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9화 (169/212)

뜻밖의 장소에서 나타난 천둥이 때문인지 일레인은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대체 언제 부화한 거지? 마지막에 봤을 때만 해도 분명 알이었는데…….”

토너먼트를 시작한 후 그는 내내 황궁에 갇혀 있었기에 천둥이의 부화 소식을 모르는 게 당연했다.

여러 번 휘파람을 불렀음에도 지각한 천둥이에게 주먹으로 꿀밤을 먹이고 있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얼마 안 됐어. 토너먼트 시작했을 때쯤인가.”

“그런데 그새 이렇게 커졌다고요?! 아니, 이건 자란 게 아니라 돼지가 된 수준인데?”

그게 고작 4일 전이었으니, 일레인이 까무러칠 만도 했다.

“그러니까. 얘 먹이 값 때문에 허리가 휜다, 휘어.”

“꾸웨에에에엑―!”

제 욕하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들은 건지, 돼지 새가 한바탕 울부짖었다.

그런 천둥이를 한동안 낯설게 응시하던 일레인이 문득 조심스러운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우리 이래도 되는 거예요.”

“뭐가?”

내 되물음에 일레인이 방금 막 부리를 다문 천둥이를 눈짓했다.

“……밖에서 듣고 확인하러 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뭐 어때. 규칙을 어긴 것도 아니고.”

“규칙……?”

“그래, 규칙.”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드렁하게 말을 이었다.

“던전을 클리어하는 동안 다른 인간의 도움을 받지 말랬지, 다른 마물의 도움을 받지 말라는 규칙은 없었잖아?”

물론 일레인은 이미 ‘다른 인간’의 도움을 받고 있으므로 규칙 위반이긴 했지만.

“와.”

내 말을 알아들은 일레인이 짧은 감탄사와 함께 어쩐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누나는 정말…… 괴상하고 악랄해.”

「[일레인 그리셀다]가 당신의 꼼수에 진심으로 감탄합니다.」

「[일레인 그리셀다]가 당신의 악당 같은 면모에 약간의 존경심을 가집니다.」

‘악당이라니!’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시스템 창에 나는 이를 바득 갈았다.

물론 내가 규칙의 맹점을 이용하고 있는 건 맞지만…….

‘원래 천둥이는 이렇게 쓰려고 데리고 온 게 아니라고.’

물론 애초에 천둥이를 키메라를 잡는 데 쓸 요량으로 잡은 건 맞았다.

하지만 내가 처음 생각한 그림은, 토너먼트가 끝난 후 남주의 ‘정식 동료’로서 그에게 힘을 보탤 때였다.

황제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 카셀이 키메라를 잡기 위해 홀로 호수 속으로 들어가고.

아담을 비롯한 동료들이 밖에서 그에게 힘을 보태는 본 시나리오의 내용.

그것을 알고 있던 나는 암시장에서 일찍이 천둥이를 잡아 길들였다.

고릿적부터 뱀과 새는 천적이기 마련이고, 마물도 그런 생태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간 로브 속에 진짜 모습을 감춰왔기에, 혹여 직접 나서지 못할 상황을 대비하여 천둥이를 키메라를 퇴치하는 일에 대신 내보낼 생각이었다.

한 마디로, 나 편하려고.

그런데 빌어먹을, 남주가 아닌 내가 키메라를 직접 때려잡아야 할 판이라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천둥이와 호수를 바라보며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을 때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일레인이 어떻게 키메라를 퇴치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우울한 얼굴로 답했다.

“네가 할 일은 별로 없어, 그린 마스크.”

“제가 할 일이 있어요?”

“그럼 없겠냐?”

“…….”

보아하니 ‘벨리세르의 눈동자’가 없다는 이유로 손 하나 까딱 안 할 줄 안 모양인데.

‘어림없지!’

나는 눈을 부릅뜨고 그에게 읊조렸다.

“너한테 잡으라고까진 안 시킬게. 대신 천둥이가 싸울 동안 다른 놈들이 천둥이를 공격 못 하도록 유인 좀 해.”

“유인이요?!”

“그래.”

내 말에 일레인이 눈을 크게 치켜뜨고 반박했다.

“전 무기 하나 가진 거 없는데, 어떻게 유인을 해요. 춤이라도 출까요?”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나는 놈의 쓸데없는 기우를 단숨에 일축했다.

“네가 좀 전에 먹은 위장 향기 포션, 그거 사실 키메라들이 좋아하는 향이야.”

“뭐라고요?!”

퍽 억울한지, 일레인이 귀청이 떨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아, 그건 아니죠! 냄새 가리라고 준 줄 알았더니! 사람 감쪽같이 속이며 먹이는 건 선 넘지!”

“그건 진짜였어.”

[위장 향기 포션]은 달짝지근하고 강렬한 꽃 향이기에 다행히도 일레인에게서 더는 끔찍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아까 맡았던 놈의 정수리 똥내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이 거짓 같아 보이진 않았는지, 놈은 아무 말도 없이 파들파들 떨며 나를 노려보았다.

「[일레인 그리셀다]가 당신에게 약간의 배신감을 느낍니다.」

「[일레인 그리셀다]가 당신의 배려 없는 태도에 깊은 수치심을 느낍니다.」

「주의! 부정적인 감정이 잦아지면, 당신에 대한 신뢰와 우정이 변질되어 [흑역사 유발 대상]으로 분류될 수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아오, 가지가지 한다.’

오랜만에 뜬 경고창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하지만 곧 터질 것처럼 새빨개진 일레인의 얼굴을 보니, 여기서 더하면 애를 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뻗어지지 않는 팔을 억지로 뻗어, 놈의 냄새나는……

아니, 조금 지저분한 초록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그린 마스크. 이제 너 냄새 안 나. 향기로워.”

“그걸 위로라고…… 됐거든요?! 키메라 배 속에서 만납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포션을 먹인 게 아니야. 자.”

나는 내 손을 쳐내며 칭얼거리는 놈을 달래기 위해 재빨리 주머니에서 아이템을 꺼내 건넸다.

[S급 방어 아티팩트] ˟ 30개

“별일 없으면 지속 시간 3시간이니까, 넉넉히 써. 아무리 길어도 3일 안엔 무조건 끝낼 거야.”

“30개……?”

일레인이 일순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나도 꽤 값이 비싼 S급 아티팩트를 이렇게 대량으로 받게 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너 때문에 누나가 돈 좀 썼다, 인마.’

훅 줄어든 금화를 떠올리자, 입맛이 무척 썼다.

하지만 나는 내색 않고 꽤 멋진 대사를 쳤다.

“설마 내 하나뿐인 파티원을 키메라 밥으로 줄까 봐.”

“…….”

진짜 그럴 줄 알았는지, 놈은 아무 말 없이 울먹울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레인 그리셀다]가 당신에게 매우 큰 감동을 느낍니다.」

「[일레인 그리셀다]가 당신에게 강한 호감을 가집니다.」

그 순간 떠오른 시스템 창에 나는 좀 놀랐다.

‘약간이나 일정 수준 이상은 많이 봤어도…… 강한은 처음 아닌가?’

내내 붙어 있으니 일레인과 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필연적이었으나, ‘강한 호감’까진 의외였다.

게임을 시작하면서, 메인 캐릭터들과의 유대를 크게 기대하지 않아서일까.

어쩐지 기묘한 기분이 들어서 시스템 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무렵.

“……미리미리 줬으면 큰 소리 낼 일도 없었잖아요. 하여튼, 괴상해.”

한동안 말이 없던 일레인이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런 그의 양 볼이 발그레 달아오른 상태였다.

수치심으로 터질 것 같았던 좀 전과는 달리 쑥스러움 때문이라는 것쯤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짜식, 이미 감동 먹은 거 다 알거든.’

나는 그런 그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키메라는 물 밖에서 움직이는 게 느리니까 너무 쫄지 말고.”

“쫄긴 뭘 쫄아요. 전 강해서 키메라 따위한테 절대 안 져요.”

놈이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 상황을 막기 위해 나는 말을 아꼈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S급 마력 증폭 포션] 하나를 꺼내 마시며 호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럼 시작한다.”

흘끔 뒤를 돌아보며 말하자 일레인이 긴장감이 감도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꾸웨에에에엑!”

천둥이의 씩씩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증폭 포션으로 인해 들끓는 마력을 그대로 호수에 퍼부었다.

“스턴!”

「[Lv.999 스턴] 스킬이 발동합니다.」

‘MP –999’

[MP 999]

스킬 영창과 동시에 널따란 호수 전체에 스파크가 피어났다.

파즛, 파지지지지직―!

벼락이 내리치는 하늘처럼, 물속에서 번쩍거리며 엄청난 양의 전류 선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어두운 숲을 환히 밝힐 만큼 번쩍거리던 호수 속 스파크는 차차 잦아들었다.

이윽고 스킬이 완전히 소강되자 적막이 찾아왔다.

공격을 받았다고 보스 몹이 바로 튀어나와 우릴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쯤 기절해 있겠지.’

그러나 키메라는 회복력과 재생력이 몹시 빠른 마물이었다.

때문에 적막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고오오오오오…….

얼마 후, 저 멀리서 물살을 헤치고 빠르게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옆에서 마른침을 삼키는 일레인을 곁눈질했다.

“무리는 하지 마.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쳐.”

“누나나요.”

나름 긴장을 풀어주려고 한 소리인데, 싸가지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런 놈에게 괘씸함을 느낄 틈도 없었다.

눈 깜짝할 새 다가온 여러 갈래의 기다란 그림자들이, 별안간 수면 위로 솟구쳤기 때문이다.

“키에에에엑―!”

촤아아아악!

분수처럼 물을 흩뿌리며 동시에 튀어나온 놈들이 저마다 괴성을 지르며 꿈틀거렸다.

[Lv.220 키메라의 첫 번째 머리]

[Lv.220 키메라의 두 번째 머리]

[Lv.220 키메라의 세 번째 머리]

내 전기 공격으로 어지간히도 열 받은 건지, 세 개의 머리가 전부 튀어나왔다.

“으윽! 뭐야, 저건 또 왜 저래?!”

쏟아지는 물을 피해 뒷걸음치던 일레인이 세 개의 머리 중 하나를 가리키며 경악했다.

덩달아 그쪽을 바라본 나는 조금 미안해졌다.

일전에 내가 베어낸 키메라의 첫 번째 머리가 두 갈래로 갈라진 채 괴성을 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일레인이 유인해야 할 키메라의 머리가 총 4개가 돼버렸다.

그때였다.

후우우욱―!

갑자기 나와 일레인의 머리 쪽으로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꾸웨에에에엑―!”

익숙한 울음소리에 황급히 앞을 보자, 호수를 향해 쏜살같이 튀어 나가고 있는 천둥이가 보였다.

육중한 몸뚱이에 비해 몹시도 날쌘 돼지 새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키메라의 첫 번째 머리에 이어진 목줄기를 단숨에 낚아챘다.

그리고 곧장 육지로 날아가, 끌고 온 키메라의 머리를 발로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키에에에에엑!”

두 개의 뱀 대가리들은 저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괴성을 지르며 흙바닥 위를 꿈틀거렸다.

“꾸웨에에에엑!”

키메라의 괴성에 흥분한 천둥이는 위풍당당하게 울부짖으며 더욱 신나게 적을 짓이겼다.

‘이 천박한 것! 이 천박한 것!’

왜인지 그런 천둥이의 울음소리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쿠에에에엑!”

형제가 공격당하자, 나머지 머리들이 분노하며 천둥이에게로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일레인의 목소리가 호숫가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야, 이 역겨운 뱀 대가리 새끼들아!”

“키이이익……?”

“나, 나 잡아봐라~!”

그 한 마디를 내뱉은 그는 천둥이가 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장난하냐? 그러면 걔네들이 알아듣고 쫓아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런 일레인의 행태를 잠자코 지켜보았다.

“키에에에엑―!”

그런데 놀랍게도, 키메라들이 그 소리에 일레인을 따라 방향을 바꿔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만들어서 준 [위장 향기 포션]이지만 참…… 효능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

숲 쪽으로 마구 내달리던 일레인이 문득 나를 돌아보았다.

느려터진 키메라의 속도를 확인해선지 긴장으로 굳어져 있던 얼굴이 좀 풀려 있었다.

이윽고 일레인이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자신만 믿으라는 뜻 같았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했지만, 제법 듬직해 보였다.

알았다는 의미로 응답하듯 고개를 끄덕여 준 나는, 이내 인벤토리에서 지누가 준 [S급 산소 마스크]를 꺼내 썼다.

그리고, 풍덩!

지체 없이 호수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온몸을 적실 때쯤, 문득 잊고 있던 걱정 하나가 떠올랐다.

‘빌어먹을 서고에서 빠져나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내 발로 다시 기어들어 오게 되다니…….’

또다시 그 망할 놈의 서고로 끌려가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들었으나 별수 없었다.

키메라의 본체를 잡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

수면 밖으로 나온 뱀 대가리들은 사실, 적으로부터 본체를 방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레벨 220짜리들이 방어를 위해 존재하다니.

개사기 마물이나 다름없는 것 같지만, 의외로 키메라를 잡는 법은 쉬운 편이다.

놈의 본체에 있는 심장을 부수면 끝.

다만, 놈의 몸속에 있는 그 심장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

키메라 공략법을 떠올리는데, 불현듯 뜻밖의 깨달음이 찾아왔다.

‘카셀이 하루 만에 키메라를 잡았던 건, 심장의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어.’

그는 회귀로 인해 이미 수십, 수백 번 키메라를 죽여 본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자 기분이 몹시 착잡해졌다.

나는 천둥이의 힘을 빌려서 놈을 처단하는 것도 이렇게 끔찍하고, 하기 싫은데.

그것을 회귀할 때마다 매번 반복해야 할 그는 어땠을까.

설정값이라 쳐도 과할 만큼 파탄 난 그의 성격과 인성이 조금쯤 이해가 됐다.

이번 회차만큼은 그가 쉴 수 있어 다행인 거 같기도…….

‘……다행은 무슨!’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찬물을 맞은 듯 번뜩 고개를 도리질을 쳤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고 있을 때란 말인가.

나는 카셀과 다르게 심장의 위치를 모르니, 무작정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끔찍할 터였다.

‘부디 3일 안에 끝내야 할 텐데…….’

걱정을 한 아름 안은 채 얼마쯤 호수 깊숙한 곳으로 헤엄쳐 들어갔을까.

마침내 호수의 바닥에 이른 나는, 눈을 감고 있는 거대한 사자를 발견했다.

저 거대한 사자가 바로, 키메라의 몸통이자 본체였다.

그를 방증하듯 사자의 갈기로부터 세 갈래의 굵직한 뱀의 몸통이 뻗어 나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눈을 감은 사자 머리와 마주한 채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결심을 다지며 걸음을 옮겼다.

키메라의 본체인 사자는, 뱀들이 물어다 준 먹이를 먹을 때를 제외하곤 늘 잠들어 있기에 놈의 코앞까지 접근하는 것은 쉬웠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는 맹수, 그것도 보통 사자보다 몇십 배는 족히 더 큰 사자의 입속으로, 내 발로 기어들어 가는 것이다.

무작정 부딪혀 본다는 건 말 그대로 사자 몸속으로 들어가 두 발로 뛰며 심장을 찾는다는 뜻이었다.

마물은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동물과 같은 게 아니었다.

마물의 내장 기관은 개체마다 제각각으로 생겨 먹었다.

따라서 보통의 동물이라면 왼쪽 가슴에 심장이 있겠지만…….

키메라의 심장은 그저 몸 깊숙한 곳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다.

‘으읏, 제기랄!’

마물의 잇새를 비집고 억지로 몸을 밀어 넣는 과정은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놈이 언제 불쑥 일어나 날카로운 송곳니로 내 몸을 물어뜯을까, 연신 뒷골이 선득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후…….”

마침내 놈의 끈적끈적한 혓바닥 위에 도달했을 때쯤, 내 몸은 온통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산소 마스크] 덕분에 냄새가 엄청나게 역겹지는 않다는 것이랄까.

마치 어두컴컴한 동굴 입구와도 같은 놈의 거대한 식도 앞에 멈춰선 나는, 조금 긴장한 채 그 너머를 응시했다.

‘망할, 다른 유저들은 할 생각도 않는 일을 나는 왜 해야 하는 거지?’

솔직한 마음으론, 정말 가기 싫었다.

하지만 가야 했다.

카셀은 수십 번도 더 했는데 나라고 못 할 건 뭔가,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졌다.

“……그래. 가보자고.”

애써 굳어지는 발길을 억지로 옮긴 나는, 이윽고 사자의 목구멍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이후로 벌어진 일들은…… 두 번 다신 떠올리고 싶지 않은 X같은 과정이었다.

나는 이틀 밤낮 동안 어둡고,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마물의 내장 속을 방황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삼 일째 되는 날 기적적으로 키메라의 심장을 찾아낼 수 있었다.

위를 지나 끝도 없이 이어진 구불구불한 내장의 바깥쪽에서 커다란 고동 소리가 들린 것이다.

망설임 없이 내장막을 찢고 나가자, 사자 형체의 등허리로 추정되는 곳에 큼지막한 심장이 고이 박동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것을 부수고 [Lv.220 키메라의 정수]를 얻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놈의 몸속에서 빠져나오는 것 또한.

“필격!”

놈의 갈비뼈를 하나 부러뜨린 후 손을 무작정 아무 곳에 박아 넣고 찢어 낸 나는, 드디어 그 빌어먹을 호수 속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천둥아! 그린 마스크!”

“꾸으으윽…….”

“으읏…… 누나…….”

다행히 천둥이와 일레인은 큰 부상 없이 무사했다.

다만 둘 다 탈진한 듯 수많은 뱀 대가리들 사이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을 뿐.

따로 가르친 적은 없으나 영리하게도, 천둥이는 잘린 키메라의 머리들을 전기빔으로 지져 새로이 자라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미처 다 지져버리지는 못한 건지 호숫가는 거대한 뱀 대가리들로 엉망진창이었다.

“으…….”

그것들을 피해 힘겹게 천둥이와 일레인에게 다가간 나는 둘에게 서둘러 [체력 포션]과 [힐링 포션]을 먹였다.

“괜찮아?”

“꾸웨에엑…….”

“으읏, 왜 이제 와요.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미안. 좀 오래 걸렸…….”

“약재상 선생 누나,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누나랑 더는 팀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천둥이랑 더 잘 맞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그린 코끼리 마물 도살단이라 이름 지어봤는데, 어때요?”

“천둥아, 일어났으면 돌아가서 푹 쉬어. 엘레나에게 특식 준비해 놓으라고 말해뒀어.”

“꾸웨에에엑!”

그 후 천둥이를 다독여 다시 도버 마을로 보내고, 여전히 헛소리를 하는 일레인을 챙겨 간신히 던전 밖으로 나왔을 무렵.

위중한 상태였던 황태자가, 3일 만에 깨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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