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화 〉 237 소문난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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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손도 풀고 소화도 시킬 겸 가볍게 시작한 나이트폴 한 판. 대회 이후로 나이트폴을 잡은 건 오랜만인데도, 나이트폴 특유의 묵직한 조작감은 금방 손에 감겼다.
본격적인 게임 시작을 앞둔 전야. 인게임 채팅창은 벌써부터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내 입장에선 참으로 안타깝게도, 게임 외적인 이유로 인해서.
거북이발목분쇄장인:노르드님 팬이에요
Sekaino9:눈나ㅏㅏㅏㅏ 나죽어ㅓㅓㅓㅓ
퀸박제못하면자살함:뭐야 노르드가 왜 이 구간에 있냐ㅋㅋ
찌찌가무시:지금 방송중임?
보기만 해도 전체 차단이 마렵게 만드는 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라.
대답을 할지 차단을 할지 망설이다가, 그 잠깐 사이 연달아 채팅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기로 결정했다. 현실에서 나를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들에 비하면야 이 정도는 애교로 넘어갈만했다. 사실, 나이트폴의 인 게임 채팅은 매정히 차단하기엔 아까운 맛이 있었다. 이 시간에 열심히 경쟁전을 돌리는 진짜들의 경우는 더욱더 그랬고.
대답을 하지 않고 기다리면, 내가 차단을 했다고 생각하는지 금방 자기들끼리 대화의 꽃을 피워나가기 시작했다. 매칭이 잡힌 구간은 아마 퀸 하위 랭크 정도일까. 한동안 경쟁전에서 손을 뗐으니 내 랭크는 그쯤에서 놀고 있을 터다. 룩보다는 훨씬 실력적으로 우월하면서, 그 위인 킹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애매한 실력자들이 모인 장소. 한때는 나도 꽤 오랫동안 머물렀던 구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유저풀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부족했던 그때는 매칭을 돌릴 때마다 익숙한 닉네임만 무더기로 잡히고는 했었는데... 추잡한 과거인데도 미화를 거친 기억은 마치 추억인 것처럼 자기를 꾸미고 나왔다.
유저 수가 많은 덕인지, 적어도 이 친구들은 그 의도치 않은 친목의 현장을 거듭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글쎄. 밤을 새웠다는 놈들이 태반인 채팅 내용을 보면 수준이 비슷해 보이기는 했지만, 서로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으니까. 나를 주제로 떠들던 대화가 게임으로 흘러가는 걸 보면 오히려 건전함마저 느낄 지경이었다. 그래, 이게 겜창들의 대화지. 내가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없는 뿌듯함을 느끼며 채팅 로그를 읽어내렸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올 때쯤 돼서야, 나는 상반신을 일으키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단축키로 투구를 착용하면 곧장 답답해지는 시야에 오히려 몰입도가 치솟는 건, 나이트폴 유저들의 종특이 아닐는지. 채팅 로그를 축소하고 세팅을 바로 잡았다.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 나누는 구구절절한 채팅이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그만. 막상 게임이 시작하면 경계 구간에 정체된 사람만큼 승리에 절실한 게이머도 없었다. 모두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게임이 가장 재밌다는 내 신조에 따르면, 이 구간이야말로 재밌는 게임을 하기 가장 적합한 구간이었다. 아무튼 랭커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는 인간들이었으니, 즐겜보다는 집중해서 플레이하는 경향이 짙을 수밖에.
이게 무슨 말이냐면... 손을 풀기에 이보다 적합한 상대도 드물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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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나이트폴을 실행한 혜진이 경쟁전에 빠져들고 있을 무렵, 노르드의 팬카페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카페 주인장이 남긴 공지글 하나 때문이다.
카페 회원수를 급증시켰던 벌칙 방송이 끝난 다음날. 시간대는 정오에 가까운 애매한 시간이다. 레전드라 평가받는 방송의 여파는 크고 강렬해서, 늦은 새벽까지 쉬지 않고 떡밥을 굴렸던 카페는 해가 중천에 이를 시간이 되어서야 조금 잠잠해지는 듯싶었다.
지난밤과 새벽에 걸쳐 키보드를 두드렸던 회원도 잠을 자러 떠난 비교적 한적한 카페. 매니저 마크를 달고 있는 이용자가 게시글 하나를 써 올린 건 그 즈음이었다.
전조나 낌새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애초에, 카페 매니저라고 한 명 존재하는 노르드가 지금껏 올린 게시글이라고는 인사의 말이 담긴 게시글 한 개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성의 없게 비칠 수 있는, 아주 짧고 간결한 글. 카페 공지사항이나 방송 계획표 게시판에는 단 하나의 글도 갱신되지 않아서, 이제 막 카페에 가입한 회원들의 입장에서는 매니저의 존재조차 희미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모자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페 배너나 대문, 엉성한 게시판 카테고리 등. 굳이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도 완성되지 않은 티를 사방으로 뿜어대고 있는 카페였다. 노르드라는 이름만 보고 카페에 가입한 회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조잡한 구성.
회원이 크게 늘어났으니 조만간 개선이 들어가리라는 희망을 가지기는 했으나, 그것도 방송이 켜진 다음에야 제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니. 그런 와중에 올라온 카페 매니저의 게시글은 당연히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내용이 갑작스러운 관리자 모집 공고라면 어떨까. 더 나아가 관리자 선정 기준이 카페 매니저와의 일대일 결투라면... 이게 무슨 낚시글이라는 반응이 나올 법도 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그건 카페 매니저가 직접 작성한 진짜 공지였던 터. 관리자 모집 공고는 단순히 주목을 받는 정도를 떠나, 하나의 떡밥으로 승화되어 카페 전체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어찌나 반응이 컸으면 카페를 넘어서 관련 커뮤니티까지도 게시글을 캡처한 파일이 퍼져나갔을 정도였다. 노르드가 글을 작성한지 불과 한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막상 글을 올린 혜진은 별생각 없이 경쟁전을 이어나갈 무렵.
카페 회원수는 다시 비정상적인 속도로 증가해서,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자릿수의 숫자를 밀어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결투 신청이라는 신규 게시판이 도무지 끝나지 않을 기세로 새로운 페이지를 늘려갔던 건, 예정된 수순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불행인지, 다행인지. 술술 풀려가는 게임에 연승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하던 혜진은 한동안 카페 상황에 대해 신경 쓰지도 못하고 열심히 게임에 몰두했다.
그녀가 흘러가던 상황을 눈치챈 건, 파죽지세의 5연승 직후여섯 번째 게임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카페에 들어가 상황을 확인한 건 아니었다. 함께 매칭에 잡힌 플레이어 한 명이, 노르드의 닉네임을 알아보고는 던진 질문 한마디가 혜진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Soloattitude:선생님 근데 카페 관리자 몇명이나 뽑으시나요ㅠ 저도 지원할라했는데 경쟁 너무 빡세보여서...
노르드가 방송을 켜게 만든 한마디 채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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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
[저스틴 1등 여캠 황 르 드]
[릴리스♡릴리스♡릴리스♡릴리스♡릴리스♡]
[결전으로 관리자 선출 무냐고 대체ㅋㅋㅋㅋ]
[급방종 해명해라@@]
[일찍오셨네요]
[지원자 ㅈㄴ많던데 감당 가능?? 퀸으로 제한걸어놨는데 신청자 개많음]
[노르드사랑해]
[오늘은캠방이다...아니다...캠방이다...아니다...캠방이다!캠방이다!캠방이다!캠방이다!캠방이다!캠방이다!캠방이다!캠방이다!캠방이다!]
[경쟁전할거면 제발 방송키고해!!!!!]
[응 캠방 쿨타임이야~ 앞으로 한달동안 제대로 안해~]
최근에는 방송을 시작할 때마다 두통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찾아보면 명확한 원인이 존재하는 두통이었으나, 과연 몸도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대로라면 방송이 두통을 유발하는 거라고 몸이 착각해버릴 가능성도 있을 텐데. 나중에 가면 학습된 공포마냥 방송을 켜기만 해도 두통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무런 원인도 조건도 없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없는걸 보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확실했다. 제발 조심 좀 하라는 혜민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아. 들리죠? 카페 신청 게시판은 방금 닫았습니다. 그... 이미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러니까 장난삼아 쓰신 분들은 지금 게시글 삭제해 주세요. 쓰는 것만 안 되지 삭제나 수정은 가능할 거예요. 글 남겨서 차단 유도하지 마시고."
내가 말하면서도 퍽이나 줄어들까 싶었다. 정도를 지킬 줄 아는 놈이었으면, 애초부터 글을 안 올리고 봤겠지. 이제 와 내 말을 듣고 정신을 고쳐먹었을 사람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냐고. 그걸 다 알면서도 좀 삭제를 해달라 호소하는 게 내 슬픈 처지였다.
어쩔 수 없다. 그 짧은 새에 백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게시글을 올린 상황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그 수가 줄어들기를 바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10페이지에 근접한 신청 게시판의 게시글. 숨이 턱 막혔다. 장난삼아 글을 남겼다던가, 랭크를 위장했다던가 하는 지원자도 있을 테니 저 숫자가 곧이곧대로 따라붙지는 않겠으나... 못해도 절반은 사실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이렇게나 많은 퀸 유저가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가 가장 풀기 힘든 미스터리였다.
[성장세 미쳤농]
[아 게시판 막혔다했더니 카페로 이전한거구나...]
[카페에 움짤 미친거 개많은데 이걸 모르네ㅋㅋㅋㅋ]
[선생님 제발 게시판 카테고리나 제대로 만들어주십쇼]
[ㄹㅇ 결투로 관리자 주는거임? 악질이 받을 수도 있는데 대체 뭘믿고]
[그게 아니라 아무도 안주겠다는 말이잖아]
방송에서 카페 홍보를 이런 식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방송을 급하게 시작한 터라 오늘은 대기 화면도 뭣도 없었다. 대기 화면을 대신해, 방송에 송출되고 있는 건 내 팬카페였다. 그중에서도 관리자 지원을 위한 신청 게시판. 오늘 갱신된 글이 몇 분 간격으로 주르륵 나열된 모습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봐도 하루를 투자한다고 끝마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 일이 아니었는데, 어떤 스노우볼이 굴렀는지 제멋대로 규모가 커져버렸다.
아니면 내가 너무 과도하게 몸집이 커져버린 건가. 최근 방송의 추세를 보면 그것도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앞으로는 무슨 컨텐츠를 하려고 해도 생각을 깊게 할 필요가 있겠는데... 대수롭지 않게 계획한 일이 덩치를 불리면 그걸 수습하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다. 지금 상황이 딱 그 꼴이었으니, 더 할 말도 없었다.
"... 다들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이렇게 많은 분들이 신청하실 줄은 몰랐네요. 제 카페 관리자가 그렇게 탐나는 자리예요? ... 아. 그냥 저랑 한 판 하고 싶어서 신청했다고. 뭐 그런 내적인 조건까지 제한을 두지는 않았으니까요. 공지에 적은 대로 저한테 승리하시면 관리자는 무조건 드립니다. 성실히 일할지 말지는 알아서 정하세요."
마음 저변에서 불퉁한 생각이 움트는 게 느껴진다.
딱히 누군가가 잘못한 일은 아니고, 굳이 따지면 내가 초래한 상황이었으나. 과하게 넘쳐나는 지원자 수를 생각하면, 정말 관리자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지원한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은 게 확실했다.
그 이유가 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방송은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건, 나와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건. 뭐든 간에 괘씸하다는 점에서는 다 동일했으니.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전력을 다해 신청자를 꺾어놔야겠다는 마음만 점점 더 강해졌다. 설령 이 많은 사람 중에서 합격자가 나오지 않는 일이 생기더라도, 전력으로.
참가자를 대충 훑으며 게시판 페이지를 넘기던 도중. 나는 방지턱에라도 걸린 것처럼 중간에 덜컥하고 멈춰 섰다. 뭔가, 보여선 안 될 닉네임이 보인 것 같았는데.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결국 게시글을 클릭해 들어갔다. 확인하기도 전에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카페 관리자하고 싶어서 신청합니다.
나이트폴 아이디:GB 무상
카페 닉네임:진짜무상
왠지는 모르겠는데 누가 제 닉네임을 먹어놨더라구요;; 쪽지보내놨는데 보셨으면 답장 꼭 해주세요. 제가 무상이라는 닉네임을 되게 좋아해서...
노르드님하고 다시 게임한다고 생각하니까 벌써 기대가 됩니다ㅎㅎ 빌드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게요.
아, 그리고 저희팀에서 저만 신청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들 재밌어 보인다고 해서.. 미처 말리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막내라 아직 서열이 많이 밀리네요... 죄송합니다ㅠ
노르드님이라면 다 이길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노르드님 파이팅!!
나는 한동안 말을 잃고 게시글을 가만히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