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6화 (166/212)

“단장님, 오셨습니까!”

아담의 등장에 입구를 막고 서 있던 기사들이 정자세로 시립한 후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후 이쪽으로 곧장 걸어왔다.

아담을 보고 긴장하는 그들의 모습에 원망이 샘솟았다.

‘그러게 빨리 열라고 했잖아……!’

너무 바빠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기적 같은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아담은 정확히 내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백작님.”

“…….”

아담 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담 헤일리]가 당신의 존재에 어이없음을 느낍니다.」

떠오른 시스템 창에 나는 조금 놀랐다.

신전에서와는 달리, 카셀 또한 황궁에서 나를 마주친 적이 없기에 따로 내 존재에 대해 언질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담은 내가 ‘그’ 약재상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본 눈치였다.

‘로브를 쓰고 있는데 어째서 다 알아보는 거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순간.

한동안 날 지그시 내려다보던 아담이 이윽고 기사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상황인지 묻는 시선에, 나를 석연찮게 여기던 기사 한 명이 잽싸게 고해바쳤다.

“이자가 단장님께서 불러들인 치료사라고 사칭하며 궁 안으로 들어서려 하기에 막고 있었습니다!”

“사, 사칭이라니……!”

고자질도 모자라, 갑작스럽게 사칭범으로 모는 놈의 행태가 기가 막혔다.

나는 아니라고 반박하기 위해 황급히 아담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아담 헤일리]가 당신에 대해 ‘그럴 법하다’라고 평가합니다.」

‘넌 또 뭐가 그럴 법해?!’

곧장 바뀌는 글씨에 황망해졌다.

어쩌다 내 평판이 이렇게까지 밑바닥으로 떨어진 건지…….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혔던 나는, 이내 억울한 목소리로 항변했다.

“사칭범이 아니라, 토너먼트 참가자 그린 마스크 님의 치료사로 고용되었습니다!”

“……그린 마스크?”

예상한 대로 아담은 ‘그린 마스크’ 소리에 곧장 안색을 달리했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빛이 묘했다.

「[아담 헤일리]가 당신의 정체에 의구심을 품습니다.」

곧장 시스템 창이 새로이 떠올랐지만, 좀 전처럼 당황하지는 않았다.

아담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기 때문이다.

세이렌 던전에서 놈을 엿 먹인 후 [여왕 세이렌의 정수]를 들고 튄 게 ‘그린 마스크의 파티’였으니까…….

황태자가 위중한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눈에 불을 켜고 던전을 돌며 나를 찾아다녔을 터였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황태자한테 고자질해서 토너먼트 규칙까지 다 바꾸지 않았나.

‘하여튼, 청렴한 백의 검신 다 죽었다니까.’

무감하던 좀 전과는 다르게 이채를 띠는 푸른 눈동자를 보고 입을 비죽이던 나는, 이내 차분히 말했다.

“예. 용사님께 필요한 약초를 구하러 외출한 사이, 통신 수정구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

“황태자 전하가 위급하여, 백작님께서 다급히 치료사를 구하시는 듯하다고요.”

비록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놈을 맞닥뜨리게 됐지만, 대비 하나 없이 기사들에게 거짓을 고한 건 아니었다.

“그것참 이상하군.”

내 말을 들은 후 잠시간 생각에 잠겼던 아담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가 발견했을 때부터 놈은 내내 기절해 있었는데…… 대체 어느 틈에 네게 연락한 거지?”

“그, 그건…….”

“게다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곧장 소지품을 빼앗고 가둬두라 했을 텐데. 통신 수정구라…….”

아담의 서늘한 눈초리가 나를 지나 시립해 있는 기사들에게까지 닿았다.

과연 메인 캐릭터는 메인 캐릭터인지,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저, 저야 잘 모릅니다. 용사님의 목소리가 굉장히 다급했다는 것밖에…….”

“…….”

“호숫가라고 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외출해 있던 나는 정확한 상황을 모르는 게 당연할 테니, 타당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나를 보는 놈의 눈매가 전보다 더 가느스름해졌다.

「[아담 헤일리]가 당신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품습니다.」

등 뒤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으나,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어차피 카셀이 깨어나면 모두 풀릴 의심이었다.

세이렌 던전에서 본 그린 마스크를 돕던 ‘용사’는 죽었으니까 말이다.

“그, 그보다 황태자 전하께서 위급하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문득 카셀을 떠올린 나는 화들짝 놀라 아담을 팔아먹으면서까지 황궁에 들어가려던 목적을 상기했다.

일분일초가 급한데, 지금 이렇게 실랑이나 벌일 때가 아니었다.

“신원 확인 전까지 저를 들여 보내주지 않으셔도 좋으니, 대신 이걸 받아주세요. 당장 전하께 먹이셔야 합니다.”

나는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작은 보따리 같은 것을 아담에게 건넸다.

[중급 압축 주머니]

숨 쉴 틈도 없이 급히 만든 것들이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아담은 썩 미심쩍은지 내가 건넨 주머니를 바로 건네받지 않았다.

“그게 뭐지?”

“포션 중독 중화제입니다.”

그제야 놈이 짐짓 표정을 굳히고는 곧장 주머니를 낚아챘다.

빠르게 그 안을 들여다본 그는 병의 양을 보고 놀랐는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생색내고 싶은 마음을 꾹 내리누르며, 나는 진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총 천 갭니다.”

“천 개……?”

“네. 정신을 차리실 때까지, 5분에 한 번꼴로 먹이셔야 합니다.”

포션 중독을 치료하려면, 먹은 포션의 수와 빈도수만큼의 중화제를 먹어야 한다.

솔직히 마지막에 포션을 쉴 새 없이 무식하게 들이켰던 카셀 놈을 생각하면 5분도 길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식도 없는 놈에게 액체를 쉴 새 없이 들이부을 순 없는 노릇이니, 일단 양으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물론 천 개를 모두 다 복용하지 않으셔도 되긴 합니다. 불면 포션을 그만큼 드시지는 않으셨으니까…….”

“…….”

“그래도 몸 상태가 완전히 나아질 때까진 감옥, 아니, 백작님의 저택에 계셨던 시일만큼은 드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넉넉히 제작해 왔습니다.”

‘감옥’을 언급한 순간 아담의 낯빛이 매우 어두워졌기에 황급히 말을 바꿨다.

‘본인이 생각해도 과거에 카셀에게 했던 처우가 심하긴 한가 보지.’

어쩌면 나처럼 카셀의 포션 중독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애초에 좀 잘해줄 것이지.’

속으로 혀를 끌끌 차고 있을 무렵, 놈이 불쑥 헛소리를 지껄였다.

“네놈을 어떻게 믿고 이걸 먹이지?”

“……네?”

“백작 저의 전담 약제사로 고용하겠다는 것도 걷어차고 한마디 없이 사라졌지 않나.”

“허.”

이번에는 정말로 기가 막히다 못해 코가 막혔다.

물론 NPC가 아닌 놈의 눈에는 [포션 중독 중화제]라 뻔히 써 있는 글씨가 보이지 않을 테니, 천 개씩이나 가득 들어 있는 병이 수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까지 의심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싫으면 내놔, 이 XX놈아! 보아하니 치료사도 못 구해온 것 같구만!’

텅 비어있는 놈의 뒤를 확인한 나는, 다시 주머니를 빼앗을 요량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그 순간.

「[아담 헤일리]가 당신에게 약간의 서운함을 느낍니다.」

갑자기 떠오른 시스템 창이 나를 막았다.

‘……엥? 웬 서운함?’

놈의 무뚝뚝한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닷없는 단어에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쎄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에이, 설마…….’

나는 화를 내던 것도 잊은 채 얼떨떨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때 전 엄연히 성녀님께 고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다음 바로 그린 마스크 용사님이 개인 고용을 예약해두신 상황이었고요.”

“그래도 한 마디쯤 언질은 하고 가야 할 것 아닌가.”

설마가 맞았다.

놈은 내가 신전에서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을 서운해하고 있었다.

어쩐지 의심 어쩌구 시스템 창도 뜨지 않았는데, 도를 넘는 언행이다 싶었다.

아담은 한마디로.

‘……삐진 거였냐고.’

그를 방증하듯 놈이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제안은 전하의 전담 약제사가 되기로 했다며 거절하더니, 어째서 토너먼트 참가자의 치료사로 있는 거지?”

“그, 전하의 전담 약제사 자리도 거절했습니다.”

“이유가 뭔가.”

무슨 바람피운 연인을 추궁하듯 놈이 득달같이 되물었다.

나는 어쩐지 변명을 하는 듯한 어투로 더듬더듬 대꾸했다.

“그린 마스크 님이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해서…….”

“그놈이 무슨 돈이 있어서.”

“……토너먼트의 1등을 차지하면 상금을 나눠 준다고 했습니다.”

물론 일레인은 그런 말을 한 적 없었다.

하지만 갖은 개고생을 한 건 나였으므로, 상금은 무조건 반띵이었다.

「[아담 헤일리]가 당신의 말을 우스워합니다.」

그런데 대체 뭐가 우스운 건지 아담이 별안간 헛웃음을 터뜨렸다.

“천생 사기꾼인 줄 알았더니, 사기를 당하기도 하는군.”

“…….”

“그놈은 1등을 할 재목이 되지 못한다.”

그 말과 동시에 기분 나쁜 글씨가 떠올랐다.

「[아담 헤일리]가 당신을 약간 측은하게 여깁니다.」

놈은 1등을 할 거란 그린 마스크의 말에 속아 넘어갔다고 오해한 모양인지 나를 측은히 여기고 비웃는 중이었다.

‘닥쳐!’

1등까지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왜인지 놈의 반응에 바짝 약이 올랐다.

이를 사리물고 있을 무렵, 아담이 내게서 휙 고개를 돌리고 명령했다.

“문을 열어라.”

조마조마한 상태로 우리를 지켜보던 기사들의 만면에 놀라움이 스쳤다.

“하, 하지만 단장님. 아직 이자의 신원을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신원 확인은 괜찮다. 내 영지의 약재상이니 내가 데리고 온 것도 맞는다고 볼 수 있겠군.”

나는 그 말에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담을 돌아보았다.

이대로 포션과 함께 내쫓을 줄 알았는데, 그는 놀랍게도 직접 내 신원을 보증해 주고 궁 안으로 들여보내 주고 있었다.

철옹성처럼 닫혀 있던 성문이 아담의 명령에 허무하리만치 쉽게 활짝 열렸다.

“가지.”

그는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나를 슬쩍 돌아보며 앞서 걸어갔다.

‘……날 던전 도둑으로 의심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신뢰도가 최악 아니었던가?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 채 아담의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이내 황급히 그 뒤를 쫓아갔다.

그렇게 얼마 정도 그를 따라 걸었을까.

아담은 구석진 곳에 세워져 있는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황태자 카셀 루크비히의 거처]

영 궁 같아 보이지 않은 건물 앞에도 검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건물을 휙 둘러보던 나는 의아함과 함께 묘한 감상에 젖어 들었다.

‘생각보다…… 검소하네.’

황제가 하도 철천지원수 취급하길래 황제의 궁이라도 뺏어 쓰는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다.

유폐된 왕자가 흔히 쓸 법한 어둡고 칙칙한 건물을 잠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우뚝 멈춰선 아담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쪽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의 곁눈질을 따라 확인하자 정말로 검은색 갑옷의 기사들 사이에 황금색 갑옷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게 보였다.

황제 쪽 사람들인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놀라울 일이었기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가지고 온 것들을 마저 꺼냈다.

[탈리스 박하]˟10개

[태양빛 사슴 녹용]˟1개

[말린 맨드라미 씨앗]˟4개

“이게 뭐지?”

“체력을 보하고, 피를 맑게 해주는 약재들입니다. 중화제 복용이 끝나면 달여서 전하께 먹이세요.”

아담은 내가 꾸물거리며 건네는 약재들을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다.

너무 날것 그대로의 재료들이라 그런지 약간 보잘것없어 보였다.

“……당분간 포션을 드시면 안 되니까요.”

민망함에 덧붙여 말하자, 그제야 아담이 시선을 들어 나를 마주 보았다.

찰나, 그의 푸른 눈동자가 약하게 흔들렸다.

“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예? 무슨…….”

“딱히 뭘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전하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네 고용주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준비해왔다는 게 좀 의아하군.”

“…….”

“금전에 미쳐 있지 않았나.”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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