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1화 (171/212)

「[황태자 카셀 루크비히]가 당신에게 강렬한 충동을 느낍니다. 」

나는 느닷없는 카셀의 행동과 시스템 창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악몽이라도 꾼 건가?’

하지만 꿈결이라 그런다기엔 나를 직시하는 새빨간 눈동자가 무척이나 명료했다.

조금 전까지 신음하며 앓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게다가 강렬한 충동은 또 뭐야? 첨탑에서 마취총으로 포션 받아먹는 꿈이라도 꾼 거냐고!’

그때의 카셀은 시시때때로 나를 목 졸라 죽이고 싶어 했다.

그 기억을 떠올리자 손끝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황태자 궁이 황량할지라도 첨탑의 감옥과는 비교도 안 되게 좋았다.

고로, 이전처럼 [마물 마취총]이 아닌 값비싼 스포이드와 숟가락으로 놈에게 약을 먹였다.

그것도 내가 아니라 놈의 부하들이 먹인 것이다.

‘그리니까 죽이고 싶은 충동이라면, 내가 아니라 이놈 부하들을 향한 거겠지?’

그렇게 결론 내린 나는 조심스럽게 카셀의 안색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언제 왔지?”

“저, 저요?”

득달같이 되돌아온 물음에 나는 당황했다.

눈을 뜨자마자 언제 왔는지 추궁부터 하다니.

한결같이 무례한 놈의 태도에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답했다.

“황태자 궁으로 온 지는 얼마 안 됐습니다. 하루 정도…….”

“…….”

“그런데, 손 좀 놔주시겠습니까?”

대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붙들고 있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저 나를 빤히 응시하며 혼잣말처럼 말하길.

“……여기서 보니, 기분이 이상한데.”

“그렇습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황궁에서 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는데, 어쩌다가 놈을 간호하는 신세가 된 걸까.

걷잡을 수 없이 얼렁뚱땅 흘러가는 내 처지에 한숨을 내쉬는 순간, 카셀이 다시 물었다.

“네가 나를 간호한 것인가?”

“……하루 정도만요.”

그저 잠든 그의 곁을 지킨 것뿐이니, 간호라고 하기도 민망했다.

나는 약을 만들어 제공만 했을 뿐 솔직히 고생은 아담과 그의 수하들이 다 했다.

그런데.

「[황태자 카셀 루크비히]가 당신의 말에 일말의 안도감을 느낍니다.」

떠오르는 시스템 창에 기분이 묘했다.

“지금쯤이면 토너먼트가 끝났겠군.”

멍하니 허공을 보는 사이, 카셀이 빠르게 상황 파악을 했다.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화…… 안 내십니까?”

신전에서처럼,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이냐고 불같이 화를 내며 나를 들들 볶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놈의 태도가 온순했기 때문이다.

내 물음에 카셀의 눈이 의아함으로 물들었다.

“왜 화를 내지?”

“신전에서는 다시 만나자마자 화를 내셨잖아요.”

“이제 다른 인간인 척하는 그 같잖은 연기조차 안 하는군.”

우물쭈물 내뱉던 내게 별안간 놈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 보니 놈이 나를 곧장 알아봤다는 것에 의문도 제기하지 않은 것이 생각나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거야…….”

아니라고 우겨도 네놈이 멋대로 ‘샤리 아즈라엘’이라고 부를 거잖아!

신전에서 막무가내로 내 이름을 불러 젖혔던 놈을 떠올리며 나는 반박하려고 했다.

그러나 놈이 한발 앞섰다.

“뻔하지. 화를 내봤자, 먼저 계약된 고용인이 있었다는 핑계나 댈 게 아닌가?”

“…….”

“그리고 그 고용인은 하필 공교롭게도 황궁에 머무는 자겠지. 이를테면 황궁 던전으로 배치된 토너먼트 참여자라든지.”

정확했다.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듯한 놈의 음성에 목 뒤가 서늘해졌다.

식겁해서 한동안 말을 잃었던 나는, 이내 변명처럼 읊조렸다.

“……그래도 전하의 포션 중독을 중화하는 것은 제가 했습니다.”

“…….”

“그것 때문에 제게 전담 약제사 자리를 제의하신 거잖아요.”

모로 가도 해피 엔딩으로만 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마음에 철면피를 뒤집어쓰고 뻔뻔히 고개를 쳐들고 있을 때였다.

“……그렇군.”

스르륵.

그 순간, 내내 그에게 잡혀 있던 손목이 풀려났다.

나를 놓은 카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잠시 메마른 얼굴 위를 한 손으로 문지르다가, 잠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꼼짝없이 다시 시작할 줄 알았는데…….”

“…….”

“내가 큰 빚을 지게 된 것 같군, 샤리 아즈라엘.”

“…….”

“어쩌지?”

놈은 여전히 한 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흘끔 눈동자만 움직여 나를 보며 물었다.

어쩌긴 뭘 어쩐단 말인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눈을 깜빡였다.

그 순간이었다.

「[황태자 카셀 루크비히]가 당신에게 매우 강한 수준의 호감을 가집니다.」

「주의! 호감이 비이상적으로 높아지면, 당신에 대한 신뢰와 우정이 변질되어 [집착 대상]으로 분류될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집착 대상……?’

갑자기 떠오른 시스템 창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처음 보는 문구였다.

그간 쥐와 고양이 같던 나와 놈의 관계를 생각하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쿵.

왜인지,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 * *

깨어난 카셀은 더 이상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가 완전히 회복했으므로, 여기서 내가 더 할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황태자 궁을 벗어날 수 없었다.

황태자가 제 목숨을 구한 은인을 철저히 대접하라 명했기 때문이다.

“내 생명을 구한 은인이다. 머무는 동안 불편함 없도록 최선을 다해 모셔라.”

느닷없이 내 앞에 시종들을 불러 모아 명령을 내리던 카셀을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은인이라니…….’

놈과 나 사이에, 그만큼 어색한 말이 또 있을까?

내가 만든 [불면 포션] 때문에 포션 중독에 걸린 것이니, 내가 해결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냐며, 늘 하던 대로 뻔뻔하게 나를 노예 취급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누리게 된 호사에 나는 정말이지 몹시 당황해야 했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일어나자마자 토너먼트 수상식과 폐막식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나를 찾아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받아.”

“이게…… 뭡니까?”

그가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로브였다.

꼭 황궁의 고위 마법사들이 입을 법한, 번쩍거리는 보석과 화려한 자수가 줄줄이 박혀 있는 새하얀 로브.

[S급 여명을 새긴 케이프]

나는 그가 대뜸 쥐여준 옷가지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왜 저한테…….”

“그럼 그 꼴로 토너먼트 수상식에 참여할 건가?”

“제 꼴이 뭐가 어때서…….”

천둥이가 물고 와준 덕분에 나는 [중급 엘프들이 제작한 로브]를 벗고 원래의 내 옷, [NPC 전용 허름한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보기엔 좀 허름하고 칙칙해도, 이만큼 값어치 높은 개사기템이 없었다.

너무 과분하다며, 적당한 변명과 함께 로브를 돌려주려던 순간이었다.

“그 꼴로 사람들에게 황태자의 전담 약제사라고 소개하면, 내 체면이 퍽도 살겠군그래.”

“전 전하의 전담 약제사가 아닌데요.”

물론 내가 그를 치료하긴 했지만, 나는 엄연히 토너먼트 참여자인 그린 마스크에게 고용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대꾸에, 남주 놈은 눈을 부릅뜨고 뇌까렸다.

“그럼 그 꼴로 와보시든지.”

“…….”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한걸.”

나는 그 말에 조용히 [S급 여명을 새긴 케이프]를 받아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수상식 참여 안 해도 된다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놈의 형형한 눈깔을 보니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틀 후 토너먼트 수상식 날, 툴툴거리며 로브를 갈아입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방어력이 800밖에 안 되잖아!”

카셀이 준 옷의 스탯을 확인한 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참고로 원래 내 것은 방어력이 999였다.

아무래도 케이프라 길이가 짧은 탓에 방어력이 낮은 듯했다.

물론 S급 캐시템답게 막상 입으니 예쁘고 보기 좋긴 했다.

워낙 새하얀 색에 화려한 의상이어선지, 후드를 푹 눌러써도 칙칙하거나 음침한 느낌 또한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더 내 코스튬과 잘 어울릴지도…….’

로브 안의 하늘하늘한 마법 소녀 원피스를 들춰 보던 나는 그나마 방어력은 낮아도 디자인이 예쁜 것을 위안 삼기로 했다.

“이러다가 갑자기 황제가 공격이라도 하면 어쩔 거냐고.”

물론 그럴 일은 없었다.

깨어난 황태자가 그 길로 황제를 찾아가 난장을 부렸다는 소문이 방구석에 박혀 있던 나한테도 들릴 정도로 파다했다.

그 탓인지, 황제 쪽은 쥐죽은 듯이 잠잠했다.

‘아마 시나리오대로 진행된다면, 이대로 쭉 조용하다가 죽겠지.’

생각을 마친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뒤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황태자 궁 밖으로 나가자, 한 무리의 인간들이 내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약제사님!”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고루고루 섞여 있는 그 무리에 나는 그만 아연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카셀이 내게 호위를 붙이겠다고 언질을 주긴 했으나…….

‘이렇게까지 거창하다고는 말 안 했잖아. 그리고 난 호위 같은 거 필요 없다고!’

멈칫한 내게 사람들이 한달음에 다가와 굽신거렸다.

“이렇게…… 많이 따라올 필요는 없는데요.”

나는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들이 단번에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황태자 전하께서 결투장까지 약제사님을 극진히 모시라 명하셨습니다!”

“어서 마차에 올라타시지요, 약제사님!”

그들이 말하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 끝에 온통 황금으로 휘감긴 휘황찬란한 마차가 서 있었다.

[S급 황궁 마법 마차]

그걸 보자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들에게 반쯤 떠밀려 강제로 망할 마차 위에 올라탔을 때였다.

“왔나?”

마차 안에서 심각한 얼굴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남자가 내게 아는 척했다.

당연하게도, 남주였다.

산 너머, 태산 같은 상황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같이…… 가는 거였습니까?”

“그럼 따로 가나?”

놈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따로 갈 수도 있지!’

아니, 나는 아예 안 가도 된다.

이제라도 그를 만류할 생각으로 나는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전 굳이 폐막식엔 안 가도 괜찮습니다만…….”

“헛소리 말고 출발하게 앉아.”

하지만 말을 꺼내기 무섭게 단칼에 잘렸다.

나는 그렇게 황태자와 함께 황금 마차를 타고 결투장으로 이동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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