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한테요?”
“그래.”
그의 확답에 나는 고개를 내려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다시금 확인했다.
어쩐지 눈에 좀 익다 했더니…….
아담이 내게 건넨 무기템들은 모두 카셀이 암시장에서 경매로 사들인 것이었다.
‘아담에게 하사하려고 샀던 거였어?’
물론 본 시나리오에서도 카셀은 암시장 소탕으로 얻은 아이템들을 동료들에게 적절히 분배해주긴 한다.
그런데 이번엔 아담에게 모조리 준 것도 모자라, 그것들이 다시 내 손에 들어오게 되다니.
나는 매우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채 고개를 들었다.
“왜…… 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다.
그러자 아담이 무심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 대신 황태자 전하를 보필하기로 했지 않나.”
“보필……. 네, 뭐. 그렇지요.”
“전하의 곁을 지켜야 할 이가, 아무런 장비도 없이 어둠의 숲에 들어가 비명횡사를 하면 큰일이니까.”
그제야 나는 아담이 아이템들을 잔뜩 넘긴 이유를 납득했다.
헤일리에서도 그랬다.
아무래도 그는, 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해야 할 상황이 오면 어떻게서든 보상을 해야 속이 풀리는 성향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카셀 놈이 직접 명령한 거잖아.’
비록 아담이 충실한 1등 따까리이긴 하나, 반드시 그만 황태자를 보필하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니까 제 책임을 내게 전가하게 된 상황은 아니란 말이다.
‘이런 걸 챙겨줄 거면 제멋대로 끌고 가겠다고 통보한 놈이 챙겨줘야지. 왜 엉뚱한 놈이 챙겨주고 있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뚱한 표정으로 거절했다.
“챙겨주시는 것은 감사합니다만, 전 괜찮습니다.”
“어째서?”
“그야……. 전하께서 데리고 간다고 하신 거니 어떻게서든 절 안전하게 지켜주시지 않을까요?”
“…….”
아담에게선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다만.
「[아담 헤일리]가 당신에게 약간의 측은함을 갖습니다.」
‘나도 그냥 해 본 말이거든?!’
내가 지켜줬으면 지켜줬지.
그 인성 파탄 난 놈이 나를 지켜줄 리 없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그런데 측은하게 여긴다는 시스템 창을 보니 왜인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냉정하게 생각해라.”
“뭘…….”
“아무리 전하께서 강하다 하셔도, 몰려드는 마물 떼 사이에서 널 매번 지켜주기는 어려울 거다.”
다행히 아담은 속내를 감춘 채 적당히 돌려 말했다.
제법 일리 있는 말이었다. 풀팟도 아니고, 단둘이 가는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챙겨야 할 테니.
하지만 내게 이런 것은 정말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백작님께서 이런 귀한 것들을 제게 주실 이유는 없습니다.”
재차 거절하자 아담이 의외의 답을 꺼냈다.
“그럼……. 보은이라고 생각하지.”
“보은이요?”
“어쨌든 내 하나뿐인 혈육의 목숨을 구해줬으니까.”
그건 지난번 내가 훔친 기가 지네 템들로 퉁치지 않았나?
물론 내가 개같이 싸워 잡은 것으로, 훔쳤다는 누명은 몹시 억울했다.
그렇지만 나는 제대로 된 용사가 아니었기에 대충 수긍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미 지난 일을 또다시 거론하는 아담을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응시할 즘.
나는 문득 그의 귀 끝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자, 별안간 아담이 한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서둘러 덧붙였다.
“게다가 어둠의 숲으로 가지 않는 이상, 내겐 필요가 없는 물건들이다.”
“왜 필요가 없어요? 백작님께서도 재앙을 막기 위해 남아서 전투를 하시잖습니까.”
“헤일리와 달리, 이곳에는 강한 용사들과 수많은 병력들이 있으니까.”
뛰어난 무기가 없어도 충분히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말하는 아담의 얼굴에 씁쓸함이 배어났다.
그렇기에 나는 더 거절할 수 없었다.
“……굳이 주시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아직도 그가 이걸 주는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박복한 내게 제작자 놈들 대신 아담이 주는 보상이라 생각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챙겼다.
‘아싸, 돈 굳었다. 몇 개는 내가 쓰고, 몇 개는 팔아야지.’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신나게 줍고 있는데 문득 아담이 입을 열었다.
“네게 물어볼 게 하나 있다.”
“네, 말씀하십시오.”
평소라면 ‘넌 매번 뭐 그렇게 물을 게 많냐.’고 짜증이 났겠지만, 주머니가 두둑해진 나는 관대하게 질문을 받아 주었다.
기껏해야 교황이나 일레인과 어떻게 알게 된 사이냐는 의심 혹은 추궁일 게 뻔했다.
“황제 폐하의 전담 약제사는 언제까지 하기로 돼 있지?”
하지만 들려온 질문은 전혀 다른 종류였다.
놀란 눈을 들어 그를 보자, 아담이 어쩐지 쑥스럽다는 기색으로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널 고용하려면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것 같더군.”
“저를……?”
“그래.”
“그게 진심이셨습니까?”
“보수는 원하는 만큼 주마.”
“널 아예 전담 약재상으로 앉히라고 아우성이던데.”
“신전의 일은 언제쯤 마무리될 예정이지?”
나는 일전에 신전에서 그가 내게 제안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는 나 같은 속물적인 인간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했고, 계속 내 정체를 의심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저 가까이 두고 감시하려는 목적인 줄 알았다.
그러나.
“연에 5천 코인 정도로는…… 부족한가?”
“…….”
“이 정도면 도버 마을에 있는 네 가게 매출의 두 배라고 들었는데. 원한다면 헤일리에도 새 점포를 내주지.”
놈은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로 내 아픈 곳을 푹푹 찔렀다.
신전에서와 달리, 의심이나 추궁 차원에서 꺼낸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정말로 내 실력과 나라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생겨서…….’
더는 괴상한 의심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으나, 나는 그게 너무나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왜냐하면, 난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이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뭐?”
“일을 계속할 건지요. 이번 일이 끝나면 은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은퇴?”
아담이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나이가 몇인데 벌써 은퇴를…… 그럼 은퇴 후엔 도버 마을로 돌아갈 것인가?”
“그건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
「[아담 헤일리]가 당신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실망감을 느낍니다.」
시스템 창과 더불어 아담의 얼굴에도 분명한 실망감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제 아담이랑 호감도도 좀 안정권에 든 건가?’
카셀과 더불어 제일 나를 의심하던 캐릭터가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신기하면서 영 찝찝했다. 어쨌든 ‘실망’은 부정적인 감정이니까.
하지만 그렇다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순간, 왜인지 메인 캐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하나둘 떠올랐다.
별로 안 친한 아담도 이럴진대, 앞으로 이런 식으로 선을 긋다 보면 일레인은 아예 난리를 치겠지.
새삼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해 메인 캐들과의 거리가 제법 가까워졌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그래도 다행이지. 카셀 그 자식은 나한테 실망할 것도 없을 테니까.’
그 와중에도 한결같이 나를 적대해온 미친놈이 있었다.
내가 앞으로 선을 긋든 말든 카셀은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만큼은 난감한 일도 없을 것이고, 엔딩을 본 후에도 홀가분히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못내……
입이 썼다.
* * *
남주 놈의 엄청난 추진력으로 다음 날 우리는 새벽같이 [어둠의 숲]으로 이동했다.
“부디 무사하십시오, 전하.”
“지금이라도 호위를 조금 더 데려가시는 게 어떠신지요…….”
우리를 어둠의 숲까지 이동시켜 준 마법사들이 여러 번 우려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카셀은 끄떡도 하지 않고 입구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어둠의 숲답게 숲의 입구는 꼭 괴물의 아가리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어둠의 숲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마물이 득실거린다는 설정이었다.
게다가 숲 안도, 밖도 이동 스크롤조차 쓸 수 없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이 여기까지 데려다준 것이기도 했고.
별일은 없겠지만, 제때 이동 스크롤을 써서 피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썩 아쉬웠다.
‘가기 싫다…….’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숲 너머를 바라보며 마냥 한숨을 쉬며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문득 앞서 있던 카셀이 나를 돌아보았다.
“받아.”
[S급 황궁 소환 유물]
그가 내게 불쑥 건넨 물건은 아티팩트와 닮은 소지용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운영자일 때조차 본 적 없던 물건이었다.
이걸 왜 주는지 어리둥절해 하자, 그가 설명했다.
“위급 시에 시동어를 외치면 황궁으로 소환되는 고대 유물이다. 시동어는 ‘제니스의 빛이여, 영원하라.’”
“…….”
“도망과 배신은 확실하다고 했지.”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지?’
도망갈 구멍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쁘면서도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놈이 말을 이었다.
“그 말을 듣고 널 데리고 가는 것을 확정했다.”
X발.
나는 과거로 돌아가서 내 입을 때리고 싶어졌다.
“전투 중엔 너까지 챙길 여력이 없을지 모른다. 그럴 때 난 조금도 신경 쓰지 말고, 이것을 사용하여 황궁으로 돌아가도록.”
“…….”
“어둠의 숲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쉽다. 하지만 괜히 돕겠답시고 옆에서 거치적거리다가 나란히 죽기라도 하면 퍽 곤란해지겠지.”
“위험해서 유물까지 써가며 황궁으로 피신했는데……. 다시 여기로 돌아오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되묻자 그가 별안간 눈을 번뜩였다.
“그럼 네가 내 옆에 붙어 있어야지, 어디에 있어.”
그 말과 동시에 놈이 내게 떠넘기다시피 [S급 황궁 소환 유물]을 쥐여주었다.
“아무리 제가 전하의 전담 약제사라지만, 제게도 인권이 있고, 본인이 있을 곳을 주장할 수 있는……. 저기요.”
내 말 아직 안 끝났거든?
논리적으로 반박하려 했지만, 놈은 그대로 나를 스쳐 지나갔다.
‘개XX.’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면서도, 나는 조금 기묘한 기분으로 카셀이 준 아이템을 내려다보았다.
‘왜 이걸 내게 줬지?’
이런 건 나에게 줄 게 아니라, 본인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죽으면 또 반복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혹시 싸우다 죽기라도 하면, 제일 끔찍하고 절망스러울 존재는 카셀, 본인일 것이다.
물론 그대로 이 망할 게임에 갇혀야 하는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심란한 마음으로 카셀이 준 아이템과 놈의 뒷모습을 번갈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놈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며 사납게 지껄였다.
“빨리 안 쫓아오나?”
“예, 예. 갑니다, 가요…….”
나는 지랄 맞은 도련님을 모시는 하녀같이 재빠르게 그쪽으로 뛰어갔다.
「[어둠의 숲]에 입장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숲의 시커먼 아가리가 우리를 집어삼켰다.