함인지 상체를 테이블 쪽으로 좀 더 기울였다. 양쪽 팔꿈치로 상체를 지탱하고 유심히 채팅창을 바라보는 자세. 카디건이 반쯤 흘러내려간 탓에 왼쪽 어깨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하얀 살결이 유난히 반질거렸다.
"도구, 마법사, 처음에 적이었다가 나중에 조력자로... 뭐 한다고. 너무 빨라서 읽을 수가 없네. 오우야 좀 그만 쳐 봐요. 섹파? 이거 청불 애니예요? 입고 다니는 거 보면 약간 그런 느낌이기는 한데."
채팅창이 잠시 멈춰 섰다. 바로 다음 순간 다급하게 활동을 재개한 채팅창은 핑이라도 튄 것처럼 단기간에 무수히 많은 채팅을 쏟아내며 버벅거리기를 반복했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혜진은, 의자 등받이에 천천히 몸을 기대고는 걸쳐 입은 카디건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성현이 돌아오기까지 몇 분가량. 혜진의 앙다문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잔 찾는 김에 마른안주 있는 것 좀 가져왔 뭐야. 왜 그러고 앉아있어."
"누가 방송 보고 있다는 걸 자꾸 까먹어서. 이것도 치매의 일종인가 싶네요."
"...... 뭔 소리야?"
테이블 위에 접시을 내려둔 성현이 뒤늦게 채팅창을 확인했다.
짧은 사이 조금이나마 진정된 채팅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난잡하기 그지없었다. 좀처럼 맥락을 파악하기 힘든 혼돈 속에서도 성현은 어떻게든 채팅창이 혼탁해진 원인이 무엇인지를 읽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기나긴 방송 경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현은 대충 흘러가는 분위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 하기야, 여기 누가 더 있다고 채팅창이 저렇게 지랄이 났을까. 모니터를 바라보던 시선이 금세 타깃을 바꿔 혜진에게로 향했다.
"그새 사고 쳤냐?"
"무슨 사고를 쳐요.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그럼 채팅창 왜 저래."
"본인 방송 채팅창을 왜 나한테 따지시나."
잔까지 가져다줬는데도 캔이나 홀짝이는 모습이 참... 약이 올라야 할 텐데. 그놈의 얼굴이 대체 무슨 힘을 가지고 있는 건지. 성현은 약이 오르기는커녕 채팅창과 동조하려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성현은 추궁을 이어나가지 않고 맥주 캔을 집어 들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탄산을 토해내는 소리가 더없이 시원하게 다가왔다. 투명한 유리잔을 천천히 채워나가는 노란빛 액체를 보고 있으면, 난리가 난 채팅창이나 이게 맞나 싶은 시청자 수 같은 건 머릿속에서 어렵지 않게 밀어낼 수 있었다.
배달시킨 음식은 쳐다도 보지 않고 맥주부터 홀짝거리기 시작한 혜진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귀찮고 복잡한 건 전부 외면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닐지. 그건 성현도 공감할 수 있는바였다. 일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지는 걸 누가 좋아하겠나. 그걸 수습하기 위해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알 수 없는 판국에. 그게 자신이 초래한 결과라는 걸 생각하면... 마음은 한층 더 복잡했다.
성현은 잔에 가득 찬 맥주를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치킨이 줄지를 않아. 이 정도면 나만 먹고 있는 거 아니냐?"
"먹고 있어요. 맥주 때문에 배불러서 천천히 먹는 거야."
"너 저번에도 비슷한 말 했잖아. 그때도 결국에 음식 거의 다 남겼던 것 같은데 진짜 그러다 속 버린다."
"억지로 먹는 게 더 속 버린다니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여러 요소가 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성현과 혜진의 술자리는 평소와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각자가 생각하는 진상이야 어떻든, 겉으로 보기에는 흡사한 그림이었다. 안주를 깨작이고는 주야장천 술만 넘기는 혜진에게 잔소리를 쏟아내는 모습이나 그 잔소리를 어물쩍거리며 넘겨버리는 혜진의 모습이나. 몇 번인가 반복된 술자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흐름이다.
혜진과의 술자리는 늘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성의 앞이라는 건 전혀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혜진을 상대하고 있노라면, 성현도 자연스럽게 거기에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음식이나 술에 집중하는진정한 의미의 술자리라고 설명하면 맞을까. 당초 예상했던 형태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이젠 성현도 거기에 적응을 완료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이제 혜진과 술을 마시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는데.
그게 이런 자리에서라면, 불편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치킨에 눈이 안가는 게 개소름이네]
[칼고가 부러워...]
[저번...? 저번에...? ㅁㅇㅁㅇ]
[엄마임?]
[두분 선남선녀시네요~~ 너무 잘어울려^^~~]
[우결충들 채팅못치게 손가락 절단해야됨]
[근데 둘이 생각보다 더 친하구나ㅋㅋ]
[시청자 수 레전드네]
[씨1발 나는 집에서 혼술하고 있는데]
[가디건 좀 벗어주세요 42트째]
맥주 한두 캔을 마셨다고 취할 리 없는 말짱한 정신은, 시시덕거리고 있는 채팅창을 온전히 읽어내렸다.
수만 명이 시청 중인 방송. 신경 쓰이는 복장을 입은 상태. 이런 상황에서 온전히 먹는 데에 집중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치킨이 줄지 않고 있는 건 단순히 혜진의 입이 짧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늘 맛있게 먹던 곳에서 시켰음에도,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치킨이 썩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성현은 내심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와중에도 거추장스러운 소맷자락이 신경을 건드리는 게, 화를 참기 힘들었다.
"씁, 이건 밥 먹을 때도 방해만... 더럽게 불편하네."
"예쁜 건 다 불편한 거죠. 감내하세요."
문득, 성현의 시선이 혜진에게로 향했다.
여전히 뚱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는, 자기 앞접시에 가져다 둔 치킨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장난치듯 굴리고 있는 상태였다. 식욕이 내키지 않는 건 자신과 마찬가지인 건지. 피차 음식물을 넘기는 시간보다 맥주를 마시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눈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강렬했던 첫 조우 이후, 의도적으로 시선이 향하는 걸 피하기 위해 노력한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기 때문일까. 붉은 드레스를 필두로 한 혜진의 코스튬은 여전히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성현은 혜진이 왜 스스로의 모습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과감한 편이기는 했으나, 저 정도의 노출에 자신이 없을 만큼 어딘가가 부족한 것도 아닐 텐데. 혜진은 부족하기는커녕 천상계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외모도, 그리고 몸매도.
제 눈에 콩깍지가 씌인 탓에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닐 터였다. 한낱 벌칙 방송에 이 정도로 많은 시청자가 모여든 것 자체가, 그럴만한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다는 증거이지 않은가. 혜진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성현은 지금 모인 시청자의 숫자가 단순한 거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특출난 외모를 지녀 놓고도 혜진은 자신을 치장하거나 화려하게 차려입는 일이 드물었다. 아니, 드물다 못해 볼 수 없을 지경이지. 희소한 건 희소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치를 부여받기 마련이다. 명품이 과도하게 비싼 이유는, 뛰어난 품질보다 그 희소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 않나. 지금 시청자들이 노르드에게 보내는 시선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차려 입고 꾸민 노르드라니. 이보다 희소한 광경도 보기 힘들겠지.
"... 너는 가끔 이벤트라도 해야 될 거 같은데?"
"이벤트? 뭘요."
"지금 한 코스프레 같은 거. 생방송이든 편집 영상이든 잘 될 수밖에 없잖아."
"뭐가 잘 돼. 무슨 근거로."
"오늘 모인 시청자들을 근거로."
"......"
혜진은 눈썹을 삐뚜름히 하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시선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면 아마 채팅창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함일까. 혜진을 따라 시선을 움직인 성현은, 무서울 정도의 기세로 자신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는 시청자들을 보고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혜진의 성격을 생각하면 반발심만 커질 것 같은 열렬한 반응인데.
"아예 기회를 봐서 누드 화보를 찍어야겠어요. 무보정 실물로다가."
"..."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거친 농담에, 성현은 대답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