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3화 〉 243 ­ 현관에서는 얄궂게도 (243/243)

〈 243화 〉 243 ­ 현관에서는 얄궂게도

* * *

"오늘 새벽 영상 편집해서 올리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 새벽? 그걸요?"

"네. 보면서도 어떻게 편집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나는 말을 하는 대신 머그컵을 들어 입가로 가져왔다. 끓인지 얼마 지나지 않은 커피는 아직 온기를 머금고 출렁거렸다. 예민한 입술에는 아직 뜨겁게 느껴질 정도. 컵에 담긴 내용물을 조심스레 홀짝거린다.

얼굴을 대면한 주연을 무시하려는 처사는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바쁜 와중에도 몸소 찾아와준 편집자를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이건 떠오른 생각을 바로 입 밖으로 내뱉기 전, 한차례 더 검토를 하기 위함이다. 본래 많은 생각과 고뇌가 아이디어 회의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법 아닌가.

오늘 새벽에 있었던 방송이라 함은, 결투가 끝난 뒤에 있었던 간소한 마무리를 말하는 거겠지. 재미도 뭣도 없이 추레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라면이나 후루룩하던 내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아, 생각해 보니까 아직 다시보기도 지우지 않았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그걸 왜. 대체 누가 보는데.

"그걸 왜 올려요. 어제 방송은 프로게이머하고 붙었던 장면만 편집해서 올리면 충분할 텐데..."

"당연히 그건 이미 따놨구요. 새벽 소통 방송은 그냥 날리기엔 너무 아까워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아니면 풀 영상 채널 파서 거기라도 올리는 게 어때요? 본 채널 성장 생각하면 지금 채널 확장해도 괜찮은 상황이니까."

"아니... 꾸미지도 않고 라면만 처먹는 영상을 대체 왜..."

"또 그런 말을."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주연은 단호한 목소리로 내 흐리멍덩한 의문을 흩어냈다. 요즘 부쩍 손님이 늘었다는 생각에 구매한 탁자 세트는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작고 앙증맞아서, 마주 보고 앉은 주연의 기다란 다리가 내 다리와 반쯤 겹쳐질 지경이었다. 부드러운 잠옷 위로 와닿는 다리의 감촉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이게 불편하지도 않은 건지 주연은 한마디 불평도 없이 마구 다리를 얽어왔다.

"여기 보이세요?"

다리 감촉에 한눈이 팔린 사이, 주연은 내 앞으로 핸드폰 액정을 들이밀었다. 익숙한 채널 아트가 눈에 들어왔다. 내 엘튜브 채널 정문. 주연의 손가락 끝은 어느 영상 하나의 조회수를 가리키고 있었다. 업로드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영상일 텐데, 이미 십만이 넘어가는 조회수가 인상적이다.

... 그래, 근본도 없이 올린 낚시 영상치고 조회수 올라가는 속도가 과하게 빠르긴 했다.

"... 이거랑 큰 연관성은 없잖아요. 이건 그래도 낚시라는 명확한 컨텐츠가 있는 건데­"

"연관 있죠. 혜진 씨가 영상에 나온다는 공통점이. 그리고 혜진 씨 구독자 중에 낚시에 관심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거 같아요? 낚시나 라면 먹는 방송이나 거기서 거기예요. 중요한 건 혜진 씨가 카메라에 나온다는 거. 또 얼마나 잘 나오냐는 거죠. 거기에 소통까지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

"잘? 새벽에 추레하다는 채팅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채팅에서 틱틱대는 건 저수들 특징인 거 아시잖아요? 본심으로는 그동안 본 적 없던 모습이라고 좋아하는 거 뻔히 보였는데. 그건 채널 구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혜진 씨는 워낙 신비주의에 가까우니까."

...뻔히 보였다고? 뭐가 뻔히 보이나. 나는 채팅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말에 주연을 빤히 바라봐도, 그녀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회의를 한다고 가져왔는지, 얇은 테의 안경을 쓰고 있는 탓에 사나운 눈매가 반쯤 가려졌다. 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주연의 얼굴은 바라보기 부담스럽지 않았다.

거짓말과는 연이 없다고 말하는 듯한 저 확고한 얼굴. 언제나 그렇듯, 주연이 바라보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는 궤를 달리하는 인간이었다.

"주연 씨가 보기에는 어땠는데요? 제 새벽 방송."

"좋았죠. 소통 방송은 워낙에 안 하시니까."

"제가요? 제가 얼마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 죄송해요. 제가 리액션이 적은 편이라 농담에도 반응을 잘 못해서."

"아니,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냐고 되묻는 듯한 주연의 표정을 보고 나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열심히 일하는 편집자와의 컨텐츠 회의는 이미 정기적인 일정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사실 이 정도면 단순히 편집자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영상 편집은 물론이요, 채널 관리나 채팅창 관리까지 도맡아 수행하는 주연의 업무량을 생각하면 동업자라는 표현이 더 잘 맞을 듯싶었다. 방송 규모가 커질수록 해야 할 일도 겹겹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 최근 방송이 끝날 때면 편집점을 체크해서 알려주는 것도 다 주연의 과한 짐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본인이야 항상 자신에겐 꿈의 직장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모를 일이 아닌가. 이젠 내가 그게 신경 쓰일 지경이다.

짧게는 한 주에 한 번, 길게는 한 달에 한 번일까. 브이로그 영상이 뜻밖의 대흥행을 이룬 다음부터였을 터다. 단순히 생방송에서 진행했던 게임 플레이 영상만 올리는 게 아니라, 좀 더 풍성한 컨텐츠를 만드는 쪽이 채널 성장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진 직후.

나는 그렇게 진취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나, 의욕적인 동업자 옆에서 안주하고만 있을 정도로 무기력한 인간도 아니었다. 아무튼 성공한 영상 하나가 채널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실감한 상태였다. 하는 일이 잘 되는 모습을 보고 뿌듯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양한 시도를 해보자는 주연의 말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컨텐츠 회의는 그런 취지에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주기적으로 모여서, 채널에 올릴만한 영상 소재에 대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놓는. 베타코드 통화 기능으로 간단히 이루어졌어도 됐을 자리가 왜 내 원룸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나도 자세히 설명하기 힘들었다. 몸을 움직여야 할 편집자 본인이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좋겠다고 강렬히 주장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할까. 그냥 알겠다고 말하고 넘어갈 수밖에.

서로 딴짓을 하지 못하도록 마주 바라보고 있는 이 상태가 훨씬 능률적이라는데는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거기에 이동시간을 포함하면 과연 수지 타산이 맞을지 모르겠으나, 움직이는 건 내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전적으로 주연을 존중하는 입장이다. 본인이 괜찮다면 더 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으니까... 뭐 그러려니 하는 거지.

결론적으로 직접 만나서 진행하는 컨텐츠 회의는 제법 많은 결과물을 토해내고 있는 상태였다. 인터넷 방송과 엘튜브 쪽으로 빠삭한 주연이 쏟아내는 아이디어를, 내가 어떻게 수행할지 검토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참고할 영상이야 엘튜브 전체에 차고 넘쳤으니, 회의에서 아이디어가 부족할 일은 없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있었지.

그러니까 이런 거.

"코스프레­ 이건 바로 취소."

"왜요. 이미 성공이 보장된 컨텐츠인데."

"... 주연 씨, 제가 벌칙 방송한다고 할 때는 극구 반대하셨잖아요. 그런 과격한 건 이미지에 해가 된다면서."

"... 나작노는 이미 글렀으니까 노르드를 세계화시키기로 했어요. 어차피 가까이에 있는 건 나니까."(폰트수정)

"네? 무슨 소리야."

"아뇨. 보고 나니까 이건 조회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컨텐츠라고 생각해서요. 완전히 빼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나요?"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난 주연은, 천천히 걸어가 옷걸이에 매달린 빨간 드레스를 쓰다듬었다.

... 알 수 없는 수치심이 끓어오른다. 덤으로 벌칙 방송을 수행한 다음 주연에게 받았던 메시지도. 뭐랬더라. 어울리지 않게 흥분한 듯한 주연은 읽기도 힘들 정도로 긴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와서, 나는 그 내용을 온전히 떠올릴 수 없었다. 여러모로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카페에서도 난리가 났죠. 혜진 씨도 인기글 다 읽어보셨나요?"

"... 그걸 다 어떻게 봐요. 글 하나도 읽기 힘들었는데."

옷감의 부드러운 재질이 그렇게도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옷자락을 쓸어내리던 주연은, 이내 행거에서 드레스가 걸린 옷걸이를 잡아들었다. 무채색의 옷들이 겹겹이 걸려있던 행거에서도 그토록 강하게 존재감을 내뿜더니...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붉은색은 여전히 사람을 질리게 하는 맛이 있었다.

수납장이 없어서 대충 걸어놨더니만. 어디 깊숙이 박아놓기라도 해야 되나. 보기만 해도 머리가 두통을 호소하는 것 같은데.

적당히 식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해가 뜨는 걸 보고 나서야 잠에 든 몸뚱이는 지겹게도 피로를 호소했다.

그래도 아침 운동을 거를 수 없다며 맞춰둔 알람에 따라 몸을 일으킨 게 열 시 정도였나. 수면을 줄이고 운동을 하는 것과 부족한 잠을 마저 자는 것. 어떤 선택이 더 몸에 이로울까. 막상 잠을 줄이고 보니 찾아오는 노곤함에 머리가 당겨왔다. 운동을 하면 그만큼 몸을 소모하는 셈이니 평생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멍청한 옛 친구가 떠오른다. 오늘 한정으로는 네가 옳았다.

"혜진 씨, 잠깐 일어나 보실래요?"

붉은 드레스를 외면하고 싶어 감았던 눈을 뜨면, 내 앞으로 다가온 주연이 그 보기 싫은 드레스를 든 채로 말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방어기제가 치솟았는지 팔이 올라온다. 순간 해맑게 웃고 있던 여동생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옷걸이에 걸린 옷을 들고 나에게 다가와, 일어나 보라고 하다니. 어딘가 익숙한 모양새가 아닌가. 기억을 되짚어 보면 옷가지를 수북이 가지고 왔던 때가 어렴풋이 생각났다. 자연스레 고개가 돌아갔다.

"왜... 아니, 싫어요. 싫다고."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냥 잠깐만 일어나 봐요."

"뭐요. 이유가 있어야 일어나지. 그, 주연 씨? 눈... 눈이 좀 무서운데."

"안경이 조금 이상한가요?"

"안경이 아니라 눈이­"

눈이 존나 무섭다고.

일어나기 싫어서 의자에서 몸을 웅크린다. 작은 탁자에 어울리는 접이식 의자는 몸을 숨길 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뒷걸음질 치듯 상반신을 뒤로 당기려는 내 어깨를 주연의 손이 붙잡았다. 주연이 여자치고는 강한 악력을 지니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 가녀린 몸뚱이가 그만큼 약한 건지. 어깨를 붙잡은 손의 악력이 제법 거세게 느껴졌다. 아니... 체급 차이가 좀 심한 것 같기도 하고. 가까이 접근한 주연의 체격이 평소보다 훨씬 컸다.

어느샌가 드레스는 옷걸이에서 벗어난 상태. 나도 모르게 손끝이 떨렸다. 정말 무슨 짓을 당하는 것도 아닐 텐데, 입을 앙다물고 드레스를 내 몸에 갖다 대는 주연의 매서운 눈초리를 보면 나도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범죄자는 눈만 마주쳐도 이상한 낌새가 흐른다더니, 내가 그걸 내 편집자한테 느낄 줄이야. 여전히 어깨를 붙잡은 손이 움직임을 방해했다.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져서, 나는 뒤로 물러나고자 다리를 뻗어 바닥을 밀어냈다.

"어...?"

"아!"

갸우뚱­하고 몸이 기울어지는 아찔한 감각.

쿵­

"악­!"

두 사람의 비명소리가 겹친 것 같았다.

쓰러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애초에 견고하게 설계되지 않은 접이식 의자는 흔들리는 무게 중심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드레스를 밀어붙이느라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던 주연도 함께.

다 큰 성인 둘이 방바닥에 나뒹구는 꼴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정신을 차리면 등에서부터 얼얼한 통증이 찾아왔다. 덤으로 내 위를 깔아뭉개고 있는 주연의 무게감도. 머리로부터 느껴지는 통증은 그리 크지 않은 걸 보니, 불행 중 다행으로 머리로 낙법을 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적당히 뻗은 상태로 뭉개진 다리나 팔도, 부러지지는 않은 건지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천장의 형광등이 유난히 밝게 빛난다. 몸이 멀쩡하다는 걸 인식하고 나니, 누워있는 상태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앉아서 장난을 치다 같이 넘어지는 건, 초등학생 때나 있을 법한 일이 아닌가.

나 못지않게 당황했는지 주연이 황급히 바닥에 몸을 지탱한다. 내 다리 사이로 들어온 주연의 무릎이 바닥에 맞닿았다. 전신에서 느껴지던 무게감이 사라지고, 내 몸 위로 포개진 드레스의 부드러운 감촉이 살아났다.

"괜찮, 괜찮으세요?"

"풉, 크흑."

"어디 다치셨어요? 괜찮아? 내가, 내가 실수를­"

"아니 아니. 멀쩡해요, 멀쩡해. 그냥 지금 꼴이 웃겨서 그래."

다급했는지 얼굴을 가까이하고 몸을 떠는 주연의 모습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수습하고 말했다.

반쯤 몸을 깔아뭉갠 자세 때문일까. 걱정이 잔뜩 묻어 나오는 얼굴에 진심이 가득 담겼다. 누운 채로 손을 뻗어 주연의 볼을 톡톡 쳤다. 그제서야 안심했다는 듯 그녀의 얼굴이 펴지기 시작했다.

삑삑삑삑

그리고, 그 틈새를 타고 도어락을 푸는 흥겨운 소리가­

아니... 도어락?

띠리링­

"언니, 어제 새벽 방송 보고 걱정돼서­"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온 동생은, 이내 원룸 안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선 입을 다물었다.

동생의 손에서 털썩하고 비닐봉지 하나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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